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A】腑に落ちた気がする。

xcorpさんがこちらに抄訳を載せているこの論説。確かに何でこんなタイトルをつけないといけないのか、よくわかりませんね。ただ、後々のためにここでは敢えて全文クリップ。

'카라 3인의 난' 친일·지일파의 음모인가
기사등록 일시 [2011-01-28 08:04:00]



【서울=뉴시스】이문원의 문화비평

신년 초 한국대중문화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른바 ‘카라 3인의 난(亂)’이 극단적 결론으로 치닫고 있다. 중앙일보 1월27일자 ‘[문화 노트] 배후설에 소송까지…걸그룹 ‘카라’ 어디로’는 “5인조 걸그룹 카라가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계약 해지를 주장한 3인(한승연·정니콜·강지영) 측과 소속사 DSP미디어 측이 법적 대응으로 맞서는 모양새”라면서 “양측이 법적 대응을 공식화 하면서 카라의 해체 가능성은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카라를 둘러싼 싸움에선 정작 카라 멤버들이 보이지 않는다. 한쪽에선 부모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쪽에선 배후설로 시끄럽다. 돈과 수익 앞에서 ‘계약’ 자체도 무의미해진 상태”라고 짚었다.

사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수없이 반복돼온 것이다. 위 기사 중 언급처럼 “K-POP의 높아진 위상만큼 합리적인 연예 계약시스템을 모색할 때”라는 것. 그런데 산업 내부의 이기심과 무책임함, 관계부처의 무관심과 이해 부족, 의지 부족으로 수년째 제기돼오던 ‘합리적인 연예 계약시스템’의 도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 연예 매니지먼트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올 방안이었던 미국식 공인 에이전시법안도 여전히 수년째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결국 대중문화산업 자체가 먼저 나서 의지를 보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전히 같은 결론이고 ‘과연 이번에는’이라는 기대는 점점 옅어진다.

그러나 이번 카라 사태에는 위 수없이 반복돼온 궁극적 결론 외 더 돌아볼 부분이 있다. 카라 계약해지를 유도한 배후세력의 존재를 일단 기정사실화 해본다면, 한 가지 커다란 의문점이 떠오르게 된다. ‘타이밍’에 대한 문제다. 한 마디로 대체 왜 ‘지금’이 카라 멤버들의 계약해지와 타 소속사로의 이적을 유도할 시기였느냐는 것.

카라가 난(亂)을 일으킬 수 있었던 동력은 당연히 일본시장 진출 성공 상황이다. 한국보다 최소 10배 이상 큰 시장에서 발판을 마련했으니, 국내시장에서 얻게 될 불이익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긍정적인 손익계산이 서게 된다. 그러나 ‘지금’ 카라는 일본 대중에 있어 그 그룹명만 알려진 상황이라 볼 수 있다. 동방신기 상황과 크게 다른 부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저 섹시한 몸매를 지닌 한국 청순 글래머들이 흥겨운 ‘미스터’를 부르며 엉덩이춤을 추는 이미지로만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카라가 일본에서 첫 싱글 ‘미스터’를 내놓은 게 지난해 8월11일이다. 불과 5개월 전이다. 지난해 2월7일 첫 쇼케이스까지 포함해도 카라의 일본 진출은 1년이 채 못 된다. 아무리 카라와 소녀시대가 쌍끌이로 사회문화 현상을 일으켰더라도, 멤버 한 명 한 명의 상품성이 확보돼 있는 상황은 못 된다. 재빨리 형성된 일부 오타쿠층을 제외하곤 멤버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기 힘들다는 게 정답이다.

결국 멤버 개개인을 따로 빼내 새로 그룹을 만들어낼 만한 인지도도 스타성도 모두 확립돼있지 않은 상황인데 왜 그런 모험을 감행해야 했느냐는 의문이 바로 튀어나오게 된다. 상식적으로는, 최소 1년 이상 카라로서 활동을 더 하면서 멤버들 개개인의 이름과 캐릭터를 명확히 알리고 멤버들 개개인의 팬층도 어느 정도 확보한 뒤, 그리고 멤버들 간 의견도 한 치 오차 없이 조율시킨 뒤 계약 해지를 선언했어야 옳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무모한 시도를 했느냐는 것이다.

이에 가장 쉬운 결론은, 현 소속사 DSP미디어의 문제다. 지금 DSP미디어는 확실히 예전 같은 장악력을 갖지 못한 상태다. 이호연 대표는 지난해부터 병석에 누웠고, 이 대표 부인이 현재 경영을 맡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DSP미디어는 여러모로 어려운 여건에 놓여있었다. 2006년 우회상장했다가 2008년 물적분할된 뒤 2009년 초 자본잠식 등의 사유로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카리스마’로 소속 연예인들을 이끌던 이 대표마저 쓰러지니 경영과 권력의 공백상황이 일거에 몰아닥쳤다는 것.

그래서 바로 ‘지금’이 적기였다는 것이다. 소속사 측 시스템에 틈새가 생긴 시점을 놓치려 하지 않았다는 것. 카라 멤버들 개개인의 인지도가 올라가는 시점까지 기다리다간 카라가 일본서 벌어들이는 수익을 바탕으로 소속사는 재정비를 꾀할 수 있었다. 경영과 권력의 공백상황도 자연스레 메워질 수 있었다. 그 전, 충분히 파고들 여지가 있는 현 시점에 계약해지와 이적을 기획해야만 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처럼 기계적인 분석에는 여러모로 한계가 있다. 그래도 여전히 위 제기한 중점적인 문제는 남기 때문이다. ‘지금’은 타 소속사로의 이적이 가장 쉬운 시기인 건 맞지만, 여전히 카라 멤버들 개개인의 상품가치는 크게 떨어지는 시기다. 거의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의 상황에 가깝다. 여전히 도박성이 짙은 계획이라는 인상이다.

그러나 일본시장 성향을 곰곰이 따져보면 그렇지가 않다. 카라 멤버들이 굳이 계약해지를 선언하고 또 다른 기획사를 확보해 새 출발을 하려면, 정확히 말해, 지금 외엔 기회가 없었다. 엘비스 프레슬리 노래 제목처럼 ‘It's Now or Never’ 상황이었다. 하나씩 풀어보자.

일본 개그콤비 다운타운 일원이자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마츠모토 히토시는 월간 닛케이 엔터테인먼트 칼럼을 통해 “일본의 아이돌 팬덤은 프로야구 팬덤과 유사하다”고 평한 바 있다. 별다른 얘기가 아니다. 일본 아이돌 팬덤은 일견 아이돌그룹 멤버 개개인을 응원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해당 아이돌그룹 자체를 응원하는 형태라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프로야구 팬덤과 유사하다는 것. 계속 선수들이 교체돼 원년 멤버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더라도 여전히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 팬은 계속 한신 타이거즈 팬이다. 혹 한신 타이거즈에서 응원하던 선수가 다른 구단으로 이적하더라도 선수를 따라 응원하는 팀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일본 연예계에서 아이돌그룹이 팀을 바꿔 활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팀을 바꾸는 경우는 기본적으로 기획사를 바꾼다는 얘기인데, 기획사들 간 암묵적 룰이 적용되고 있어 그런 종류의 ‘무조건 영입’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룹 멤버들 개개인의 인기 여부와 관계없이 결국은 그룹 자체만 살아남게 된다는 점은 여러 차례 입증돼왔다. 가장 대표적인 게 여성 아이돌그룹 모닝구 무스메의 경우다.
모닝구 무스메는 기수별로 멤버를 뽑는 구조다. 그러면서 일정 활동기간이나 연령대가 되면 멤버들을 하나 둘 그룹에서 ‘졸업’시키고 있다. 그렇게 계속 멤버들이 교체돼 현재는 가장 오래된 멤버가 5기, 신 멤버는 9기까지 뽑은 상태다.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1~4기까지 멤버들이 모두 ‘졸업’한 상태임에도, 물론 전성기만은 못하지만, 여전히 명맥은 유지하고 있다. ‘팀’ 자체를 지지하는 일본 아이돌 팬덤 생리가 발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부분도 있다. 모닝구 무스메를 최전성기로 이끈 주역은 3기 멤버 고토 마키였다. 1999년 가입해 곧바로 싱글 ‘러브 머신’을 대히트시키며 모닝구 무스메를 일약 국민적 아이돌로 만들어냈다. 이처럼 고토가 모닝구 무스메의 ‘간판’으로서 급성장하자 소속사 헬로 프로젝트 측에서도 몸이 달았다. 그룹 활동 중 고토를 솔로로 데뷔시키는 대담한 기획을 꾀했고, 그렇게 등장한 첫 싱글이 오리콘 위클리 1위, 무려 43만4790장을 팔아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솔로 데뷔 화제성이 떨어진 다음 싱글부터는 판매량이 추락했지만, 3번째 싱글과 4번째 싱글 모두 10만 장대에 머물러 그대로 고토 개인 팬층이 안정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고토가 모닝구 무스메를 ‘졸업’해버리고 솔로로서만 서게 되자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일견 안정돼보였던 개인 팬층이 무너지며 5번째 싱글은 전 싱글 절반인 5만 장대로 떨어졌다. 이후 점점 판매량이 줄어 2~3만 장대에 머물다 마침내 일본 연예계로선 이례적인 소속사 이적까지 감행하게 됐다. 결국 고토 마키 개인의 인기 역시 모닝구 무스메라는 브랜드에 종속돼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었다는 얘기다. ‘팀’ 자체를 응원하며, ‘팀’을 빠져나가버리면 애착이 크게 식어버리는 일본 아이돌 팬덤의 일면을 방증하는 사례다.

왜 일본 대중이 이 같은 성향을 지니게 됐는지에 대해 지배적인 결론은 아직 없다. 안정감과 신뢰도를 중시하는 일본 대중 습성이 발현된 것이라 보는 견해도 있고, 일시적 인기도보다 브랜드 가치에 더 집착하는 성향이 드러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성향은 아이돌산업이 일본에 뿌리내리기 전부터 이미 확인된 상황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는 일본 아이돌그룹 원형이 일본 전통의 다카라즈카 가극단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에서 출발한다.

확실히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여러모로 현재의 아이돌그룹 형식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나와 음악과 연기가 혼합된 ‘퍼포먼스’ 중심의 쇼를 보여준다는 점, 프로페셔널한 솜씨보다는 점차 극단원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즐기는 구조라는 점, 특히 팬덤과의 유대를 중시하는 일본 아이돌산업 특유의 관계 마케팅을 일찍부터 시도했다는 점 등에서 그렇다. 그리고 다카라즈카 가극단 역시 극단 ‘명’을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돼있지 개개 극단원의 여부는 팬덤 형성의 주요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탄탄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시장성향이 자리 잡고 있으니, 카라는 ‘지금’ 외에는 계약해지와 이적이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1년 이상 더 지나 오리콘 위클리 3위 내에 드는 싱글이 2~3곡 이상 더 나오고 TV출연이 수없이 이뤄지고 난 시점, ‘카라’ 브랜드가 명확히 상품가치를 확립했을 무렵에는 오히려 계약해지와 이적이 어려워질 수 있었다. 1년 뒤면, 심지어 리더 박규리 혼자 카라에 잔류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팀’을 지지하는 팬층을 확고히 보유한 DSP미디어의 카라 측이 더 유리한 입장에 놓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다 일본 대중은 아무리 아이돌이더라도 히트했던 노래들은 하나의 사회문화적 지표로서 꾸준히 기억하려는 습성이 있다. 그러니 카라가 한 장이라도 더 히트 싱글을 낼수록 계약해지하려는 이들에겐 불리한 입장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찌됐건 ‘미스터’와 ‘점핑’ 그리고 차후 히트곡들을 부를 자격을 지닌 건 잔류 카라 측이고, 그런 역사가 깊고 길수록 ‘이적 카라’의 존재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이 같은 상황을 방증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마찬가지 계약해지 문제로 유노윤호와 최강창민 2명만 잔류하게 된 동방신기 경우다. 일본 내 인지도와 인기도 면에서 상대적으로 월등했던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 등 3인이 JYJ로 따로 팀을 꾸린 상황이라 잔류 2인의 앞날은 다소 불투명해보였다. 그러나 잔류 2인으로 구성된 동방신기가 지난 26일 일본에서 내놓은 31번째 싱글 ‘와이(Why?)’는 발매 당일 무려 13만3233장이 팔려나가는 괴력을 발휘했다. 위클리 기록으로도 충분히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수치가 불과 하루 만에 나온 셈이다. JYJ의 향후 상황은 아직 진단하기 힘들지만, 기본적으로 ‘팀’을 지지하는 일본 대중 성향이 유감없이 발휘된 사례다.

어찌됐건 현 시점 카라 사태는 이른바 ‘진흙탕 싸움’으로까지 확대된 상황이다. 폭로에 폭로가 이어지면서 서로의 대중적 상품가치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계약해지를 주장하는 3인 측이 불리한 게임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멤버 구하라의 잔류가 큰 전환점이 됐다. 박규리만 카라에 남았을 시에는 카라 재정비까지 확실히 시간이 걸린다. 기본적으로 ‘팀’으로서 나온 상품이니 새 멤버들을 영입하고 훈련시켜 내보낼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이적 카라’는 그 틈새를 치고 들어가 동결돼있는 카라의 기존 파이를 자연스럽게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박규리와 구하라 둘이 남는다면, 카라는 동방신기 2인처럼 당장 다음 달이라도 바로 새 싱글을 내놓을 수 있는 상황이 된다. 오히려 이적과 새 그룹 론칭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적 카라’ 쪽 시간이 더 걸린다. 이러면 카라의 기존 파이를 빼앗을 타이밍을 놓치게 되고, ‘이적 카라’는 잘해야 기존 카라의 아직 설익은 파이를 나눠먹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 수지타산이 안 맞는 장사가 된다. 그야말로 ‘루즈-루즈(lose-lose)’ 상황이다.

물론 카라가 향후 어떤 결론을 도출하게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대중문화계 분쟁은 그 특성상 반드시 이성적인 결론, 냉철한 결론으로만 유도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찌됐건 이번 ‘카라 3인의 난(亂)’을 겪으며 확신하게 된 부분은 있다. 이번 사태는 얼핏 무모해 보이지만 사실상 일본 대중음악시장의 속성을 정확히 꿴 결정이었다는 점에서, 일본시장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측이 전체 구도를 짰으리라는 예상이다.

그 ‘일본시장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측’이, 루머처럼 일본 자본이 아니라, 외려 한국 측이었으면 하는 기대다. 그 정도로 명확한 시장이해가 뒷받침되는 측이라면, 제1차 드라마 한류 당시처럼 허랑하게 기회를 탕진하지 않고 제2차 아이돌 한류를 보다 충실히 이끌어낼 재목인 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진흙탕 싸움을 일으킨 장본인이긴 해도 장기적으로 볼 때는 오히려 수확일 수 있다. 물론 루머처럼 일본 자본설이 맞는다면, 그야말로 일본다운 사업방식을 다시 확인해주는 사례에 그치겠지만 말이다.

대중문화평론가

http://nollywood.newsis.com/article/view.htm?ar_id=NISX20110127_0007260104&cID=10604&pID=10600

ここに書かれていることをすべて首肯す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が、これを読んでふと腑に落ちることがありました。

ああそうか、これはクーデターなんですね。

首謀者は両親+α。目的は娘たちの実権掌握。目標はDSPエンタテイメント。

そして、謀議に参加していなかったパクギュリ陣営は、最初から切り捨てる計画だったと。

そう考えると、今までしっくり来なかったことがしっくりくる気がします。


仮にそうであるとすれば、こんなに時間がかかって泥沼状態になっている時点で、そのクーデタは失敗だと言えるでしょう。いまゴタゴタやっているのは、失敗したクーデタの事後処理なわけです。

クーデタってのは、失敗したからといって必ずしも粛清や追放で片が付くわけではありません。今回は娘を人質にした親が引き起こした事態だけに、事後処理はさらにセンシティブなものになります。

しかしまあ何ですねえ、親御さんのやってることだから娘たちも黙っているほかないのでしょうが、この一連の事態、メンバー本人たちの意思がほとんど反映されていないのはまず間違いな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ね。親への孝行を盾に取った「孝道派」の理屈に正面から楯突くのはなかなか難しいですし。

「お金の問題ではない」というのは、たぶんある面で事実なんでしょう。権力さえ掌握すれば、お金なんて黙ってても後から付いてくる(はず)というリクツです。

しょうもない連想をさらにつなげるならば、孝道派が実権を掌握することはおそらくないでしょうし、掌握したところで成功するとも思えません。ただ、敵を叩きだして我が物顔の統制派が闊歩する事態というのも、想像するだに息が詰まって嬉しくない気分になり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