釜山の旧玩月洞・海雲台609から

こんなことをメモにしておこうと思ったきっかけは、とりあえずこちらのSPA!の記事です。

韓国・釜山の置屋街ワノルドンは健在だった
2014.01.04 恋愛・結婚

 韓国・釜山 韓国嫌いの日本人が増え、わざわざ韓国に旅行に行く男性は激減したが、カジノも置屋もあって夜遊びは満喫できるうえ、飛行機代は2万〜3万円程度で2時間足らずで到着できる韓国は、週末などに気軽に行くにはうってつけの国だろう。

 そんな韓国には4大置屋街というのがあり、最も有名なのがソウル・清涼里オーパルパル。そして、韓国第2の都市・釜山にある置屋街が、釜山のなかでも繁華街に位置するチャガルチ駅近くのワノルドン(玩月洞)だ。韓国でも風俗街は摘発が相次いでおり、オーパルパルはかつての賑わいはもうなくなっている。釜山も同様で、ネットでは「ワノルドンは壊滅状態」といった情報が多いが、最新情報が少ない。そこで、釜山に行ったついでにワノルドンにも足を運んでみた。

 週末の夜12時過ぎ、チャガルチ駅からタクシーで向かい、ワノルドンに到着。早速、アジュンマがタクシーに群がってきて道を塞いだ。アジュンマとは日本語で「おばさん」の意味で、服を強引に引っ張って店に入れようとする40〜60代くらいの女性たちだ。一昔前は、乗っていたタクシーから引きずり降ろされるほどの強引さで有名だったとか。さすがにそこまでではなかったが、その強引さは今も健在だ。

 韓国・釜山 ワノルドンの置屋オーパルパルとほとんど同じで、ピンクや白の煌々とした明かりが灯されたガラス窓の部屋に、韓国人にありがちな整形美人のアガシたちが座って化粧をしたり、スマホをいじったり雑談している。日本のちょんの間と同じように顔見せ方式なので、好みのアガシを選ぶことが可能だ。アジュンマを振り払って隣のガラス窓を見ようと歩くと、またすぐにアジュンマの大群……。落ち着いてアガシを見ることすらできないが、それもまたワノルドンの醍醐味なのだろう。

 普通に歩けば5〜10分くらいの置屋街だが、アジュンマの猛攻で、一周するのに要した時間は30分ほど。アガシと遊ぼうとすると料金はショート(約30分)で8万ウォン、円安が進んだ今では日本円で9000円ほどだろうか。時間帯によってはアガシは50人以上はいただろう。壊滅状態と噂されていたが、煌々とピンクに光るワノルドンの街はかろうじてまだ健在のようだ。 <取材・文・撮影/日刊SPA!取材班>

http://nikkan-spa.jp/564190

ソウルの「清凉里588」については、以前に書きました。そのこともあって、「そういえば、釜山に行ってもこっち方面には足を延ばしたことがないな」と思ったのでした。

【ソウルの風景】「清凉里588」の現在

まだ訪れたことはありませんが、大邱の「チャガルマダン」も、記事にしたことがあります。

「大邱の性売買」に関するニュース

ちなみに、この場所にそういうところがあるという、その起源を辿ってみれば、日本人居留地における遊郭の設置という歴史的事実に行きつきます。

釜山の遊郭の歴史 1 - 釜山でお昼を

釜山の遊郭の歴史 2 - 釜山でお昼を

ただ、上の記事では「まだ健在」と言われている旧玩月洞の「集娼村」は、今年から大きくその姿を変えそうですよ。

モデルとして横浜の黄金町の名前が挙がっていますが、手近な先行モデルとしては、馬山の倉洞芸術村があります。

黄金町エリアマネジメントセンター

馬山の都市再生への試み

부산 완월동 문화예술촌으로 바꾼다

日 요코하마 '고가네초' 본 떠 집창촌 건물 창작공간 활용 등
국제신문 이노성 기자
2013-12-17 21:51:54 / 본지 1면

부산 완월동의 도시재생 모델인 일본 요코하마의 '고가네초'. 과거 집창촌 밀집지역(왼쪽)을 문화예술촌으로 재생하자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부산시 제공

- 市, 내년 하반기 시범사업 시작

부산의 대표적 집창촌이자 산복도로인 '완월동'이 내년부터 문화예술마을로 거듭난다.

부산시는 17일 성매매업소 집결지였던 서구 충무동2가 완월동 재생계획 용역을 부산발전연구원에 의뢰한다고 밝혔다. 문화예술과 주거 재생을 결합한 청사진을 만들기 위해서다. 내년 하반기 시범사업을 거쳐 2015년부터 재원을 본격적으로 투입할 예정.

완월동의 모델은 일본 요코하마의 '고가네초'이다. 요코하마시는 2009년부터 매춘업소 250곳이 밀집한 고가네초를 갤러리·서점·창작공간으로 재생했다. 행정이 임대한 건물 70여 곳은 현재 예술가의 아지트나 연구소로 변신했다. 경찰의 24시간 순찰로 매매춘도 대부분 사라졌다.

김영환 부산시 창조도시본부장은 "집창촌 건물을 활용한 창작 거점센터 구축과 민간 주도의 공공예술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감천문화마을처럼 관광객이 늘면 쇠락한 동네에 활기가 돌지 않겠느냐. 완월동에서 성과가 나면 해운대 집창촌으로 사업을 확대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때 완월동은 주상복합형 상업·업무지구로 탈바꿈을 기대했다. 2007년 5월 충무뉴타운 계획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설경기 침체로 시공사가 나타나지 않아 지난해 1월 뉴타운에서 해제됐다. 지금은 일부 매춘업소가 영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잊혀진 동네' 완월동에 대한 관심은 부산시의회 공한수(서구2) 의원이 촉발했다. 그는 지난 13일 부산시의회 5분 자유발언에서 "완월동은 1907년 '녹정유곽(䖝町遊廓)'에서 태동한 집창촌으로 100년 넘게 방치돼 왔다. 술과 한숨으로 점철된 상처를 극복하려면 고가네초와 같은 재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완월동의 역사를 스토리텔링하고 공동어시장·국제시장이 연계된 관광벨트를 구축하자"고 덧붙였다. 허남식 부산시장도 지난 16일 고위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정책회의에서 "완월동 문화예술마을 프로젝트를 서두르라"고 지시했다.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131218.22001214944

부산 완월동 '100년 집창촌'서 예술마을로
입력 2013-12-18 21:17:46 수정 2013-12-19 15:11:53 지면정보 2013-12-19 A32면

성매매특별법 이후 슬럼화…상업지 재개발도 실패
市, 문화·관광 재생계획 용역 의뢰…2014년 시범사업

부산의 대표적 집창촌이자 산 중턱을 지나는 산복도로인 ‘완월동’이 내년부터 문화예술마을로 새롭게 변모된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완월동 일대가 슬럼화되고 있는 데다 상업 업무지구로 탈바꿈시키려던 재개발사업마저 건설경기 침체 탓에 실패로 돌아가면서 새로운 활기를 모색하기 위한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다.

자갈치시장과 공동어시장, 국제시장, 부평깡통시장에다 부산의 명물인 영도다리, 용두산공원과도 자동차로 5분 거리로 가까워 예술문화촌으로 탈바꿈시킨 뒤 시장과 관광벨트를 구축해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명소로 키우겠다는 것이 부산시의 계획이다.

부산시는 성매매업소 집결지였던 서구 충무동2가 완월동 재생계획 용역을 부산발전연구원에 의뢰한다고 18일 발표했다. 문화예술과 주거 재생을 결합한 청사진을 만들기 위해서다. 용역이 내년 6월 완료되면 하반기 시범사업을 거쳐 2015년부터 재원을 본격적으로 투입할 예정이다.

부산시는 완월동 개발에 일본 요코하마의 ‘고가네초’를 모델로 삼았다. 요코하마시는 2009년부터 매춘업소 250곳이 밀집한 고가네초를 갤러리·서점·창작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시가 임대한 건물 70여곳은 현재 예술가의 아지트나 연구소로 변신했다. 또 경찰도 24시간 순찰해 매매춘은 대부분 사라졌다.

완월동 집창촌의 면적은 9만㎡다. 부산시는 이곳의 집창촌 건물을 활용한 창작 거점센터 구축과 민간 주도의 공공예술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완월동의 역사를 스토리텔링하고 공동어시장·국제시장이 연계된 관광벨트를 구축할 방침이다. 관광객이 바다를 보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다양한 친수공간도 마련하기로 했다.

부산시는 일부 건물을 매입 또는 임대해 예술 공공건물로 활용하거나 집 소유자들이 직접 예술촌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김영환 부산시 창조도시본부장은 “부산 감천문화마을처럼 관광객이 늘면 쇠락한 동네에 활기가 돌 것”이라며 “완월동에서 성과가 나면 해운대 집창촌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완월동은 1907년 일제시대 때 미도리마치라는 홍등가로 태동한 집창촌으로 100년 이상 방치돼왔다. 해방되면서 항구도시 부산을 찾는 외항선 선원들이 주로 찾았던 곳이다. 한국 경제가 성장가도를 달리던 1980년대에는 120곳이 넘는 업소에 2000여명의 여성이 종사했으며 2004년 초까지도 80여개 업소, 600여명이 일했다. 하지만 2004년 11월 성매매매특별법 시행에 따른 경찰의 강력한 단속으로 지금은 대부분 업소가 문을 닫고 업종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업종전환이 제대로 안돼 빈집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완월동은 2007년 5월 충무뉴타운 계획에 포함돼 주상복합형 상업·업무지구로 탈바꿈을 기대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건설경기 침체로 시공사가 나타나지 않아 지난해 1월 뉴타운에서 해제됐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국내외 관광객이 찾도록 해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강조했다.

부산=김태현 기자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121866241

都市再生という側面からすれば、期待の持てる取り組みだと言えるでしょうが、こういう街の変化は「それでめでたしめでたし」で済まされるよう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

もちろん真っ先に問われるべきは、「では、そこにいた人はどこへ行くのか?」ということです。

국가법령정보센터 -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국가법령정보센터 -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성매매특별법 발효 2년, 부산의 집창촌을 찾다
장재호 승인 2013.01.16 11:38:22

‘성매매특별법'이 발효된 이후 약 2년이 지난 현재, ‘성매매특별법'의 취지가 무색할 만큼 집창촌을 중심으로 성매매가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2004년 9월 23일, 정부는 올바른 성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마련한 '성매매특별법'을 발효시켰다. 성매매특별법이 발효된 이후, 집창촌에서 종사하던 여성들이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했고 취업을 하거나 대학에 진학을 하는 등 새 삶을 얻었다.

그러나 아직도 부산에는 ‘완월동'을 비롯해 해운대 운촌에 위치한 ‘해운대609'와 부산역과 부전역에서 성매매가 일어나고 있다. 또 사상구 괘법동과 서부시외버스터미널 앞 일대 (일명 뽀뿌라마치)에서도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1일, 부산광역시 충무 2동에 위치한 집창촌(일명 완월동). ‘오빠, 놀다가', '젊은 오빠 6만원이면 돼' 등의 ‘오빠, 오빠'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완월동에는 많은 성매매 업소가 문을 닫았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성매매 여성들은 여전히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으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업주인 김소자(60) 씨는 "특별법 시행 후에 완월동을 찾는 손님들은 줄었지만 인터넷이나 안마시술소, 이발소, 단란주점 등에서의 성매매는 오히려 활발해졌다. 성매매특별법이 강간이나 성폭력 등 더 큰 사회문제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다"고 언성을 높였다.

이날 경찰차가 집창촌 주위를 순찰하며 단속하기도 했으나 정작 중요한 내부 단속은 하지 않고 행인만을 단속할 뿐이었다. 특히 업주들은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다른 업주들과 무전기로 연락하는 등의 대응을 하며 성매매 행위를 하고 있었다.

김 씨는 "경찰의 단속이 거의 매일 있으나,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단속을 피해가며 영업하고 있다. 이 곳(집창촌)의 여성들은 보건소에서 매주 검사를 받는데 비해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성매매는 그렇지 못해 에이즈나 매독 등 성병에 노출돼 있다"고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성매매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또한 집창촌 주변의 상권이 무너지고 있어 인근 주민들의 반발도 거셌다. 실제로 성매매 여성을 상대로 옷을 파는 가게는 문을 닫은지 오래였으며, 근처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업주는 "특별법 시행 이후 집창촌의 아가씨들이나 업주뿐만 아니라 우리같은 주변상인들도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자정이 넘어서자, 20대의 젊은 남성 두명이 성매매 업소 주위를 기웃거리다가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처럼 단속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집창촌을 찾는 남성들은 여전히 있고, 특별법 시행초기에 비해 단속의 강도가 약해졌다.

30분이 지나서 젊은 두 청년이 업소에서 나왔다. 그 중 한 사람은 “옆에 있는 일본 친구의 소개로 왔다”고 말했다.

지난 6월 3일, 또다른 집창촌의 한 곳인 부산의 해운대 운촌(해운대 609). 이곳도 젊은 여성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유리방들이 옹기종기 촌을 이루고 있고, 가슴의 윤곽을 훤히 드러낸 아가씨들이 도로를 통과하는 차에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이곳의 사정도 완월동 일대와 마찬가지였다.

한편,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PD수첩'에서는 해외로 송출된 한국 여성의 성매매 실상에 대해 낱낱이 공개했었다. 미국과 일본으로 송출된 성매매 여성의 충격적인 삶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줬고, 그로 인해 각종 포탈의 토론장에는 성매매특별법(성특법)과 해외 송출 성매매 여성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참이었다.

포탈사이트 토론장의 한 네티즌은 “여성부에서 성특법 이후 집창촌 축소 30%, 종사 여성 50% 감소를 홍보 수단으로 썼다. 하지만 지난 2004년 말, 감소 여성의 40%인 2300여 명이 해외로 성매매 원정을 간 것으로 조사됐다”고 리플을 남겼다.

2005년 3월 21일 방송된 PD수첩에서는 “일본 우그이스다니 지역에 상주하며 일본남성들을 대상으로 성을 파는 한국 여성은 1000여 명에 달한다. 또한 현지 업계의 추산으로는 연간 이곳에 왕래하는 한국 여성의 숫자가 5,000명에서 8,000명”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여성 전문가들은 지난 2004년부터 해외원정 성매매가 전문 브로커의 고액의 알선대금, 각종 경비 인해 소득을 올릴 수 없는 구조라는 점과 여권을 강제로 빼앗겨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음을 매스컴을 통해 경고해왔다.

변종 성매매도 문제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출장마사지는 버젓이 여성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로, 결국 마사지는 뒷전이고 성을 파는 것이 목적인 변종 성매매 서비스다.

어렵사리 지인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집창촌 출신 출장마사지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부산의 집창촌인 완월동에 있었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가희(23) 양.

이 씨는 전주 출신으로 20살에 부산에 정착했다고 한다. 부산에서는 30분에 성매매 댓가로 6만원을 받고 일정금액을 업주와 나누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지난 2004년 성특법이 생겼고, 완월동 또한 그 예외는 아니었다고 한다.

완월동은 부산의 자활시범지역으로 선정되었고, 이곳 여성들은 기본생계유지비로 40만원을 지급받았다고 한다. 이 씨는 “정부에서 지원되는 돈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집안의 가장으로 놀고만 있을 순 없었고, 결국 아는 언니의 소개로 출장마사지를 제의 받았고 서울로 향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현재 출장마사지 업소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이 씨를 지명하는 손님도 제법 생겼다고 한다. 이 씨는 “집창촌에 있을 때보다 무섭긴 하지만 성특법 직후보다는 돈벌이가 된다”고 말했다.

“당장 아쉬울 때 여성단체로부터 받은 돈이지만, 여전히 뒤가 찜찜하다”는 게 이 씨의 말이다. 이 씨와 같이 집창촌을 등진 성매매 여성의 일부는 여전히 음성적인 곳에서 성을 팔고 있다.

그렇다면 단속에 걸린 남자 성매수자들은 어떤 처벌이나 교육을 받을까?

특별법 시행 후인 2005년 8월부터 법무부는 성매매 초범들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하는 대신 성교육 과정을 이수토록 하는 내용의 '존 스쿨(John school)'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교육은 매월 1∼2회, 8시간 동안 각 지역 보호관찰소에서 실시되며 성매매 여성이 피해 사례 등을 직접 강의한다. 존 스쿨 취재는 관계기관의 반대로 불가능하였다.

존 스쿨 강의가 끝나자 25명이 넘는 이들이 보호관찰소 밖으로 한꺼번에 나왔다. 서로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들이 주차장까지 가는 시간은 불과 1분. 무테안경을 낀 20대 청년에게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20대 청년은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지나가버렸다. 다른 사람인 김 모(35)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벌금형 대신 온 것 같다”라는 차가운 대답을 남기고 주차장으로 사라졌다. 덧붙여 그는 “에이즈에 관한 상식 등 몰랐던 성에 대한 부분을 배우게 됐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커피 한잔을 마시며, 담배를 한대 태우고 난 김 씨는 “억울하다, 강사가 여자라서 그런지 여성의 입장에서만 강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에서는 성매매특별법 시행 1주년에 맞춰 서울시 소재 성매매 피해여성 보호시설 10개소에 거주하는 성매매 여성 106명을 대상으로 시설만족도 및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자활에 가장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본인의 의지부족'이 45.3%로 나타났다. 이어 '정부·지방자치단체 등의 지원부족' 17.9%, '선불금 문제' 16.0%, '신체적 질병' 8.5%으로 조사되었다. 이 결과는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은 정부의 노력보다 자신의 노력여부에 달린 것임을 보여준다.

성매매에 대해서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한 포탈사이트의 설문결과도 흥미롭다. ‘특별법 보완, 포주 강력처벌'은 조사 대상자의 34.9%(1,566명), ‘특별법 폐지, 원점부터 고민'은 두 배에 가까운 62.5%(2,801명)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 설문결과에 리플을 올린 게시자명 ‘융단폭격'은 “해외원정성매매은 국가적 망신이다. 업주들에 대한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2005년 9월, 성특법 발효 1년을 맞아 “성적 착취를 범죄로 규정지은 국내 여성운동의 성과”라는 긍정적 평가와 “음성·변종 성매매 확대를 부른 실효성 없는 탁상행정”이라는 혹평까지 엇갈리는 평가를 내렸다.

부산광역시여성회관의 한 관계자는 위의 평가에 대해 “성매매피해 상담소 및 성매매피해자 지원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충해야 하고, 탈성매매 방지대책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9

少なくとも、単純に「(見え)なくなればいい」というものではないと、私は思います。

[책세상]한국 집창촌 100년의 궤적
유곽의 역사 / 홍성철 · 페이퍼로드 ·1만8천원
김마선 기자
20070901T162651 | 수정시간: 2009-01-11 [18:52:42] | 9면

미아리, 청량리 588, 완월동, 해운대 609, 자갈마당…. 한때 사창가라고 불렸고, 지금은 좀 더 그럴 듯하게 '집창촌'으로 불리는 곳. 몇 년 전에는 유례없는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른바 성매매특별법 덕분이다. 그리고 어느덧 3년의 시간이 흘렀다.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을까. 한국에서 집창촌의 역사는 100년이 넘었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거기에는 우리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유곽의 역사'는 개항 이후 싹이 튼 집창촌에 깃든 100년 넘는 역사를 더듬어 기록한다. 대략 20년 단위로 어떤 시대적 상황과 구조, 모순 속에서 성쇠를 거듭했는지 세밀하게 그려낸다. 책 내용이 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 깊이가 결코 얕지 않다.

"성매매 업소는 한국인들의 삶의 궤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지은이가 이 책을 쓴 이유이고, 궁극적으로 책을 통해 증명하고자 하는 바이다.

전업형 성매매는 1876년 개항과 함께 한반도에 상륙한다.

개항과 함께 생겨난 일본인 집단 거류지가 씨앗이 됐다. 일본의 유곽 여성들이 함께 건너온 것. 1897년 일본의 한 신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일본 상인들이 부산에서 유곽영업을 하기 위해 창기를 모집하고, 유곽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다른 유곽업자들도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조선으로 몰려간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일본인을 대상으로만 성매매를 할 수 있게 했다. 행여 조선인들의 감정을 자극할까 걱정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규정을 까다롭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업자들은 차츰 규정 적용을 받지 않는 조선 여성들에게 눈을 돌렸다. 규정도 규정이거니와 싼 값에 고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철도역 주변에 집창촌이 많다. 왜 그럴까. 1905년 이후 일제는 일본인들이 모여사는 거류민단을 설치하고, 거류민단을 중심으로 철도를 놓았다. 거류민단에서는 재정확보를 위해 유곽을 설치하면서 집창촌이 성업하기 위한 조건들이 갖춰지게 된 것이다.

일제는 집창촌에서 지나치게 돈을 많이 쓰거나 거동이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경찰에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하기도 했다. 집창촌을 통치수단으로 활용한 셈. 식민지 현실과 1908년부터 실시된 공창제는 이농과 빈곤에 허덕이던 여성들을 집창촌으로 끌어들였다. 유곽이 있던 곳이 도시의 팽창으로 도심이 되면서 이전 요구도 생겨났다.

1947년 공창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되면서 사창은 전국적으로 더 많아지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마땅한 벌이를 찾지 못한 여성들은 사창가로 흘러들었다. 대규모 피란민들이 몰린 부산과 대구, 마산, 포항 등에 어김없이 집창촌이 생겨났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집창촌은 정권의 묵인 아래 사실상 육성되기도 했다. 3공화국 정부는 '윤락행위 방지법'을 제정해 성매매를 반대했지만 뒤로는 집창촌을 '특정지역'으로 묶어 묵인했다. 이유는 외국인, 특히 일본인들의 기생관광을 유치해 외화획득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기지촌 여성들에게도 반공사상과 영어를 가르치면서 한·미 동맹의 상징적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부산의 범전동 300번지, 해운대 609, 초량 텍사스촌도 한국전쟁 직후 미군을 상대로 문을 열었다.

기자 출신 답게 지은이는 각종 자료와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집창촌을 중심으로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 많고 대표적 집창촌의 유래, 문학 속 유곽, 영화 속 집창촌 등 다양하게 접근한다. 사회적인 모순과 구조 속에서 모진 삶을 이어온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돋보이는 책이다. 김마선기자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070901000136

유곽의 역사 – Daum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