【KARA】デビュー1000日を迎えたホヨンジ

そうですね。そうなりますか。KARA PROJECTももう3年前のことになりますもん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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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지, 데뷔 1000일 맞은 어엿한 연기자
김상민 기자2017-05-15 12:3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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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지, 데뷔 1000일 맞은 어엿한 연기자

허영지가 최근 ‘데뷔 1000일’을 맞은 사실이 알려졌다.

카라의 신 멤버로 합류한 것을 계기로 연예계에 데뷔한 허영지가 최근 ‘데뷔 1000일’을 맞아 팬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지난 13일 허영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데뷔1000일 #꽃밭 #꽃길만걷자 #고마워 #영지를찾아라 #♥ #youngji1000 ” 라는 글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속 허영지는 풍성한 장미꽃 다발과 인증샷을 연출하고 있다.

한편, 허영지는 최근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윤안나 역으로 사랑받았다.

[사진=허영지 인스타그램]

/서경스타 김상민기자

http://www.sedaily.com/NewsView/1OFXKNL0HS

「韓国経済」系のbntが掲載しているロングインタビューを読むと、いろいろな計画の中に音楽も含まれているみたいです。ま、いろいろな絡みもあるでしょうから、期待通りに事が運ぶとは限りません。そこは気長に構えて見守っていくつもりです。

[인터뷰] 허영지 “다양한 수식어 소화하는 사람 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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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채림 기자] 누군가를 웃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연예인의 경우 더욱 그렇다.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웃음을 자아내는 허영지를 만났다.

걸그룹 카라로 데뷔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국내외로 활발히 활동해온 허영지. 최근 홀로서기에 도전, 각종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에서 다채로운 매력을 선보이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여전히 꿈 많은 소녀, 허영지의 나날에 귀를 기울여보자.

Q. 화보 촬영 소감

늘 화사하고 소녀다운 화보 촬영만 했었는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콘셉트 분위기가 갑자기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어서 좋았다. 그 섬세한 차이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고민을 하기도 했다. 감정의 변화가 필요했던 콘셉트여서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Q. 마음에 들었던 콘셉트

아무래도 대중들이 내게 원하는 모습은 발랄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마지막 콘셉트가 어색했다. 어른인 척하는 느낌.

첫 번째, 두 번째 콘셉트가 아직까지는 더 편안하고 익숙하다.

Q. 최근 어떻게 지냈는지

최근 프로그램 촬영차 괌을 다녀왔는데 제대로 된 해외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다. 돌아오기 싫을 정도로 행복했다. 괌 여행을 꼭 추천하고 싶다. 눌러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직까지 후유증이 심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

Q. 얼마나 다녀온 건가

3박 4일. 적어도 일주일은 머무를 걸 그랬다. 질릴 때까지 있다가 돌아왔어야 했는데 가장 좋을 때 돌아와서 더 아쉬운 기분.

Q. 인스타그램을 통한 팬들과의 활발한 소통이 눈에 띄는데

SNS 중독 같다. 팬들과 모든 걸 공유하고 싶어 사진을 자주 올리며 아주 잠깐이라도 라이브(실시간 방송)를 하는 편. 그래서인지 비밀이어야 하는 것들마저 팬들이 다 알고 있다.
지내다 보면 가끔 사진을 안 올리게 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팬들이 내게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냐며 걱정을 하더라. 그 이후로 하루에 한 장씩은 꼭 올린다. (웃음)

Q. 예능 ‘캐리어를 끄는 남자’ 촬영을 위해 괌에 다녀온 걸 봤다. 어떤 프로그램인지

첫 회 촬영을 하고 왔다. 고정이 되고 싶은 프로그램이다. 토니가 MC 겸 리더고 나머지는 게스트로 출연한 것.

Q. 일반적인 여행 프로그램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정말 다르다. 화면으로 보는 그림부터가 다를 거다. 가장 다른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들이 만나 새로운 조합과 재미를 만든다는 점. 다들 성격이 잘 맞아서 나중에 따로 만나자고 이야기 나눴을 정도다. 좋은 사람들과 다녀온 여행이라 더 행복했던 것 같다.

Q. 드라마, 예능, 라디오 출연 등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가장 잘 맞는 것은 무엇?

예능이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예능도 연기도 좋지만 앞으로 꼭 보여줘야 되는 건 무대 위의 모습이 아닐까. 팬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그 시기를 궁금해한다. 꾸준히 준비하고 있으니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준비가 덜 된 모습으로 갑작스레 무대 위에 서긴 싫어서 더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가수 활동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Q. ‘식식한 소녀들 이야기’에 출연하기도 했다. 먹는 걸 좋아하는지

삶의 낙이다. (웃음) 촬영하고 나면 식욕이 해소된다. 촬영 내내 두 끼를 먹는데 두 끼 같지 않은 두 끼다. 거의 일곱 끼라고 생각하면 된다. 바지 벨트를 풀고 먹을 정도.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되더라. 촬영을 마치고 나면 어마어마하게 풍족하고 행복하다. ‘식식한 소녀들’ 촬영을 위해 전날 음식 섭취를 줄였던 기억이 난다.

Q. 평소 자주 찾는 음식

고기. 고기와 생맥주. (웃음) 괌에서 맥주에 빠져서 왔다. 맥주가 이렇게 맛있었다니. 여행 가서 많은 걸 느끼고 왔다.

Q. ‘먹방’ 파트너가 있다면

아무래도 매니저. 평소 음식을 잘 차려놓고 먹는 편이 아니다. 주변에 있는 음식들을 주섬주섬 먹는 편. 굳이 꼽자면 강아지? (웃음)

Q. ‘뷰티사관학교’에 출연해 진행을 맡기도 했다. 평소 뷰티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

없다. 뷰티를 배우기 위해 입학한다는 의미로 출연한 것. 스킨과 토너가 같은 제품이라는 걸 그날 알았다는 흙손 안영미와 함께 출연했다. 나는 이론만 풍부한 스타일. 두 시간 동안 열심히 메이크업을 하고 나가도 남들이 민낯으로 오해할 정도의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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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MC를 해보니 진행 욕심이 나던지

욕심이 생겼다. 말하기와 듣는 연습을 동시에 해야 할 것 같다.

Q. tvN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선보인 연기가 수준급이었다. 연기 계획은 언제부터?

제대로 연기를 배워본 적도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다. (웃음) 기회가 생겨 하게 됐는데 막상 던져지니 하게 되더라.

안나라는 캐릭터 오디션을 본 아이돌 멤버들이 많다는 말에 기대하지 않고 갔던 것 같다. 대본에 회식이 끝나고 박수경(예지원)이 술에 취한 오해영(서현진)에게 발차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안나 대사만 준비해 갔는데 대뜸 그 부분을 연기해보라고. 마음도 내려놨겠다 뻔뻔하고 당당하게 연기했다.

‘또 오해영’ 감독님과 얼마 전 만났는데 그 얘길 하시면서 당시 오디션에 참가한 이들에게 그 부분 연기를 다 시켜봤는데 내가 가장 잘했었다고, 그래서 뽑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얘기는 처음 들었다. 울컥했다.

Q. 안나가 아닌 오해영 역의 대사를 읊으라고 했을 때 다들 당황했을 것 같은데

그렇다. 나 또한 당황했다. 그래서 그 부분은 안 읽어봤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린 후 10분의 정적 속에서 대본을 읽었다. 소리 내서 읽지 못해 불안했지만 용기 내서 즐겁게 연기했다.

Q. 성격이 발랄해서 그런지 ‘또 오해영’ 캐릭터와 참 잘 어울렸다

많은 분들이 ‘또 오해영’ 속의 내 모습을 보다가 직접 만나면 “그렇게 드센 아인 아니었구나”라고 말한다. 캐릭터가 워낙 강한 데다 내 연기가 자연스러워 원래 그런 성격인 줄 알았다고. 강한 성격일 거라고 생각해 다가오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오해라고 말해주고 싶다.

Q. 벌써 ‘또 오해영’ 첫 방송된 지 1년이 됐다. 소감은?

안 믿긴다. 또 그때 그 감정을 하루빨리 다시 느끼고 싶다.

Q. ‘또 오해영’에 출연했던 배우들과는 아직도 자주 만나는지

최근 지원 언니와 내 파트너였던 정민 오빠가 출연한 연극을 보고 왔다. 감독님과 카메라 감독님, 예지원 언니, 허정민 오빠까지 모두 모였다. 다들 술을 너무 잘 마신다. 특히 지원 언니가 가장 잘 마신다.

Q. 작년 여름, 우연히 ‘또 오해영’ 회식 자리를 목격했었다. 왁자지껄하니 분위기가 참 좋아 보이더라.

그날 회식 자리에 늦게 갔었다. 갔더니 이미 만취해 있더라. 그러고 다른 곳으로 옮겨 또 술을 마셨다. (웃음)

Q. 함께 출연했던 에릭 결혼 소식은 알고 있었는지

몰랐다. 오해영 팀 모두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다 같이 결혼식에 가기로. 가서 해결을 보려고 한다. (웃음)

Q. 앞으로의 연기 계획

조만간 있을 것 같다. 올해 안에 연기하는 모습을 꼭 보여드릴 예정이다.

Q.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나 장르가 있다면

다양한 역할을 하나씩 맡아 가는 지금이 옳고 좋은 것 같다. 현재 누릴 수 있는,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숙한 역할은 하기 싫어도 해야 될 때가 온다. 사과머리가 어울리지 않을 날이 오기 전에 학생이나 상큼한 역할은 모두 해보고 싶다. 장르도 가리지 않고 다 해보고 싶다. 뭐든 다 해보자는 마음이 크다. 두려움도 있지만 그 두려움을 즐기는 것 같은 기분. 생각만으로 설렌다.

Q. 연기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배우

지창욱. (웃음) 드라마 ‘기황후’를 참 열심히 봤다. 얼마 전 다시 보게 됐는데 처음 봤을 때와 느낌이 또 다르더라. 눈빛이 멋진 사람을 좋아하는데 기황후에서 그런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눈빛만으로도 슬픈지 기쁜지 알 수 있는 그런 연기. 그의 눈빛이 참 좋다.

Q. 롤모델

모든 분들이 다 롤모델이다. 좋은 것들이 너무 많은 걸 보면 아직 걸음마 하는 것 같다. 지금도 가수지만 가수 활동에 한창일 때는 음악방송을 전부 찾아서 봤다. 보다 보면 그룹별, 멤버별 장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연기도 한 사람에게만 배울 것이 아니라 여러 배우들에게서 다양하게 배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Q. 작년 1월 영지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의 계약 종료로 사실상 카라가 해체됐다. 멤버들과는 자주 만나고 있는지

자주는 아니지만 틈틈이 연락한다. 얼마 전 카라 10주년이었을 때 연락을 나눴다. 오랜만에 연락하더라도 어제 만난 것처럼 답장하는 사이다.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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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룹 활동을 하다 혼자가 되니 어색했을 것 같다

갑자기 혼자가 되니 어색했지만 점점 적응해 나가는 것 같다. 늘 언니들이 말했다. 언제나 항상 혼자가 될 수 있으니 미리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그런 조언 탓인지 무의식에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카라로 활동할 시절, 예능프로그램에 나갈 때 언니들과 같이 나가기도 했지만 ‘룸메이트’처럼 혼자 나갔던 예능도 많았다. 개인 활동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단련이 돼 있더라. 언니들도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안심하고 뿌듯했을 거다.

언니들이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함께 무대에 서자고 얘기했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열심히 노력해서 언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놓고 싶다.

Q. 한승연과 벚꽃 나들이를 다녀왔다. 특별히 친해 보이던데

아무래도 그렇다. 집도 가장 가깝고 평소에도 승연 언니를 짝사랑하는 느낌으로 지냈다. 마치 연애하는 기분으로. (웃음)

승연 언니는 뒤에서 챙겨주는 스타일이다. 일일이 표현하지 않아 다정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나는 너무도 잘 안다.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너무 고맙다. 그래서 더 잘 통하는 것 같다.

Q. 무대에 서는 허영지의 모습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우선 카라가 아닌 허영지의 모습일 것 같다. 목표는 올해 안에 음원을 통해 인사드리는 것. 장르나 다른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결정된 것이 없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해보고 싶다. 나 스스로도 어떤 모습으로 팬들 앞에 서게 될지 궁금하다.

하나 정해둔 콘셉트가 있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잠깐 멈춘 상태. 다른 느낌으로 다시 준비하고 있다. 준비하는 과정을 즐기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참 재미있는데 팬들은 기다리느라 힘든 모양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셨으면 좋겠다.

Q. 연애 여부

강아지와 함께 지내서 그런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연애를 하지 않고 있다. 마음이 맞으면 언제든 만나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서두르는 편은 아니다. 지금은 일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Q. 이상형

이상형이 항상 바뀐다. 몇 해 전만 해도 키 크고 눈 크고 꽃미남 스타일. 만찢남 스타일을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바뀌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다. 겪어보니 이야기할수록 편안한 사람이 좋더라. 동물은 무조건 좋아했으면.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 쉽게 못 만나고 있는 것 같다.

Q. 공개연애 의향

디스패치가 바빠서 나를 따라다닐 일은 없을 텐데. (웃음) 그때 가봐야 알 것 같다. 되도록 공개 연애는 안 하고 싶다.

Q. 올해도 벌써 반절이 지났다. 반년을 돌아본다면

정신없이 보냈다. 혼자가 되고 나서 정리해나가야 할 게 많은 상태.

Q. 연초 계획했던 것들은 잘 지켜지고 있는지

그때는 참 암담했는데 생각해보면 처리된 것들이 꽤 많다. 지금처럼 하나씩 해나가면 될 것 같다.

Q. 남은 반년 동안에는 무엇에 가장 집중할 것인가

남은 하반기에는 활동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계속 그래왔지만 조금 더 자주. 대신 팬들이 기다려야 할 날들이 있을 수 있다. 나름대로 다양할 활동을 보여줄 테니 초조해 말고 기다려주셨으면. 예능은 꾸준히 할 거고, 기회가 된다면 영화에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 음악도 꾸준히 준비 중이다. 전부 보여주려면 더 바빠지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Q. 장기적인 인생 계획

아직은 정말 모르겠다. 그림이 안 그려진다. 그냥 열심히 살면, 미래가 밝지 않을까 생각한다.

Q. 배우, 가수 등 여러 가지 수식어 중 가장 뚜렷하게 남기고픈 것

다양한 수식어를 소화하기 위해 더 열심히 하고 있다. 엄정화 선배님처럼 두루두루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2017년이 바쁘게 지나가고 있다. 앞으로 남은 나날 보람차게 보낼 테니 여러분들도 소망하셨던 것 모두 다 이루시길. 영지 꾸준히 지켜봐주시고 bnt도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다.

기획 진행: 마채림
포토: 김태양
영상 촬영, 편집: 조형근, 석지혜
의상: 알로앙쥬, 퓨자 by A.701, 르이엘
슈즈: 모노톡시
액세서리: 악세사리홀릭, 쏘옹
헤어핀: 아르뉴
선글라스: 룩옵티컬
시계: 망고스틴
파우치: 토툼(TOTUM)
헤어: 알루 예담 실장
메이크업: 알루 김별 메이크업 아티스트
장소: 파티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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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5-15 10:45 / 수정: 2017-05-15 10:45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2&c1=02&c2=03&c3=&nkey=201705150530193&mode=sub_view

文在寅政権による朴槿恵政権との差別化の一例:国定教科書と「あなたのための行進曲」

文在寅新政権がどういう方向に進むのかはいまだはっきりしない部分も多々ありますが、国定教科書にしても「あなたのための行進曲」にしても、ここらへんはまあ、そうなるだろうことはとりあえず十分に予測できたところです。

blue-black-osaka.hatenablo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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というか、選挙日程の関係で、今年の済州の4.3には間に合わなかった変化が、光州の5.18には間に合ったという…。これ、本来は今年実現するはずがなかった事態です。

国家報勲処長は辞表を出して受理されたらしいですけど、あれだけ朴槿恵政権の意向に肩入れして政治的な立場を鮮明にしていれば、この事態を受けて職にとどまるという選択肢はなかったでしょう。本人にしてみれば、文在寅政権下で留任させられた方が辞任より何倍も辛いはずです。そんなん、針のむしろの罰ゲーム状態ですよ。

全羅道での文在寅のこれまでの人気がどうであれ、今年の光州は、時代の変化を国内に印象付ける最初のポイントになるでしょ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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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大統領 国定歴史教科書の導入取りやめを指示
2017/05/12 15:56 KST

【ソウル聯合ニュース】韓国の文在寅ムン・ジェイン)大統領は12日、教育部に対し、来年に予定されていた中学・高校の国定歴史教科書の導入を取りやめ、検定教科書を使う体制に戻すよう指示した。検定教科書の準備も滞りなく進めるよう求め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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昨年11月にソウルで開かれた、国定教科書廃止に向けた保護者・教師との対話で発言する文大統領=(聯合ニュース

 文大統領は大統領選の選挙運動期間中、清算すべき積弊(旧体制の弊害)の一つとして国定教科書を挙げていた。

 歴史教科書の国定化は朴槿恵(パク・クネ)前政権の重要政策の一つだった。朴政権は現行の教科書を「左派的」だとして、歴史教科書の全面国定化を進めたが、市民団体や野党などが強く反発していた。

 教育部は当初、今年3月の新学期から全国の中高校で国定教科書の使用を義務付ける方針だった。しかし、朴氏に絡む疑惑や親友の崔順実(チェ・スンシル)被告の国政介入事件で国定教科書への反対世論がさらに強まったことを受け、昨年末、同教科書の導入時期を来年3月に延期するとともに検定教科書も使えるように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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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大統領は先月、光州民主化運動の犠牲者が眠る国立5・18民主墓地(光州市)を訪れた=(聯合ニュース

 文大統領はまた、民主化運動の象徴とされる歌「あなたのための行進曲」について、18日に開かれる光州民主化運動(光州事件)の37周年記念式で斉唱するよう指示した。

 この歌は、政府が光州民主化運動の記念式を主管するようになった03年から08年までは斉唱されたが、李明博(イ・ミョンバク)政権発足翌年の09年からは合唱に変わった。

 同記念式に関する業務を担当する国家報勲処は、この歌が北朝鮮に追従する「従北」の性向を持つ歌であるとの議論を呼んでいるとして斉唱に反対してきた。一方、文大統領は選挙運動期間中、今年の記念式での斉唱を約束していた。

http://japanese.yonhapnews.co.kr/pgm/9810000000.html?cid=AJP20170512002800882

ま、ここまでは誰でもすぐにわかることですし、保守野党が少々反対したからと言ってその流れを押しとどめられ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問題はその後、朴槿恵政権が全く無策、むしろ事態を悪化させることしかしなかった保守と進歩との間の「国民統合」という課題に文在寅政権がどう立ち向かうのか。そのへんが個人的な注目点です。

……日韓関係?それは専門家に訊いてくださいな。

戦後日韓関係史 (有斐閣アルマ)

戦後日韓関係史 (有斐閣アルマ)

文대통령, '朴정권 지우기'…국정교과서 폐지·위안부합의 지적
송고시간 | 2017/05/1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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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지시
(서울=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취임 후 두 번째 업무지시를 통해 국정역사교과서를 폐기하고 제37주년 5·18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것을 지시하는 전자결재를 하고 있다.

위민관 → 여민관 복원,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공식화
"국정농단·세월호 제대로 수사" 언급…'통합·개혁' 양축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김승욱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박근혜 정부와의 차별화를 극대화하고 나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야권과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추진했던 각종 정책을 잇따라 파기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면서 '박근혜 정권 지우기'에 나선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12일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했던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를 지시했다.

국정 역사교과서가 획일적인 역사 교육과 국민을 분열시키는 편 가르기 교육의 상징으로, 역사 교육이 더는 정치적 논리에 의해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문 대통령은 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더는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차원에서 5·18 기념식 제창곡으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지정해 부르도록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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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국정교과서 [연합뉴스TV 제공]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에서는 야권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기념식에서 이 노래 제창을 거부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동인 위민관(爲民館)을 여민관(與民館)으로 명칭을 바꾸도록 지시했다. 당초 참여정부에서 여민관으로 명명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위민관으로 고쳐 불렀고, 이를 다시 복원한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전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통화에서 박근혜 정부에서의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무효화 요구 가능성을 시사했다.

문 대통령은 또 전날 조국 민정수석 등과의 오찬 자리에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특검 수사가 기간 연장이 되지 못한 채 검찰 수사로 넘어간 부분을 국민이 걱정하고 그런 부분들이 검찰에서 좀 제대로 수사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이 검찰개혁 이런 쪽에 관심 가지고 보고 계신 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세월호 특조위도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끝났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다시 좀 조사됐으면 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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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으로 가나 (PG)
[제작 조혜인] 일러스트

국정농단 사태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문 대통령의 언급은 민정수석과의 대화 과정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사실상 재조사를 지시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정의 주요 사건에 대해 미진한 게 있는지 민정 차원에서 확인하고 검토하라는 뜻"이라며 "정윤회 문건 파동과 관련해서도 과거 폭로 당사자였던 경찰관이 감옥에 갔으니 처리 절차가 합당한지 그동안의 프로세스를 점검하라는 말씀으로 이해된다"고 해명했다.

검찰의 전면 재수사를 지시한 게 아니라 의혹이 있었던 지난 정부의 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그 처리 과정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라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통합에 박차를 가하면서도 개혁을 늦추지 않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구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은 정치보복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적폐청산을 해야 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2017/05/12 18:02 송고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5/12/0200000000AKR20170512144200001.HTML

https://www.youtube.com/watch?v=Hso3N_-jaI8www.youtube.com

5·18 기념식장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8년의 논란
송고시간 | 2017/05/12 15:38

해마다 제창·합창 두고 보수와 진보 이념 갈등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9년 만에 제창 방식으로 돌아가

(광주=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 지난 8년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어떻게 부르느냐는 첨예한 논쟁거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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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위한 행진곡 악보

1982년 소설가 황석영씨와 10여명의 문인, 당시 전남대생인 김종률씨가 만든 님을 위한 행진곡은 그간 각종 집회에서 널리 불린 민중가요다.

5·18이 정부 기념일로 제정된 1997년부터 2008년까지 해마다 5·18 기념식에선 참석자 전원이 기념곡처럼 함께 불렀다.

그러나 황석영씨의 행적과 제목과 가사에 들어있는 '님'과 '새날'이 북한의 김일성과 사회주의 혁명을 뜻한다는 일각의 문제 제기로 이명박 정부 2년 차인 2009년 함께 부르는 '제창'이 아닌 공연단의 '합창'으로 대체됐다.

5·18단체 등은 이 같은 합창 방식이 5·18 왜곡·폄훼라며 제창 방식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이후 제창 허용을 둘러싼 논란은 보수와 진보간 이념 갈등으로 비화하며 해마다 5월이면 이슈로 떠올랐다.

합창은 합창단이 부를 때 여러 사람이 서로 화성을 이루면서 다른 선율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고, 제창은 여러 사람이 다 같이 큰 소리로 동시에 노래를 하는 것이다.

참석자 입장에선 합창과 제창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합창을 할 땐 합창단에 포커스를 맞추지만, 제창을 하면 모든 참석자에게 포커스가 맞춰진다. 그래서 기념식 때면 참석자들의 입장에 따라 따라 부르거나, 부르지 않거나, 태극기만 흔드는 등 입창차를 나타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5·18 기념식에서 악보를 보지 않고 이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족들과 함께 부른 모습이 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취임 첫해 기념식에 참석, 노래를 함께 불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기념식에서 노래를 부르지는 않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지난해 36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으로 제창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국가보훈처는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의무적으로 함께 부르는 제창 방식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합창 방식을 유지했다.

지난해 기념식에 참석한 5·18단체와 야권 인사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노래를 함께 따라 불렀다. 황교안 전 총리는 노래를 따라 부르지는 않고 묵묵히 서 있었다.

당시 박승춘 전 보훈처장은 5·18 유족들의 저지로 기념식장에 입장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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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위한 행진곡 부르는 문재인 대통령
(광주=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이전 광주 충장로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2017.4.18

그러나 올해 37주년 기념식을 앞두고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이 문제는 변곡점을 맞았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올해 5·18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선되고는 제창 반대에 앞장선 박승춘 전 보훈처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문 대통령은 12일 올해 5·18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했다.

이로써 9년 만에 님을 위한 행진곡이 합창에서 기존 제창 방식으로 돌아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17/05/12 15:38 송고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5/12/0200000000AKR20170512117400054.HTML

ようやくの文明開化

思えば長い道のりだった。

自らの無力さゆえに、

また貧しさゆえに、

長年にわたって実現できないでいた宿願を、

ささやかながら自力でようやく実現できたこと。

決まってしまってからは、

実にあっけなく、

ま、こんなのは往々にしてそんなもの。

近畿のグリーンな地方球場のネタ:紀伊田辺と草津

たまたま連続で目についたので。

まずは紀伊田辺。そう言えばかつて、南海ホークスがここをキャンプ地にしてたことがあったような気が…。

…あ、やっぱり、そうやんな。今の球場は新しいものですけど、たぶんその当時の球場の建て替えだと思います。

ameblo.jp

あぶさん (6) (ビッグコミックス)

あぶさん (6) (ビッグコミック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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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んなに長いことやってたわけではないらしいのですが、その「遺産」は今でも受け継がれているってことなんでしょうね。

設備充実で全国規模の大会次々 田辺市の野球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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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和歌山県田辺市上の山1丁目の田辺スポーツパーク野球場で8月、少年硬式野球「ボーイズリーグ」の全国大会が開催されることになった。来年秋には大学女子硬式野球部の全国大会の主会場になることも決まっている。ともに充実した設備などが評価され、選ばれた。

 8月26、27日は、日本少年野球連盟(ボーイズリーグ)などが主催する「第18回鶴岡一人記念大会」のメイン会場になる。男子は小学生の部と中学生の部があり、全国5ブロックの各選抜チームと県選抜の6チームずつが参加する予定。女子の部もある。

 上富田スポーツセンター(上富田町)、千里ケ丘球場(みなべ町)、サン・ナンタンランド総合運動公園(串本町)など周辺の球場も会場になる。関西ブロックの中から会場を選ぶ中で、設備や環境が整った紀南の球場に決まったという。

 大学の女子硬式野球については、田辺スポーツパーク野球場でこのほど、至学館大学(愛知県)など3大学の女子硬式野球部が交流試合をした。3月には大阪体育大の女子硬式野球部みなべ町で合宿。紀南の環境は参加チームに好評で、来年秋の全国大会の開催が決まった。

 田辺スポーツパーク野球場は2015年6月に完成。16年4月~17年2月で延べ268団体1万734人が利用した。整備日を除いて年間使用できる191日のうち154日で利用があり、稼働率は80%を超えた。

【全国規模の大会の開催が相次いで決まった田辺スポーツパーク野球場(和歌山県田辺市上の山1丁目で)】

(2017年5月8日更新)

http://www.agara.co.jp/news/daily/?i=333116&p=more

で、草津。そう言えば最近この球場の名前を聞かないなと思ったら、そういう事情だったんですね。

sports932.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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防球フェンスの工事はそれなりに費用もかかるとは思いますけど、ここは硬式野球が可能な球場の中でもかなり立派なところですからね。どこぞの建物のように、グラウンドの真ん中を道路で分断されてたり、地下にあるはずのない空洞が汚染水とともに見つかったり、スタンドの耐荷重が人間が観戦するのにあり得ないレベルだったりするわけではないですから、できる限り活用できるようにした方がいいですよ。

2017.5.11 07:05
草津グリーンスタジアム硬式野球戦を秋にも再開 滋賀

 ◆民家への飛球防止、ネット高さ25メートルに

 草津グリーンスタジアム草津市下笠町)で今秋、約2年ぶりに硬式野球戦が再開できる見込みとなった。球場外への飛球防止のため、周囲をネットで囲む第2期工事を今夏に始める予定で、秋に終了の見込み。平成27年夏に硬式野球の試合を禁止して以降、利用は減少傾向にあり、同市は「利便性の向上で、利用率をあげたい」と期待する。

 同スタジアムは平成12年に開設。両翼98メートル、中堅122メートルで外野を人工芝で覆う。オープン以来、高校生や社会人の練習試合、関西六大学リーグの公式戦などにも利用され、関西のファンに親しまれてきた。

 しかし、ホームベース後方の数メートル先には民家が立ち並び、高さ12メートルのバックネットを越えて打球が民家や車に当たるトラブルが多発した。同市公園緑地課によると、25~27年夏に少なくとも154球が場外に飛び出した。瓦や車の屋根を壊す事案も起きており、自宅ベランダにネットを張り“自衛”する住民もいた。

 これを受け、市は27年夏に硬式野球の試合を禁止。練習は許可したものの、打撃ゲージの使用を義務付けた。禁止前は硬式野球の利用が全体の半分強を占めていただけに、利用は減少。24年度は約71%だった利用率が、試合を禁止した27年度は約68%、28年度は約65%になっている。

 「人工芝の球場で試合をしたい」という市民の要望や、今季、野球独立リーグに参入した滋賀ユナイテッドの公式戦での利用を期待し、市は高さ25メートルのネットで球場の大半を囲む工事を決定。総事業費約1億9千万円で28年度からの2年計画で着手した。

 今年3月末までにバックネット裏と内野の一部を囲む第1期工事を完了。夏以降、外野の両翼ポール際までの取り付けを完成させ、今秋に試合制限を解除する予定という。

 高校野球の強豪校・大阪桐蔭は26年まで滋賀での合宿の際に利用していた。同校OBで埼玉西武ライオンズ森友哉選手が右翼場外に特大の本塁打を放ったこともあるという。同校は「関西全体では球場が減っており、球場は取り合いが続いている。人工芝の球場はあまりないので復活はありがたい」と話す。

 県内の社会人硬式野球チーム「湖南ベースボールクラブ」の主将、吉越高章さん=草津市=は「地元の球場が使えないのは残念だったので助かる」と話す一方「ネットが高くなっても大丈夫かなとも思う」とボールの飛び出しを懸念する。

 球場の近くに住む女性は「地域がにぎわうことはいいが、新しいフェンスにも不安は残る。税金を使って作った施設なので今後はこういう事態にならないようしてほしい」とする。

http://www.sankei.com/region/news/170511/rgn1705110019-n1.html

ぐうたらぐずぐず

親から譲られたわけでもないぐうたらで小供の時から損ばかりしている。

「てきぱき」なんて耳に聞くだけで身体に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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で、やらないといけないなーと去年から思いながらずっとやってなかったお役所仕事を、今日ようやく一つ、片付けた。

で、ついでにもう一つ。

溜めてた用事はその後も列をなしてついてきたけど、これ以上はもう疲れた。

消耗したパワーが回復するのは、たぶん明日になります。

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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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A】ジヨンのソロ初アルバム発売記念イベント

そうですか。「歌手としてデビュー」してから1年余り、いよいよですね。あのマンネももう23です。

Many Faces~多面性~(初回生産限定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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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英、初アルバム発売イベントでマネキンのマネ「プルプルして笑っちゃった」
2017年5月10日7時0分 スポーツ報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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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ネキンと一緒に登場した知英

 女優の知英(23)が9日、東京・タワーレコード渋谷店で、アーティスト名「JY」として制作した初アルバム「Many Faces~多面性~」の発売イベントを行った。

 新曲「女子モドキ」のミュージックビデオで着用したメガネに部屋着姿で登場したJYは、ガラスケースの中でマネキン状態で静止していたが、こらえきれずに吹き出し「手がプルプルして笑っちゃった。まさか、皆さんの前でパジャマとパンダのスリッパで出てくるとは…」。昨年3月のデビューから1年を振り返り「あっという間だった。いろんな顔をみてほしい」と呼びかけた。

http://www.hochi.co.jp/entertainment/20170509-OHT1T50207.html

2017.5.10 05:02
“JYマネキン”バレバレ!知英「メガネを持つ手がプルプルし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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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名義で発売した初アルバムのイベントでマネキンに扮した知英だが、ファンからは本物であることがバレバレだった=東京・渋谷

 JY名義で歌手活動する女優、知英(23)が9日、東京・タワーレコード渋谷店で初アルバム「Many Faces~多面性~」の発売イベントを開催。マネキンになりきるサプライズでファンを驚かせた。

 収録曲「女子モドキ」のミュージックビデオで着用した衣装6点の展示ケースが除幕されると、黒縁メガネにパジャマ姿の知英が“JYもどき”として中に。ファンの大歓声にも動じることなく、5体のマネキンと並んでメガネに手を添えたまま静止していたが、途中で我慢できず吹き出してしまった。

 そのまま曲に合わせてダンスも披露した知英は、「バレバレでしたよね? メガネを持つ手がプルプルして笑っちゃった」と照れ笑い。「もうちょっと我慢すれば完璧だったのにな~。失敗したけど、楽しかったです」と笑みがはじけた。

http://www.sanspo.com/geino/news/20170510/geo17051005020009-n1.html

報知新聞もサンケイスポーツも、記事していただいて有り難うございます。

ただ、愛情と熱量の点で、やはり日刊スポーツは一歩抜きんでています。ちゃんと最後のくだりを記事の中に放り込んでくれていますもんね。素晴らしいです。

知英ことJYマネキン姿も目線に耐えられずプルプル
[2017年5月9日19時34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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ファーストアルバム発売記念イベントに出席したJY(撮影・松尾幸之介)

 「JY(ジェイワイ)」として歌手活動を行う女優知英(23)が9日、都内で10日発売のファーストアルバム「Many Faces~多面性~」の発売記念イベントに出席した。

 アルバム収録曲のMV撮影で自身が着用した衣装を着たマネキン5体に混ざり、ショーケースの中でマネキンに扮(ふん)して登場。新曲「女子モドキ」のMVで演じた、ものぐさ女子モドキのパジャマ姿で固まったままでいるはずが、大勢のファンの目線に耐えきれずに笑ってしまい「ずっと待っていたので手がプルプルで。もうちょっと我慢すれば完璧だった。失敗したけど、楽しかったです」と笑顔を見せた。

 昨年3月16日に「JY」としてデビューしてから約1年が経った。13日からは東京、大阪、名古屋をめぐるライブツアーも始まる。

「あっという間でした。アルバムを出させていただけて本当にうれしい。いろんなJYが見れるということで、このタイトルになっているんですけど、早く皆さんに曲を覚えていただいて、ライブも盛り上げていきたい」と意気込んだ。

 また、知英は韓国の女性アイドルグループ、KARAの元メンバー。取材陣からKARAメンバーへの報告を聞かれると「まだアルバムは渡せていないので、韓国に行った時に持って行こうかなと思います」と話した。

http://www.nikkansports.com/entertainment/news/1820722.html

「チーズインザトラップ」の無理ある翻訳、最後の難関

そもそも韓国が舞台であることを前提とした作品を日本設定で始めたことから始まる「チーズインザトラップ」日本語版の無理矢理感については、当初からずっと言ってきましたが。

blue-black-osaka.hatenablog.com

最後の最後にドエライ難関が待ち受けているので、それについてメモ。

blue-black-osaka.hatenablo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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ふーん。

では、最終回のこの場面を見てみましょ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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はいはい、留学留学。

XOYの翻訳版は、まだここまで到達してませんけど、さて、どうオチを付けるつもりでしょうかねえ。

xoy.webtoons.com

「学兵」世代の再評価、という話

なるほど。そのような動きが始まっているんですね。

この世代のこの手の話題については、こちらの記事で書かれていたことがすぐに思い出されます。

www.huffingtonpost.jp

記事入力 : 2017/05/07 06:08
【コラム】韓国で復権する対日協力「学兵世代」

 「なぜ日本の走狗のようなことをする学兵を拒否せず、戦場に行ったのか」「カイロ宣言が出たのは1943年末ごろだった。いかに強い圧力を受けたからといって、日本軍への参加を志願できるのか」

 「学兵」出身の作家・李炳注(イ・ビョンジュ)=1920-92=は、こういう追及を受けて実に無念だったらしい。学兵に行かなければ徴用されかねず、カイロ宣言は知らなかったと答えても、受け入れられなかった。「あなたがたの世代が社会で主導権を握っているかぎり、日帝隷属は終わらない」と言い切る者までいた。李炳注は「われわれの世代は、後進に最も信用されない世代だということを知るべきだ」と残念がった。

 「学兵世代」とは、植民地時代末期に大学や専門学校へ通い、学兵として日本軍に「志願」入隊した世代のことを指す。年齢層でいえば、1917年から23年までの間に生まれた世代で、生きていれば既に90歳を超えている。43年10月、「半島人学徒特別志願兵制」が公布され、翌年1月から合計4385人が入隊した。当時入隊した張俊河(チャン・ジュンハ)や金俊燁(キム・ジュンヨプ)は、日本の敗戦前後に脱走し、光復軍に合流した。しかし大多数の学兵出身者は、最近まで「日本に協力した反逆加担者」として追われ、非難されてきた。特に60年代後半以降、4・19革命(1960年4月19日。不正選挙に端を発したデモにより、当時の李承晩〈イ・スンマン〉大統領が下野した事件)を起こした世代が知識社会で台頭し、文化面で権力を握るようになると、日本のエリート教育を受けた「学兵世代」を残酷に追い立てた。解放後に正規教育を受けた4・19世代は、自らを日本軍国主義に汚染されなかった最初の世代と自負し、先輩に当たる「学兵世代」を打倒の対象にした。

 そんな「学兵世代」の復権が静かに進んでいる。国文学者の金允植(キム・ユンシク)ソウル大学名誉教授は、割と早くから学兵世代の文に注目して研究書を出し、安京煥(アン・ギョンファン)ソウル大学名誉教授は、数年前に学兵出身の黄竜珠(ファン・ヨンジュ)元MBC社長の評伝を書いた。最近ではキム・ゴンウ大田大学教授が、こんにちの韓国を設計して作り上げた主役として「学兵世代」を取り上げた著書『大韓民国の設計者たち』を出版した。政治やメディア、教育、宗教、学術など韓国の枠組みを磨き上げたのが「学兵世代」だというのだ。学兵出身の金寿煥(キム・スファン)枢機卿や張俊河・金俊燁、作家の金声翰(キム・ソンハン)・韓雲史(ハン・ウンサ)、そして彼らと同年代で体験を共有した歴史学者の李基白(イ・キベク)、詩人の趙芝薫(チョ・ジフン)・金洙暎(キム・スヨン)、ジャーナリストの鮮于輝(ソンウ・ヒ)などの汎学兵世代にも併せて注目した。「現代史の孤児」(安京煥)から「親日の反逆加担者」に至るまで、追い立てられてきた「学兵世代」の劇的な逆転だ。

 1950年代半ば以降、知識人のアジトと呼ばれてきた雑誌『思想界』は、張俊河・金俊燁をはじめ学兵世代が主導してきた雑誌だ。キム・ゴンウ教授は、李承晩(イ・スンマン)・朴正煕(パク・チョンヒ)元大統領の独裁を批判した『思想界』グループの共通基盤は「国家と民族の近代化」だったと分析した。『思想界』の全盛期だった4・19前後に主幹を務めた金俊燁は、『思想界』運動について「雑誌のためではなく、近代化運動をやったと考えている」と語った。民主化も、政治的な近代化として理解したという。韓国現代史の主役を産業化勢力民主化勢力に分けて考える慣行から抜け出し、近代化を共に夢見て実践した、イデオロギー的な同志関係としてとらえているわけだ。

 学兵世代の復権は、紆余曲折の多かった現代史を理解しようとする努力が一歩進んだことを示している。そして、夢を実現するため共に努力した記憶の資産を、どのように培っていくべきか-ということを宿題として投げかけた。

文化部=金基哲(キム・ギチョル)部長

http://www.chosunonline.com/site/data/html_dir/2017/05/05/2017050500688.html

[태평로] 學兵 세대의 復權
김기철 문화부장 입력 : 2017.04.14 03:15 | 수정 : 2017.04.1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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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 문화부장

"왜 일제의 주구(走狗) 노릇을 하는 학병을 거부하지 않고 전쟁터에 나갔나." "카이로 선언이 나온 게 1943년 말경이었는데 아무리 강압 당했다고 하지만 일본군이 되기를 지원할 수 있는가."

학병(學兵) 출신 작가 이병주(1921~ 1992)는 이런 추궁을 받고 무척 억울했던 모양이다. 학병에 가지 않으면 징용당할 수밖에 없고, 카이로 선언은 몰랐다고 답해도 소용없었다. '당신들의 세대가 사회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한 일제 예속은 끝나지 않았다'고 막말하는 이들까지 있었다. 이병주는 "우리 세대가 후진으로부터 가장 불신받는 세대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학병 세대'는 일제 말기 대학과 전문학교에 다니다 학병으로 일본군에 '지원' 입대한 세대를 말한다. 연령층으론 대략 1917년부터 1923년생까지로 생존자는 구순(九旬)을 넘긴 지 오래다. 1943년 10월 '반도인 학도특별지원병제'가 공포되고 이듬해 1월부터 모두 4385명이 입대했다. 당시 입대한 장준하와 김준엽은 일본 패전을 앞두고 탈출, 광복군에 합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학병 출신은 최근까지 일제 부역자로 몰려 비난을 받았다.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 4·19 세대가 지식 사회의 문화 권력으로 떠오르면서 일본 엘리트 교육을 받은 '학병 세대'를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해방 이후 정규 교육을 받은 4·19 세대는 스스로 일본 군국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첫 세대로 자부하면서 선배 격인 '학병 세대'를 타도 대상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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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겪었던 작가 이병주. /조선일보 DB

그랬던 '학병 세대'의 복권이 조용히 진행 중이다. 국문학자인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비교적 일찍 학병 세대의 글쓰기를 주목해 연구서를 내놓았고,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몇 년 전 학병 출신인 황용주 전 MBC 사장 평전을 냈다. 최근 김건우 대전대 교수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설계하고 만든 주역으로 '학병 세대'를 꼽는 책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을 냈다. 정치와 언론·교육·종교·학술 등 대한민국의 기틀을 닦은 게 '학병 세대'라는 것이다. 학병 출신인 김수환 추기경이나 장준하·김준엽, 작가 김성한·한운사 등과 이들과 비슷한 연배로 체험을 공유한 역사학자 이기백, 시인 조지훈·김수영, 언론인 선우휘 등 범(汎)학병 세대까지 아울러 지목했다. '현대사의 고아(孤兒)'(안경환)부터 친일(親日) 부역자로까지 몰렸던 '학병 세대'의 극적 반전이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지식인의 아지트로 불린 잡지 '사상계'는 장준하·김준엽을 비롯한 학병 세대가 주도했다. 김건우 교수는 이승만·박정희 독재를 비판한 '사상계' 그룹의 공통 기반이 '국가와 민족의 근대화'였다고 분석한다. '사상계' 전성기였던 4·19 전후 주간을 맡았던 김준엽은 사상계 운동을 "잡지를 위한 게 아니라 근대화 운동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화도 정치적 근대화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현대사 주역을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으로 나눠 보는 관행에서 벗어나 근대화의 꿈을 함께 꾸고 실천한 이념적 동지 관계로 보는 셈이다.

학병 세대의 복권은 곡절 많은 현대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진일보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꿈을 성취하기 위해 함께 노력했던 기억의 자산(資産)을 어떻게 가꿔나가야 할지를 숙제로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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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대 김건우 교수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에서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13/2017041303512.html

この記事の背景には、同じ朝鮮日報の以下の記事の存在が挙げられます。こちらはたぶん翻訳されていないと思います。

www.kyobobook.co.kr

西北 출신 '학병 세대'가 대한민국의 知的 설계자였다
어수웅 기자 입력 : 2017.04.05 03:03

[대전대 김건우 교수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펴내]

장준하·김준엽·선우휘·김수환 등 '친일하지 않은 우익' 재발견
조국 근대화 밑그림 그리며 정치·언론·종교·교육 기초 놓아

대전대 국문과 김건우(49) 교수가 대한민국 우익의 뿌리를 찾는 지적 탐험을 책으로 펴냈다.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학병 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느티나무책방 刊)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의 키워드가 '친일(親日)하지 않은 우익'이라는 것. 일부 예외도 있지만, '학병 세대'와 '서북 지식인'을 시간적·공간적 축으로 한 '친일하지 않은 우익'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본 틀을 짜고 밑그림을 그렸다는 보고서다.

구체적으로는 누구일까. 김 교수는 학자·언론인 계열의 장준하 김준엽 지명관 서영훈 선우휘 김성한 양호민, 또 종교인 김수환 지학순, 문인 조지훈 김수영 등을 호명한다.

김 교수가 '학병 세대'를 주목한 이유가 있다. 친일에서 자유로운, 일제 말 조선 최고 인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학생들을 전선(戰線)으로 내몰았던 학병제(반도인 학도 특별 지원병제) 공포는 1943년 10월. 만 20세 이상이 징병 조건이었기 때문에, 학병은 대략 1917~1923년생으로 본다. 1944년 당시 고등교육을 받는 조선인 학생이 약 7200명에 불과했으니, '학병'은 당대 최고 인재들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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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축은 '서북 지식인'이었다. 분단과 함께 남으로 내려온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들의 의식 밑바닥에는 태생적으로 '반공'이 새겨져 있었다는 것. 북한에서 기독교에 대한 공산주의의 탄압을 직접 겪으며 6·25 이전에 '전쟁'을 겪은 탓이다.

장준하(1918~1975)를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다 의문사한 민주 투사로 먼저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당혹스럽겠지만, 그는 원래 평북 의주 출신의 기독교도 반공 투사였다. '사상계'의 전신인 '사상(思想)'을 장준하와 함께 창간했던 같은 이북 출신 후배 서영훈(1923~2017) 전 적십자사 총재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민족청년단 시절, 장준하는 훈련생들의 논문 필적을 조사해 누구누구가 공산당 같다고 할 정도로 기독교 신앙과 극우익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부름받아 걸어온 길, 뜻을 따라 가야 할 길'·백산서당·2005)

'학병'과 '이북 출신'들을 함께 묶은 중심이 바로 월간 '사상계'였다. 마침 김 교수의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사상계'였다. 1953년 창간한 이 잡지는 단순히 지식인들의 잡지였을 뿐만 아니라, 1960년대 대한민국의 싱크탱크였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의 논문 '1960년대 지성계의 동향'등을 인용, 5·16 쿠데타 직후에는 박정희 의장 등 군정 세력이 '사상계'를 펴놓고 국정 자문 회의와 기획 회의에 필요한 위원들을 충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단순히 전문가 지식인에 그치지 않고, 조국 근대화의 밑그림을 함께 그렸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사상계'의 5대 편집 원칙은 '민족의 통일, 민주 사상, 경제 발전, 새로운 문화 창조, 민족적 자존심'. 분단 극복과 식민 잔재 청산을 의미하는 '민족의 통일'과 '민족적 자존심'을 제외하면, 나머지 셋이 각각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조국 근대화를 추구하는 셈이다.

김 교수는 동시에 이들의 온정주의·지역주의도 비판하고 있다. '사상계'의 초대 주간 김성한을 비롯, 2대 안병욱, 3대 주간 김준엽, 4대 주간 양호민, 5대 주간 지명관 등 다섯 명이 모두 이북 출신이었고, 초대 김성한을 제외하면 모두 평안도 출신이었다는 것. 조선일보 선우휘 전 주필 역시 평북 정주 출신이었다.

"1965년 한·일 협정에 반대하다 '정치 교수'로 낙인찍혀 양호민이 서울대 교수직에서 해직되었을 때, '조선일보'에 데려오도록 애쓴 것도 선우휘였다. 또한 그는 민주화 운동 진영의 함석헌·지명관 등을 끝까지 보호하려고 했다. 일본 '세카이'에 글을 싣던 'TK생'을 중앙정보부가 추적할 때, 이를 따돌린 인물도 선우휘였다."(103쪽)

이 책은 '민주화'와 '산업화'에 대한 새로운 시선도 제기하고 있다. 지금 보면 마치 대립된 개념처럼 보이지만, 이 인물들의 궤적을 좇다 보면 두 세력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가지라는 주장이다. 동시에 해방 후 정부 수립 과정에서 '우익'이라는 개념을 독점하려 했던 친일 세력도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자신들이 살기 위해 '우익 개념'을 독점하려 하면서 우익 민족주의의 폭을 너무 좁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학병 세대'는 정치 언론 교육 종교 학술 사상 등 각계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초를 놓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05/2017040500074.html

[태평로] "춘원,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
김기철 문화부장 입력 : 2016.09.23 06:12 | 수정 : 2016.09.23 13:27

1970년대는 집집이 돌아다니며 전집(全集)을 파는 월부 책장수 전성기였다. 여유가 생긴 중산층이 자식들을 위해 아동용 문학전집이나 위인전기를 호기롭게 사들였다. 진홍색 표지의 50권짜리 계몽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이나 15권짜리 한국전기전집, 세계위인전집은 아이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전집이 배달되면 도서관이라도 집에 들인 듯 잔뜩 들떠 책을 펼쳤다. 동화책을 어느 정도 읽어치우자 책 읽기가 시들해졌다.

춘원 이광수를 만난 건 그때였다. 월부 책장수가 성인용 책으로 추천한 첫 책이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10권짜리 삼중당 이광수 전집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에게 '이광수 전집'은 버거웠다. 세로쓰기로 빡빡하게 들어찬 활자에 질렸다. 그래도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무정' '유정' '흙' '사랑' '마의태자'…. 제대로 된 배경지식 없이 만난 이광수 소설은 초등학생이 소화하기엔 무리였다. 이광수는 그렇게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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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당시 37세의 춘원 이광수(사진 왼쪽). 이광수가 유학한 메이지가쿠인 대학(사진 오른쪽). /조선일보 DB

한국문인협회가 얼마전 춘원과 육당 최남선을 기념하는 문학상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가 계획을 접었다. 일부 단체에서 "친일파를 기리는 문학상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며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춘원과 육당은 각각 최초의 근대소설 '무정'과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해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히지만, '친일(親日)'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이광수는 일찍이 문학평론가 김현이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로 꼽을 만큼 한국 문학의 아킬레스건이다.

춘원이 일제 말기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운 총독부 시책 홍보에 앞장서고, 일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학병(學兵) 지원을 촉구하는 연설에 나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도 있다. 1943년 11월 교토에서 이광수의 학병 권유 연설을 직접 들은 김우전 전(前) 광복회장은 2014년 본지 인터뷰에서 "'당신들이 희생해야 우리 민족이 차별을 안 받고 편하게 살 수 있다. 조선 민족을 위해 전쟁에 나가라'고 했다"며 이광수의 '친일'에서 민족을 위한 '고민'을 봤다고 했다. 이 연설을 듣고 지원 입대했다가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한 독립운동가의 말이니 무게가 가볍지 않다. 원로학자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도 "춘원 소설을 읽으면서 '황국신민(皇國臣民)'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면서 "춘원을 친일 문인으로 매도하는 기사를 대할 때마다 나는 그를 나무랄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한 적 있다. 부분만 보고 전체를 놓치는 편협한 역사 인식을 우려한 것이다.

'춘원 이광수' 하면 '친일파'를 떠올리는 요즘 세대에게 이광수는 잊힌 작가다. 문학도 말고는 '무정' 같은 그의 소설을 찾는 사람도 없다. 이 땅에는 그의 문학과 삶을 온전하게 들여다볼 문학관 하나 제대로 없다. 춘원이 어쩌다 친일의 길에 들어서게 됐는지, 그 과정에 대한 고민과 성찰 없이 욕만 한다고 극일(克日)이 되는 걸까.

최근 개봉한 영화 '밀정'은 친일과 독립운동 사이에서 갈등하는 일제 고위 경찰을 주인공(송강호)으로 내세웠다. 총독부 경무부장이 의열단에 협조한 혐의를 받던 주인공을 다시 회유하는 막바지 장면, 송강호의 흔들리던 눈빛은 압권이었다. 우리 지식사회의 수준은 영화관을 찾은 600만 관객 눈높이보다 빈약한 걸까.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23/2016092300456.html

個人的にここに付け加えるとしたら、この学兵世代、わずかな年月をもって地続きで、解放後の戦争の時代と接しているという点です。彼らの世代の生き残りには、日本軍の軍人として戦った経験と、韓国軍として戦った経験とを併せ持っている者が少なくありません。

朝鮮人日本兵 - Wikipedia

極端なことを言えば、「どの時点で戦死したか」によって靖国神社と顕忠院とに切り分けられた世代、それが彼らなわけです。

4日目

ずっと気になりながら放置していた錆をようやく落とし(切れなかった分は仕方ない)、

荷物を回収に行って、

少しだけ寄り道して帰ってきた。

ただそれだけの一日。

疲れは、うーん、とれ切ってないな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