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国野球初の独立球団・高陽ワンダーズ、電撃解散

今日、電撃的に飛び込んできたニュースです。個人的には、非常に残念です。

韓国野球界初の独立球団として創設されて注目を集めた高陽ワンダーズ。名将・金星根監督のもと、ドラフト指名漏れや戦力外通告を受けた選手を集め、プロ野球の2軍リーグに当たるフューチャーズリーグとの交流戦を通じて対外的に活動を続けてきました。記事によればこれまでに20名を超える選手がプロ入りを果たしているといいますから、かなりの成果と実績を挙げてきたと言っていいと思います。

それが解散に至った最大の理由はどうやら、フューチャーズリーグへの正式加盟を熱望しながら認められなかったことのようです。詳しい事情は分かりませんが、ここまで来てもったいない話ですよ、まったく。

おそらくは、他に独立球団が創設されて底辺が拡大することも期待していたと思われますけど、それもうまくいかなかったみたいですね。

'한국 최초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전격 해체


'한국 최초의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원더스 측 "운영에 한계"…오늘 선수단 미팅서 통보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한국 최초의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가 3시즌 만에 팀 해체를 전격 결정했다.

원더스 관계자는 11일 "독립구단 운영에 한계를 느꼈다"며 "팀을 해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원더스는 이날 오전 고양시 국가대표 훈련장에서 열린 선수단 미팅에서 해체 결정을 통보했다.

원더스 구단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2∼3개월 월급을 더 지급하기로 했다.

또한 코칭스태프가 프로야구 구단의 테스트를 치를 선수들의 훈련을 돕겠다는 의사를 밝혀와, 구단은 훈련 장소를 제공하고 훈련비도 지원할 계획이다.


고양 원더스를 통해 LG 트윈스에 입단한 황목치승
원더스는 2011년 12월 프로구단에 지명받지 못하거나 방출당한 선수들을 모아 창단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원더스는 '패배자의 집합소'였다.

하지만 짧은 순간에 원더스를 바라보는 시선이 '동정'에서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원더스는 올 시즌까지 퓨처스(2군)리그에서 번외경기를 펼쳤다.

2012년 퓨처스리그 팀과 교류경기로 치른 48경기에서 20승 7무 21패(승률 0.488)를 기록한 원더스는 2013년 27승 6무 15패, 승률을 0.643으로 끌어올렸다.

올해에는 교류전을 90경기로 확대했고 43승 12무 25패(10경기는 우천취소), 승률 0.632를 기록했다.

2012년 7월 투수 이희성이 LG 트윈스에 입단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 7월 KT 위즈와 계약한 외야수 김진곤까지 22명이 프로에 입단하는 기적을 일궜다.


'한국 최초의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황목치승(LG)과 안태영(넥센 히어로즈), 송주호(한화 이글스)처럼 프로 1군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도 나왔다.

8월 열린 프로야구 2015 신인 2차 지명회의에서는 포수 정규식이 원더스 선수 중 처음으로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에 입성(LG에 2차 4라운드 지명)하기도 했다. 정규식은 계약을 마치면 원더스 출신 23번째 프로야구 진출 선수가 된다.

"원더스를 통해 한국 사회에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야신' 김성근(72) 감독과 매년 사비로 30억원 이상을 구단에 투자한 '괴짜 구단주' 허민(38)의 만남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며 야구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원더스 구단 내부에서 "퓨처스리그 정규 편성 등의 바람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회의가 담긴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구단 존폐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결론은 '해체'였다. 결국 9월 11일, 이들은 도전을 멈췄다.

2014/09/11 09:25 송고

http://www.yonhapnews.co.kr/sports/2014/09/11/1001000000AKR20140911025100007.HTML

[야구]원더스의 파격 질주, 마무리는 씁쓸
등록 일시 [2014-09-11 13:44:39]

【서울=뉴시스】권혁진 기자 = 한국 최초 독립야구단인 고양원더스가 3년 간의 짧은 세월을 뒤로 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원더스의 행보는 서울대 야구부 출신 버클리 음대생이라는 이색 경력을 갖춘 허민 전 위메프 대표의 결단에서 시작됐다.

허민 구단주는 2011년 9월 "선수들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며 수익과는 거리가 먼 독립구단 창단을 택했다. 야구계에 던진 신선한 충격이었다.

원더스의 파격 행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총 40여명의 선수단을 꾸린 원더스는 '야신'으로 통하던 김성근 감독을 사령탑에 앉히면서 주위를 깜작 놀라게 했다. 이듬해 1월에는 일본 고지현에서 전지훈련을 갖기도 했다.

원더스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소속 퓨처스리그 팀들과의 교류 경기로 기량을 가다듬었다. 첫 해인 2012년 20승7무21패(0.488)로 가능성을 보인 뒤 2013년에는 27승6무15패(0.643)로 반등했다.

원더스가 승승장구하자 기존 구단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12년 이희성의 LG 트윈스 입단을 시작으로 그해 5명과 2013년 12명, 2014년 5명 등 총 22명의 선수들이 원더스 덕분에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어느 덧 원더스는 여러가지 이유로 도전을 멈춰야 했던 선수들의 '재기의 장'으로 부상했다. 드래프트에서 외면받은 이들 뿐만 아니라 김수경과 최향남 등 본의 아니게 그라운드와 멀어졌던 베테랑들도 원더스의 문을 두들겼다.

당당히 한국 야구계의 한 축을 꿰찬 원더스는 11일 갑작스런 해체를 발표했다.

그동안의 기분 좋은 충격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원더스는 "3년간 운영하면서 창단을 제의했던 KBO와 구단 운영에 대한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반복해서 확인했다"는 것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결과적으로 KBO는 원더스 창단 당시 내걸었던 "1년 간 교류경기를 치른 뒤 다음해부터는 정상적인 스케줄에 포함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소속 구단간 경기편성의 형평성과 독립리그 설립취지, 예상 경기력 등이 반대의 이유였다.

높은 진입장벽을 확인한 원더스도 도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김 감독은 원더스의 해체를 두고 "야구계 전체가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라고 일침했다. 그는 "한국 야구가 역피라미드로 가야 한다. 위(프로)를 넓혀야 한다. 저변도 저변이지만 위를 넓혀야 산다"면서 "프로 말고는 갈 자리가 없는데 저변만 넓히면 안 된다 고양 원더스는 그런 의미에서 큰 존재였다"고 말했다.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911_0013162500&cID=10805&pID=1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