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韓烈記念館と朴鍾哲記念館

ソウル地下鉄2号線新村駅を上がったところにある新村ロータリーを、延世大学校に向かう北ではなく、西へ向かって大通りを少し中に入ったところに、こういう建物がある。


この地図だと簡単に行けそうだが、実はものすごく分かりづらいところにあるこの建物は이한열기념관(李韓烈記念館)という。
民主化運動の波が渦巻く1987年6月、延世大学校の学生であった李韓烈は、延世大正門前で警察が放った催涙弾の直撃を受け、民主化した韓国の姿を見ることなくこの世を去った。彼は、水拷問によって亡くなったソウル大学校朴鍾哲とともに、1987年の韓国民主化を象徴する「烈士」として知られている。ここは、その李韓烈の記念館である。
ちなみにこの建物、地下1階には문익환(文益煥)の記念事業を行っている社団法人「통일맞이」が、2階には「南北経済文化協力財団」が、それぞれ事務局を置いている。全羅南道出身で国立5.18民主墓地に埋葬されている李韓烈南揚州市牡丹公園に眠る文益煥、そして南北統一事業という取り合わせは、これまでの現代韓国の歩みの文脈の中では、自然に結びつくものであると言えよう。
李韓烈に関する展示は、建物の3階と4階にある。こじんまりとしているが、できて数年しかたっていないためもあって、明るい感じの展示室になっている。




ちなみに、上で書いた朴鍾哲の記念館も存在することはする。

박종철기념관, `물고문` 남영동 공안분실서 개관

대학생이던 1987년 경찰의 물고문으로 사망해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고 박종철씨를 기리는 기념관이 10일 문을 연다.

기념관은 물고문 현장으로 경찰인권센터가 입주한 옛 치안본부 공안분실에 마련돼 10일 오후 2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회장 함세웅 신부를 비롯한 유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이 열린다.

박종철씨가 물고문으로 숨진 ‘509호 조사실’에는 박씨의 영정과 함께 당시 물고문에 사용된 욕조와 간이침대 등이 그대로 보존돼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연했다. 4층에는 80년대 당시의 시대상황을 알 수 있는 사진자료와 당시의 언론기사등이 전시되어 있고 특히 박종철 열사의 유년 시절 사진을 비롯해 개인 유품과 책, 통기타 등을 전시해놓았다.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생이던 박씨는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1987년 1월 13일 경찰에 강제 연행된 뒤 다음 날 물고문으로 사망했고 박 열사의 죽음은 ‘6월 항쟁’으로 번졌다.

박종철기념관은 시민, 사회단체의 각계인사로 구성된 시민자문기구인 ‘경찰인권위원회’(위원장 박경서)에서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채택됐으며 2년여에 걸친 토론과 설계를 바탕으로 설치됐다.

박종철씨의 아버지인 박정기옹은 “내 살아생전에 종철이의 기념관을 만들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앞으로 이곳에서 아들을 만나고, 그 뜻이 후세를 통해 전해지기를 바랄뿐이다” 라며 소회를 밝혔다. 박종철열사의 과후배이면서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인 정덕환씨(43)는 “이번 기념관 개관은 그동안의 민주화운동의 투쟁의 산물이며 그 공간은 국민들의 땀과 노력이 모아져서 만들어진 것인만큼 잘 보존하고 청소년과 대학생들의 민주인권교육의 장으로 적극 활용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용범 기자

2008.06.02 12:47 입력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168220

地下鉄1号線南営駅を降りて線路沿いの細い道を南に少し行くとあるこの建物は、朴鍾哲が水拷問を受けた現場(旧公安分室)でもあるのだが、残念ながら今は改装中とのことで中には入れない。守衛のアジョシによれば、再オープンは未定であるとのことであっ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