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央日報」の盗難仏像論議

この件、取りあげてきませんでしたが、ようやくクリップするに値する論説を見たような気がします。

日韓対訳でどうぞ。

[노재현 칼럼] 만약 국립고궁박물관 지붕이 뚫렸다면
[중앙일보]입력 2013.03.28 00:14 / 수정 2013.03.28 00:14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지난주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이색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지하 1층 왕실의 회화실에 마련된 ‘일제 강점기 궁중의 일본 회화’전이다(5월 26일까지). 전시된 일본 작품은 딱 두 점. 교토파 화단의 대표적 인물로 동물화를 주로 그린 시미즈 도운(芿水東雲)의 매·곰 그림 병풍 세트와 작자 미상의 일본 가면극(노) 자수 작품이다. 눈 쌓인 겨울, 날개 펴고 소나무에 앉은 매와 새끼곰을 입에 문 어미곰을 묘사한 시미즈의 작품은 1910년께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수 작품도 20세기 초 궁중에 유입됐다고 한다.

 고궁박물관 관계자는 “두 점 외에도 일본 화가들의 작품 수십 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로 한·일 강제병합을 전후해 내한, 황실에서 활동한 이들의 것이라 한다. 이들은 조선총독부의 의뢰를 받아 순종의 어진, 궁중 장식화 등을 제작했다. 일제 침략은 정치·경제뿐 아니라 문화부문에서도 속속 자행됐던 것이다. 전시장을 둘러보노라면 제국의 낙일(落日)에 대한 안쓰러움과 착잡함을 피할 도리가 없다. ‘불행했던 우리 근현대사를 돌아보는 계기’라는 안내문 구절이 가슴에 와닿는다.

 한편으로는 엉뚱한 상상이 들었다. 만약 일본인 절도단이 한밤중에 서울의 국립고궁박물관 지붕을 뚫고 들어가 시미즈의 그림과 자수 작품을 훔쳐 자기 나라로 도망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리타 공항이나 항만의 세관은 무사히 통과했지만 뒤늦게 일본 경시청에 발각돼 체포되고 작품을 압수당한다면 말이다. 절도범이야 일본 국내법에 따라 처벌받겠지만, 일본 내 여론이 “원래 우리 화가가 제작한 문화재이니 돌려줄 필요 없다”고 아우성친다면? 당연히 한국은 반발 여론으로 들끓을 것이다. “과거사를 반성하기는커녕 침략 과정에서 제작된 미술품마저 자기들 것이라고 우긴다”고 할 것이다.

 사실 고궁박물관에 전시 중인 일본인 작품은 입수 경위가 명확하지 않다. “스즈키 시미쓰로에게 금 200원을 하사하고 후지타 쓰구지에게 은제 주식 반기언 1개를 하사하였다. 어진(御眞·임금을 그린 그림)을 그린 노고를 치하한 것이다”(순종실록부록 4권, 1913년)처럼 대가를 치르고 받았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얼마에 들여왔는지는 모른다. 만일 일본이 “당신들은 입수 경위를 잘 모르지만 작가가 일본인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니 돌려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나라를 통째로 삼킨 주제에 그림 몇 점 갖고 그러느냐”고 거칠게 받아쳐야 할까.

 지난해 10월 한국인 절도단이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시의 가이진(海神) 신사 지붕을 뜯고 들어가 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입상을 훔쳤다. 이들은 인근 관음사에서 관음보살좌상, 다른 신사에서 고려대장경도 몰래 갖고 나왔다. 용의자들은 “대장경은 곧바로 풀숲에 버렸다”지만 아직 행방이 묘연하다. 관음보살좌상·금동여래입상은 일단 부산 세관은 무사히 통과했다. 그러나 경찰의 추적으로 두 점이 무사히 회수되고 절도단도 9명 중 8명이 붙잡혔다. 문제는 두 문화재의 앞날이다. 복장된 발원문을 통해 고려 말기인 1330년 충남 서산 부석사에서 조성된 것으로 밝혀진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초점이다. 부석사·신도 측은 “원래 우리 것인데 약탈당했을 테니 반환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반환 소송에 앞서 일본에 돌려주면 안 된다는 반환금지 가처분을 신청해 법원의 결정도 받아냈다.

 두 불상은 지금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에 모셔져 있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사태는 장기화됐다. 그러나 정확히 683년 전의 유물이 언제 어떻게 일본에 건너갔는지 앞으로 정확히 밝혀낼 수 있을까. 매우 어려울 것이다. 특히 금동여래입상은 갖고 있을 명분이 사실상 없다. “재판이 걸려 있기에 증거물로서 일단 소장하는 것”(허종행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이라는데, 당국도 여론을 살피는 기색이 역력하다. 일본 궁내청에 있던 조선왕실의궤 반환에 앞장섰던 혜문 스님은 “금동여래입상은 지체 없이 반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님은 그러면서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부처님은 원래 무소유의 상징인데, 양측이 표상(表象)에 매몰돼 본질을 놓치고 있는 듯하다.”

 만일 절도가 없었다면 지금 같은 반환운동이 일어났을까. 이 지점에서는 솔직히 낯뜨겁다는 생각마저 든다. 문화재 반환과 별개로 도둑질은 도둑질이고 장물은 장물이다. 우리는 일본이 걸려들면 일반론에서 갑자기 특수론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특수론이 너무 판치면 정상적인 관계나 상식은 외면당하기 쉽다. 정작 부처님은 이번 논란을 보고 진작에 돌아앉았을지 모른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650/11062650.html

【コラム】もし日本人窃盗団がソウル国立故宮博物館の屋根から侵入すれば(1)
2013年03月28日17時56分
[ⓒ 中央日報/中央日報日本語版]

先週から国立故宮博物館で異色の展示会が開かれている。 地下1階の王室の会話室に設置された「日帝強占期 宮中の日本絵画」展だ(5月26日まで)。 展示された日本作品は2点。 京都派画壇の代表的人物で動物画を主に描いた清水東雲の鷹・熊絵屏風セットと作者未詳の能の刺繍作品だ。 雪が積もった冬、翼を広げて松の木に止まった鷹と子熊を口にくわえた母熊を描写した清水の作品は、1910年ごろ描かれたものと推定される。 刺繍作品も20世紀初めに宮中に流入したという。

故宮博物館の関係者は「2点のほかにも日本画家の作品数十点を保有している」と述べた。 主に韓日強制併合の前後に来韓、皇室で活動した人たちのものという。 この人たちは朝鮮総督府の依頼を受け、純宗の肖像画、宮中装飾画などを制作した。 日帝の侵略は政治・経済だけでなく、文化部門でも進められていたのだ。 展示場を見回ると、帝国の落日に対する苦い思いが深まるしかない。 「不幸だった私たち近現代史を振り返る契機」という案内文の一節が胸に響く。

その一方で、こういう想像がわいた。 もし日本人窃盗団が真夜中にソウル国立故宮博物館の屋根に穴を開けて侵入し、清水の絵と刺繍作品を盗んだ後、自国に逃げればどうなるだろうか。 成田空港や港湾の税関は無事に通過したが、後に日本警視庁に発覚して逮捕され、作品を押収されたとしよう。 窃盗犯は日本国内法に基づき処罰を受けるだろうが、日本国内の世論が「もともと私たちの画家が制作した文化財だから返す必要はない」と主張すれば? 当然、韓国は反発世論で沸き立つはずだ。 「過去の歴史を反省するどころか、侵略の過程で制作した美術品まで自分たちのものと言い張る」と。

実際、故宮博物館に展示中の日本人の作品は入手の経緯がはっきりしない。 「鈴木し三觔に金200圓を下賜し、藤田嗣治に…御真(王を描いた絵)を描いた礼に…」(純宗実録付録4権、1913年)とあるように、代価を支払って受けたものと推測するだけだ。 しかしいつ、どのように、いくらで入ってきたのかは分からない。 もし日本が「あなたたちは入手の経緯をよく知らないが、作家が日本人ということは間違いない。 だから返してくれ」と言えば、どう対応するだろうか。 「国を丸ごとのみ込んだのに数点の絵でそんなことを言うのか」と激しく反発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

http://japanese.joins.com/article/877/169877.html

【コラム】もし日本人窃盗団がソウル国立故宮博物館の屋根から侵入すれば(2)
2013年03月28日17時58分
[ⓒ 中央日報/中央日報日本語版]

昨年10月、韓国人窃盗団が日本長崎県対馬市の海神神社の屋根を壊して侵入し、新羅時代のものと推定される銅造如来立像を盗んだ。 窃盗団は近くの観音寺から観世音菩薩坐像、他の神社から高麗大蔵経も盗んできた。 容疑者は「大蔵経はすぐに草むらに捨てた」と述べたが、まだ行方不明だ。 観世音菩薩坐像銅造如来立像は釜山税関を通過した。 しかし警察の追跡で2点が無事に回収され、窃盗団も9人のうち8人が捕まった。 問題は両文化財の将来だ。 中に入っていた発願文を通じて高麗末期の1330年に忠南瑞山の浮石寺で作られたことが明らかになった観世音菩薩坐像が焦点だ。 浮石寺・信徒側は「もともと私たちのもので、略奪されたはずだから返還してはならない」という立場だ。 返還訴訟に先立ち日本に返してはいけないという返還禁止仮処分を申請し、裁判所の決定も受けた。

両仏像は今、大田国立文化財研究所の収蔵庫にある。 裁判所の仮処分決定で事態は長期化した。 しかし正確に683年前の遺物がいつどのように日本に渡ったのか、今後、正確に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のか。 非常に難しいはずだ。 特に銅造如来立像は保有している名分が事実上ない。 「裁判がかかっているので証拠物としてひとまず所蔵する」(ホ・ジョンヘン文化財庁事犯取り締まり班長)というが、当局も世論を気にする表情が歴然だ。 日本宮内庁にあった朝鮮王室儀軌の返還に率先したヘムン僧侶は「銅造如来立像は遅滞なく返還しなければいけない」と話す。 僧侶はそして意味深い一言を投じた。 「仏様はもともと無所有の象徴だが、双方が表象に埋没し、本質を見過ごしているようだ」。

もし窃盗がなかったとすれば、今のような返還運動が起きていただろうか。 正直、恥ずかしいという気もする。 文化財の返還とは別に、窃盗は窃盗であり、贓物は贓物だ。 私たちは日本が関係すれば一般論から突然、特殊論に変わる傾向がある。 特殊論があまりにも幅を利かせれば、正常な関係や常識は無視されやすい。 仏様は今回の事件を見てとっくに背を向けているかもしれない。

盧在賢(ノ・ジェヒョン)論説委員・文化専門記者

http://japanese.joins.com/article/878/1698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