ガンバ大阪にオジェソクあり

昨日の記事ののぼりの写真、オジェソクのものでした。

http://the-one-and-only-osaka.blog.jp/archives/1861629.html

オジェソクは、ロンドン五輪後にガンバのオファーを受けていながら、江原FCの残留に貢献するためにその受諾を先延ばしにし、チーム財政に寄与する移籍金が発生するタイミングで当時J2に陥落したガンバ大阪に移籍した選手です。今回のACLで、城南FCFCソウル全北現代を撃破したガンバ大阪が「どのKリーグクラブよりも強いチーム」であることを示したことは、彼の移籍が間違った選択ではなかったことも証明しているように思います。

d.hatena.ne.jp

藤春や米倉に続いてオジェソクが韓国代表に選ばれたら、心から祝福したいと思っています。

[서호정의 킥오프] 전북의 창을 꿇린 오재석의 방패
서호정

1주일 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향한 전북현대의 도전은 오사카에서 멈췄다. 전북이 탈락하면서 K리그는 2008년 이후 7년 만에 가장 일찍 챔피언스리그 일정을 마감했다. 전북을 좌절시킨 팀은 지난해 J리그 3관왕을 달성한 감바오사카(이하 감바)였다. 전주에서 열린 8강 1차전에서 0-0으로 비긴 감바는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접전 끝에 3-2 역전승을 거두며 4강에 올랐다. 그리고 그날 감바의 오른쪽 측면을 지킨 것은 한국인 선수인 오재석이었다. 2009년 U-20 월드컵 8강과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기대주로 각광을 모은 오재석은 2012시즌을 마치고 강원FC를 떠나 J리그의 감바로 이적했다. 첫 시즌인 2013년 오재석은 부상이라는 악재를 만나고 경쟁 구도에서 밀리며 5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다. 게다가 당시 감바는 오재석이 이적을 결정한 뒤 강등을 당하는 바람에 2부 리그에 속해 있었다. 그렇게 오재석은 J리그로 갔다가 실패한, 그저 그런 기대주로 잊혀지는 듯 했다. 오재석의 이름이 다시 부상한 것은 작년이었다. 보란 듯이 일어선 오재석은 총 37경기에 출전, 1부 리그로 돌아온 감바가 곧바로 3관왕을 달성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올해 오재석은 다시 고비를 맞았다. 시즌 초반 햄스트링 부상으로 경기에 못 나서는 사이 경쟁자인 후지하루 히로키와 요네쿠라 코키는 일본 대표팀에까지 소집되는 선수로 성장했다. 2013년보다는 신뢰를 받고 있지만 지난해에 비하면 팀의 주역은 확실히 아니다. 그런 그에게 올 시즌 가장 큰 기회이자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전북과의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선발 출전이었다. K리그의 마지막 희망인 전북의 오사카 원정은 어느 때보다 많은 미디어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상대팀인 감바에 있는 한국 선수 오재석의 존재는 경기 전까지 전혀 주목을 못 받았다. 그의 출전은 예상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감지되는 이슈도 아니었다. 경기 시작 1시간 전 선발라인업이 발표되고 오재석의 출전이 확정되자 잠시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그리고 오재석은 후반 20분 요네쿠라와 교체돼 나갈 때까지 전북 공격 전술의 핵인 레오나르도를 확실히 봉쇄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을 완수한 것이다. 그를 대신해 들어간 공격적인 풀백 요네쿠라는 후반 추가시간 결승골을 넣었다. 오재석이 지치게 만든 전북 수비라인을 뚫고 들어가 넣은 골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감바 팬들에게 큰 박수를 받는 오재석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오묘한 감정이었다. 오재석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일전에서 K리그 팀을 상대하고, 그것도 상대팀의 에이스를 잡아야 하는 상황은 엇갈린 숙명과 같았다. 경기가 끝난 뒤에야 한국에서 온 미디어는 오재석을 주목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경기 후 도핑테스트에 참가해야 해 믹스트존에 등장하지 못했다. 이틀이 지나 오사카와 이웃한 고베에서 오재석은 절친 정우영과 함께 자리를 가졌다. 전북전을 준비하며 생긴 긴장을 겨우 이완시킨 오재석으로부터 전북전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을 잊고 있던 한국의 많은 이들에게 살아 있음을 증명한 그는 지금 그 곳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축구와 인생을 헤쳐가고 있을까?

■ 두려움과 불안을 용기와 승리로 바꾸기까지

오재석이 하세가와 켄타 감독으로부터 전북전 선발출전을 통보 받은 것은 경기 사흘 전인 월요일이었다. 감바는 가시마 원정에서 우사미 다카시의 2골로 2-1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를 끌어올린 상태였다. 하지만 8월과 9월 들어 오재석이 출전한 경기는 단 1경기였다. 그나마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나고야와의 나비스코컵 8강 2차전(9월 6일)을 뛴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오재석 본인도 전혀 예상 못한 일이었다. 그는 “1차전 때가 오히려 경기에 나갈 타이밍이라고 생각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왼쪽 풀백으로 나가는 걸로 예정돼 있었는데 감독님의 생각이 바뀌었는지 주말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멤버들로 나갔다. 그때 실망감이 컸다. 과연 2차전에 기회가 오겠나 싶었는데 엉겁결에 기회가 온 거다”라고 말했다. 전북전 출전을 통보 받은 뒤 오재석에게 몰려온 것은 기대와 강한 동기부여가 아닌 걱정과 공포였다. 경기가 갖는 비중이 첫 이유였다. 전북도, 감바도 이 한판은 리그 경기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토너먼트 2차전 결과에 따라 대회를 완전히 접어야 했다. 여러모로 불리한 쪽은 감바였다. 골잡이인 우사미가 경고누적으로 결장하는데다 전북이 골을 넣고 비기기만 해도 탈락이었다. 다음은 그가 출전할 경우 맡아야 할 임무였다. 현재 K리그 최고의 외국인 공격수라는 레오나르도를 봉쇄하는 게 오재석에게 주어진 미션이었다.

오재석의 고백은 솔직했다. “축구선수인데 그 상황이 부담스러우니까 피하고 싶었다. 홈에서 경기를 뛴 게 언젠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전북과의 2차전을 준비한 그 사흘은 여태껏 감바에 있으면 가장 부담스러웠던 시간이었다. 내가 투입되는 목적은 명확했다. 전북 경기는 계속 챙겨보고 있었는데 레오나르도의 몸 상태가 상당히 좋아 보였다. 이번에는 요네쿠라가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감독님이 선수들 앞에서 올해 가장 중요한 경기라고 선언했는데 기존 선발라인업에서 나만 바뀐 거다. 만일 경기가 잘못되면 내 책임이 클 거 같았다. 감바에서의 고별전이 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웃음) 스트레스 너무 받아서 3kg이 빠졌다. 원래 예민한 타입인데 그 정도로 이번 경기가 어려웠다.”

“경기 전날 훈련을 하는데 부담감에 정신을 못 차리고 쩔쩔맸다. 운동에 집중해야 하는데 머리에 생각이 많았던 거다. 그걸 보고는 감독님이 열 받아서 훈련 중 요네쿠라로 바꾸라고 했다. 코치들과 다른 선수들이 나를 위로해 줄 정도로 호되게 혼냈다. 훈련 끝나고도 감독님이 나를 따로 불러서 얘기했다. 원래 굉장히 다정한 분인데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일본에 와서 지난 시간 동안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라고 했다. 그 정도의 긴장감은 감바에 와서 처음 느꼈다.”

책임감과 긴장감이 동시에 몰려와 오재석을 압박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컨디션을 유지하는 걸 방해했다. 그를 도운 것은 홍명보 전 감독의 조언과 여자친구의 응원이었다. “원래 경기 당일에 낮잠을 자는데 긴장이 돼서 이번엔 잠도 못 잤다. 책을 읽고, 축구와 관련해 메모해 둔 것도 봤다. 거기에 홍명보 감독님이 해준 얘기를 적어놓은 게 있었다. '선수들이 오랜만에 기회를 얻거나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투입 될때 선수들은 대부분 머리속에 100점 짜리의 완벽한 경기 혹은 그 이상의 대단한 경기를 꿈꾸는데 그럴땐 오히려 조금 부족한듯 85점 정도를 목표로 하는 선수가 성공 확률이 높다. 압박감에서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얘기였다. 머리 속이 깨끗해지는 것 같고 내가 해야 할 것이 뭔지 답을 찾은 것 같았다. 한국에서 공부 하고 있는 여자친구한테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친구가 나보다 정신력이 더 뛰어나다. 거의 부처님 수준이다. 많이 의지하면서 경기 전까지 통화를 하고 나갔다.”

정신을 차린 오재석은 레오나르도 봉쇄를 위한 준비를 마무리했다. 구단이 분석해 준 자료 외에 따로 전북 경기 영상을 챙겨보며 분석했다. 가장 최근의 5경기를 집중적으로 반복 시청했다. 훈련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동영상 틀어놓고 자신이 마크해야 할 선수의 특징을 파악했다. 오재석이 고려한 선수는 레오나르도와 이근호 둘이었다. 특히 전북이 오사카 원정 직전에 치른 서울전에서는 이근호가 왼쪽 측면을 봤고, 팀은 3-0으로 승리했다. 오재석으로선 레오나르도도 버거운 상황에서 두 가지 설정을 세우고 모두 대비해야 했다. 두 선수의 특징을 잡기 시작했다.오면 한번에 사이드로 치고 달린다. K리그에서는 레오나르도를 상대하는 선수들이 한번에 벗겨지지 않으려고 밀착 마크하는데, 워낙 볼 컨트롤이 좋고 영리하니까 타이밍을 역이용해 순간 스피드로 치고 나가기 때문에 다 당한다. 그 상황에서는 바로 붙지 말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게 낫다고 봤다. 반면 측면에서 뒤에 있는 박원재 선수로부터 공을 받으면, 전북의 보란치들이 접근을 잘 안 하기 때문에, 일단 공을 발바닥으로 컨트롤 하며 세워서 주변을 살핀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말고 바짝 붙자고 마음 먹었다. 근호 형은 수비 가담이 좋은 선수다. 굉장히 깊게 내려가 수비를 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공격으로 전환할 때 타이밍을 죽여야 했다. 근호 형이 나서면 좀 더 라인을 올려서 수비하겠다고 코칭스태프와 얘기했다.”

결국 그날 오재석이 상대해야 했던 선수는 레오나르도였다. 이날 레오나르도는 팀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성공시킨 것 외에는 전반에 아무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후반에도 페널티에어리어로 침투 해 힐킥을 구사한 것 외에는 오재석의 마크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하세가와 감독이 1차전부터 요주의 선수로 강조했던 레오나르도를 봉쇄하면서 감바는 자신들의 경기를 풀어갈 수 있었다. 1-1 동점이던 후반 20분 오재석은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요네쿠라와 교체돼 나왔다. 이후 감바는 공격적으로 태세 전환을 했고 구라타 슈의 역전골이 나왔다. 전북이 후반 43분 우르코 베라의 헤딩 동점골로 다시 우위를 점했지만, 추가시간 요네쿠라의 결승골이 나오며 승리의 여신은 감바를 위해 웃었다.

“감독님이 미션을 준 건 전반에 0-0, 혹은 1-1까지 지키라는 것이었다. 0-0이었으면 후반 상황을 계속 보면서 뛰는 거였고, 1-1이면 후반 20분에 요네쿠라와 교체하기로 돼 있었다. 만일 지고 있으면 전반전이 끝나고 바로 요네쿠라와의 교체였다. 끝나고 나오는데 미션을 클리어해줘서 고맙다고 얘기해줬다. 경기 후에는 감독님을 만나지 못했다. 결승골이 터지고 너무 좋아서 그라운드에 난입했다가 퇴장을 당했다.(웃음) 그만큼 감바도 그 경기가 절실했다. 감독님이 감정 표현을 그렇게 하는 건 처음 봤다.”

“경기가 끝나고 4강에 가는 것이 결정됐을 때는 당연히 나도 엄청 좋았다. 그런데 한국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넘어져 있는 걸 보니까 안타까웠다. 너무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경기가 끝나고 도핑테스트를 받게 되면서 더 가시방석이었다. 방 안에 (최)철순이 형, 윌킨슨과 마주보고 있어야 했다. 처음엔 침묵만 흘렀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철순이 형이 먼저 축하를 해줬다. 경기에 대한 얘기도 나눴고, 다음 상대인 광저우에 대한 정보도 알려줬다. 다시 한번 미안하고, 고맙고 그런 마음이었다.”

■ 전북 잡은 감바의 현미경 분석과 정신력

홈에서 열리는 경기였지만 2차전을 앞두고 불리한 쪽은 감바였다. 전북도 여름 들어 경기력의 기복이 심했듯이 감바도 작년 3관왕 달성 때와 전반기의 좋은 분위기를 좀처럼 내지 못했다. 게다가 1차전에서 경고누적이 된 우사미의 결장은 타격이 컸다. 우사미는 J리그 득점 1위로 대표팀에서도 유럽파들과 경쟁 중인 가장 핫한 선수였다. 앞서 열린 가시마전에서도 팀의 2골을 모두 책임지며 해결사로서의 역량을 증명했다. 오재석 역시 우사미가 없는 것이 감바에겐 큰 불안감이었다고 인정했다. 그는 “그 선수 없이 중요한 경기를 치른 적이 없었다. 체력 안배를 위해 뺀 경우는 있지만 이겨야 하는 경기에 우사미가 없는 상황은 처음이었으니까 우리도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고 말했다.

전북이 그랬듯이 감바도 1차전이 끝나고 2차전을 치르기까지의 3주 동안 철저한 준비와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 기점이 된 건 리그컵인 나비스코컵이었다. 하세가와 감독은 과감한 선택을 했다. 홈에서 열린 나고야와의 8강 1차전에 그 동안 경기를 뛰지 않았던 선수를 투입했다. 국가대표 4명이 차출된 상황이었고, 체력 문제를 겪던 패트릭, 엔도 야스히토, 곤노 야스유키를 모두 뺏다. 대신 유스팀에서 올라온 어린 선수들을 대거 출전시켰다. 반면 나고야는 정예 멤버였다. 그 경기에서 감바는 1-1 무승부를 기록했고 팀 전체에 새로운 활력과 신선한 공기가 돌았다. 2차전 원정에서 감바는 오재석을 포함한 베스트 멤버로 경기에 나가 승부차기 승리를 거뒀다.

“그 과정을 치르며 팀에 자신감이 돌아왔다. 그리고 가시마 원정에서 다시 한번 2-1로 이기면서 이제 됐다, 좋은 분위기로 전북전 준비하겠다 싶었다. 그리고 코치들이 자신에 찬 표정으로 전북이랑 서울이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확인해 보니까 전북이 3-0으로 이긴 거였다. 코치들 5명의 표정이 다 굳으면서 역시 전북은 만만치 않다며 시무룩해 했다. 전북은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면 금방 흐름을 탄다.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전북의 신바람 나게 해 준 서울이 조금 원망스러웠던 때였다.”

분위기를 만든 다음 감바에게 필요한 것은 분석이었다. 전북의 공격을 철저하게 누를 대비책이 필요했다. 또한 우사미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이길 수 있는 골을 넣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전자를 위해 오재석이 준비됐다. 전북이 1차전에서 우사미를 봉쇄하기 위해 최철순을 투입한 것처럼, 감바도 레오나르도를 막기 위해 오재석을 넣었다. 오재석은 “그날은 내가 감바의 최철순이 됐다”고 말했다. 전북을 상대로 골을 넣기 위해서는 일본 스포츠계 특유의 현미경 분석이 동원됐다. 2차전에서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감바의 첫 동점골은 그 분석에 의해 나왔다. 전북은 페널티킥 선제골을 넣은 뒤 1분 만에 평범한 프리킥 상황에서 오프사이드 트랩을 썼다가 실패하며 동점골을 내줬다. 감바의 코칭스태프는 전북이 오프사이드 트랩을 구사하는 데 취약한 점이 있음을 파악하고 있었다. 경기 분석을 하던 중 두 차례 오프사이드 트랩이 불안하게 성공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노리는 전술을 준비했다. 최전방 공격수 패트릭이 수비라인 정면으로 들어가며 시선을 유도하는 대신 아베 히로유키가 오프사이드 트랩에 걸리지 않게 크게 돌아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감바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전북이 오프사이드 트랩을 구사하는 바람에 그게 들어맞았다.

경기 중 엔도의 기지 넘치는 전술 변화 지시는 감바의 두번째 골을 만들어냈다. 오재석은 “전반에 우리의 공격이 잘 되지 않았다. 우사미의 역할을 해야 하는 구라타가 철순이 형에게 묶여 있었다. 전반이 끝나고 엔도가 구라타에서 중앙에서 움직이지 말고 측면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철순이 형이 구라타를 쫓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북은 중앙에 보란치가 이재성 1명만 남는다. 엔도는 후반에 우리가 공을 계속 소유하며 공격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지시를 했다”고 설명했다. 구라타는 후반 들어 최철순을 측면으로 유도했고, 감바는 엔도의 계산대로 많은 볼 소유를 통해 경기를 장악했다. 적극적인 중거리슛을 시도했고, 후반 31분 구라타가 찬 슛이 린스를 맞고 굴절되며 감바의 역전골이 나왔다.

감바의 정신력도 돋보였다. 보통의 J리그 팀들이 K리그, 특히 강한 몸싸움을 즐기는 전북을 상대로 힘겨워 하는 것과 달리 감바는 이날 물러서지 않고 맞붙었다. 경기 전 하세가와 감독은 감바 선수들의 전투력을 계속 끌어올렸다. 오재석은 “부딪히는 거, 헤딩할 때 물러서지 말라고 했다. 전북은 강한 팀이니까 밀리면 그대로 흐름을 내준다. 1차전 때도 우리가 기 싸움에서 밀리며 말렸다”며 경기를 앞두고 팀에 감돌았던 분위기를 얘기했다. 실제로 하세가와 감독과 주장인 엔도는 경기 하루 전 기자회견 때도 이례적으로 정신력을 강조한 바 있다. 하세가와 감독은 오재석에게 경기 전 전북 선수들과 전화 통화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오재석은 올림픽대표팀 시절 함께 한 친구 김기희와 경기 시작 전 기념사진을 찍을 때에야 잠깐 인사할 수 있었다.

특별했던 감바의 정신력을 보여준 대표적인 선수는 브라질 출신의 최전방 공격수 패트릭이었다. 패트릭은 그 경기에서 첫번째 동점골을 넣었다. 김형일과 윌킨슨을 상대로 힘에서 밀리지 않았고, 굉장히 전투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공격을 이끌었다. 1차전에서 김형일의 터프한 수비에 완전히 묶였던 것과는 180도 다른 플레이였다. 오재석은 “1차전이 끝나고 패트릭이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형일이 형한테 완전히 제압을 당했으니까. 2차전 경기 내용은 패트릭이 일본에 와서 한 경기 중 최고였다. 마지막까지 투지 있게 몸 싸움 하는 걸 보고 팀원들이 다 놀랐다. 1골 넣으면 거기 만족하고 페이스가 떨어지는 타입의 선수인데, 죽을 힘을 다하는 걸 보고 모두가 감동했다”고 말했다. 그런 정신력이 후반 44분에 동점골을 내주며 무너질 수 있었던 상황을 감바가 극적인 결승골로 다시 뒤집는 원동력이 됐다.

■ 오재석의 꿈, 성장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다

보이지 않는 큰 공헌을 했고, 팀이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재석은 경기 후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날 승리의 가장 큰 주인공은 결승골을 터트린 요네쿠라였다. 요네쿠라는 오재석의 최대 경쟁자다. 지난 시즌 오재석은 좌우 측면을 모두 소화하며 요네쿠라, 후지하루와 치열하게 경쟁해 승리했다. 올 시즌 한층 성장한 요네쿠라는 오재석을 밀어냈다. 측면 공격수에서 풀백으로 변신한 요네쿠라의 공격력은 단단하고 영리한 수비를 펼치지만 공격력은 다소 아쉬운 오재석이 갖지 못한 매력이다. 오재석은 “경기 후 감정이 반반이었다. 좋지만 아쉬웠다. 결국 주인공이 요네쿠라가 되는 걸 보며 기쁘지만 씁쓸한 마음이 있었다. 감바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북전에서 하세가와의 감독의 특별 미션을 수행했지만 오재석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했다. “그날 잘한 것은 그걸로 끝이다. 다시 경쟁으로 돌아간다. 지금 나는 쫓아가는 상황이다. 더 분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얘기대로 전북전이 끝난 주말 마쓰모토와의 리그 경기에서 오재석은 출전하지 못한 채 대기명단에만 이름을 올렸다. 수비의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한 상황에선 하세가와 감독이 전북전처럼 오재석을 찾겠지만 평상시라면 요네쿠라와 후지하루가 선발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오재석은 그런 상황에 감정적인 동요는 없었다. 첫 시즌에 최악의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과거 오재석은 인터뷰에서 그 시기를 “선수로서 아무 의욕과 동기가 없던 최악의 시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돌아오더라도 한국 선수로서 최선을 다하라는 부모님의 야단을 듣고 정신 차리며 성실히 운동을 하며 팀의 신뢰를 얻었었다”고 말했다. 그 시간을 극복하면서 오재석은 선수로서 한층 더 성장했다. 지금도 확고한 주전이 아니기에 불만이 쌓일 수 있지만 오재석은 “감바에 와서 설마 하던 일을 모두 현실로 경험했다. 첫해의 가장 안 좋았던 상황과 비교하면 뭐든지 다 나은 상황이다. 그때 마음을 잊지 않고 이겨내겠다는 의욕을 품고 있다”고 얘기했다.

AFC 챔피언스리그는 오재석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주는 계기가 된다. 감바는 4강에서 또 다른 강호인 광저우 에버그란데를 만난다. 굴라트, 엘케손, 가오린 같은 특별한 공격수들을 막아내기 위해선 다시 한번 오재석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오재석은 “이번이 아니면 언제 또 챔피언스리그 우승 기회가 올 지 모른다”고 말했다. 감바는 2008년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후 7년 만에 다시 한번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에 올랐다. 엔도를 비롯한 당시 우승 멤버들도 오재석처럼 강한 의욕을 품고 있다. 남은 J리그 일정과 챔피언스리그 일정을 치르며 오재석은 자신의 현실을 또 한번 박차고 나와 지난해 연말 누렸던 짜릿한 성취감을 재현하고 싶어 한다.

오재석이 품은 또 하나의 꿈은 국가대표다. 축구를 시작한 이래 각급 대표팀을 모두 거쳤고, 그 안에서 항상 주역이었지만 아직 A대표팀에서 오재석을 부른 일은 없다. 함께 했던 구자철, 김영권, 홍정호, 한국영, 그리고 절친인 김승규, 윤석영, 정우영은 이미 A대표팀에 뽑힌 지 오래다. 오재석은 A대표팀에 가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A대표팀의 일원이 되기 위한 조건은 첫째도 실력, 둘째도 실력이다. U-20 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에서 오재석을 각별히 아꼈던 홍명보 감독도 감바에 와서 경기에 제대로 나서지 못하던 오재석을 차마 부르지 못했다. 오재석 자신도 “올림픽을 마치고 A대표팀에 대한 목표를 세웠고 헛된 꿈도 품었지만 현실은 내 생각과 달랐다. 선수로서 품은 꿈을 이루기 위해선 친구들이 했던 것처럼 대표팀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소속팀에서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A대표팀은 오재석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차두리가 은퇴한 뒤 오른쪽 측면 수비는 아직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이 멀티플레이어인 장현수를 최근 그 자리에 세울 정도로 적임자가 없다. 오재석이 챔피언스리그에서 지난 전북전처럼 기량을 증명한다면, J리그에서 꾸준히 경기에 나선다면 A대표팀에 부르지 말란 법은 없다. 정우영을 비롯한 J리거들은 그 기준에 부합하면서 기회를 얻었다. 과거에도, 현재도 J리그에서 뛰는 한국 선수에 대한 국내에서의 평가는 박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노력과 경쟁을 하고 있는 선수들은 성장하고 있다. 오재석도 그것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근호 형에게 늘 고맙다. 친분은 없다. 그런데 근호 형이 감바에서 하고 간 것 때문에 내가 혜택을 받았다. 팀에서 한국 선수에게 이근호의 케이스를 얘기하며 한번 더 기회를 준다. 전북전 때 함께 뛰면서 고마웠다. 등번호(22번)도 근호 형이 달았던 번호라고 추천해줘서 단 거다. 군대 있을 때도 구단 직원들이 계약 상황을 물어보면서 다시 일본에 오고 싶어하지 않냐고 계속 물어봤다. 휴가 중에 인스타그램에 이와타에 갔다고 사진을 올렸는데 다들 오사카는 왜 안 오냐고 섭섭해 할 정도였다. 나는 이 팀의 용병이다. 근호 형처럼 감바의 모든 이들이 잊을 수 없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내 뒤에 이 팀에 오게 될 한국 선수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런 마음으로 절실하게 경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그러면 언젠가 내게도 좋은 기회가 올 것이다.”

인터뷰=서호정 기자 사진=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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