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間企業の採用をめぐる「ソウル一極集中体制の是正への動き」について以前に書きました。
「ハンギョレ」に、それとも関連したKBSの話が載っています。興味深いのでクリップ。
例え、全面的かつ積極的な是正策ではないにしても、一極集中の流れを加速させるのではなく、押しとどめる方向への動きが、今後は徐々に広がっていくかも知れません。
[정연주칼럼] 지방대 할당제
한국방송공사 사장으로 5년2개월 동안 일했다. 우리 사회의 한쪽으로부터는 ‘좌편향 방송을 주도한 빨갱이’로, 다른 한쪽으로부터는 ‘진보로 포장된 보수 꼴통’ ‘미국 스파이’ 등의 욕을 얻어먹었다. 그런 가운데 한국방송은 나의 재임기간에 ‘신뢰도 1위, 영향력 1위’ 자리를 누렸다. 시대정신인 ‘자율’을 크게 확대하고,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관료 조직을, ‘참여’의 수평 조직으로 바꾼 뒤 나온 성과였다. 큰 보람이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보다 더 큰 보람을 느끼게 한 정책이 하나 있었다. 그 성취는 내 마음속에 깊은 울림과 감동, 무지개 같은 아름다움을 준 것이어서, 더 소중하기까지 하다. 지방대 할당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원채용 방식이었다. 미국의 ‘어퍼머티브 액션’(약자보호정책)의 정신을 한국방송공사에서 실현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준조세 성격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사로서는 ‘참평등’의 실현과 ‘다양·균형의 사회구성’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책무이기도 했다.지혜를 모아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시도했다. 첫째, 지역 방송요원의 절반은 그 지역 대학 출신을 우선적으로 뽑는 ‘지방대 할당제’였다. 둘째, 선발 전 과정에 응모자의 출신 지역, 출신 학교, 가족 상황에 대한 기록을 모두 없애는 ‘블라인드 심사’였다. 학교 서열과 출신 지역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이 천형처럼 각인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것을 근원부터 없애는 것은 매우 중요한 출발이었다. 셋째, 경제 조건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영어 점수 비율과 중요성을 낮추었다. 넷째, 장애인에게 10% 가산점을 주었다. 다섯째, 나이와 학력 제한을 모두 없애버렸다.
이 몇 가지를 도입했는데, 첫해인 2003년 말 공채 때부터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특히 ‘지방대 할당제’ ‘블라인드 심사’는 경이로운 답을 내놓았다. 모두 136명의 신입사원을 뽑았는데, 지방대를 나온 신입사원이 무려 49명으로 36%를 차지했다. 특히 기자·프로듀서·아나운서 경우, 이전에는 지방대 출신이 거의 전무했는데, 기자 10명, 프로듀서 17명, 아나운서 4명이 지방대 출신이었다. 장애인의 경우도 2000년에 1명 합격한 이후 없었는데, 2003년 말에 4명이 합격했다. 놀랍지 않은가.
5년 동안 신입 또는 경력 입사자를 출신학교별로 모아 보니, 참으로 다양하고 화려했다. 우선 서울의 이른바 명문대 출신의 ‘압도적 독과점’ 현상이 사라졌다.
5년 동안 606명의 신규 채용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명문대’라는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은 175명으로, 29%에 그쳤다. 서울대가 1위도 못하고, 2위로 밀려났다.
5년 동안 합격자를 낸 대학 숫자가 무려 81개나 되었고, 그 구성은 전국에 걸쳐 참으로 다양했다. 처음 들어보는 학교도 몇 있었다. 1명의 합격자를 낸 대학이 30개, 2명의 합격자를 낸 대학이 14개, 3명의 합격자를 낸 대학이 8개 등, 그 구성이 다양했고, 분포는 전국적으로 골고루 퍼져 있었다. 무지개처럼 아름다웠다. 어느 대학 출신이건 입사 뒤 모두 일을 잘했다. 생각도 건강했다.
우리가 채택했던 지방대 할당제는, 지역방송 사원의 절반에만 적용된 ‘부분적’인 것이었다. 전국권까지 확대했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으리라 본다. 이러한 ‘지방대 할당제’ ‘블라인드 심사’ 등을 국가와 공기업에서 실시하는 모든 채용 시험에 도입하고, 일반 사기업에서도 적극 따른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 골머리를 앓는 교육 문제, 특히 명문대 입학을 위해 어릴 때부터 짊어져야 하는 참혹한 무한경쟁과 서열화, 교육 양극화 등의 많은 문제가 해소되고, 전국의 균형발전도 자연스레 이뤄지리라 믿는다. 의미 있는 결과는 5년 동안 한국방송공사의 직접 체험에서 검증되었다.
명문대 - ‘좋은 일자리’ 독점 - 승자 독식, 그 사슬을 끊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 삶이 너무 처절하다.
정연주 언론인
기사등록 : 2010-09-05 오후 06:10:34
日本語訳はこちら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