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国で学ぶこと」にどのような意義を見出すか。

聖公会大学校教授である金東椿氏が「ハンギョレ」に載せた下記の記事で書いていることは、事実としてはそれほど新味のある話ではなく、いわば「周知のこと」に属します。

近代のかげ―現代韓国社会論

近代のかげ―現代韓国社会論

[세상 읽기] 대학에는 ‘대학’(大學)이 없다 / 김동춘
[한겨레]
등록 : 20111205 19:29
대학 역사 60년이 지났는데
아직 박사 따려면 ‘미국’ 가야 하고
학부는 오직 ‘간판’ 취득 기관이다


지난 며칠 동안 학술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독일에 다녀왔다. 느낀 것이 많지만 대학을 돌아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학교 분위기나 학생들이 눈에 가장 많이 들어왔다. 지하철이나 학교 카페에서 스마트폰 갖고 노는 학생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베를린대학으로 가는 전철간에는 책이나 수업교재를 줄 치며 읽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며칠 동안의 인상이지만 프랜차이즈 업체가 어지럽게 들어와 있는 캠퍼스나, 도서관에서 토익·토플·편입 공부 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젊은이들 탓하자는 것 아니다. 대학에서 밥 먹고 있는 한 사람이자 학부모인 나도 책임의 일부를 지고 있다. 한국의 학부는 취업과 출세를 위한 ‘간판’ 따는 곳이다. 그러니 입학이 중요하지, 교육은 중요하지 않다. 입학만으로 이후 취업과 출세가 거의 80%는 정해져버리니, 교수와 학생이 학문을 매개로 만날 일이 없다. ‘서열’이 낮은 대학의 교수나 학생은 이런 조건에서 취업률 압박과 좌절감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정년 보장을 받은 상위권 대학의 교수는 교육에 매진할 동기가 거의 없다. 게다가 대학 강의의 반은 학술 연구는커녕 하루하루의 생계 걱정을 하는 시간강사들에 의해 채워지고 있다.

대학의 실제 수준은 사실상 대학원을 보면 안다. 그런데 국내 대학원은 텅 비어 있다. 국내 학위로는 행세를 할 수가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학을 제외하면 외국 학생들이 한국의 특정 교수 밑에서 공부하러 오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 사실상 국민교육기관인 학부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온 학부모들이 매일매일 전쟁을 하고 심지어는 수많은 전사자(?)가 나오는 비극이 계속되지만, 정작 학문과 학자를 생산하는 대학원은 학부의 부속기관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 대학에는 한국 유학생 7만여명이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학생 수로는 중국·인도에 이어 3위이지만 인구비례로 보면 압도적 1위다. 한국 학생들이 1년 지출하는 돈은 평균 잡아도 대략 2조원이 훨씬 넘을 것이다. 이 돈이면 서울의 큰 대학 5개 이상을 운영하고도 남는다. 그 돈을 10년 정도 국내 대학(원)에 집중 지원하면 일본처럼 구태여 미국 유학 가지 않고서도 자기 땅이나 세계에서 전문가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못하고, 또 할 의지도 없다. 대학 역사 60년이 지났는데, 아직 박사를 따려면 ‘미국’ 가야 하고, 학부는 오직 ‘간판’, 특정 학벌집단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증 취득 기관으로만 남아 있다. 경쟁해서는 안 될 곳에 과도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국가의 지원과 경쟁이 필요한 곳은 그냥 버려져 있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한국에 대학이 없고 학문이 없는데, 실제로 대학은 사람을 죽이는 괴물이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학부모 부담률은 전체의 90% 정도로서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자식 학벌사회 편입시키기 위한 투자비용이다. 독일의 대학은 평준화되어 있고, 등록금이 거의 없다. 요즘 독일 대학도 미국 따라가는 경향이 있지만, 그 때문에 기존의 국가 지원과 평준화 제도를 철회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서열대로 모여 있는 한국 학생들이 평준화된 대학에 다니는 독일 학생들보다 우수하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학부를 평준화하고, 기업이나 사회에 채용 정보를 주기 위해 졸업정원제 등 대학 평가 체계를 엄격히 하되, 오히려 대학원에 집중 지원하고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여 대학(원)을 진정으로 학문하는 곳, 국제적인 수준을 갖춘 곳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08643.html

邦訳が下記にあります。

ハンギョレ・サランバン - [世相を読む]大学には‘大学’がない - 金東椿


「大学はSKY(ソウル・高麗・延世)、博士号はアメリカの大学」というのが韓国のエスタブリッシュメントのスタンダードになっている一方で、韓国内の大学院は出たところで尊重もされないし就職もない。としたら、そんなところに誰がわざわざ行くものか。簡単にまとめれば、そういうことなんでしょう。

で、これをどうしますか?

存在する意味がないなら、思い切って国内の大学院丸ごと廃止する?

あるいは、大学・大学院ごとアメリカ合衆国内に移転するとか?*1

もし、「それでは国家的な自尊心が云々」とおっしゃるのなら、国内で大学院をどうにかするしかないでしょうねえ。

ちなみに、そうした観点からすると、英語で講義する国際大学国際大学院が韓国内には既にあります。ただ、そこにも実態としてはいろいろ問題があるわけです。いちばんの問題は「欧米でやってることを韓国で同じようにやろうとすれば、欧米の大学の後塵を永遠に拝し続けることになる」ということでしょう。

だって、英語の教科書や英語の論文で公表されるような研究をスタンダードとするのであれば、英語圏の大学に行った方がいいに決まってます。「英語圏の大学に行きたかったけど、色々な事情で行けなかった人が仕方なく行く大学」、それが韓国をはじめとした非英語圏で英語で教育する大学・大学院の位置づけになるわけで、その構造の中ではどんなに頑張っても「本場の劣化コピー」にとどま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

「本場で学位を取ってきた人間が国内の学生を本場風に教育する」ということに意味がないとは言いませんが(海外での学位取得者の雇用確保とか)、「もう少し何とかならんかなあ」と個人的には思います。


けっきょく、「韓国学」をもうちょっと真面目に考えてみる必要があるんじゃないでしょうかねえ。

これを、「韓国を研究することに意味があるか否か」とイエス/ノー形式で問うのは愚かです。問うのなら、「韓国を研究することに固有の意味を見出せるテーマや問題設定にはどのようなものがあるか」といったことでしょう。

いずれにせよ、「他でもやってること・他でもできること」は他に任せておいて、そこから「いいとこ取り」してもいいわけです*2

  • 韓国を学ぶこと
  • 韓国で学ぶこと
  • 韓国語で学ぶこと

…などに固有の意味をいかに見出すか、というのが、現状からは切迫した課題になると私などは思うのですが、これはそのまま、韓国社会的にはあまり真剣に検討されていないことでもありますね。

*1:すでに韓国では、釜山の東西大学校が中国にキャンパスを開いた例もあります。アメリカでだって、やればできないことはないでしょう。

*2:「そこでやっていることにどのように参画・貢献して、どのように成果を得るか」というのは、また別個の問題になるで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