ソウルの復元城郭に、そんな価値はあるの?

中央日報でたまたまこの記事が翻訳されていたので、目に留まりました。最近のことだと思いますが、中央日報日本語サイトは、日本語の記事に韓国語原文へのリンクを貼るようになっていますね。これがあるとたいへん便利です。

【噴水台】600年の漢陽都城生かすため、120年の教会を壊す?歴史は歳月順なのか
2013年12月05日14時17分
[ⓒ 中央日報/中央日報日本語版]


ソウル市が漢陽都城世界遺産に登録しようと、城壁の場所を横切って建つ120年の歴史を持つ東大門(トンデムン)教会を撤去するという。

3300年になるという神殿の前に、畏敬の感を抱かずにはいられなかった。数年前に訪れたエジプト南部のルクソール神殿の話だ。隣り合うカルナック神殿ナイル川を挟んでネクロポリス(王家の谷を含む巨大共同墓地)とともに1979年にユネスコ世界文化遺産に登録された。

ここで2つ驚いたことがある。1つは文化財の流出だ。本来、神殿の入口の両側には巨大なオベリスクがあったが、そのうちの1つが19世紀にフランスへ渡った。1836年からパリのコンコルド広場に立っている。神殿の入口には、パートナーを失ったオベリスクが1つだけぽつんと立っていた。韓国人としては同病相憐を感じるばかりだった。

ところで寺院の中に入った通路のそばに、さらに驚くものが待っていた。古代遺跡の上に巨大なモスク(イスラム寺院)が建っていたからだ。現地ガイドは「これも文化遺跡」と話した。実は、これは13〜19世紀にかけて建てられたエル=ハッジャージ(エル・ハガック)のモスクであった。バグダッド出身で、ここで生きて1243年に亡くなったイスラム聖人エル・ハガックを賛える所だった。19世紀に撤去の動きもあったが、死んだ人々の遺跡よりも生きた人間の宗教が優先されるという世論に押されたという。

神殿の後方には、紀元前4世紀のペルシャ帝国からエジプトを奪ったマケドニアアレクサンダー大王が作らせたという小さな礼拝堂があった。ローマ人が描いた聖火のような壁画も見えた。紀元前30年にエジプトを占領したローマは、600年以上この地を統治してキリスト教も伝えた。これらすべてのものがルクソール神殿、さらにはエジプトのつらい歴史を物語るというガイドの説明に、自然とうなずいた。

トルコのイスタンブールにあるビザンチンの代表建築物であるアヤソフィア(ハギア・ソフィア)も似ていた。1453年、この都市を占領したオスマン・トルコはキリスト教の教会であったここをモスクに変えた。今は博物館として使うこの場所に、何年か前に訪れたところ、過去のキリスト教の聖火を覆うために塗った石灰の除去作業を何十年にも渡って続けていた。だが寺院のあちこちには、依然として「アッラーのほかに神はおらず、マホメットアッラーの使者」という巨大なイスラムの文面がかかっていた。占領・破壊を含むすべての歴史をありのまま大切に守ろうとする試みはないだろうか。

ソウル市が漢陽都城世界遺産に登録しようと、城壁の場所を横切って建つ120年の歴史を持つ東大門(トンデムン)教会を撤去するという。韓国の近現代史の記憶を大切に保存している由緒ある場所だ。城壁周辺の景観を生き返らせるために撤去してしまうような、単なる建築材料の塊(かたまり)ではない。すでに登録された朝鮮王陵に属する泰陵(テルン)選手村も撤去論争に巻き込まれたという。歴史は古い順に大切なのだろうか。歴史を、施設・構造物だけから探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だろうか。そこに宿った人々の思い出は、痛みは、歴史ではないのだろうか。

チェ・インテク論説委員

http://japanese.joins.com/article/094/179094.html

で、ちょっと調べてみると、この「漢陽都城ユネスコ世界遺産登録のための東大門教会撤去」というニュースは、聯合ニュースをはじめとして各紙が、総じて批判的に報じています。

東大門教会と言えば、私自身は入ったことはないものの、その存在はよく知っています。東大門を正面から見れば、その左手の坂の上に見えますから、観光でソウルを訪れた人でも見たことのある人は少なくないはずです。

■ 동대문 교회

한국 최초로 남녀 합동 예배가 열렸던 120여년 역사의 교회. 1892년 세워져 국내에서 정동교회, 상동교회에 이어 세 번째로 긴 역사를 가졌다. 하지만 서울시 성곽 복원과 공원 조성 사업을 위해 2008년부터 동대문 교회 이전을 추진해 온 서울시 측과 갈등을 빚었다. 5년을 끌어온 싸움은 2013년 말, 법원이 동대문교회의 토지와 건물을 퇴거할 수도 있도록 해달라며 소송을 낸 서울시의 손을 들어주며 일단락됐다. 하지만 ‘특정 문화재를 복원하기 위해 또 다른 근대 유산을 허무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동대문교회는 이화학당 설립자 스크랜턴 여사가 1887년 세운 국내 첫 여성 병원 '동대문부인진료소'에서 출발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예배당 건물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 교회다. 서양인 선교사 부부는 1892년 이 교회에서 한국 처음으로 서양식 결혼식을 올렸다. 1910년 교회가 새 건물을 짓자 담임 목사가 미국에서 가져온 국내 첫 서양식 교회 종은 3·1 운동 때 종로에 울려 민족혼을 일깨웠고, 8·15 광복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 한국 보이스카우트의 전신(前身) 소년척후단의 '제1지대(支隊)'가 생긴 곳도 이 교회였다. 서울시는 2014년 1월부터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입회하에 교회 건물 철거 작업에 나설 계획이지만,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조선일보 2013년 12월 3일자 A1)


올해 초 촬영된 동대문교회(가운데) 모습. 교회 오른쪽으로 서울 성곽이 지나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교회 부지와 건물을 비워달라는 소송에서 이겨 동대문교회 이전을 확정했다./서울시 제공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05/2013120503357.html

서울시 "동대문교회 터 고려해 성곽공원 조성"


서울 종로구 동대문교회 모습. << 연합뉴스 DB >>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 서울시는 동대문성곽공원 부지 안에 있는 동대문교회 터의 역사성을 충분히 고려해 공원 조성 때 여러 방식으로 교회의 흔적을 남길 방침이라고 3일 밝혔다.

시 관계자는 "공원에 편입된 동대문교회 건물과 터, 종은 문화재청 심의결과 문화재적 가치가 없는 것으로 결정됐지만 'ㄱ'자 형태의 건물을 해체할 때 현장 재조사를 해봐서 필요하다고 보이면 이축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한양도성 복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2008년 10월 동대문성곽공원 조성을 결정했지만, 부지 안에 있는 동대문교회의 역사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감리교 유지재단의 반대로 공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동대문교회는 정동교회, 상동교회에 이어 1892년 국내에 세 번째로 설립된 감리교단 교회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남녀 합동 예배가 열린 곳이다.


<그래픽> 동대문교회 터 고려한 성곽공원 조성
(서울=연합뉴스) 장예진 기자 = 서울시는 동대문성곽공원 부지 안에 있는 동대문교회 터의 역사성을 충분히 고려해 공원 조성 때 여러 방식으로 교회의 흔적을 남길 방침이라고 3일 밝혔다.

교회 건물은 내년 1월 철거 예정이다.

동대문성곽공원을 둘러싼 갈등은 서울시가 올 10월 명도소송 1심에서 승소하고 동대문교회가 수원 광교의 새 예배당으로 이전하면서 일단락됐다.

서울시는 "현재 계획한 기념 동판 외에 동대문교회, 기독교대한감리회 관계자와 협의해 교회 흔적을 남기는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하겠다" 덧붙였다.

2013/12/03 15:40 송고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12/03/0200000000AKR20131203143300004.HTML

ソウル市は当初、「東大門教会に建築物としての価値なし」として、東大門城郭公園造成事業を進めるための教会撤去をどんどん進めるつもりだったみたいですが、各所からの批判を受けて、どうもその方針が揺らいでいるようです。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동대문 교회’

일간지 1면에 철거 정당성 의문 제기
과거와 현대 조화시킬 지혜 필요

2013년 12월 04일 (수) 17:09:24 신동명 취재부장

동대문 성곽복원공사로 시작된 동대문교회 철거 문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지자체 경쟁과 맞물려 새로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조선일보는 최근 1면에 “유네스코에 ‘등재 열풍’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면서 “한국 최초로 남녀 합동 예배가 열렸던 120년 역사의 서울 동대문교회가 건물 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양도성(漢陽都城)’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서울시가 ‘주변 정비’ 차원에서 교회를 헐고 공원을 만들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서울시 성곽복원사업으로 인한 동대문교회 철거와 같은 근대문화유산 훼손과 관련해 “특정 문화재를 복원하기 위해 또 다른 근대 유산을 허무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비판론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정부와 각 지자체·단체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강박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세계유산(무형·기록유산 포함)’으로 등재된 유산은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등 모두 36건으로 잠정 목록에 올라 있는 15건을 포함해 현재 전국에서 세계유산 등재를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유산은 60건이 넘는다.

문제는 조선시대 성곽 복원 같은 유산복원을 위해서는 또 다른 근대문화유산인 동대문교회를 철거해야만 하고 그 위에는 잔디광장과 휴게소, 정자 같은 성곽복원과 무관해 보이는 시설들이 들어온다는데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화재 보존과 복원 과정에서 과거와 근현대를 조화시키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고민과 달리 감리회는 동대문교회 철거를 둘러싼 입장이 정리되지 않아 고통은 고스란히 성도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동대문교회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서기종 목사의 출교 결정을 내린 총회재판위원회를 “교리와 장정을 위배한 빌라도 재판과 마녀 사냥식 판결”이라고 성토했다. 동대문교회는 “총회재판위의 판결을 인정치 않고, 모든 적법한 절차를 통해 진실 여부를 가릴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동대문교회 역사보존추진위원회’는 지난달 17일부터 교회 밖 공원에 텐트를 치고 존치를 위한 촛불예배를 계속하고 있는 상태다.

http://www.kmc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924

で、この件についていちばん詳しく報じているのは朝鮮日報のようですが、現在のソウル市長が進歩系だとは言え、城郭復元事業が始まったのは李明博政権のもとでだったはずですから、保守‐進歩の枠組みでこの話を理解することは難しいと思われます。

[만물상]동대문교회의 운명
입력 : 2013.12.02 05:35

서울 흥인지문에서 낙산 쪽을 보면 언덕바지에 동대문교회 본당 건물이 서 있고 그 옆에 ㄱ자형 낡은 기와집이 보인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예배당 건물이다. 120여년 전 이곳에서 국내 최초의 남녀 합동 예배가 열렸다. 남녀가 유별(有別)해 다른 교회는 선교사도 휘장 뒤에서 설교하던 시절이었다. 동대문교회는 이화학당 설립자 스크랜턴 여사가 1887년 세운 국내 첫 여성 병원 '동대문부인진료소'에서 출발했다.

▶'닥터홀의 조선 회상'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선교사 윌리엄 홀과 로제타 홀 부부는 1892년 이 교회에서 한국 처음으로 서양식 결혼식을 올렸다. 부부가 이곳 병원에서 낳은 아들 셔우드는 선교사로 자라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실을 만들어 결핵 퇴치에 앞장섰다. 1910년 교회가 새 건물을 짓자 담임 목사였던 벙커 선교사는 미국에서 국내 첫 서양식 교회 종을 만들어 가져왔다. 이 종은 3·1운동 때 종로에 울려 민족혼을 일깨웠고 8·15 광복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

▶한국 보이스카우트의 전신(前身) 소년척후단의 '제1지대(支隊)'가 생긴 곳도 이 교회였다. 그렇듯 '최초' 기록을 여럿 세우며 근·현대사와 함께해 온 동대문교회가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조선시대 한양 성곽을 복원한다며 성곽 옆 동대문교회를 인수한 서울시가 교회 건물들을 허물고 공원을 짓기로 했기 때문이다.

▶일요일인 어제 동대문교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옆에는 '공원 조성을 위한 서울시 소유 재산'이라는 출입 통제 안내문이 붙어 있다. 동대문교회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교회 내 복잡한 사정도 있었던 듯하다. 내부 사정을 떠나, 하나의 문화재를 복원한다는 명분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또 다른 문화재를 허문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서울시가 공원에 짓겠다는 잔디광장, 휴게소, 정자는 서울 성곽 복원과 직접 관련도 없는 것들이다.

▶프랑스에서 1878년 지은 스트라스부르 역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결론은 기존 역사(驛舍)는 벽돌 한 장 건드리지 않고 보존하면서 건물 전체를 거대한 유리 돔으로 덮어 역 공간을 넓히는 것이었다. 스트라스부르 역은 옛 모습과 현대가 어울린 새로운 문화재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도 문화재 보존과 복원에서 과거와 근·현대를 조화시키는 지혜를 발휘할 수 없을까. 서울 성곽 길에서 만나는 동대문교회의 자취들은 서울 성곽을 빛나게 할망정 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김태익 | 논설위원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01/2013120102528.html

'유네스코(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열풍에 철거되는 近代史
유석재 기자
입력 : 2013.12.03 03:02 | 수정 : 2013.12.03 10:00

정부·지자체, 60여건 세계유산 등재 추진하며 '주변 정비'
120년 된 동대문교회, '메달 산실' 태릉선수촌 철거 위기
전문가들 "세계유산 등재, 올림픽 메달 따듯 경쟁해선 안 돼"

'미아리고개' '줄다리기' '용산 일제강점기 군사 유산' '윷 문화' '삼국지 관우 관련 신앙 공간'…. 전국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는 유적·유물의 일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세계유산(무형·기록유산 포함)'으로 등재된 유산은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등 모두 36건. 잠정 목록에 올라 있는 15건을 포함, 현재 전국에서 세계유산 등재를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유산은 60건이 넘는다. "유네스코에 신청하겠다"고 지자체장이 '선언'한 경우는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나 이 같은 '등재 열풍'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한국 최초로 남녀 합동 예배가 열렸던 120년 역사의 서울 동대문교회가 건물 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양도성(漢陽都城)'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서울시가 '주변 정비' 차원에서 교회를 헐고 공원을 만들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완공된 후 양정모(레슬링) 차범근(축구) 현정화(탁구) 임춘애(육상) 박태환(수영) 김연아(피겨스케이팅) 등 한국 스포츠 스타의 산실(産室)이 돼온 태릉선수촌도 철거 위기에 놓였다. 선수촌이 있는 곳은 문정왕후의 능인 태릉(泰陵) 권역. 태릉을 포함, 조선왕릉 40기는 2009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당시 유네스코 측이 '주변 자연환경을 보존하라'는 권고를 내렸고, 이 때문에 문화재청이 몇년째 철거를 저울질하고 있다. 체육계는 "선수촌은 현대 한국 스포츠 발전의 상징이다. 철거는 말이 안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나중에 지은 근대 유산은 없애도 되나"

"특정 문화재를 복원하기 위해 또 다른 근대 유산을 허무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비판론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정부와 각 지자체·단체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강박 때문이다.


철거 앞둔 서울 동대문교회… 서울시의 한양도성 복원 사업으로 내년 1월 철거 예정인 서울 동대문교회(가운데 언덕 위 건물). 서울 성곽(점선 부분)이 인접해 있다. /오종찬 기자

전문가들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자격을 따기 위해 우리 근현대사(近現代史) 유산을 폐기하는 것은 또 다른 ‘문화 사대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각국만의 자연·문화유산을 보존하자는 취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가 한국에서는 역설적으로 후대의 문화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2010년 파주 삼릉에선 왕릉 복원을 이유로 100년 넘게 주민이 이용하던 관통 도로를 폐쇄해 반발을 샀다. 철거가 논의되다 뒤늦게 문화재가 되는 ‘역전극’도 벌어진다.

1962년 지은 서울 성북구 의릉 내 옛 중앙정보부 강당은 당초 능 복원을 위해 철거할 계획이었으나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등록문화재 제92호가 됐다.

◇"올림픽 메달처럼 경쟁해서야"

‘세계유산 올인(all in)’도 문제로 지적된다.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우리나라처럼 세계유산을 올림픽 메달 따듯 달려드는 나라도 드물다”며 “정말 가치 있는 유산을 보호하고 전승하려는 의식부터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등재 열풍’의 가장 큰 이유는 관광객 유치. 1997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수원 화성은 등재 당시 관광객이 37만명에서 지난해 132만명으로 3.6배로 늘었다. 남한산성이 등재될 경우 관광객 수가 현재의 연 150만명에서 400만명으로 증가한다는 예상도 있다. 여기에 세계유산 등재를 지자체장의 ‘업적’으로 홍보하려는 심리도 한몫한다.

그러나 등재 추진이 오히려 문화재 보호 문제를 더 꼬이게도 만든다. 정부는 울산 반구대암각화의 보존 대책으로 ‘가변형 제방’안을 내놨지만 일각에선 “주위 환경을 변화시켜 세계유산 등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03/2013120300225.html

東大門や南山の城郭を実際に見た者として個人的な意見を言わせてもらえば、たかだか事業として復元したに過ぎない城郭に、120年の歴史を見つめてきた近代建築ほどの価値があるとは、とても思えないんですよね。

もちろん本物の石を使って作っているとはいえ、あんなもん、博物館で縮小再現されるようなハリボテと何が変わるというのか、私にはよくわかり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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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교회와 성곽은 공존해야
입력 : 2013.12.06 05:22


원성웅 옥토교회 담임목사

3일자 A1면 '유네스코 열풍에 철거되는 근대사(近代史)'는 한양도성 복원을 이유로 126년 역사의 서울 동대문교회를 무작정 철거하려는 서울시를 따끔하게 비판한 보도였다. 기사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동대문교회가 우리 근대사와 한국 교회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닌 곳인지 말하고자 한다.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만 있고 대한민국을 건국한 분들의 조형물은 하나도 없는데, 서울시는 이번에도 조선시대 성곽을 복원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과 근대화의 숨결이 살아 있는 유서 깊은 교회를 헐어내려고 한다. 서울 성곽이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재되도록 주변을 정리한다는 명목이지만, 옛 유적을 복원해 살리려고 뜻깊은 근대사의 유적을 허무는 일은 유네스코 정신이 아니다.

동대문교회는 성곽보다 나중에 건축되었지만, 그 교회 터에 아펜젤러, 언더우드와 함께 국내에 들어온 첫 선교사 스크랜턴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가난한 여성들을 위한 병원을 세워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던 많은 서민을 치료했다. 또한 일제의 억압과 강탈에 맞서 3·1 독립만세운동에도 깊이 관여했고, 그것을 세계에 알린 헐버트 선교사의 활동 무대였으며, 항일 운동가 김상옥 의사와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장을 지낸 손정도 목사 같은 애국지사들이 거쳐 갔던 교회이다. 이 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셔우드 홀 선교사는 한국 땅에 만연했던 결핵 퇴치를 위해 최초로 크리스마스 실을 만들어 보급했으며, 근래에는 이 교회에 소속된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성노예가 되었던 자신의 아픔을 고백하기도 했다.

서울시가 성곽 공원 조성을 위해 이처럼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의 얼이 깃든 기념비적 예배당을 얼마의 돈을 쥐여주고 헐어버리려는 것은 참으로 짧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대안을 제시하자면, 우리의 옛 문화재와 동대문교회를 독립과 항일, 이웃 사랑이 실천되었던 의미 있는 테마공원으로 연계 개발하는 방법이다. 서울시의 지혜로운 결단을 기대한다.

원성웅 | 옥토교회 담임목사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05/20131205039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