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陽都城と朝鮮神宮

調査のメインは漢陽都城の城郭についての調査なのでしょうけど、朝鮮神宮はそれはそれで関心を呼ぶものですから、それはまあ、話題になりますわね。

[동아일보 속의 근대 100景」서울 남산 동네 - 동아미디어그룹 공식 블로그

南山の安重根記念館のあるあたりがかつての朝鮮神宮の敷地であったらしい、ということくらいは、私でも知っています。ただし、その痕跡のようなものは何も見当たらないので、当時のことを思い起こすのは現地でも非常に難しいのです。その意味で、たいへん興味深い調査です。

日本統治下の海外神社―朝鮮神宮・台湾神社と祭神 (久伊豆神社小教院叢書)

日本統治下の海外神社―朝鮮神宮・台湾神社と祭神 (久伊豆神社小教院叢書)

記事入力 : 2014/08/13 21:48
城壁破壊して建てた朝鮮神宮跡発見

 日帝日本帝国主義)がソウル市の南山北面にあった「漢城都城」の城壁を破壊して造営した朝鮮神宮の跡地が発見された。

 ソウル市は13日、今年6月から南山の噴水台付近の発掘調査を行った結果、朝鮮神宮の建物のうち、最も大きい拝殿のコンクリート造りの基礎部分、柱があった部分を発見したと発表した。

 規模は縦横が12メートル、18メートルで、これまで写真や文献でのみ残されていた朝鮮神宮の建物跡が初めて確認された。ソウル市関係者によると、拝殿の基礎部分の下には漢城都城の遺構が2メートルの高さで残っていたが、漢城都城の高さが平均5メートルあることからみて、3メートルが消失していることになる。同関係者は「日帝が朝鮮神宮の基礎工事を行う際、城郭を破壊したことを示している」と説明した。

 日帝韓民族アイデンティティーを抹殺するため、1918年から朝鮮神宮の造営を開始。25年に完成した。朝鮮神宮には天照大神明治天皇を祀り、韓国に建てられた神社1000カ所余りの中で社格が最も高かった。ソウル市は今回の調査で漢城都城の遺構189.3メートルを発掘し、太祖(テジョ)、世宗(セジョン)、肅宗(スクチョン)の各時代別の築城様式も確認した。

宋元亨(ソン・ウォンヒョン)記者

http://www.chosunonline.com/site/data/html_dir/2014/08/13/2014081303824.html

일제가 한양도성 부수고 만든 神宮터 첫 발견
송원형 기자 입력 : 2014.08.14 03:00

일제가 서울 남산 회현자락 한양도성을 훼손하고 그 위에 만든 조선신궁(朝鮮神宮) 건물터가 처음 발견됐다.

서울시는 작년 6월부터 남산 분수대 일대를 발굴 조사해, 조선신궁 건물 중 가장 큰 '배전(절을 하는 건물)'의 콘크리트 기초와 기둥자리를 발견했다고 13일 밝혔다. 규모는 가로 18m, 세로 12m. 지금까지 사진과 문헌으로만 남아 있던 조선신궁 건물의 실체가 처음 확인된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배전 기초 아래 한양도성 유구(遺構·옛 건축물의 흔적)가 2m 정도 남아 있는데, 한양도성 평균 높이가 5m인 점을 감안하면 3m 정도 없어진 셈"이라며 "일제가 조선신궁 부지 공사를 하면서 성곽을 파괴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제가 한양 도성을 훼손해 만든 조선신궁의 ‘배전’ 터. /뉴시스

일제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없애기 위해 1918년부터 조선신궁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1925년 완공된 조선신궁은 일본 건국 신화 주역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와 메이지(明治) 일왕을 기리는 곳으로, 국내에 세워진 1000여개 신사(神社) 중 지위가 가장 높았다. 서울시는 이번 조사로 한양도성 유구 189.3m를 발굴했으며, 태조·세종·숙종 시대별 축성 양식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14/2014081400262.html

남산 일대 한양도성 189.3m 발굴…조선신궁 터 드러나
조선닷컴 입력 : 2014.08.13 13:36 | 수정 : 2014.08.13 18:21

일제강점기 식민통치를 위해 한양도성을 훼손하고 세운 조선신궁의 터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서울시와 서울역사박물관은 지난해 6월부터 한양도성 복원을 위한 남산 회현자락 3단계 정비사업 결과 조선신궁의 ‘배전(신에게 절을 올리는 신사의 본전)’ 터를 발굴했다고 13일 밝혔다.

배전은 신사의 건물 중 가장 큰 건물로, 사진과 문헌으로만 남아있던 조선신궁의 실체는 이번에 처음으로 밝혀졌다. 서울시는 콘크리트 기초와 기둥자리가 한양도성 터 바로 옆에서 발견됐다고 전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남산에 한양공원을 조성하고 1925년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일본 신토의 최고신)와 메이지(明治) 일왕을 섬기는 조선신궁을 건립하면서 한양도성을 훼손했다.

발굴단은 조선신궁 배전 기초에서 지하 2~3m 깊이에 한양도성 유구가 일부만 남아있는 모습으로 볼 때, 일제가 조선신궁을 조성하기 위해 성곽을 파괴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신궁 터 주변에선 비교적 옛 모습을 간직한 한양도성 구간 189m가 추가로 확인됐으며, 각자성석 등 유구도 발견됐다.

1396년 조선 태조 때 축조된 한양도성은 세종·숙종시대에 보수와 개축을 거쳤다. 이번에 발견된 성곽 구간에선 태조-세종-숙종으로 이어지는 시대별 축성 양식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에 조사한 448m 구간에서 발견된 총 189.3m의 한양도성 구간 보존상태는 1~7단까지 다양하며 비교적 양호한 상태”라면서 “안타깝게도 나머지 구간은 멸실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남산 회현자락은 일제 침략으로 인해 인류문화유산이 훼손된 대표적 사례”라며 “한양도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 중인 서울시로서는 한양도성의 완전성과 진정성 입증에 유리한 증거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13/2014081301801.html

朝鮮日報の記事だと、朝鮮時代の城郭の話と日帝時代の朝鮮神宮の話しか出てきませんけど、ハンギョレや京郷新聞などの記事には、「李承晩大統領の旧銅像があった場所のコンクリート基礎部」とか、1960〜1970年代以降の植物園や動物園の設置による城郭破壊の話なども出てきます。

이승만과 4·19혁명의 기억이 공존하는 장충동 - 미디어스

빈 방 - 남산의 재구성


ソウル市の発掘調査で漢陽城郭と朝鮮神宮跡が明らかに
登録 : 2014.08.13 13:45 修正 : 2014.08.14 08:07

 日帝が破壊したソウル会賢洞(フェヒョンドン)の南山(ナムサン)のふもとにあった漢陽(ハニャン)城郭の基壇部が約200メートルにわたり過去の姿を現した。 ソウル市は2009年から進めてきた南山会賢山裾3段階整備事業の発掘調査の成果を13日に発表し現場を公開した。

 ソウル市側は南山会賢のふもとにある中央広場(南山噴水台)一帯で行った今回の調査を通じて、朝鮮王朝初期から後期までに積まれた長さ189.3メートルの漢陽都城の城郭跡を発見したと明らかにした。 また、写真と文献でしか伝えられてこなかった日帝強制占領期ににあった「朝鮮神宮」の建物のうち拝殿だった場所と、李承晩大統領の旧銅像があった場所のコンクリート基礎部も発見し、当時の配置や規模などを確認できるようになった。 南山会賢のふもとに埋められていた激動の20世紀の歴史的現場が古の姿を現したわけだ。


朝鮮神宮全景 文化部提供

 都を囲む漢陽都城は1396年の朝鮮王朝の太祖の治世から築造が始まり、世宗(セジョン)、粛宗(スクチョン)以後も持続的に補修されてきた。 特に南山一帯は、日帝が朝鮮を強制占領した直後の1910年に漢陽公園、1925年には朝鮮神宮が作られ、南山の地形と共に大きく毀損された。 解放後には付近に李承晩大統領の銅像が作られ(1956年)、1960年の4月革命の時に撤去され、その後、南山植物園(1968年)などが造成された経緯がある。

 3段階調査の成果の核心は、長さ189.3メートルの漢陽都城の城郭の発掘だ。 市の発掘調査が始まって以来、発見されたものとしては最大規模で、太祖、世宗、粛宗の時代別の築城様式を確認できるという説明だ。 市側が発掘調査を行った区間は、会賢の中央広場一帯の合計448メートルに及び、そこから長さ189.3メートルの都城の遺構を発掘した。 残りの部分は滅失されたと推定される。 2013年に噴水広場や植物園一帯の平地区間で長さ94.1メートルを、今年は噴水台の上・下部、林野、駐車場一帯の探訪路区間で長さ95.2メートルの遺構をそれぞれ確認した。 城郭は噴水台付近の平地では地表面から2〜3メートルの地下で、探訪路区間では1〜2メートル地下で確認された。 発見された城壁は1〜7段まで多彩だ。 石で積んだ基盤の状態は堅固で良好なうえに、朝鮮王朝太祖から世宗を経て粛宗に至る朝鮮初期〜中期〜後期の時代別築城様式が確認でき文化財的価値も高いという。 市側は「5日に開催された専門家諮問会議で築造・補修された城郭跡を通じて、多様な時代別築城様式を確認できる意味ある遺跡という評価が出てきた」と説明した。

 出土遺物としては、城郭の上に低い塀(女墻・ひめがき)を積む時に使う角形の日干し煉瓦と多様な大きさの石、刻字城石など約40点が付近から出土し、整備復元の基礎資料になるものと見られる。 刻字城石の場合、これまでに報告されていない字句が彫られていた。 判読した結果、南山会賢の山裾にある中央広場区間が漢陽都城全体97区間中の60番目に当たる「ネ」(漢字は木の下に示)区間であることが分かった。 漢陽都城の全体規模は長さ18.627キロで、築造当時は白岳尾根を始点に千字文の「天」から「弔」の字までの97字を順に約600尺ごとに一定間隔で城郭に字を刻んだと伝えられている。 この刻字城石の文面を通じて古くから大型公共建築物の場合、区間管理と工事実名制を徹底的に実践した先人の知恵を垣間見ることができる。

 今回の発掘でもう一つ注目を引くのは、日帝が植民統治手段として建設した朝鮮神宮の多くの建物のうち最も大規模な建物である拝殿の場所が都城跡のすぐそばから出てきた点だ。 拝殿建物のコンクリート基礎と柱石だ。 特に都城遺構が拝殿の基礎から地下2〜3メートルの深さに3〜4段だけ残っていることが確認され、神宮の造成が漢陽都城毀損の1次的原因と推定されると市側は明らかにした。

「南山会賢の山裾整備事業」はソウル市が漢陽都城復元のために2009年から推進してきた。 1段階はヒルトンホテル前の児童広場一帯(長さ34メートル残存城郭、2009年に発掘完了)、2段階は白凡(ペクポム)広場一帯(長さ42.4メートル残存城郭、2011年に発掘完了)を経て、今回の3段階事業までに777メートルを発掘調査し、長さ265.7メートルの漢陽都城城郭の位置を捜し出す成果を上げた。

 南山会賢のふもとは、強大国の侵略により人類文化遺産が毀損された場所だ。 漢陽都城世界遺産登載を推進してきたソウル市側は、都城の歴史遺産的価値と日帝強制占領期の破壊の痕跡が同時に確認された今回の発掘成果が、今後の世界遺産登載のための有力な根拠になると見ている。 市側は学術会議と専門家の諮問などを経て、2016年までに南山のふもとで発見された漢陽都城の保存・整備事業を終える予定だという。

ノ・ヒョンソク記者 写真ソウル市提供

韓国語原文入力:2014/08/13 12:02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50993.html 訳J.S(2144字)

http://japan.hani.co.kr/arti/politics/18014.html

한양도성 허물고 지은 일제 ‘조선신궁 터’ 첫 확인
김보미 기자 입력 : 2014-08-13 21:22:45ㅣ수정 : 2014-08-13 21:45:27

ㆍ콘크리트 기반 조성 신사참배 강요 위해 지은 건물
ㆍ회현동 일대 도성 발견… 시대별 축성 양식 드러내

식민지 시대 일제가 한양도성의 성곽 일부를 허물고 지은 조선신궁(神宮) 터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신궁은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지만 그간 사진과 문헌 기록으로만 남아 있던 것을 처음으로 직접 확인한 것이다. 서울 남산 한양도성 일부 구간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20세기 질곡의 역사가 다시 드러난 셈이다.

서울시와 서울역사박물관은 남산 회현 자락 조사를 완료해 13일 현장을 공개했다. 2009년 정비 사업을 시작한 이래 3번째 단계가 진행됐던 이번 발굴에서 한양도성 189.3m 구간이 새로 발견돼 축조를 시작한 태조 시대부터 세종과 숙종으로 이어진 시대별 보수 흔적을 드러냈다. 태조 때 성곽 기틀은 자연석을 최대한 살려 조성됐고 이후 세종 때는 작은 돌들로 무너진 곳들을 메워 성벽 50여m를 고쳐 쌓았다. 이후 숙종 때는 정밀한 측정으로 다듬은 돌들로 10.6m 정도 다시 쌓았다. 성곽 위 여장을 얹을 때 쓰는 각형전 등 유물도 나와 각 시기 어떤 축성 양식을 썼는지도 비교가 가능해졌다.

또 한양도성에는 천자문 97자를 순서대로 600척마다 일정하게 글자를 새겨 책임자를 표시했는데 60번째 한자(柰字)가 발견돼 전라도에서 공사를 맡았던 구간도 확인됐다.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만든 조선신궁의 배전 터. | 김보미 기자


일제강점기인 1927년에 촬영된 남산 조선신궁의 전경. | 서울시 제공

새로 발굴된 18.6㎞는 한양도성 중에서 가장 우여곡절이 많았던 구간이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지금까지 사진과 문헌 기록으로만 남아 있던 조선신궁 건물 중 배전 터가 한양도성 바로 옆에서 나왔다.

배전(拜殿·참배객들이 절하는 장소)은 일제가 통치 수단으로 만든 조선신궁 중 규모가 가장 큰 건물이다. 배전 기초에서 지하 2~3m 깊이에 3~4단 정도만 성곽이 남아 있는 상태다.

조치욱 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일제가 성곽 일부를 허물고 터를 다진 뒤 콘크리트 기반을 깔고 신궁을 조성하고 배전을 만든 실물이 처음 확인됐다”며 “한양도성이 많은 수난을 겪기는 했지만 성곽이 훼손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해방 후에는 이곳에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이 1958년 세워졌다. 이 터 역시 일제 배전이 있었던 곳 바로 옆에서 발견돼 당시 아시아 최대 크기를 목표로 조성했던 방대한 규모의 추정이 가능해졌다.

1960~1970년대에는 남산 식물원과 동물원이 들어서 성곽을 허물었고, 이후에는 배수관과 각종 전선, 역류관 공사들이 무차별로 이뤄지면서 형태가 거의 무너진 상태다. 지금도 남아 있는 성곽 위로 일반인들이 지나는 탐방로가 나 있어 추가 발굴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오는 2016년까지 남산 회현 자락 한양도성의 보존과 정비를 마쳐 시민들에게 개방할 계획이다. 오해영 서울시 푸른도시국장은 “한양도성은 인류 문화유산이 식민 통치 수단 등으로 훼손된 대표적인 곳”이라며 “이번 발굴 결과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완전성을 입증할 중요한 근거 자료”라고 말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8132122455&code=960201

世界文化遺産への登録云々については私の関知するところではありませんが、朝鮮時代だけでなく近現代史の現場でもある南山会賢の一帯がどのようになっていくのかという点については、個人的にも注視しています。

‘남산 회현자락’서 한양도성 추가 발굴 - 한국조경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