釜山峨眉洞・碑石文化マウルなど

こんなプロジェクトが釜山では進んでいましたか。確かにわかりにくい場所ですし、探訪者にとっての利便性は向上するでしょう。ただ、それが始まる前に一度訪れておいて正解でしたね。

甘川洞の文化マウル…の手前の峨媚洞にて

けっこうがっつり歩き回りましたから、写真の場所はだいたいわかります。高さがありますので眺望は悪くないにしても、アップダウンがきつくて歩くのにはかなり大変なところです。


<부산 산복도로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새 단장>


부산 산복도로 탐방로 옹벽특화 사업부산 산복도로 탐방로 옹벽특화 사업
(부산=연합뉴스) 부산시가 2억원을 들여 서구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일대 산복도로에 테마 탐방로와 옹벽특화 조성사업을 벌여 최근 완공시켰다. 사진은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옹벽마을지도 안내판, 전망쉼터, 디자인벽화. 2014.3.11. << 부산시 >>

(부산=연합뉴스) 신정훈 기자 = 부산시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 2차년도 '아미 구역' 마무리 사업으로 시행한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탐방로'(이하 탐방로) 조성공사가 완료돼 산복도로의 숨은 보석 '비석문화마을'이 한층 밝아진 모습으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고 11일 밝혔다.

비석문화마을은 구한말까지 몰락한 일부 하층계급의 조선인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부산항 개항 이후 일본인 거류민단이 들어오면서 부산 각지에 흩어져 있던 일본인 묘지를 옮겨 집단묘지촌이 형성됐고 화장장이 만들어졌다.

1920년대는 농촌 경제가 붕괴하면서 근대화를 갈망한 사람들이 이주해 왔고 해방 이후 6·25 피난민 등이 대거 이주해 오면서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판잣집을 지을 때 묘비를 담, 주춧돌 등 건축자재로 사용해 그 일대가 비석문화마을로 불렸다. 현재에도 마을 곳곳에 흔적이 남아있다.

토성 지하철역을 시작으로 2km에 걸쳐 조성된 탐방로는 토성 지하철역 앞 탐방로 안내판을 비롯한 20여 개 '안내간판'이 곳곳에 설치돼 비석문화마을뿐만 아니라 감천문화마을을 찾는 방문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부산의 대표적 산복마을인 아미동의 구석구석과 그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이웃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감천고개 입구에는 길이 15m, 높이 6m의 '비석문화마을 마을지도'가 자리 잡았다.

마을지도에는 ▲ 탐방로 코스 ▲ 최민식 갤러리가 있는 아미 문화학습관 ▲ 각종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기찻집 예술체험장 등 인근 가볼 만한 명소 등이 표시돼 있다.

마을지도 옆은 아미동 비석마을의 캐릭터인 '석이' 로고와 함께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의 유래와 역사적 의미 등을 기술한 안내문구가 있다.

또 마을지도 안내판 맞은편과 아랫부분에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비석마을을 탈피하고 산복도로의 희망과 행복한 마을의 이미지를 담은 26m의 '디자인 벽화'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벽화를 따라 30m 정도 내려오면 비석문화마을이 나타난다.

비석문화마을 어린이놀이터 밑 버스승강장 옆에는 비석문화마을의 중심지역을 표시하는 안내판이 5m 높이로 세워졌다. 비석문화마을 안으로 들어오면 과거 피난민이 비석을 건축자재로 사용한 대표적인 장소 3곳을 선정,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마을 중간지점인 노상 주거지 주차장 옆에는 방문객들의 눈을 사로잡을 멋진 경관을 볼 수 있는 '전망데크'가 설치됐다.

여기서 바라보는 비석마을은 천혜의 경관자원을 보유한 곳으로 비록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했지만 많은 장점이 있는 마을로 주변 경관은 막힘없이 뚫려 있다. 특히 남·북항 일대와 용두산, 자갈치 등 원 도심 전체와 검푸른 바다의 조망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산복도로 탐방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부산시의 한 관계자는 "탐방로 조성공사 준공으로 인근 감천문화마을과 연계한 관광 루트가 개발돼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고 소외된 비석문화마을이 비록 아픈 역사일지라도 역사의 숨결을 느끼는 마을, 사람들이 찾는 마을로 변화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2014/03/11 09:28 송고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3/11/0200000000AKR20140311042800051.HTML

あああ…やっぱり危惧していた通りの「改修」が…。感覚の違いなんでしょうが、どぉしてこぉ、無意味でしょうもない手の加え方をするかなぁ。

※ 改修前の姿は、冒頭のリンク先をたどって見てみてください。

すぐ隣の甘川洞文化マウルと連動させての観光開発を考えたら、こうなるってことなんでしょうかねえ。興醒めもいいところだと思うのですが。

일제·피란역사 품은 비석마을 문화를 입다

테마탐방로·옹벽특화사업 등 방문객 관광편의 확보 새단장
국제신문 민건태 기자
2014-03-11 20:37:13 / 본지 12면


11일 골목길 테마 탐방로 단장 등을 마무리한 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에서 시민이 건축 자재로 쓰인 일제시대 비석과 벽화를 사진에 담고 있다. 전민철 프리랜서

- 원도심 경관 등 관광자원 풍부

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은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을 잇는 또 하나의 문화관광 명소로 자리 잡을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문객의 발길을 붙들 시설이 '하나도' 없던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이 봄을 맞아 새롭게 단장했다.

부산시는 시비 2억 원을 들여 지난해 12월 초부터 비석문화마을에서 시작한 '산복도로 골목길 테마 탐방로 및 옹벽 특화 조성사업'을 매듭지었다고 11일 밝혔다. 감천문화마을과 불과 2차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곳이지만, 이곳에서 보는 경관은 감천문화마을과는 확실히 다른 맛이 있다. 부산항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중구 원도심을 향한 조망도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날 둘러본 비석문화마을 곳곳에는 길바닥을 새로 단장해 관광객이 편하게 산책할 수 있게 했고, 여러 곳에 안내판을 설치했다. 또 마을 입구 아미성당 맞은편에 있는 136㎡ 넓이 옹벽을 설치미술품 등으로 새롭게 디자인해 방문객의 눈길을 붙잡았다. 이번 사업은 시의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중 하나로, 감천문화마을과 서구 비석문화마을을 연계하는 것이 초점이다.

비석문화마을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모여 살면서 이들이 집단으로 묘지를 조성하고 비석을 세워 오래전부터 '비석마을'로 통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부산의 서민이 정착했다. 서민의 애환과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동네인 것이다.

시는 이번 사업을 통해 도시철도 1호선 토성역에서 비석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로 이어지는 2㎞ 구간 곳곳에 17개의 골목길 산책 구간 안내판을 세웠다. 골목길 산책 구간에는 영도·남항·부산항대교가 한눈에 보여 '산복도로 9경'에 포함된 한마음행복센터와 최민식갤러리, 기찻집 예술체험장도 들어있다.

또 비석문화마을 한가운데에는 안내판을 세워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주택 재료로 녹아든 일본인 묘지의 비석을 어디 가면 볼 수 있는지 표시했다.

부산 서구 김윤상 창조도시전략단장은 "비석문화마을 관광·문화 자원화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역사적 상징성과 천마산에서 보는 멋진 풍경은 비석문화마을이 가진 큰 잠재력이다. 이 같은 자산을 잘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140312.22012203631

個人的にはどうも、「メメントモリ」につながるようには思えないんですよ。ただまあ、私が口出しするようなことではないかもしれません。

[2014 부산, 우리가 잊고 지내는 것들] 1. 삶과 죽음의 공존

'죽음'을 밀어낸 도시, 삶의 가치도 망각한 건 아닐까?

정달식 기자
2014-03-10 [09:38:23] | 수정시간: 2014-03-10 [15:14:17] | 20면


▲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 '문현동 안동네'. 250채 300여 세대가 사는 이곳에는 지금도 수십여 기의 무덤이 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다. 김경현 기자

과거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은 산업화·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이는 부산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잊고 지내거나 잃어버렸다. 2014년 부산. 지금 우리는 되묻는다. 잊고 지낸 그 소중한 자산을 하나하나 되찾아 찌든 우리의 삶을 살찌우자고. 이에 본보는 부산·경남의 유적이나 마을 등에 깃든 이야기를 통해 그 소중한 자산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해운대 센텀시티와 마린시티로 대표되는 고층빌딩들. 부산은 분명 마천루의 숲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묘지마을, 벽화마을, 돌산마을…. 부산의 대표적 산동네요, 달동네인 '문현동 안동네'를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이다.

이 마을의 역사는 다소 흐릿하지만, 이곳은 일제강점기부터 공동묘지였으나 6·25전쟁 직후 피란민들이 묘지 사이 빈터에 집을 지으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됐다. 마을 밖 사람들은 이곳을 묘지마을이라 불렀다. 그게 마을 이름의 시작이었다.

2008년, 이 마을은 크게 변신한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실시로 마을 담벼락이 화사한 파스텔 톤의 그림으로 채워졌다. 그걸 계기로 벽화마을이라 불린다. 이듬해는 국토해양부의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범 사업에 당선돼 마을 산등성이의 '돌산공원'이 멋지게 꾸며진다. 이때부터 돌산마을이 됐다.

80여 기 무덤 있는 문현 안동네
묘비 이용 건축 아미동 비석마을
산업화로 '죽음의 공간' 소멸

그러나 마을 이름의 이 같은 변화에도 변함이 없는 게 있다. 바로 삶과 죽음의 공존이다. 문현동 안동네는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곳이다.

그랬다. 지난 3일 오후 문현동 안동네. 250채 300여 세대가 사는 이곳에는 지금도 80여 기의 무덤이 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봉분의 3분의 1을 길로 내어 준 무덤도, 봉분 주변을 적벽돌로 빙 둘러 아름답게 장식(?)한 무덤도 있었다. 어느 무덤은 수풀이 무성했지만, 또 다른 무덤은 깨끗하게 벌초를 했다. 마치 도래솔처럼 조그마한 나무가 빙 둘러 서 있는 모습도 보였다. 무덤 앞에는 작은 편백 두 그루가 무덤의 입구를 알리며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무덤은 골목, 집 뜰과 현관, 장독대, 마을 산등성이에도 있었다.

"여기로 이사 올 때만 해도 무덤은 지금보다 훨씬 많았죠. 무덤 중 상당수는 자손들이 찾지 않는 것도 있지만, 개중에는 자손들이 찾아와 매년 벌초, 성묘하고 가는 곳도 있지요." 이 마을에서 산 지 26년쯤 된다는 황창석(61) 씨의 말이다.

마을에 흩어져 있는 무덤은 그나마 묘비라도 서 있으면 다행이다. 대다수 무덤은 이조차 없다. 봉분은 흔적도 없이 묘비만 덩그렇게 집 벽면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도 보였다.


묘지의 비석이 계단이나 담장을 만드는 건축 자재로 사용된 흔적이 남아 있는 서구 아미동 '비석 마을'. 정달식 기자

삶과 죽음의 공존은 '아미동 비석마을'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일본인들의 공동묘지를 헐고 비석을 건축자재 삼아 형성한 마을이 비석마을이다. 하지만 현재 이곳에 무덤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비석이 담벼락이나 계단으로 사용돼 그 흔적을 얘기한다.

오래지 않은 옛날, 문현동 안동네나 아미동 비석마을처럼 죽음은 우리의 삶과 늘 가까이 있었다. 동네 주변, 그리 멀지 않은 공간에 늘 무덤이 있었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주영택 원장은 "40~50년 전만 해도 차이나타운이나 센텀시티 근처에 묘지가 많았다. 하지만 산업화 물결 속에 개발 바람이 불면서 어느 순간 죽음의 공간은 하나둘 우리 곁에서 멀어져 갔다"고 말했다.

■일상 속 죽음이 갖는 의미

죽음이 갖는 의미는 중요하다.

문화 평론가 이지훈(필로아트랩 대표) 씨는 "죽음의 성찰은 습관적 삶을 깨뜨리는, 가장 강력한 계기이다. 현재의 삶을 돌아보고, 삶의 유한함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살아가는 현재의 삶에 대해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죽음이 갖는 소중함을 간과했다. 부산대 영문학과 김용규 교수는 "어느 순간 죽음의 존재를 우리의 일상에서 쫓아내 버리고, 멀리하고, 도외시했다"고 지적했다. 산업화 물결이 주범이었다.

죽음을 깎아내리는 문명은 병든다. 죽음을 외면하려는 문명은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 감각을 자극하는 문화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고대 로마문명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고대 로마문명은 죽음 대신 '용감함'의 미덕을 내세웠다. 그것은 거대 제국을 향한 야망과 정복의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용감함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외면 또는 망각한 것이었다.

죽음 깎아내리는 문명은 병들어
일본·홍콩은 도심 속에 공동묘지
물신주의 정화 장소로 활용해야

죽음에 대한 공포는 오직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김 교수는 "그동안 죽음을 애써 외면하거나 망각해 왔다면, 이제 우리는 이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까이 일본만 하더라도 시내에 묘지가 있다. 홍콩에만 가도 도심 속, 호텔 옆에 공동묘지가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한다. 중남미 도시들은 대부분 도심에 공동묘지를 가지고 있다.

멕시코의 경우 동네마다 공동묘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곳은 집으로 가는 길에도 있고, 공원에도 있고, 집의 창 밑에도 있다. 산 사람 곁에 죽은 사람의 집이 있지만, 죽은 자의 집이 산 자의 집을 배척하지 않는다. 우리와 다른 죽음에 대한 인식이다.

■죽음은 욕망을 경계(警戒)하는 죽비

건축가 승효상은 "일상생활 공간에 묘지가 없어서 도시가 경건하지 못하다. 죽은 자와 가까이 있다는 것은 산 자에게 삶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묘지가 도시 안에 함께 있어야 삶이 경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도처에 물신주의의 망령이 꿈틀대는 도심 속에, 그래도 이를 끊임없이 정화하는 장소가 묘지라는 것이다.

죽음이 없는 삶은 세상에 없으며, 삶이 없는 죽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을 무시한다는 것은 삶을 무시하는 것. 삶의 참된 가치를 무시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셸리 케이건은 "삶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목적"이며, "죽음의 본질을 이해하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그동안 추구했던 경제(성장)지상주의, 혹은 지나친 집착과 경쟁은 어쩌면 죽음을 외면하는 문화가 낳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집값의 하락만을 걱정하는 천박한 물신주의는 죽음의 형식을 우리 주변에서 내쫓아 우리의 도시에서 경건은 눈을 씻고 보아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산업화 물결로 잃어버리고 살았던 죽음의 가치와 의미를 일상으로 가져와야 한다. 늦지 않았다.

온갖 욕망과 집착의 틀에 갇힌 현대 도시의 사람들. 그 곁에 묘지(죽음)가 있다면 그 욕망을 경계(警戒)하는 죽비가 될 수 있을 터이다.

정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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