ソウルの近代建築物に残る「日帝強占期の残滓」

中央日報が出していたこの記事。要するに、「こういうのがあるから見に行けよ」ということですかそうですか。

民族問題研究所の名前が出ていたんですけど、結論的な主張は思ったより急進的ではないですね。朝鮮総督府のように残骸となる可能性は、しばらくはなさそうですから、そう急がんでもええかな…。その気になって探せば、他にもいっぱいあるでしょうし。

ソウル各地に残る日帝の痕跡
2016年06月07日15時45分
[ⓒ 中央日報/中央日報日本語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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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銀行の定礎石(写真=民族問題研究所のイ・スヌ責任研究員)

韓国の民族問題研究所は7日、韓国銀行やソウル市立美術館などソウル市内の一部建築物に日帝強占期の残滓が残っていると伝えた。この建築物の定礎石(建物の土台となる礎石)は、日帝強占期時代に朝鮮総督を務めた日本人が文字を刻んだという共通点がある。

民族問題研究所のイ・スヌ責任研究員は先月、民族問題研究所会報『民族愛』で「朝鮮総督が残した汚辱の跡-植民統治者の揮毫が彫られた定礎石と記念碑」という文を寄稿しながらこのような問題点を指摘した。

代表的な事例は伊藤博文が書いた韓国銀行本店の定礎石だ。イ氏は寄稿文で「ソウル中区(チュング)にあるこの建物は、もともと第一銀行韓国総支店として着工したが韓国銀行に変わった」とし「1909年7月13日の記事を見ると、この日の行事には韓国統監の職責から退いたばかりの伊藤博文が出席して直接定礎石を設置したと記されている」と伝えた。

イ氏によると、1920年代旧京城駅舎を新築した当時、斎藤実総督の文字によるソウル駅定礎石は書いた人が誰なのかを伝える部分は見えにくくなっているものの依然として同じ場所にある。また、ソウル市立美術館には1927年京城裁判所庁舎を新築した際、斎藤総督の文字で製作された定礎石が鮮やかな字体のまま残っている。

この他にも延世(ヨンセ)大学校内の綬慶園(スギョンウォン)の場所には「興亜維新記念塔」という造形物があるが、太平洋戦争を称賛する意味を込めて建てられたものだ。南次郎総督の文字が彫られているという。

また、ソウル麻浦区(マポグ)の来美安(レミアン)プルジオアパート団地の進入路に設置されている「善通物」という表示石もこのような造形物の一つだ。この表示石はこちらに旧水路である善通物川があることを伝えている。イ氏は「表示石に文字を刻んだ人物は日帝強占期時代に朝鮮総督だった宇垣一成だが、このような説明は脱落している」と指摘した。

イ氏は「朝鮮総督の文字が書かれた定礎石などの造形物は、ソウルだけでなく全国各地で目にすることができる」としながら「植民時代の残滓だからとやみくもになくすことができるわけではない」と説明した。イ氏はまた、「日帝が残した痕跡も我々の歴史の一部なので保存はするものの、人々が歴史を正しく知って気づきが得られる手段として活用するべきだ」と指摘した。

http://japanese.joins.com/article/609/216609.html?servcode=A00§code=A10

“한은·서울역 정초석은 일제 조선총독 글씨”
[중앙일보] 입력 2016.06.08 01:53 수정 2016.06.08 02:47 | 종합 12면
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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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본관 앞의 정초석. [사진 민족문제연구소]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 앞에 있는 ‘정초석(머릿돌)’ 왼쪽 부분에는 ‘명치 42년 7월 11일 공작 이등박문(公爵伊藤博文)’이라고 쓰인 흔적이 남아 있다. 건물 완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 놓은 정초석 글씨를 누가 썼는지를 적어 놓은 것이다. 해당 글씨는 초대 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썼다.

연세대엔 태평양전쟁 찬양 탑도
“무조건 없애기보다 보존” 주장도

실제로 1909년 7월 13일 신문기사에는 이날 행사에 이토가 참석해 직접 정초석을 설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시민사회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 이순우 책임연구원은 7일 “일제 시대 때 터널이나 주요 건물 등 기반시설을 건축하게 되면 조선총독급 인사의 글을 받아 정초석에 새기는 관행이 있었다”며 “당시에 만든 정초석 대다수가 사라졌지만 아직도 서울뿐 아니라 지방 등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지난달 민족문제연구소 회보 ‘민족사랑’에 실은 ‘조선총독들이 남긴 오욕의 흔적들-식민통치자들의 휘호가 새겨진 정초석과 기념비’라는 글에서 이런 내용을 전했다.

정초석은 서울역에도 있다. 옛 경성역사(京城驛舍)를 신축할 당시인 1923년 5월 20일에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의 글씨를 받아 만든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는 1927년 경성법원청사를 신축하면서 사이토 총독의 글씨로 제작한 정초석이 또렷한 글씨체로 남아 있다.

연세대 내 수경원 터에는 태평양전쟁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은 ‘흥아유신기념탑(興亞維新記念塔)’이라는 조형물이 있다. 이 탑은 일본이 1941년 12월 연희전문학교에 서 있던 언더우드 교장의 동상을 철거하고 세운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미나미 지로(南次郞) 총독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서울 마포구 래미안 푸르지오 아파트단지 진입로에 설치된 ‘선통물(善通物)’이라는 표지석도 이런 조형물 중 하나다. 이 표지석은 옛 물길인 선통물천(善通物川)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일제시대 때 조선총독이었던 우가키 가즈시게가 표지석의 글씨를 썼다.

이 연구원은 “식민시대의 잔재라고 무조건 없애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며 “일제가 남긴 흔적도 우리 역사의 일부이니만큼 보존은 하되 사람들이 역사를 바로 알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승기 기자

http://news.joins.com/article/20139285

まあ、この主張には反発もあるようですね。いろいろな意見があるのは自然なことです。

www.recordchina.co.jp

ちなみに、これはソウルの例ですけど、釜山にも「日帝強占期の残滓」が建築物の礎石となって残っている例があるのを、私は知ってます。

釜山広域市西区峨眉洞というところなんですが、ご存知ですか?これもまた、紛れもない韓国の歴史の一部であると思われます。

【釜山の風景】【福知山の風景】峨眉洞碑石マウルと福知山城 - 大塚愛と死の哲学

ご参考までに、「戦国時代の残滓」たる福知山城と併せてご覧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