ソウル西大門区・独立公園の顕忠祠:殉国先烈と愛国志士

独立公園の顕忠祠って、これでしょ?


2009年に訪れた時には、「独立館」と呼ばれていました。これ、今は額も架け替えてるんですかね?


記事中にある「殉国先烈遺族会」は、この建物の地下に入っています。私が訪れた時はお休みでしたが、その当時の様子を思い出してみても、遺族会の活動が活発であるようには、見えませんでした。



記事入力 : 2015/08/12 10:39
殉国先烈2835人の位牌、17年間訪問者ゼロ

扉閉ざしたまま放置されているソウル独立公園「顕忠祠」
遺族会会長が私財投じ昨年4月公開
政府・市・国民は無関心、運営費支援なし
靖国神社の500分の1の広さ、位牌増やす場所もなく
学界「殉国先烈15万人」
政府把握は3300人だけ、墓も全国に散在

 「日本では首相が自ら日本の戦犯の位牌(いはい)=原文ママ=をまつった靖国神社を参拝するのに、彼らと戦って命をささげた殉国先烈は韓国政府や国民の関心から遠ざかっている」

 11日午前10時、独立公園(ソウル市西大門区)の一角にある、殉国先烈の位牌がまつられた「顕忠祠」。ムクゲの造花が1輪だけの献花台を通り、その中に入ると、殉国先烈2835人の位牌が姿を現した。ハングル順に並べられた位牌の中央に赤く表示されていたのは、安重根(アン・ジュングン)、李奉昌(イ・ボンチャン)、柳寛順(ユ・グァンスン)ら有名な独立運動家たちの名前だった。顕忠祠を管理する殉国先烈遺族会のキム・シミョン会長(69)は「この顕忠祠はたった56坪で、日本の靖国神社や台湾の忠烈祠など隣国の殉国者をまつる場と比べると500分の1の広さにもならない」と嘆いた。

 顕忠祠として現在使われている建物は、旧韓末時代の独立協会の独立館(旧・慕華館)を復元して1997年に建てられたもので、所有権を持つソウル市が殉国先烈遺族会に管理を委託、殉国先烈の位牌をまつる祠(ほこら)として使い始めたものだ。だが、政府や市では一切運営費を支援しておらず、この17年間鍵がかけられていた。やっと一般に公開されたのは昨年4月にキム会長が就任してからだ。キム会長が私財を投じ、顕忠祠を管理する職員やガイドを雇い、運営が可能になった。11月17日の「殉国先烈の日」追悼式に毎年政府支援金600万ウォン(約60万円)が支給されるが、それ以外に遺族会に入る資金といえば、月刊誌発行で得られる収入だけだという。

 キム会長は「韓国国民なら誰もが国民儀礼をし、殉国先烈に対し黙とうをささげた記憶があるだろうが、どんな方々を殉国先烈と呼ぶのか、きちんと知っている韓国人はあまりいないだろう。愛国志士としてよく知られているのは存命中に光復(日本による植民地支配からの解放)を迎えた独立運動家たちだが、殉国先烈とは抗日戦闘や死刑・拷問などで1945年の光復前に死去した独立運動家を指す」と説明した。学界では殉国先烈の数を約15万人と推定しているが、国が現在把握している人物は3300人に過ぎないという。それでも、あと約500柱の位牌は顕忠祠が狭いためまつれない状況だ。国立顕忠院(殉国者のための国立墓地)も愛国志士たちの墓があるだけで、殉国先烈の墓は全国に散在しているとのことだ。

 だが、今年からこうした状況は少しずつ改善されそうだ。行政自治部(省に相当)が今年の殉国先烈の日に行う追悼式費用のうち1200万ウォン(約130万円)を支払い、主要人物の招待・式典進行などを支援すると決めたからだ。先月28日に殉国先烈遺族会の関係者に会った同部の鄭宗燮(チョン・ジョンソプ)長官は「(各支援事業が)殉国先烈たちの努力と犠牲を国民に伝えるきっかけになれば」と語った。

ホン・ジュンギ記者 , チェ・ヒミョン記者

http://www.chosunonline.com/site/data/html_dir/2015/08/12/2015081201115.html

17년간, 아무도 찾지 않은 순국선열 2835명의 위패
홍준기 기자 최희명 기자 입력 : 2015.08.12 03:00 | 수정 : 2015.08.12 08:43

[문잠긴 채 방치 서울 독립공원 현충사… 유족회 회장이 私財 털어 작년 4월에야 공개]

-정부·市·국민의 무관심
운영비 지원 전혀 못받아
日야스쿠니 500분의 1인 56평… 위패 더 세울 공간조차 없어

학계선 "순국선열 15만명"
정부 파악은 3300명뿐, 묘지도 전국에 흩어져 있어

"일본에서는 총리가 나서서 일제 전범들의 위패(位牌)를 모아놓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는데, 정작 그들과 싸워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은 우리 정부와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순국선열 위패가 모셔진 독립공원 현충사.

11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 한편에 자리 잡은 순국선열 위패봉함관 '현충사'. 무궁화 조화(造花) 한 송이가 놓인 헌화대를 지나 사당 입구로 들어서니 순국선열 2835명의 위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나다순으로 층층이 늘어서 있는 위패들 가운데 빨간색 스티커로 표시된 위패에는 안중근·이봉창·유관순 등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들 이름이 적혀 있었다. 현충사를 관리하는 순국선열유족회 김시명(69) 회장은 "56평에 불과한 현충사는 일본 야스쿠니 신사나 대만 충렬사 등 이웃 나라의 유공자 사당과 비교하면 크기가 500분의 1도 안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현재 현충사로 쓰이는 건물은 본래 구한말 독립협회의 독립관(원래 모화관)을 복원해 1997년 지어진 것인데, 소유권을 가진 서울시가 순국선열유족회에 관리를 위탁하면서 순국선열 위패를 모셔놓는 사당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나 시에서 일절 운영비를 지원하지 않아 지난 17년간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 있었다. 작년 4월 김 회장이 취임한 이후에야 처음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김 회장이 사재(私財)를 털어 현충사를 관리할 직원과 해설자를 고용하면서 겨우 운영이 가능해진 것이다. 11월 17일로 지정된 '순국선열의 날' 추모제에 매년 정부 지원금 600만원이 나오는 것 외에는 유족회에 들어오는 자금이라곤 1년에 월간지를 만들어 버는 돈이 전부라 한다.


김시명 순국선열유족회 회장이 11일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에 있는 순국선열 위패봉함관 현충사에서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현충사는 1997년 지어졌지만 정부나 서울시가 운영비를 지원하지 않아 작년까지 17년 동안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김연정 객원기자

김 회장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국민의례를 하며 순국선열에 대해 묵념(默念)을 올린 기억이 있겠지만, 정작 어떤 이들을 순국선열로 부르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 했다. 흔히 애국지사로 알려진 인물들은 살아서 광복을 맞은 독립운동가를 지칭하지만, 순국선열은 일제 강점기에 항일전투나 사형·고문 등으로 1945년 광복 이전에 사망한 독립운동가들을 뜻한다고 김 회장은 설명했다. 학계에서는 순국선열의 수를 약 1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현재 국가에서 파악하고 있는 인물은 3300여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마저도 500여 명은 사당 규모가 작아 아직 위패를 모시지 못한 상황이다. 현재 국립현충원에도 애국지사들 묘역만 설치돼 있고 순국선열 묘는 전국에 흩어져 있다고 했다.

올해부터는 이런 상황이 좀 나아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올해 순국선열의 날에 열리는 추모제 비용 중 1200만원을 지원하고, 주요 인사 초청 및 행사 진행 등을 돕기로 한 덕이다. 지난달 28일 순국선열유족회 관계자들을 만났던 정종섭 행자부 장관은 "(각종 지원 사업이) 순국선열들의 노력과 희생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순국선열(殉國先烈)

일제 강점기에 전투·고문 등으로 광복을 보지 못하고 사망한 독립운동가. 살아서 광복을 맞은 독립운동가는 애국지사라고 부른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8/12/2015081200248.html

それにしても、「この17年間鍵がかけられていた」「17年間訪問者ゼロ」と言われているこの祠堂、私、訪問して中に入って参拝もしてるんですけど…。






別に特別扱いされたわけでも許可を得たわけでもなく、開いてたから普通に入っただけのことだったので、そんなに特殊な経験でもないと思うんですけどねえ。目立つところにありますし、あの公園で散歩したりしてる人であれば、参拝した人は珍しくないはずですよ。

なので、朝鮮日報のこの報道には、別の意味でちょっと唖然としています。

記事入力 : 2015/08/13 10:46
【社説】殉国先烈の追悼施設17年間放置した韓国社会

 12日付の本紙に掲載された『殉国先烈2835人の位牌、17年間訪問者ゼロ』という記事を読んだ読者たちは、あ然とさせられたことだろう。ソウル市西大門区の独立公園内にある「顕忠祠」は、1997年以来、殉国先烈の位牌(いはい)を祭ってきた。ところが、昨年4月に殉国先烈遺族会長に就任したキム・シミョン氏が自費でガイドを雇うまでの17年間、鍵が掛けられた状態で放置されてきたというわけだ。

 殉国先烈とは、日本の植民地時代に義兵や独立軍兵士として戦死したり、独立運動に関与していて日本当局に殺害または処刑されたり、獄死したりした人たちを指す。日本の朝鮮総督に爆弾を投げようとして失敗に終わり逮捕され、死刑を執行された姜宇奎(カン・ウギュ)や、独立軍を指揮して青山里戦闘などで戦果を挙げた金佐鎮(キム・ジャジン)などが含まれる。

 この顕忠祠は97年、ソウル市が西大門独立公園の一角に、旧韓末(朝鮮王朝末期)時代の独立協会の独立館(旧・慕華館)を復元する形で建設され、殉国先烈の位牌をまつる祠(ほこら)として使うことにし、殉国先烈遺族会に管理を委託した。国家報勲処(国家功労者を礼遇し、軍人・退役軍人の支援事業を行う省庁)は2003年、顕忠祠を国家の殉国先烈追悼施設に指定した。ところがその後、ソウル市は殉国先烈遺族会に管理・運営を委託しているとの理由で、報勲処はソウル市の施設だからという理由で、責任を押し付け合って顕忠祠を放置してきた。何ら支援を受けられなかった遺族会は17年間、顕忠祠の入り口に鍵を掛け続け、昨年に執行部が入れ替わった後になって、ようやく施設を公開し、一般人の参拝を許可した。

 祖国の独立のため命をささげた人たちの位牌が祭られている顕忠祠をまるで倉庫のように放置し、光復節(日本の植民地支配からの解放を記念する日。8月15日)の記念式典だけ盛大に行うというのは、実に恥ずかしいことだ。韓国国民は殉国先烈の犠牲を乗り越え、今日の経済発展や民主化を成し遂げた国に生きているということを今一度考えてみるべきだ。

http://www.chosunonline.com/site/data/html_dir/2015/08/13/2015081301320.html

[사설] 순국선열 위패 모신 곳이 17년간 창고 취급받았다니
입력 : 2015.08.13 03:21

12일자 조선일보 8면의 '17년간 아무도 찾지 않은 순국선열 2835명의 위패'라는 기사를 읽은 독자들은 기가 찼을 것이다.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내의 현충사는 1997년부터 순국선열들 위패(位牌)를 모셔 왔다. 그런데 작년 4월 새로 순국선열유족회장을 맡은 김시명 회장이 자비(自費)로 해설사를 고용하기 전까지 17년 동안은 자물쇠를 채워놓고 방치해뒀다는 것이다.

순국선열이란 일제강점기에 의병·독립군으로 전사하거나 독립 투쟁 중 일제에 피살·사형·옥사(獄死)한 분들을 말한다. 일제 총독에게 폭탄을 투척했으나 뜻을 못 이루고 체포돼 사형당한 강우규 의사, 독립군을 지휘해 청산리 전투 등에서 전과를 세운 김좌진 장군 같은 분들이다.

이 현충사는 1997년 서울시가 서대문 독립공원 내에 구한말 독립협회의 활동 공간이었던 독립관을 복원하는 형식으로 지었다가 순국선열들 사당으로 쓰기로 하고 순국선열유족회에 관리를 위탁했다. 보훈처는 2003년 현충사를 국가 현충 시설로 지정했다. 그러나 그 후 서울시는 유족회에 관리·운영을 맡겼다는 이유로, 보훈처는 서울시 시설이라는 이유로 서로 미루며 현충사를 방치해왔다. 아무 지원을 받지 못한 유족회는 17년 동안 출입구에 자물쇠를 채워놓고 있다가 작년 유족회 집행부가 바뀐 뒤에야 시설을 공개해 일반 참배를 받기 시작했다.

조국 광복을 위해 몸 바친 분들 위패가 모셔진 장소를 창고처럼 내버려 두면서 광복절 기념식만 거창하게 거행하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우리가 어떤 분들의 희생을 딛고 오늘날 산업화·민주화를 성취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8/12/2015081203980.html


追記:ちなみにここ、鳩山由紀夫元首相がこれをしたのと同じ公園内です。

ご本人の意図は知りませんし、これで何かがどうにかなるとも思えませんが、私にはヴィリー・ブラント気取りのパフォーマンスに見えました。同じことを思った方も少なくないと思い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