歴史を呼び返す映画
けっきょくいまだ観れていない映画「弁護人」ですが、現在の韓国映画界で一つの目安になっている観客動員1000万人を早々に越え、大ヒット作の仲間入りを果たしました。
そう遠くない時代の話であるだけに、「釜林事件」というこの政治的な事件に関わった当事者も両サイドに多く残っています。このタイプの映画は「華麗なる休暇」や「南営洞1985」など、少なからず存在して、それなりの存在感も持っています。
日本でこの手の映画が商業的に成功を収めるというのはなかなか考え難いのですが、そこにはやはり何らかの社会的・歴史的な差異が見いだせるような気がします。
"노무현 변호사님 변호하느라 힘드셨지요"
영화 '변호인' 소재 부림사건 피해자들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
국제신문 디지털뉴스부
2014-01-21 19:17:50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변호인'에 등장한 부림사건 실제 피해자들이 21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노무현 변호사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를 변호하느라 얼마나 힘드셨는지 인간적 고뇌가 깊으셨는지 느꼈습니다."
영화 '변호인'의 소재인 부림사건 피해자 고호석(56·부산 거성중학교 교사) 씨는 21일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앞에서 이렇게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부림사건의 다른 피해자 10명과 함께 이날 봉하마을에 온 고 씨는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현실을 보고 가슴이 아프다"면서 "이제 저희에게 맡기시고 편안히 잠드십시오"라고 명복을 빌었다.
부림사건 피해자들이 함께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1981년 부산 대동고등학교 교사였던 고 씨는 부산대 영문학과 재학 시절 독서모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 해 8월 부산 금정구 구서동에 있는 자신의 집 근처에서 수건으로 눈이 가려진 채 경찰에게 붙잡혀갔다. 죄목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 여섯 가지.
이후 어둡고 두려운 경찰 대공분실에서 36일 동안 조사를 받으면서 숱하게 얻어맞았다. 그때 '통닭구이' 고문도 많이 당해 지금까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통닭구이는 두 손과 양 발을 긴 막대 같은 것에 묶어 거꾸로 매달아 놓고선 마구 폭행하는 고문이었다.
부산대 법학과를 졸업한 주정민(56) 씨는 같은 이유로 1981년 9월 고향인 충남 홍성에서 잡혀갔다. 주 씨는 경찰에서 곡괭이 자루 같은 것으로 너무 많이 맞아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1심에서 3년6월, 2심에서 2년6월을 각각 선고받고 2년을 옥살이하고서 1983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이후 주 씨는 고향에서 협동조합과 농민운동을 하면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최준영(61·동북통상 대표) 씨도 같은 1981년 9월 부산 부산진구 당감동에서체포 영장도 없이 경찰에 불법 연행됐다.
최 씨는 양서협동조합에서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는 이유로 끌려가 모진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그는 "노무현 변호사의 열정적이고 논리적인 변론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회고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 묘역에서 함께 참배하고 나서 당시 노 변호사의 부인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권양숙 여사도 예방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권 여사는 부림사건은 노 전 대통령이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한 인생의 큰 전환기가 됐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까지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고 이들은 전했다.
부림사건은 1981년 공안 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불법 감금하고 고문한 사건이다.
그 가운데 19명이 기소돼 징역 1~6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에 민주화 운동으로인정받았다.
한편,영화 변호인 상영 후 토요일에 3000여 명, 일요일에 5000여 명이 봉하마을을 각각찾아 지난해 이맘때 토요일(1500~2000명)과 일요일(3000명)보다 방문객이 많이 늘었다고 노 전 대통령 사저 경비 담당 경찰은 전했다. 디지털뉴스부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140121.99002191750
映画の主役はソンガンホですし、そのモデルは盧武鉉元大統領ですから、当然そちらには注目が集まります。が、どちらかと言えば、1980年代当時の捜査機関による拷問事件に改めて人々の関心が向けられている点が、より注目に値します。
それはおそらく、そのような事件や状況が、映画を観る人にとって「他人事ではないもの」と受け止められていることを、示唆しているものと思われます。
もちろん、作品そのものは歴史的な事件をモチーフとしたフィクションであり、事実そのものを追ったドキュメンタリーではありません。そのことを踏まえた上で、なお観衆は、そこに思い入れている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ね。
歴史の問題なのか、記憶の問題なのか、いずれにせよ、そこにある「問題」は、現代韓国において依然、人を動かす「力」を持っているようです。
송강호 봉하마을, '변호인팀'과 노 전 대통령 참배 후 남긴 말은…
기사입력 | 2014-01-24 17:33:15
송강호 봉하마을 방문, 노 전대통령 묘소 참배 후 방명록 "영광이었습니다"변호인팀 송강호 봉하마을 노 전대통령 묘소 참배 방명록 "영광이었습니다" 글 남겨
배우 송강호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 후 "영광이었습니다"라는 글귀를 남겼다.
23일 송강호, 곽도원 등 영화 '변호인' 관계자들은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 같은 사실은 한 네티즌이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송강호와 변호인팀,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묘소에 참배 왔네요"라며 사진을 올려 알려지게 됐다.
공개된 사진에는 노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송 변호사'를 연기한 송강호를 비롯해, '고문 경찰 차동영 경감'을 열연한 곽도원, 제작자인 최재원 위더스필름 대표 등이 나란히 걷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특히 이날 송강호는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 후 방명록에 "영광이었습니다! 영화 '변호인' 영화배우 송강호"라고 글귀를 남겨 눈길을 끌었다.
영화 '변호인'은 1980년 부산에서 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 변호사'의 인생을 바꿀 다섯 번의 공판을 줄거리로 엮었다. 이 가운데 1981년 공안 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불법 감금하고 고문한 부림사건이 포함돼 있는데 당시 노무현 변호사가 맡았다.
송강호 변호인팀 봉하마을 방문 소식에 네티즌은 "송강호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 웬지 뭉클하네요", "송강호 봉하마을 방문, 의미있는 발걸음 했군요", "송강호 봉하마을 방문, 검은색 옷이 웬진 짠하네요", "송강호 봉하마을 방문, '변호인'이 천만관객 영화될줄 알았을까요?" 등 반응을 보였다.
한편 2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개봉 33일만에 1000만 관객돌파를 이뤄낸 '변호인'은 4만8340명이 관람해 누적관객수 1036만2630명을 기록하며 올해 첫 천만관객 영화에 등극했다. <스포츠조선닷컴>
http://sports.chosun.com/news/utype.htm?id=201401240100244350015439&ServiceDate=20140124
[단독]또 다른 고문조작 사건 피해자들이 말하는 영화 <변호인>
이종섭 기자
입력 : 2014-01-26 15:49:13ㅣ수정 : 2014-01-26 15:49:13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변호인>. 1981년 그 배경이 된 ‘부림사건’이 있기 얼마 전 대전에서는 ‘아람회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현직 군인과 경찰 및 검찰 직원, 교사 등이 이적단체 및 반국가단체를 구성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다. ‘부림사건’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 초반 신군부가 통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낸 대표적인 용공 조작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지난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 규명을 통해 고문 조작 사건임이 밝혀졌고, 2009년 법원의 재심 판결을 통해 관련자 모두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 25일 ‘아람회 사건’ 피해자들을 영화 <변호인>의 촬영 장소인 대전 중구 대흥동 옛 충남도청사에서 만났다. ‘아람회 사건’의 주요 관련자는 모두 7명이다. 여기에는 충남 금산고등학교 동창생 5명이 포함돼 있다. 이들 중 고문 후유증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이재권씨를 제외하고 사건 당시 육군 대위였던 김난수씨(60)와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였던 박해전씨(60), 경찰관이던 김창근씨(59), 검찰 직원이던 김현칠씨(59)가 이날 한 자리에 모였다.
‘아람회사건’ 피해자인 박해전·김현칠·김창근·김난수씨(왼쪽부터)가 지난 25일 영화 <변호인>의 촬영장소인 대전 중구 대흥동 옛 충남도청사에서 만나 과거 사건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옛 충남도청사는 <변호인>에서 주인공들이 재판을 받던 법정으로 등장한 곳이다. |이종섭 기자옛 충남도청사는 영화 <변호인>에서 주인공들이 재판을 받던 법정으로 등장한 곳이다. 공교롭게도 그 바로 옆에는 ‘아람회 사건’ 피해자인 김창근씨가 충남도경 대공분실로 끌려가 30일 넘게 불법 구금된 채 고문을 당하기 전, 처음 연행돼 왔던 옛 충남경찰청사가 자리하고 있다. 김씨는 그 건물을 가리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당시 천안경찰서에서 파출소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영문도 모른채 동료 경찰관에게 연행 돼 끌려온 곳이 바로 이곳 이었죠. 여기서 하루를 보내고 저녁때가 되자 눈을 가린채 캄캄한 지하실로 끌고 가더군요. 도경 대공분실이었어요. 한 달 넘게 친구들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온갖 고문을 당했죠. 고문과 조사를 받는 내내 우리는 변호사 접견 조차 제한당했어요.”
김창근씨는 영화 <변호인>을 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영화 <남영동1985>를 본 뒤 고문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한참을 고통에 시달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세 사람은 <변호인>을 보며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고 했다. 김난수씨는 “영화를 보며 어찌나 울었던지 옆 사람들 보기가 창피할 정도였다”며 “고문을 당하던 당시의 고통이 그대로 되살아 났다”고 말했다. 김난수씨는 ‘아람회’와 뗄레야 뗄 수 없는 피해자다. 공안당국은 이들이 난수씨의 딸 아람양의 백일잔치에 모여 반국가단체를 구성한 것으로 사건을 조작하기 위해 ‘아람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 사건으로 수십년을 고통 속에 살아 온 이들에게 <변호인>은 단순히 영화 속 이야기나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다. 박해전씨는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영화를 영화로만 볼 수 없었다”며 “비록 우리의 억울함은 밝혀졌지만 아직 역사적 과거청산이 분명히 이뤄지지 않았고 다른 형태의 국가폭력과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현칠씨는 도청사를 나서며 “영화 <변호인>이 국민들에게 시대정신을 일깨우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며 “더 이상은 우리와 같은 국가폭력과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261549131&code=95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