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韓民国」の「正史」

「正史」という言葉を使っているのがアンテナに引っかかってクリップ。

陳舜臣は個人的にも昔から親しんだ名前でしたし、中国史の伝統を韓国正史編纂の話へとつなげている点にも、興味が惹かれました。

中国の歴史(一) (講談社文庫)

中国の歴史(一) (講談社文庫)

[オピニオン]大韓民国の正史だなんて
JANUARY 26, 2013 05:02

普段から好んで読んでいる本の一つが、国籍は台湾だったが、日本で生まれて活動した歴史家・陳舜臣(チン・スンシン)氏の「中国の歴史」だ。陳氏は、この膨大な本の最後の部分である清時代を記しながら、このように書いている。「明国までの中国歴史は、正史の二十五史を左右に置いて筆を手にした。しかし、ここからは正史に頼るわけにはいかない」。中国では司馬遷史記以来、25の正史はすべて、後代王朝が前代王朝の歴史を書く易代修史を慣例にしてきた。清は滅びたが、まだ清の歴史は書かれていない。

◆前代の歴史は、後代の全盛期に書くという盛世修史という言葉もある。誰もが認める清の歴史が無いというのは、清の滅亡後の中国は、確固たる全盛期を迎えていないからだ。中華民国初の大総統になった袁世凱は1928年、清史稿を編纂したが、国民党政権の蔣介石はそれを認めなかった。台湾に追い出された蔣介石は1959年、清史稿を見直し、新たな清史を出したが、中国本土の共産党政権はこれを認めず、1965年、周恩來首相の主導で、清史編集委員会を立ち上げた。しかし、これも同様に、文化革命で中止となり、02年になってようやく清史を編纂する清史工程が始まった。東北工程も同年から始まったが、清史工程の一部としての辺境地域の歴史整理と関係があるのではないか推測できる。清史工程の結果である清史は、当初の計画通りなら、昨年末までに出るはずだったが、まだそのニュースはない。

◆わが国も、初の正史である三国史記は、高麗中期の金富軾(キム・ブシク)が記し、高麗史は、朝鮮・文宗(ムンジョン)時代になってようやく完成された。その後、日本帝国によって朝鮮が植民地化され、朝鮮史をまとめる余裕を持つことができないまま、大韓民国が建国された。大韓民国時代は、国史編纂委員(国編委)が1973年にはじめて、03年に朝鮮史までの韓国史全体を52巻で整理した。これに先立って1969年は、韓国独立運動史を5巻でまとめた。ところが最近、国史編纂委が、大韓民国の歴史を整理するという報道が出た。国編委が、大韓民国史(仮題=全10巻)を書くなら、それこそ一つの正史になるだろう。しかし、大韓民国の正史を、大韓民国時代に記すというのは、東アジアの伝統史観から見れば、考えられないことだ。

◆後代が前代の歴史を書くことは、時代から離れて、客観性を保つためだ。客観性よりなおさら懸念されることは、歴史を見る正しい見方の一つを、国が示すこともありうるという考え方だ。そのような考え方自体は、専制王朝時代の産物であり、民主主義社会で、特に当代を対象にする場合、受け入れがたい。現代には複数の歴史があるのみで、単数の正しい歴史などない。

宋平仁(ソン・ピョンイン)論説委員

http://japan.donga.com/srv/service.php3?biid=2013012681258

[횡설수설/송평인]대한민국 正史라니
기사입력 2013-01-26 03:00:00 기사수정 2013-01-26 03:00:00

평소 즐겨 읽는 책 중의 하나가 국적은 대만이었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활동한 역사가 진순신의 ‘중국의 역사’다. 진순신은 이 방대한 책의 끝 부분인 청나라 시대를 서술하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명나라까지 중국의 역사는 정사(正史)인 이십오사(二十五史)를 좌우에 놓고 붓을 들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정사에 의지할 수 없다.” 중국에서는 사마천의 사기 이래 25개 정사가 모두 후대 왕조가 전대 왕조의 역사를 쓰는 역대수사(易代修史)를 관례로 삼았다. 청나라가 멸망했지만 아직 청사는 쓰여지지 못했다.

▷전대의 역사는 후대의 전성기에 쓴다는 성세수사(盛世修史)라는 말도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청사가 없는 것은 청 멸망 이후의 중국이 확고한 전성기를 맞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화민국 최초의 대총통이 된 위안스카이(袁世凱)는 1928년 청사고(�徑史稿)를 편찬했으나 국민당 정부의 장제스(蔣介石)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만으로 쫓겨 간 장제스는 1959년 청사고를 수정해 새로운 청사를 내놓았으나 중국 본토의 공산당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1965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 주도로 청사편집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역시 문화혁명으로 중단되고 2002년에 와서야 청사를 편찬하는 청사공정(�徑史工程)이 시작됐다. 동북(東北)공정도 이해부터 시작됐는데 청사공정의 일부로서의 변경지역 역사 정리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청사공정의 결과인 청사는 본래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말까지 나왔어야 하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우리나라도 최초의 정사인 삼국사기는 고려 중기 김부식이 썼고 고려사는 조선 문종 때 와서 완성됐다. 이후 일제에 의해 조선이 강점되면서 조선사를 정리할 여유를 갖지 못한 채 대한민국이 건국됐다. 대한민국 시대에는 국사편찬위원회가 1973년 시작해 2003년 조선사까지 한국사 전체를 52권으로 정리했다. 앞서 1969년에는 한국독립운동사를 5권으로 정리했다. 그런데 최근 국사편찬위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편위가 대한민국사(가제·전 10권)를 쓴다면 그것은 하나의 정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사를 대한민국 시대에 쓴다는 것은 동아시아의 전통 사관에서 보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후대가 전대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시대로부터 떨어져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객관성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역사를 보는 올바른 관점 하나를 국가가 제시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전제 왕조시대의 산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특히 당대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 받아들이기 어렵다. 현대에는 복수의 역사, 즉 역사들이 있는 것이지 단수의 올바른 역사는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http://japan.donga.com/srv/service.php3?biid=2013012681258

ただ、この話、東亜日報としては、この話題でやや突出している中央日報の動きを意識しながら論じられるべきものでもあるようで、歴史そのものと政治的なものとを両にらみでウォッチしておかねばならないと思われます。

대한민국 ‘정사’ 정부수립 65년 만에 펴낸다
[중앙일보]입력 2013.01.23 00:54 / 수정 2013.01.23 01:30

국사편찬위원회 10권 편찬 기획
격동 현대사 편향되지 않게 기술
이르면 연내 1차분 선보일 계획


이태진 위원장(左), 김희곤 교수(右)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총정리하는 대규모 편찬사업이 시작된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태진)가 펴낼 『대한민국사』(가제·전 10권)다. 1946년 ‘국사관’이란 이름으로 출범한 국사편찬위원회가 우리 현대사를 본격 조명하는 역사서를 기획한 것은 처음이다. 이르면 연내 1차분이 선보일 예정이다. 48년 정부 수립 이래 65년 만에 ‘대한민국 정사(正史)’가 나오게 됐다. 기획 총괄을 맡은 이태진 위원장은 “이른바 국사편찬위원회가 대한민국 현대사를 펴낸 것은 지금까지 1권에 그쳤다. 그것도 77년 나온 것이라 이미 잊혀진 상태다. 한국사 편찬을 대표하는 기구로서 체면이 안 섰다”고 했다.

 ◆현대사의 빈자리=국사편찬위원회는 59년 『조선왕조실록』(전 59권), 69년 『한국독립운동사』(전 5권)를 펴냈다. 73년 시작해 2003년 완료한 『한국사』(전 52권)는 5000년 우리 역사를 총괄한 성과로 꼽힌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자료대한민국사』 『북한관계사료집』도 냈지만, 20세기를 돌아본 ‘국사편찬위원회판 대한민국사’는 아직 없었다.

 그런 빈자리를 성향이 각기 다른 연구자들의 책들이 메워왔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근대를 다시 읽는다』 등이 대표적이다. 79년 1권이 나온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80년대를 풍미한 책으로 당시 유행한 민중·민족주의 사관을 반영했다. 이를 비판하며 탈민족주의 관점에서 2006년 나온 게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다. 이념대립이 약해진 한국의 90년대를 조명한 『탈냉전사의 인식』도 지난해 말 나왔다.

 ◆왜 지금인가=지난 18대 대통령선거는 일종의 ‘현대사 전쟁’이기도 했다. 70년대 인혁당 사건과 민주화운동, 고(故) 장준하 선생의 사망 원인이 쟁점이 되기도 했다. 세계사에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경제발전을 이룬 대한민국의 역사에는 그만큼 그늘도 적지 않았다. 우리 현대사는 갈등의 연속이었다. 45년 해방과 함께 시작된 분단, 곧 이어진 6·25전쟁의 원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둘러싼 이념대립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일례로 대한민국 단독 정부 수립은 계속 논란의 대상이었다. 대한민국 건국을 지휘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엇갈린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산업화 성취에 대해선 이제 많은 이가 인정하는 편이지만 그간 이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60∼70년대 민주화운동에 대한 평가, 북한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서술 등도 우리 현대사의 핵심 쟁점이다.

 ◆이념적 편향성 극복=『대한민국사』는 대한민국의 발전 과정에 동반된 혼란과 상처를 포괄할 예정이다. 그간의 갈등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학문적 성과와 여유가 축적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위원장은 “경제개발과 민주화 양쪽의 공과를 모두 따질 것이다. 이념적으로 한쪽에 편중된 글을 쓰지 않은 전문가 위주로 필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 고 말했다.

 『대한민국사』 편찬위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연구해 온 김희곤 안동대 교수가 맡았다. 편찬위원은 도진순(창원대)·정병준(이화여대)·홍석률(성신여대) 교수 등이다. 한국정치사·한국경제사 등을 전공한 사회과학자들도 동참한다. 시기는 크게 ‘대한민국임시정부기’ ‘해방전후기’ ‘50년대’ ‘60∼70년대’ ‘80년대 이후’ 등으로 구성된다.

 이 위원장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대한제국을 계승했음을 분명히 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부터 서술해 나가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민국사』(가제·전 10권) 발간 어떻게

◆ 기획 총괄 이태진 국사편찬 위원장 - 서울대 명예교수, 학술원 회원. 조선시대·대한제국사 전공

◆ 편찬위원장 김희곤 안동대 교수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역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전공

◆ 편찬위원

도진순 창원대 교수 - 이승만·김구 전공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 - 이승만·여운형 전공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 - 1950~60년대 한국사 전공

◆ 집필진 한국사 전공자 중심. 사회과학 분야에서 한국정치사·한국경제사 전공자와 합동작업

◆ 편찬 방향 경제개발과 민주화운동 양쪽의 역사를 고루 재조명, 이념적 편향 극복. 각계 전문가 참여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3/01/23/10097888.html

[취재일기] ‘대한민국 정사’는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다
[중앙일보]입력 2013.01.24 00:00 / 수정 2013.01.24 00:07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이제는 쓸 만한 때가 됐다고 봅니다.”

 한국 현대사를 총정리할 『대한민국사』(전10권) 발간 계획을 밝힌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의 말이다. ‘대한민국 정사(正史), 정부 수립 65년 만에 펴낸다’는 제목의 중앙일보 기사가 보도된 23일 오전, 이 기획을 총괄한 이태진 위원장과 편찬위원장을 맡은 김희곤(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안동대 교수는 “많은 이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혹자는 역사학자들이 역사책 펴내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말할 수 있겠다. 그건 모르는 말씀이다. 한국사는 화약고다. 특히 근·현대사는 우리 사회의 이념분쟁뿐 아니라 온갖 갈등의 뿌리였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하는데 일단 우리 학계에선 격의 없는 대화가 부족했다. 현대사는 근대 국가의 성립·발전 과정에 대한 서술이 일반적이고 이 과정을 비판하건, 긍정을 하건 어떤 기준은 필요하기 마련인데 그렇지를 못했다.

 이태진 위원장이 “명색이 국사편찬위원회이면서 체면이 안 선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정사’가 없는 현대사의 빈자리를 이념 성향이 제 각각인 연구자가 개별적으로 펴낸 역사서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대화의 소재도 많이 부족했다. 근·현대사는 대개 일제강점기 시대엔 독립운동, 해방 이후엔 민주화운동·통일운동의 연속으로 이해되곤 했다. 토론의 소재가 다양해진 것은 1990년대 이후다. 두 방향으로 전개됐다. 한편으로는 탈냉전 흐름을 타고 사회주의권인 옛 소련과 중국의 현대사 비밀문건이 공개되면서부터다. 한반도 분단과 6·25전쟁 원인 등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으론 한국 사회에 산업화의 결실이 하나 둘 나타나는 동시에 민주화까지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대화의 방식도 문제였다. 다양해진 소재들이 건실한 토론으로 이어지지 않고 소모적 이념 갈등으로 전개됐다. 우파에서는 배려가 부족했다. 세계사에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경제 발전을 이룬 사실만 강조할 것이 아니었다. 해방과 분단에 이어 전쟁까지 거친 그 짧은 기간 역사의 그늘을 보듬는 노력이 더 많이 필요했다. 좌파 또한 새롭게 등장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이제는 성숙한 대화를 나눌 학문적 성과와 여유가 어느 정도 축적되었다고 본다. 통합의 시대다. ‘대한민국 정사’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역사다. 공감과 대화의 폭을 넓히는 일이 필요하다. 경제개발과 민주화운동 양쪽의 역사를 고루 재조명하면서 이념적 편향을 극복한다는 원칙을 ‘대한민국 정사’가 완결되는 날까지 이어갔으면 한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소통도 그곳에서 시작할 것이다.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313/105003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