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税務署をかたる不審メール」が来た。

まあ、一読して怪しいことは分かると思うのですが、いつでも冷静な判断ができるとは限らないので、慌てないってことは大事だと思います。

似たメールに対する情報は、ネット上にもいろいろ上がっていますね。

www.e-tax.nta.go.jp
www.mn-tax.jp
news.yahoo.co.jp
ameblo.jp

全羅南道霊岩郡郡西面鳩林里の虐殺事件と慰霊の話

全羅南道霊岩郡郡西面鳩林里というのは、木浦からバスで東に1時間ほど行った場所にある村です。

ここは、朝鮮戦争当時、左右両勢力による虐殺事件が重なり、被害と加害が入り乱れた過去を持っています。その経緯についてまとめられた記事が引っかかってきたので、ここにクリップしておくことにします。

''좌우익 학살'' 과거를 화해와 용서로 보듬는 구림마을
CBS사회부 윤지나 기자 2009-06-25 06:00

정권 바뀔 때마다 희생자와 가해자 구분 모호…''구림위령비'' 추진

"안개가 짙게 낀 새벽이었습니다. 5시쯤 됐을까... 총 소리에 놀라 뛰어 나오는 마을 사람들에게 경찰의 무차별 사격이 가해졌지요. 무슨 일인가 담 밖을 내다보던 사람, 도망가던 사람, 남녀노소 가리지 않은 살육이었습니다"

59년 전 일이지만 최재영 할아버지(80)가 기억하는 1950년의 그 날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전남 영암 구림마을에서 당시 20살이던 최 할아버지는 경찰들이 마을을 포위하고 주민 90여 명을 학살한 ''영암구림 첫 포위 사건'' 당사자다.

''첫 포위 사건'' 말고도 한국전쟁 당시 이 지역은 점령 세력이 바뀔 때마다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됐던 지역이다.

인민군이 영암에 입성하기 직전 보도연맹에 대한 학살이 있었고, 인민군이 입성한 직후에는 경찰과 우익세력에 대한 숙청이 자행됐다. 다시 국군이 수복했을 때는 공산세력에 동조한 민간인들에 대한 군경의 대량 학살이 있었고 전쟁이 게릴라전으로 장기화된 이후에는 빨치산과 국군이 번갈아 영암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농사일밖에는 모르는 수많은 민초들이 희생됐다.

최운호 할아버지(72)는 한국전쟁 발발후 미국 주도의 UN 반격 당시, 보도연맹 희생자 유족들이 경찰 가족 등 20여 명에 대해 보복살인을 저지르던 장면을 떠올렸다.

"시뻘건 불길 안에 갇힌 사람들이 살려 달라며 뛰어다녔어요. 간신히 불길을 헤치고 나온 사람들도 죽임을 당했지요. 당시 초등학생이던 내 친구도 거기서 죽었고요"

이처럼 점령세력이 바뀔 때마다 희생자와 가해자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수십년 동안 함께하며 벼를 베던 담 너머 이웃들은 내 부모와 형제를 죽인 철천지원수가 돼버렸다.

다들 바람 부는 대로 쓸리는 민초들이었지만, 야만의 시간을 거치며 보복의 악순환은 51년까지 계속됐다.

76년 순절비가 세워졌지만 빨치산과 좌익에 의해 희생된 이들 만을 위한 것이었다.

오랜 군부독재 시절 동안 경찰과 우익에 의해 희생된 이들은 위령비는커녕 왜 죽었는지조차 입도 뻥끗 할 수 없었다.

현삼식(62)씨는 "진실을 말했다가는 공산주의자로 몰리던 시절이 있었다"며 "과거사 규명 작업을 위해 조사관이 증언을 부탁해도 손가락질 받으실 게 두려워 아직까지 입을 여시지 않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 이후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가해자가 좌익이든 군경이든 무고하게 숨진 민초들의 원혼을 함께 위로하고 화해하자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구림마을 주민들은 지난 2006년부터 좌우익 구분 없이 희생자 모두를 기리는 ''구림위령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길이 7m, 높이 4m에 이르는 이 비에는 순절비에 기록된 희생자들을 포함해 좌우익 희생자 270여 명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질 예정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최운호 할아버지는 "이 시점에서는 가해자 처벌보다 진실규명과 화해가 필요하다"며 "전쟁통에 나를 죽이려했던 사람이 살아있지만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10년 마무리짓기로 한 이 사업은 그러나 정부당국의 무관심 속에 진척을 내지 못하고 있다.

구림위령비건립추진위 정석재(61) 사무국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 과거사위 예산도 삭감됐다고 하고 한나라당은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통폐합하겠다고 나서니 우리 사업도 함께 위축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 국장은 특히 정부당국의 이 같은 무관심이 50여 년 전과 다를 바 없는 한국사회의 이념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씨는 "이 어려운 시기에 아직도 두 패로 갈려 이념논쟁을 하는 걸 보면, 한 치도 변하지 않은 현실에 답답하고 안타깝다"며 ''''쓸데 없는 이념갈등 때문에 정작 중요한 일들은 잊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또 "서민들은 이처럼 화해하고 용서하는데 정치권은 시기마다 지역감정을 되살리고 이념논쟁을 부추겨 용서와 화해를 가로막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원통하고 허망한 죽음 뒤로 간신히 화해의 움직임이 시작됐지만 이런 노력은 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전남 작은 마을의 이야기로만 남아 있다.

https://www.nocutnews.co.kr/news/601657

…韓国戦争当時、この地域は、占領勢力が変わるたびに数多くの民間人が犠牲になった地域だ。
人民軍が霊岩に入城する直前、保導連盟に対する虐殺があり、人民軍が入城した直後には警察と右翼勢力に対する粛清が行なわれた。再び国軍が修復した時は、共産勢力に同調した民間人に対する軍警の大量虐殺があり、戦争がゲリラ戦として長期化した後には、パルチザンと国軍が交互に霊岩を占領する過程で、農業しか知らない数多くの民が犠牲になった。

1976年に建てられたという「殉節碑」は左翼・パルチザンに殺された人々のためのものであり、軍警・右翼に殺された人々はそのことを口にするのもはばかられる状況が長らく続いたと言います。それが変わったのは金大中政権以降のことであり、現在(2009年当時)は左右を問わず犠牲者を慰める慰霊碑の建設計画が推進されているが、保守派の李明博政権下でなかなか進捗がはかばかしくない、といった状況を伝えています。

なお、現在は、「殉節碑」と並んで「和解と赦しの慰霊塔」が立つに至っているとのことです。

www.pressian.com

지난 2006년 구림은 분노의 적대감을 걷어냈다. <호남명촌 구림> 발간은 '작은 화해'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해 말 좌우익 만행으로 찢긴 상처를 보듬어 안자는 의미로 합동 위령제를 모셨다. 가해자를 지목하지 않은 채 오로지 희생자만을 위한 위령제가 올려 졌고, 산 자와 죽은 자는 손을 맞잡았다. 왕인박사 유적지 맞은편(구림공업고등학교 언덕 뒤) '지와목 사건 순절비'와 '용서와 화해의 위령탑'은 그렇게 한자리에 세워졌다.

「韓国戦争民間人犠牲者追慕公園」の話

以前、そんな話をしたことがあるのですが。

blue-black-osaka.hatenablog.com

「それが大田にできるかも」という話なら、山内のコルリョンゴルという候補地も含めて前々から聞いていました。

blue-black-osaka.hatenablo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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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yna.co.kr

대전 산내 '골령골'에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추모공원
송고시간 2016-09-06 16:14
국내 대표적 민간인 희생지역…추모·교육관 등 2020년 준공

(대전=연합뉴스) 정찬욱 기자 =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추모공원'이 대전에 조성된다.

6일 대전시에 따르면 행정자치부의 (가칭)전국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추모공원 조성 공모에 대전 산내지구 '골령골'(동구 낭월동 일원)이 사업대상지로 최종 선정됐다.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추모공원은 전쟁 당시 억울하게 죽어간 민간인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전국 각지의 유족들이 함께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다. 따라서 아픈 과거의 기억을 치유하고 교육하는 장소로 조성될 예정이다.

산내 골령골은 1950년 6월에서 1951년 1월 사이 보도연맹, 여수·순천사건, 제주 4·3항쟁 관련 민간인 수천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표적인 민간인 희생 지역이다.

이곳에 전국을 대표하는 추모공원이 조성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추모공원은 남대전IC 인근의 동구 낭월동 일원에 세워지며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추모관, 유해를 모시는 봉안관,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해 알리는 교육·전시관 등이 들어선다. 친환경적인 생태평화공원으로 조성된다.

대전시는 중앙부처와 사업수행 청인 동구의 사업추진 업무협약 체결 후 설계용역과 용지매입 등 세부사업을 연차적으로 추진, 2020년까지 총 사업비 300억∼500억원을 투입해 준공할 예정이다.


추모공원 현황도.

권선택 대전시장은 "진심 어린 관심과 협력으로 추모공원을 유치할 수 있도록 힘써주신 유족회와 주민께 감사드린다"며 "추모공원을 희생자를 애도하고 많은 분이 찾을 수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대전시는 유성구 갑동 대전 현충원 일대에 '(가칭)나라 사랑길'도 조성, 첨단 기술을 가미한 다양한 시설물 등을 설치해 호국보훈과 나라 사랑 정신을 계승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2016/09/06 16:14 송고

https://www.yna.co.kr/view/AKR20160906142700063

ただ、ハンギョレのこちらの記事を読む限り、候補地はコルリョンゴルでいいとして、どうやらまだ着工にも至っていないようです。

산내 골령골 집단학살 유해, 추모공원 조성 전 마지막 발굴 들어가
등록 :2022-04-06 15:17
수정 :2022-04-07 02:30
최예린 기자

4월 말께 시작해 올해 말까지 진행


지난해 9월 대전 산내 학살 희생자 유해발굴단 연구원들이 골령골 현장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이 집단학살된 대전 산내 골령골의 유해발굴 작업이 올해도 진행된다.

대전 동구는 6일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사업을 이달 말부터 올해 말까지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근 유해발굴을 위한 행정절차를 마무리하고, 발굴단·유족회 등과 함께 개토제(땅 파기 전 토지신에게 지내는 제사) 등 구체적인 일정을 조율 중이다. 본격적인 발굴은 개토제 뒤 이달 말께부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발굴은 지난해에 이어 선사문화연구원이 하고, 단장은 박선주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가 맡는다. 발굴 범위는 산내 골령골(동구 낭월동 13번지 일대) 1820㎡다.

산내 골령골은 한국전쟁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28일∼7월17일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와 대전·충남 지역에서 좌익으로 몰린 민간인들이 집단 학살돼 묻힌 곳이다. 행정안전부와 대전 동구는 2020년부터 3년째 골령골에서 학살 희생자 유해발굴 사업을 벌이고 있다.

2020년에는 유해 234구가 발굴됐고, 지난해 발굴에서는 유해 962구가 수습됐다.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와 2015년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희생 발굴 공동조사단’이 수습한 것까지 더하면 지금까지 희생자 유해 1250구가 발굴됐다.

올해 유해발굴은 골령골에 조성될 추모공원 ‘진실과 화해의 숲’(가칭) 착공을 앞두고 진행되는 마지막 조사다. 행정안전부와 대전 동구는 낭월동 일대(9만8601㎡)에 401억7500만원을 투입해 한국전쟁 전후 희생된 모든 민간인을 추모하는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올해 말까지 기본·실시설계를 끝내고 2024년 완공할 예정이다.

황인호 동구청장은 “유해발굴에 이어 앞으로 조성될 추모공원이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를 애도하고 유족의 상처를 달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내실 있게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https://www.hani.co.kr/arti/area/chungcheong/1037781.html

道理で、地図に何も反映されてないはずです。

当初は「2020年までに竣工予定」と言ってましたから、まあ2024年に完工できれば上出来でしょう。これが完成した暁には、各地の民間人虐殺事件の慰霊事業にも影響が及ぶものと思われます。

今年の遺骸発掘は、コルリョンゴルに造成される追慕公園「真実と和解の森」(仮称)着工を控えて進行される最後の調査である。行政安全部と大田東区は朗月洞一帯(9万8601㎡)に401億7500万ウォンを投入し、韓国戦争前後に犠牲となったすべての民間人を追悼する公園を造成する計画だ。今年末まで基本・実施設計を終え、2024年に完工する予定である。

忠南大学校に国立大学初の慰安婦少女像設置

なるほど。2017年に始まった話が、とうとう強行設置という形で実現したと。コロナ禍を挟んでいるとはいえ、ずいぶん長いことかかりましたねえ。5年という年月、学生が丸ごと代替わりするだけの期間ですよ。

blue-black-osaka.hatenablog.com

www.youtube.com

韓国国立大に初の少女像 忠南大の推進委が設置=大学側と協議経ず
2022.08.17 08:56

【大田聯合ニュース】韓国の忠南大(大田市)構内に光復節(日本による植民地支配からの解放記念日)の15日夜、旧日本軍の慰安婦被害者を象徴する「平和の少女像」が設置された。韓国の国立大構内での少女像設置は初めて。忠南大の少女像推進委員会は16日に記者会見を開き、大学側との協議を経ずに設置した経緯を説明した。


少女像を囲み、記者会見を開く推進委員会=(聯合ニュース

 推進委関係者は、昨年校内で少女像を巡る協議体がつくられ会議が1回開かれたものの必要な議論が行われず、あいまいな態度を取る大学本部との協議が進まなかったことから設置を強行するしかなかったと説明した。この関係者は「慰安婦被害者をはじめとする戦争被害者を慰め、たたえるために構内に像を設置した」と強調し、大学側に「祖国のつらい歴史を癒すことに積極的に参加してほしい」と求めた。  

 推進委は2017年10月に結成された。当時、大学の総学生会が在学生1168人を対象にアンケートを実施したところ、95.6%が像の設置に賛成した。これに対し大学側は「校内のさまざまなメンバーの意見を聞いてみなければならない」との立場を取り続けてきた。

 推進委の記者会見後、大学は校内協議体による2回目の会議を開いた。会議を終えて大学側は「一方的な像の設置に対し手続き上の問題を提起する計画だ」と明らかにした。

 忠南大の民主同門会は設置を支持する声明を出し、「違法に造形物を破損するなどすれば全ての責任を学校に問う」とした。

 この少女像は、各地に設置されている像を制作した韓国の彫刻家夫妻のキム・ウンソン氏とキム・ソギョン氏が手掛けた。

https://jp.yna.co.kr/view/AJP20220817000400882

충남대에 평화의 소녀상 세워졌다…국립대로는 처음(종합)
송고시간2022-08-16 19:22
김준범 기자

추진위 결성 5년만…학교 측과 협의 없이 중장비 동원해 설치
충남대 측 "절차적 문제 제기할 것"


충남대에 평화의 소녀상 설치 [촬영 김준범]

(대전=연합뉴스) 김준범 기자 = 전국 국립대 가운데 처음으로 충남대학교 내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충남대 소녀상 추진위원회는 16일 오전 교내 서문 삼각지 잔디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77주년 광복절인 전날 오후 9시께 중장비 등을 동원해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2017년 10월 추진위가 결성된 지 5년 만이다.

추진위 관계자는 "지난해 교내 협의체를 만들어 한 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이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대학본부와 더는 공식적인 협의가 진행되지 않아 소녀상 설치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한 전쟁 피해자를 위로하고 기리기 위해 교내에 평화상을 설치했다"며 "대학이 조국의 아픈 역사를 돌보고 위로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충남대 민주동문회도 지지 선언문을 내고 "불법적으로 조형물을 파손하거나 훼손하면 모든 책임을 학교에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월 가로 2m, 세로 1.6m, 높이 1.45m 크기로 제작된 소녀상은 김운경·김서경 부부 작가가 자신들의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앞서 소녀상 추진위가 결성될 당시 충남대 총학생회가 재학생 1천16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95.6%가 소녀상 건립에 찬성했다.

하지만 대학 측은 "교내 다양한 구성원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충남대는 이날 오후 '평화의 소녀상 관련 충남대학교 협의체' 2차 회의를 열고 소녀상 설치와 관련한 논의를 했다.

회의가 끝난 뒤 대학 측은 "일방적으로 소녀상을 설치한 것에 대해 절차적 문제를 제기할 계획" 이라며 "의견을 모아 향후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https://www.yna.co.kr/view/AKR20220816068151063

でもまあ、どうなんでしょう。もうすでに少女像は全国各地どころか、海外にも展開していますから、「韓国国内の国立大学初の少女像」という「看板」が、学内外でどれだけのインパクトを持つのか。面目をつぶされた形の大学当局がどう動くか、気にならないわけではないですが、大事になる前に何となくフェードアウトしそうな気がしないでもないです。

まあ、平坦で広々としていて、各種の彫像や記念碑があちこちに見られる忠南大のキャンパス内で、これがどれくらいの注目を集める存在になるのか、いつかちょっと見に行きたい気はあります。

blue-black-osaka.hatenablog.com

第3の顕忠院「漣川顕忠院」、2023年度着工へ

まあ、国立墓地自体はこれからも安葬者が増え続けることは間違いないので、増設があること自体は自然なことです。

これが顕忠院である必要性は、未だにイマイチわかりませんけど。護国院でよくないかなあ…。

「この事業は、980億ウォンをかけ、新西面大光里93万9200平方メートルに10万基(1次5万基)規模の奉安施設と付帯施設を造成することで、2025年完工が目標だ」とありますけど、大田護国院が332万平方メートルありますから、(火葬して奉安するのが原則になったとはいえ)顕忠院としては小ぶりな気がします。

ともあれ、この新西面大光里一帯は、陸軍第5師団新兵教育隊が移転した跡地のようで、経済の再活性化も期待されているみたいですね。鐵原邑のすぐ南、白馬高地駅のすぐ手前の一帯です。訪問はなかなか大変か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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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국립현충원 조성사업 '순풍'…내년 연천서 착공할 듯
송고시간 2022-01-27 09:56
우영식 기자
우영식 기자

(연천=연합뉴스) 우영식 기자 = 국립연천현충원 조성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돼 내년 하반기 공사를 개시할 전망이다.

27일 경기 연천군에 따르면 국립연천현충원 조성사업은 올해 9월 실시설계가 완료돼 연말까지 보상과 인허가 절차를 끝내면 내년 하반기 착공한다.

현재 토지 보상은 30%가량 진행된 상태다.

국립연천현충원은 서울과 대전에 이은 3번째 국립현충원이다.

이 사업은 980억원을 들여 신서면 대광리 93만9천200㎡에 10만기(1차 5만기) 규모의 봉안시설과 부대시설을 조성하는 것으로, 2025년 완공이 목표다.

연천군은 국립현충원이 조성되면 군부대 이전으로 침체한 신서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천군은 국립현충원 조성사업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연천군은 국립현충원 조성에 맞춰 올해 신서면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용역도 추진한다.

연천군 관계자는 "신서면 대광리 일대는 육군 5사단 신병교육대가 이전한 뒤 지역경제가 침체한 지역"이라며 "이곳에 국립현충원이 들어서면 방문객 증가 등으로 다시 활기를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2022/01/27 09:56 송고

https://www.yna.co.kr/view/AKR20220127062800060

こちらの記事には、「報勲処は、首都圏および江原圏の国家有功者の安葬のために昨年(2019年)、国立漣川顕忠院の敷地として京畿道連川郡新西面大光里を最終的に選定した」とあります。これも、限定地域を対象にした護国院にふさわしい設定です。まあ今後は、そうした用語と用途の区別が徐々に曖昧になっていくのかもしれません。

보훈처, 27일 국립연천현충원 조성사업 추진 업무협약
송고시간 2020-11-26 09:12
김귀근 기자
김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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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연천현충원 조감도 [보훈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국가보훈처는 27일 오후 3시 경기도 연천군청 대회의실에서 국립연천현충원 조성 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다고 26일 밝혔다.

협약식에는 박삼득 보훈처장과 이용철 경기도 행정1부지사, 김광철 연천군수 등이 참석한다.

이번 협약은 작년 8월에 체결한 양해각서(MOU)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사업추진과 관련된 지역경제 활성화, 인허가 등 행정절차 지원, 토지 보상 및 진입로 확장 등 기반시설 설치 등에 대한 상호협력과 의무 이행의 내용을 담았다.

보훈처는 수도권 및 강원권 국가유공자의 안장을 위해 작년 국립연천현충원 부지로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를 최종 선정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 기본계획 용역을 완료하고, 내년 설계를 시작으로 2025년까지 국비 980억 원을 투입해 5만기 규모의 봉안시설과 부대시설을 조성할 예정이다.

2020/11/26 09:12 송고

https://www.yna.co.kr/view/AKR20201126039600504

보훈처-연천군, '연천현충원 조성사업 양해각서' 체결
송고시간2019-08-05 07:50
이준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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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처 건물 [국가보훈처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국가보훈처는 지난 2일 연천군과 국립연천현충원 조성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 협약서에는 연천현충원 조성에 대한 협력 내용과 향후 실시협약 체결에 대한 노력 등이 담겨있다.

국립연천현충원은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일대 92만m² 부지에 5만기 규모로 조성된다. 사업 기간은 올해부터 2025년까지로 국비 980억 원이 투입된다.

보훈처는 지난해 5월 국립묘지 입지선정 타당성 및 기본구상 연구용역을 진행했고, 같은 해 10월 부지 적격성 평가를 거쳐 연천군이 최종 선정됐다.

연천현충원 조성이 완료되면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에 이은 세 번째 국립현충원이 된다.

2019/08/05 07:50 송고

https://www.yna.co.kr/view/AKR20190805014300504

慶尚南道咸陽に韓国戦争期民間人犠牲者追慕公園が竣工

朝鮮戦争期、民間人虐殺事件は各地で発生しているんですが、それらの人々のための追慕公園が造成されるという話は耳にしているものの、なかなか「その後」を聞かないもので、いろいろ検索している中でこちらのニュースが出てきました。

ただしこれは、慶尚南道の咸陽地域に限定された施設のようです。場所的には、咸陽郡の中心から東北に行った山間部ですね。


[함양]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추모공원 준공
함양군 수동면 도북리 ... 차용현 유족회장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21.12.17 16:44 l 최종 업데이트 21.12.17 16:44 l 윤성효(cjnews)


▲ 한국전쟁전후 함양 민간인희생자 추모공원 준공식 ⓒ 함양군청


▲ 한국전쟁전후 함양 민간인희생자 추모공원 준공식 ⓒ 함양군청

경남 함양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공원이 생겼다. 함양군은 17일 오후 수동면 도북리에서 '한국전쟁 전후 함양 민간인 희생자 추모공원' 준공식을 열었다.

함양지역에서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50년 한국전쟁을 거쳐, 1954년 빨치산 토벌이 거의 마무리되는 시기까지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과 그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 추모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이날 준공식에는 서춘수 함양군수와 황태진 함양군의회 의장을 비롯해 관련 기관·단체와 주민 등 9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차용현 유족회장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에 의해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고 위령탑 건립에 헌신한 점을 인정받아 함양군과 유족회로부터 공로패를 받았다.

추모공원은 2018년부터 함양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족회의 요구로 추진되었다. 2019년 3월 사업 부지 정비와 주차장 조성공사가 시작되었고, 올해 6월 공개경쟁입찰을 거쳐 사업이 공사가 진행되었다.

추모공원은 군비 5억원을 들여 전체 3045㎡ 면적에 조성되었다. 10.2m 높이의 '위령탑'이 세워졌고, 합동묘역의 비석, 정각 정비, 조경공사, 추모객 편의를 위한 파고라,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서춘수 군수는 추도사를 통해 "무고하게 돌아가신 희생자 분과 유족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며 "추모공원 조성은 우리지역에서 발생한 모든 민간인 희생자를 위로하고, 우리 후손들에게는 자유와 평화의 교훈을 전달하는 산교육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차용현 유족회장은 "추모공원을 조성하게 되어 무척 기쁘게 생각하고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며 "다시는 이런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합해 계속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전쟁전후 함양 민간인희생자 추모공원 준공식 ⓒ 함양군청


▲ 한국전쟁전후 함양 민간인희생자 추모공원 준공식 ⓒ 함양군청


▲ 한국전쟁전후 함양 민간인희생자 추모공원 준공식 ⓒ 함양군청


▲ 한국전쟁전후 함양 민간인희생자 추모공원 준공식 ⓒ 함양군청


▲ 한국전쟁전후 함양 민간인희생자 추모공원 준공식 ⓒ 함양군청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95960

顕忠院、独立有功者の夫婦を平等に扱う方針へ

オーマイニュースが記事にしていました。

夫婦墓において、夫の名前を中央に大書し、妻の名前を脇に小さく書く、というスタイルはしばしば見かけます。「배위(配位)○○○」と書かれていることが多く、「配位」は「夫婦がともに死去しているときの妻への尊称」だと言います。

このスタイルが、夫婦ともに独立有功者である場合にも適用され、これまでにも時に問題とされてきたわけです。

www.ohmynews.com

今回の記事は、そうした墓石が交換され、慣習的に「そうしたもの」とされていた形式が「個人を個人として平等に扱う」ものに改められつつあることを報じています。特に異論のある話ではありませんので、作業を進めてもらえればい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と同時に、従来の墓碑は墓碑で、「過去、そうしたものがあった」ことを示す歴史資料として、記録に残しておくことも必要ではあるでしょう。

부부 독립운동가 묘비도 성평등 관점으로 '전면 교체'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의 '혁명적 변화'... 꾸준한 시민운동의 성과
21.03.30 20:57 l 최종 업데이트 21.03.30 20:57 l 김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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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서울현충원의 명물 능수벚꽃 국립서울현충원의 봄을 상징하는 벚꽃의 개화가 평년보다 약 5-10일 먼저 찾아왔다. ⓒ 김학규

국립서울현충원의 벚꽃은 유명하다. 예년 같으면 4월 초에 절정에 이를 벚꽃의 개화 시점이 열흘 가까이 당겨지면서 많은 혼란도 있지만, 국립서울현충원의 봄도 열흘 정도 당겨서 찾아왔다.

그런데 국립서울현충원 방문객에게 봄이 찾아왔음을 실감케 하는 것은 벚꽃만이 아니다. 독립유공자 묘역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변화를 통해 국립서울현충원에 봄이 왔음을 실감할 수 있다.

5·18 계엄군의 묘비를 '전사'에서 '순직'으로 바꿔 설치했던 국립서울현충원이 이번에는 독립유공자 묘역에 있는 부부 독립운동가의 묘비를 성평등 관점에서 '전면 교체'한 것이다.

남성 중심이었던 부부 독립운동가의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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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 독립운동가 "이회영-이은숙"의 묘비 교체 이전(왼쪽)과 이후(오른쪽) 모습. 그동안 "배위 이은숙 합장"이라고 새겨져 있던 묘비와 달리 "애국지사 이은숙"이 "순국선열 이회영"과 나란히 새겨져 있다. ⓒ 김학규

독립유공자 묘역에 있는 부부 독립운동가의 묘는 이은숙·이회영의 묘, 김학규·오광심의 묘, 오광선·정정산의 묘, 신건식·오건해의 묘, 박영준·신순호의 묘, 신송식·오희영, 신팔균·임수명의 묘, 강무경·양방매의 묘가 있고, 임시정부요인 묘역에 있는 부부 독립운동가의 묘는 이상룡·김우락의 묘, 지청천·윤용자의 묘, 오영선·이의순의 묘가 있다.

그런데 이들 부부 독립운동가의 묘비는 그동안 남성(남편)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심지어 같은 독립운동가인데도 '순국선열(또는 애국지사) OOO의 묘'라고 씌어 있는 묘비 옆에 작게 '배위 OOO 합장'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최근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묘비 교체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때도 국립서울현충원 측의 독립운동에 대한 이해 부족과 성평등 관점의 결여로 묘비 앞면에 부부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나란히 새긴 묘비로 교체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묘비 뒷면 아래에 있는 '약력란'에 남성 독립운동가의 약력만 새겨 넣은 묘비명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관련 기사 : 독립운동가인데 빠지거나 작게 새겨진 이름, 여성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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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 독립운동가 "박영준-신순호"의 묘비 교체 이전(왼쪽)과 이후(오른쪽) 뒷면 아래 "약력란" 모습. 2021년 3월에 교체되면서 박영준과 신순호의 독립운동 이력이 함께 새겨져 있다. ⓒ 김학규

예외도 있었다. 김학규·오광심의 묘비에는 철저히 성평등의 관점이 반영되어 묘비 뒷면 아래의 '약력란'에도 김학규의 약력과 오광심의 약력을 이미 나란히 새겨 넣고 있었다. 물론 이들의 묘비도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애국지사 김학규의 묘, 배위 오광심 합장'이라고 새겨져 있던 김학규·오광심의 묘가 지금의 모습으로 바뀐 것은 2014년의 일이다.

이렇듯 여성 독립운동가는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죽어서도 수십 년간 차별을 받고 있었는데, 마침내 2021년 3월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 '혁명적 변화'는 그동안 조사·연구와 탐방에 기초하여 '여성길'을 조성하는 등 동작역사문화연구소와 인권도시연구소의 꾸준한 문제 제기와 활동이 밑바탕이 되었다.<경향신문>이 동작역사문화연구소의 협조를 받아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의 문제를 성평등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보도(<독립운동가 부부 함께 안장됐는데, 공훈록·묘비에서 사라진 '여성의 공로'>, 2021. 3. 10)하면서 발동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들의 꾸준한 활동과 문제 제기가 국립서울현충원에 또 다른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의 '혁명적 변화'로 이제 국립서울현충원 '여성길' 탐방이 훨씬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여전히 바뀌지 않은 묘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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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정부요인 묘역 "이상룡-김우락"의 묘비 뒷면(왼쪽)과 부부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이범석"의 묘비(오른쪽). "이상룡-김우락"의 묘비는 지난 2020년 교체하면서 부부 독립운동가의 생몰년을 나란히 새겨넣었으면서도 아래 "약력란"에는 여전히 이상룡의 약력만을 새겨놓은 예전 그대로다. "김마리아-이범석"의 묘비는 "국무총리 이범석의 묘"에 "배위 김마리아 합장"으로 새겨져 있다.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는 1977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으나 이번 전면 교체 과정에서도 누락되었다. ⓒ 김학규

그런데 무슨 일인지 성평등 관점에서 독립유공자 묘역를 '전면 재정비'했음에도 임시정부요인 묘역의 '이상룡·김우락의 묘'와 국가유공자 제2 묘역의 '김마리아·이범석의 묘'는 여전히 예전의 모습 그대로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상룡·김우락' 묘비 뒷면 아래 '약력란'은 이상룡의 약력만 새겨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국가유공자 제2 묘역의 '김마리아·이범석' 묘비는 '국무총리 이범석의 묘'에 여전히 '배위 김마리아'로 새겨진 채였고, 묘비 뒷면 아래 '약력란' 역시 이범석의 약력만 새겨져 있는 그대로였다.

특히 김마리아(1903-1970)는 44년 전인 1977년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지만, 지금까지도 독립운동가이자 국무총리를 지낸 이범석의 '배위'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셈이다. 만주와 연해주에서 무장투쟁에 참여하고 한국광복군에서도 활약한 김마리아는 무후선열제단에 위패로 안치되어 있는 '혁명여걸' 김마리아(1892-1944)와는 동명이인이다.

독립운동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국방부가 국립서울현충원을 관할하다 보니 발생한 문제가 아닐까 추정해 보지만, 두 묘비만 교체하지 않은 이유를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국립서울현충원의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한 부분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31232

「礼山八味」の筆頭、牛カルビの話

「礼山」というのは忠清南道礼山郡のことですが、そこには「礼山八味」というのがあるそうで(何故か日本語情報が出てこない)、その第一に挙げられているのが「礼山牛カルビ」。

ja.wikipedia.org
www.yesan.go.kr
www.yesan.go.kr

예산의 대표 맛 예산8미 홍보 강화
소갈비, 붕어찜, 민물어죽, 곱창, 산채정식, 장터국밥, 국수, 한우
김갑수 기자 승인 2018.06.1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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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이 예산8미(味)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고 나섰다. (예산군 제공)

[굿모닝충청 예산=김갑수 기자] 충남 예산군이 예산8미(味)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고 나섰다.

군은 ▲예산 소갈비 ▲예당 붕어찜 ▲예당 민물어죽 ▲삽다리 곱창 ▲수덕사 산채정식 ▲예산 장터국밥 ▲예산국수 ▲광시 한우 등 예산8미의 대표 사진을 선정하고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인지도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군은 기존 관광안내책자 및 관광안내지도를 모두 소진시킨 뒤 사진을 교체·제작해 배포할 예정이다. 관내 시설물의 경우 예산확보에 맞춰 점차적으로 교체해 나갈 방침이다.

군 관계자는 “고화질의 8미 사진을 확보함에 따라 관광홍보물 뿐만 아니라 시설물 등에 부착하는 등 홍보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앞서 군은 시대 변화와 먹거리 다변화에 맞춰 기존 5미 중 2개의 명칭을 변경하고 3가지를 추가해 지난해 8미를 선정한 바 있다.

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91843

その由来をたどった記事がオーマイニュースに出ていました。老舗が少ないと言われる韓国で、80年の伝統を誇る牛カルビ店。礼山が豊かで富裕層の多い地域だったからこそ、高価な牛カルビの店が成立して人気を博し、3代にわたって受け継がれてきたと。こういう話は面白いですね。

사는이야기>대전충청
소갈비, 80년 전에는 어떻게 먹었을까
예산 지역 소갈비가 오래 사랑 받은 비결
21.03.03 08:38 l 최종 업데이트 21.03.03 10:02 l 김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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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8미중 하나인 예산소갈비. ⓒ 예산군

풍미 가득한 육즙, 부드러운 식감, 달달하고 짭짤한 그 맛에 감탄을 쏟아놓게 되는 음식. 귀한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을 때, 조금은 특별한 날에 찾는 음식. 바로 소갈비다.

먹거리가 풍부하고 맛집이 많아 웬만한 음식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 예산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은 양념소갈비는 무려 80년 역사를 자랑한다. 오랜 전통과 깊은 맛으로 주민들은 물론 다른 지역 사람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지금도 비싼 가격인 소고기, 80년 전에는 어떻게 먹었을까? 예산사람들은 선술집 '소복옥'에서 양념소갈비를 맛보기 시작했다. 1941년 자그마한 국밥집으로 시작한 이곳이 선술집이 되면서 소갈비가 안주로 나왔다.

"지금 소복갈비 자리 주변에 화신옥, 소복옥, 삼선옥 등 유명한 술집이 모여 있었대요. 각자 내놓는 안주도 다 달랐는데, 우리 집은 소갈비를 숯불에 구웠어요. 그게 맛있어서 입소문을 타고 외지 사람들이 오기 시작한 거죠. 1958년부터 '소복옥'을 '소복갈비'로 이름을 바꿔 갈비전문 식당으로 운영했어요."

소복갈비 김영호(68) 대표가 옛 기억을 더듬는다. 김 대표에 따르면 그의 할머니가 일제강점기에 문을 열었고 김 대표의 고모 김복순 여사, 어머니 이수남 여사가 맛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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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소복갈비’ 건물. 간판에 쓴 ‘40년 전통’이 눈에 띈다. ⓒ 김영호

"귀하고 비싼 음식인데도 장사가 잘 된 이유는 예산이 부촌이었기 때문이에요. 이 시골에 호서은행이 세워질 정도니까요. 예산에 그렇게 부자들이 많았고, 음식 잘하는 식당이 예산읍내에 특히 많았어요. 그러니 소비가 잘 됐던 거지요. 다른 지역에는 전혀 없는 소갈비를 예산에서 맛있게 하니까 외지 손님도 정말 많이 왔어요. 주로 의사, 땅부자, 정치인, 직장인들이 와서 먹고, 손님을 대접하기도 했죠."

'갈비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삼우갈비 박유진(66) 대표의 말이다. 대표 소갈비 맛집 2곳인 소복갈비와 삼우갈비는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삼우갈비 박유진 대표의 모친 이천종 여사는 당시 '소복옥' 주방에서 오랫동안 일하던 직원이었다.

박 대표는 그곳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일하며 '소복옥' 살림살이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고 한다. 끈끈한 관계를 잇던 김복순 대표가 세상을 떠나자 이 여사와 박 대표는 소복갈비 일을 그만두고 1986년 새롭게 '삼우갈비'를 열었다.

"어렸을 때부터 '소복옥'에서 일하며 제가 정육점에서 갈비를 가져왔어요. 정육점이 소 한 마리를 잡으면 갈비 두 짝을 자전거에 실어오는 거예요. 저녁에 하교하면 집에서 외상장부를 작성하고 다음 날 아침에는 신례원, 역전시장, 오가에 있는 정육점에 들러 갈비값을 계산하고 난 뒤 학교에 갔어요. 당시 하루 매출이 200만~300만 원이었으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팔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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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름을 제거하고 살을 발라낸 뒤 간장양념에 버무려 2~3일 숙성하면 맛있는 양념소갈비가 완성된다(왼쪽). 숯불에서 적당하게 구워내고 식지 않도록 데운 석판에 담아 손님상에 낸다. ⓒ <무한정보> 김두레

예산 양념소갈비 명맥을 잇는 두 식당이 한우암소만을 고집해 사용하는 것은 타지역과 다른 우리 지역만의 특징이다. 암소는 기름이 많아 제거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인력이 많이 들어 웬만한 식당은 거세우를 사용하지만, 거세우보다 육즙이 풍부하고 고소한 맛이 강하다.

맛있는 양념소갈비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갈비 손질부터, 양념, 숙성, 굽기 등 모든 과정 하나하나에 정성이 담겨 있다.

제일 먼저 갈비 겉에 붙은 기름을 떼 내는 게 가장 큰 일이다. 육절기로 갈비를 자르고 양념갈비 부위와 갈비탕 거리를 분리한 뒤 갈비살을 발라 칼집을 낸다. 간장을 기초로 갖은양념을 더해 버무려 2~3일 숙성하는데, 계절마다 숙성 속도가 달라 가장 맛있을 때를 찾는 것이 포인트다.

갈비를 구워 식탁에 올리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고기 굽는 곳 앞에서 하나하나 집어먹으며 술을 마시던 목로문화에서 유래된 거 같아요. 옛 건물에는 방마다 구이 시설을 갖추기 어려웠을 뿐더러, 소갈비를 먹을 정도면 거의 대접 받는 경우인데, 누구 한 명이 굽느라 바쁘면 힘들잖아요. 선술집이었을 때는 갈비를 구워 손님에게 낸 뒤 그 자리에서 잘라줬어요."

갈비 베테랑들이 알맞게 구워준 것을 맛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서민 음식도, 자주 먹을 수 있는 흔한 고기도 아니지만, 예산소갈비의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비결은 무엇일까.

"갈비는 달콤한 보물인 거 같아요. 어버이날이나 어린이날, 명절과 같은 특별한 날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주고 싶은 마음으로 오잖아요. 내가 사줘도 뿌듯하고, 대접받는 사람도 기분 좋게 맛있게 먹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 음식하는 사람도 짜릿하고 예산의 갈비 맛을 이어온다는 자부심이 생겨요. 갈비가 참 '보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귀한 음식을 나누려는 '정'이야 말로 그 정답일 것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23313

【尼崎の風景】戸ノ内墓地

尼崎の墓地そぞろ歩き。このシリーズ、毎回いろいろ何か発見があって、なんだか面白くなってきました。

今回は戸ノ内墓地です。戸ノ内地区は、尼崎の中でも大阪市に接しており、しかも神崎川・藻川・旧猪名川で三方を囲まれた場所です。最寄りは、敢えて言えばJR東西線の加島駅。バスなら阪急園田駅から出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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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区の基本情報は、いつものようにまずapedia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戸之内 とのうち
(戸ノ内より転送) 出典: Web版尼崎地域史事典『apedia』

園田地区の大字。市域東部、かつて猪名川神崎川の合流地点の北、猪名川西岸、猪名川と藻川の間に位置していたが、猪名川改修工事により流路が変わり、現在では猪名川東岸となった。武士の居住地を意味すると考えられる殿ノ内〔とのうち〕という小字があるので、戸之内もこれに由来するとも考えられる。史料上の初見は1594年(文禄3)「善法寺村検地帳」(太田善夫氏文書)で「との内」とある。1605年「慶長十年摂津国絵図」に西倉橋とあり、中世には椋橋西荘に属したと考えられる。椋橋城の地に比定する説もある。

近世初期には幕府領、1626年(寛永3)に大坂城代武蔵国岩槻藩阿部氏(正次系)の領地となり、1648年(慶安元)には大坂定番上総国飯野藩保科氏の領地となり明治に至った。村高は「慶長十年摂津国絵図」に766.395石、「元禄郷帳」「天保郷帳」に788.395石とある。西明寺井組に属した。氏神素盞嗚神社、寺院は高野山真言宗治田寺・浄土真宗本願寺派祐光寺。治田寺は天平年間の開基と伝えられ、平安末期作と考えられる治田寺阿弥陀如来坐像がある。

1889年(明治22)以降は園田村、1947年(昭和22)以降は尼崎市の大字となった。1923年毛斯綸紡織戸之内工場が開設された。同社は神崎川対岸の加島に通ずるモスリン大橋を架け、園田村に寄付した。工場はのち鐘紡、さらに日本国際航空工業の工場となり、1945年空襲被害を受け閉鎖された。1961年の町名改正・1966年の土地区画整理と1971年の住居表示により戸ノ内町および、東園田町の一部となったほか、一部が弥生ヶ丘町となった。

執筆者: 地域研究史料館

http://www.archives.city.amagasaki.hyogo.jp/apedia/index.php?key=%E6%88%B8%E3%83%8E%E5%86%85

ここを訪れたのは初めてだったのですが、なかなか面白い履歴を持つ場所のようです。DEEP案内さんが紹介しているくらいですから。

ameblo.jp
osakadeep.info
www.archives.city.amagasaki.hyogo.jp

私が歩いた時には、工場と住宅とが密接に隣り合っている、といった印象しか持てなかったのですが、見る目がないのか、ルートの問題だったのか…。

ともあれ、その戸ノ内で、旧猪名川沿いに区画されている共同墓地が、戸ノ内墓地です。

www.lifedot.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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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地管理者の名前に「戸ノ内村」とあります。近代以降も園田村・尼崎市の大字として受け継がれた地名です。

www.archives.city.amagasaki.hyog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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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常に綺麗に保たれた墓地なのですが、江戸期の墓碑が多数確認できるうえに、無縁墓がある一方で「一族の墓」としてしっかり囲み込まれた墓もあり、近世からの面影を残しているような気が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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戸ノ内墓地の現代っぽくなさがいちばん表れているのは、こちらです。ここ、全体の約4分の1が、ある一族の墓として囲い込まれているんですよね。弥生ヶ丘墓園にも一族の墓が集まって立っているエリアはありますが、こんなに見事な区画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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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日は天気もよく、墓参に来られていた女性から西難波の妙光寺のところにあった火葬場の思い出などを伺うこともできて、さらに色んなことを知ることができました。

…あの落とし物さえしなければ、ホントいい日だったはずなんですよ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