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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邱の風景】大邱駅で純宗皇帝に出会う。

まだチャガルマダン朴槿恵さんの生家跡のことしか記事にしてませんけど、大邱のネタはまだいくつもあるんですよねえ。

【大邱の風景】ARTBOXとPARIS BAGUETTEとの間 - 大塚愛と死の哲学
【大邱の風景】チャガルマダン(覗いただけ) - 大塚愛と死の哲学

ま、ぼちぼちやります。

とりあえずその日、釜山から大邱に向かったわけ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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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通したてのこの水西発高速鉄道(SRT)ではなく、ITXセマウル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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なので、降り立ったのは東大邱駅ではなく、大邱駅です。大きな建物は全部が駅舎なのではなく、大部分がロッテ百貨店です。よくあるパターンです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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ところで、駅前に降り立つところで、こんなの見つけました。何こ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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ま、迷うまでもなく、すぐそこの柱や壁面に答えが書いてあるんですけどね。これらは、大韓帝国・純宗皇帝の地方巡幸(1909)に関する展示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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詳しい解説はこちらにあります。

大韓帝国 純宗の地方巡幸 釜山 韓国

103년전 대구 방문 순종황제 열렬히 환영
4만여 지역민·학생 만세 외쳐
김영태기자 승인 201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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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달성공원에 중앙에 있는 두 그루의 향나무. 왼쪽은 순종황제가 오른쪽은 이토 히로부미가 대구를 방문한 기념으로 심었다. 당시 황제의 성산과 이토의 나이를 이유로 기념식수 향나무의 수령도 달리해서 심는 일제의 강압을 엿보는 듯하다.

1909년(융희3년) 1월7일 날씨는 맑았지만 일제강점기 강압에 못이기는 나라의 형편과 같이 겨울철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렸고 대한제국 순종황제는 이날 오전10시 서울에서 어전열차에 올랐다.

어전열차는 천안과 전의 등지를 지나 오전11시50분에 대전에 도착했고 오후 1시45분 추풍령을 거쳐 5시간30여분만인 3시24분에 대구역에 도착했다.

당시 만국기가 펄럭이는 대구역 광장에는 순종황제의 도착과 함께 21발의 연화(축포)가 터졌고 4만여명의 지역민들과 1천636명의 남녀 학생이 모여 대한제국기와 일장기를 손에 들고 건강을 기원하는 `성수(聖壽) 만세`를 부르며 황제의 방문을 열렬히 환영했다.

이어 뚜껑이 없는 옥교라는 어가를 탄 황제는 기마병의 호위를 받으며 대구역에서 당시 관찰도청인 대구 행재소(경상감영)로 향했고 오후7시 달성관(현재 경북인쇄소)에서 학생과 시민들의 행렬이 도열한 가운데 연합 환영회에 참석했다.

이곳에 여장을 푼 황제를 위해 대구시민들은 밤을 새워 제등행렬로 도성을 떠난 순종의 적적함을 달래주기도 했다. 이같은 제등행렬은 조선왕조 500여년 동안 왕들이 도성에서 10리 이상은 벗어난 적이 없었음에도 매국노 이완용과 일제가 강압적으로 대구방문을 추진한 것은 일본으로 납치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지역민들이 판단하면서 황제를 지키려는 충정이 있었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수창학교 30여명은 일제가 순종황제를 일본으로 납치한다는 강한 의구심을 품고 대구방문 다음날인 1월8일 황제가 청도로 향할때 철길에 누워 온몸으로 이를 막으려는 했던 것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어 순종황제는 대구 도착이후 청도와 마산을 5일간 방문한 뒤인 1909년 1월12일 마산에서 다시 대구역에 도착해 달성공원으로 향했고 정문에서 조금 위쪽에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가이즈까 향나무 한그루씩 기념식수를 했다.

이 기념식수에서 일제는 당시 황제의 성산 33세인 것과 히로부미가 66세였던 것을 이유로 향나무 수령을 달리하는 웃지 못할 촌극까지 벌이는 횡포를 부렸다.

사진에서 보듯이 왼쪽이 순종황제가 심은 향나무로 나란히 자라고 있는 2그루의 크기가 약간 차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영태기자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67752

また、これらの展示についての記事もありました。設置されてからまだ1年も経ってないんですね。

ときに、この写真に写っている女性お二人、「市民」とありますけど、たまたま通りがかったところを記者が声掛けたんですか?モデルさんを用意したのではなく?*1

107년 전 순종이 대구 다녀간 길 따라가볼까?
‘롯데백 대구점 1층 광장 ‘순종황제 어가길’ 모형 설치 대구역 등 관광자원화 동참
201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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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역 광장을 찾은 시민들이 롯데백화점 대구점이 조성한 ‘순종황제 어가길’ 관련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롯데백화점 대구점이 1층 대구역 광장에 ‘순종황제 어가길’ 모형 전시물을 설치했다.

이는 대구시가 순종황제의 남순행을 기념해 대구역에서부터 달성공원까지 이어지는 지역을 역사적 관광 자원화하는 사업에 동참하기 위한 것이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황제는 1909년 1월7일 오후 3시25분 근대화된 교통기관인 기차를 타고 대구역에 도착해 대구시내를 비롯해 청도, 부산, 마산 등을 차례로 방문했다.

일주일 후인 13일 오전 8시10분에 다시 대구역을 출발해 서울 남대문에 도착, 덕수궁으로 환어했다.

대구점은 총 5천여만원을 투자해 진열대와 액자, 동판 등을 포함해 대구역에 도착한 순종황제 궁정열차, 행재소까지 이동하는 노부식 행렬, 순종황제 어차 등 세 가지 전시물을 설치했다.

순종황제의 궁정열차는 모두 8량으로 기관차-환급차-1,2등-식당 1등-1,2등-옥차-화물차-3등으로 구분돼 있다.
이 중 옥차는 순종황제가 직접 탔던 칸이다.

특히 노부식 행렬은 임금의 임시 거처(행재소)이던 경상감영까지 이어진 것으로 경호문제를 제외하고 일본인들이 참여하지 않은 유일한 어가 행렬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롯데백화점 대구점 관계자는 “순종황제 남순행 관련 전시물 설치를 통해 대구역 일대를 역사적 관광자원화한 것은 크게 보면 샤롯데 광장 야경 명소화, 생태공원 조성 등과 같은 맥락으로 대구역 일대 환경을 개선해 주변 상권과의 상생 및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노력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혜성 기자

http://www.idaegu.com/?c=5&uid=337228

全体としては、こんな感じです。わりとよくできた模型だ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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で、ここにあるのはこれだけですが、この展示も含めた純宗にまつわるツーリズムを大邱市は考えているみたいです。仮にも皇帝の足跡を辿るのに「ダークツーリズム」と言ってしまっていいのか?と思ったりもしたのですが、まあいいのでしょう。

대구 중구 '순종황제 어가길 조성사업' 구간
[뉴시스] 입력 2012.09.1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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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박광일 기자 = 대구 중구청은 19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황제가 1909년 전국 순행 당시 대구를 방문해 이동했던 대구역부터 달성공원까지 1632m 구간 '옛 순종황제 어가길'을 오는 2015년까지 사업비 70억원을 들여 '황제의 길'로 조성한다고 밝혔다. 사진의 붉은 점선으로 표시된 구간이 순종황제가 걸었던 '어가길'이다. (사진 = 대구 중구청 제공)

http://news.joins.com/article/9374603

日帝の侵奪史を忘れずにいよう」…韓国・大邱市、純宗御幸道を造成
2015年12月24日15時04分
[ⓒ 中央日報/中央日報日本語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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純宗皇帝の銅像鳥瞰図。大礼服姿の純宗が橋の上に立っている。(写真=大邱中区)

大韓帝国の最後の皇帝である純宗(1874~1926)は「悲運の皇帝」だ。即位直後の1907年、日本の強圧によって韓日新協約を締結する。これに伴い、日本人を韓国の官僚として任用できるようになり、法令制定などの権限を、事実上、統監に渡した。軍隊も解散した。1910年8月29日の韓日併合条約(庚戌国恥、韓国併合ニ関スル条約)で、結局は日本の植民地になった。皇帝は悲痛な毎日を送りながら昌徳宮(チャンドックン)でその生涯を閉じた。高宗(コジョン)と明成(ミョンソン)皇后の次男だ。

純宗を賛える銅像大邱(テグ)につくられる。大邱市中区(チュング)は22日、「純宗皇帝オガギル象徴造形物」のデザイン設計を終えたと明らかにした。オガギルとは国王などが通った御幸道のことだ。

実施設計を経て来年2月から製作に入り、4カ月後の6月に達城洞(タルソンドン)の達城公園入口に設置される予定だ。純宗の銅像がつくられるのは初めてのこと。

銅像は国家の重要な儀式の時に着用する大礼服姿の純宗皇帝がアーチ型の橋の上に立っている姿だ。銅像は高さ2.5メートルで、青銅製。ソウルの彫刻家ヤン・ジャンウォン氏(48)の作品だ。ヤン氏は「皇帝の権威をどうしたらうまく表せるか悩んでいたところ大礼服が思い浮かんだ」とし「橋の上に銅像を設置するのは『民の橋になりたい』という皇帝の気持ちが込められている」と説明した。

なぜ大邱に純宗の銅像がつくられることになったのか。純宗皇帝の訪問を記念しようとするものだが、単に純宗を追慕するだけがその趣旨ではない。日帝に侵奪された屈辱の歴史を再確認できるようにとの意味も込められている。暗い歴史から教訓を得ようとするダークツーリズム(Dark Tourism)の名所にしたい考えだ。

純宗皇帝が大邱を訪れたのは国を奪われる直前の1909年だ。同年1月7日、民政視察のために統監だった伊藤博文とともに大邱を訪問した。民の暮らしを確認するという純粋な趣旨の行事ではなかった。1905年乙巳勒約(第二次日韓協約)、1907年国債補償運動に続いて軍隊を解散したことで民心が荒れると日帝がこれを鎮めるために純宗皇帝を前に出した。

国王の乗った御輿の「オガ」が通り過ぎたところは大邱(テグ)駅~北城路(プクソンノ)~寿昌洞(スチャンドン)~達城公園だった。当時慶尚北道キョンサンブクト)観察使だった朴重陽(パク・チュンヤン)はオガの通り道に銀色の砂を敷いてその上を布で覆った。達城公園の進入路を拡張し、冬季の枯れた木には造花をつけて春のようにした。

中区はこのうち北城路から達城公園までの1キロをオガギルとして整備している。中区はこのオガギルを「救国の道」と名付けて「大邱の近代路地ツアー」コースとして活用する方針だ。ユン・スンヨン区庁長は「近代史を学べるよい教育の場になると信じている」と話した。

http://japanese.joins.com/article/023/210023.html

“일제 침탈 역사 잊지 말자” … 북성로에 ‘순종 어가길’ 조성
[중앙일보] 입력 2015.12.23 02:17 수정 2015.12.23 02:36 | 종합 15면
홍권삼 기자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방문했던 길
달성공원까지 1㎞에 벽화 등 마련
대례복 차림 동상 국내 최초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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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황제 동상 조감도. 대례복 차림의 순종이 끊어진 다리 위에 서 있는 모습이다. [사진 대구 중구]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1874∼1926)은 ‘비운의 황제’다. 즉위 직후인 1907년 일본의 강압에 의해 한·일신협약을 체결한다. 이에 따라 일본인을 한국 관리로 임용할 수 있게 됐고 법령 제정 등의 권한을 사실상 통감에게 넘겼다. 군대도 해산됐다.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조약(경술국치)으로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황제는 비통한 나날을 보내다 창덕궁에서 생을 마감했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둘째 아들이다.

 그를 기리는 동상이 대구에 세워진다. 대구 중구는 22일 순종 모습을 담은 ‘순종 황제 어가길 상징 조형물’의 디자인 설계를 마쳤다고 밝혔다. 실시설계를 거쳐 내년 2월 제작에 들어가 4개월 뒤인 내년 6월 달성동 달성공원 입구에 설치할 계획이다. 순종의 동상이 세워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상은 국가의 중요한 의식 때 입는 대례복 차림의 순종 황제가 끊어진 아치형 다리에 서 있는 모습이다. 높이 2.5m에 청동으로 만들어진다. 서울의 조각가 양장원(48)씨 작품이다. 양씨는 “황제의 권위를 나타낼 방안을 고민하다 대례복 차림을 떠올렸다”며 “다리 위에 동상을 설치하는 것은 백성들에게 다리가 돼주고 싶었을 황제의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왜 대구에 그의 동상이 세워질까. 순종 황제의 방문을 기념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를 추모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다. 일제에 침탈당한 굴욕의 역사를 되새길 수 있게 하자는 의미다. 어두운 역사에서 교훈을 깨닫게 하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명소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순종 황제가 대구를 찾은 것은 나라를 빼앗기기 직전인 1909년이다. 그해 1월 7일 민정 시찰을 위해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대구를 방문했다. 백성의 삶을 돌아보는 순수한 취지의 행사는 아니었다. 1905년 을사늑약,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 이어 군대가 해산되면서 민심이 흉흉해지자 일제가 이를 무마하기 위해 순종 황제를 내세웠다.

 어가(임금의 수레)가 지나는 길은 대구역∼북성로∼수창동∼달성공원이었다. 당시 경상북도 관찰사였던 박중양은 어가 통과길에 은빛 모래를 깔고 그 위를 천으로 덮었다. 달성공원 진입로를 확장했고 겨울철 마른 나무에는 조화를 달아 봄처럼 꾸몄다.

 중구는 이 중 북성로에서 달성공원까지 1㎞를 어가길로 꾸미고 있다. 중구는 이 길을 ‘구국의 길’로 이름짓고 ‘대구 근대골목투어’ 코스로 활용할 방침이다. 윤순영 중구청장은 “근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교육장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홍권삼 기자

http://news.joins.com/article/19292631

*1:本文中に挙げた記事は大邱日報のものですけど、NEWSISも同じ写真を(クレジット表記を入れて)使ってますねえ。→ 롯데百 대구점, ‘순종황제 어가길’ 전시물 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