順序としては、利川からソウルに帰ってきてからの話にな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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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に向かったのは、銅雀洞のこちら。
まだ日は高いですが、利川を一巡りしてきた後にソウル顕忠院の広い構内をがっつり回る気はあまり起きません。なので、目的だけさっさと達成してしまうことにします。
最新版のパンフレットなどを案内所で入手した後は、目的の場所まで直行です。
あ、こういう小ネタはその途中のおまけです。
目指すは、54墓域。
…のこちら。2140番。
ええ、かの有名な朴珍景大領のお墓です。墓前の石板には、「創軍同友会」名義で彼の事績が刻まれています。1969年設置ということは、彼の死(1948)からはもちろん、国軍墓地開設(1955)からも少し経ってから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創軍同友会については、こんな紹介記事があります。朴珍景は大阪外国語学校を出て日本軍に所属していた経験もある職業軍人でしたから、この組織のメンバーとなる資格は十分にありますし、実際、最初期のメンバーであった可能性は高いです。
[창간 95 특집] 美軍政 군사영어학교 출신들 '創軍동우회' 활동
양승식 기자 입력 : 2015.03.05 03:00 | 수정 : 2015.03.05 10:11국군 초기 9개 연대 창설 110명 중 현재 8명 생존
1946년 창군(創軍)의 주축 멤버는 해방 직후 서울에 세워졌던 군사영어학교 출신 간부들이었다. 영어군사학교는 1945년 12월 5일 미 군정이 한국에 미국식 군사제도와 교리를 전수하기 위해 영어를 이해하는 간부를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개교했다. 이듬해 4월 폐교되기까지 장교 110명을 배출했다. 이 장교들이 전국에 흩어져 국군 초기 9개 연대의 창설을 주도했다. 이들이 훗날 만들어진 '창군동우회'의 모태가 됐다.
이 대부분은 일본 대학이나 국내 전문학교 등을 졸업한 뒤 군에 들어왔다. 창군동우회 관계자는 "실용주의적인 미 군정이 간부 경험자를 선호했기 때문에 광복군과 일본군, 만주군 출신을 각각 20명씩 뽑으려 했는데 일본·만주군 출신은 자숙하는 분위기라 창군 때 많이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창군동우회가 공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1992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첫 친목 모임은 1947년 시작됐다고 한다. 대부분의 창군동우회 멤버는 세상을 떠났고, 현재 8명만 생존해 있다. 백선엽(95) 전 육군참모총장, 강영훈(93) 전 국무총리, 김종면(92) 전 육본 정보국장, 김계원(92) 전 육군참모총장, 황헌친(94) 전 1군사령부 참모장, 김웅수(92) 전 1군사령관 등 6명이 국내에 있고, 임선하(92)·원태섭(97) 장군 등 2명이 해외 체류 중이라고 한다.
현재 회장직을 맡고 있는 황헌친 전 참모장은 "우리나라가 이렇게 다시 서기까지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자유를 지켜온 국군의 전통과 명예가 존중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6·25의 살아 있는 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조선일보 창간 95주년을 맞아 3일 서울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3/05/2015030500375.html
朴珍景自身は日本式に言うと佐官クラスで若くして(20代で)死んでいますが、彼と親しくしていたであろう創軍同友会のメンバーの多くはのちに将官クラスになっています。そうした人たちが、済州に派遣されてそこで暗殺された彼の死を惜しんだだろうことは想像に難くないですし、十分に理解できる話です。
それは、済州4.3事件における住民に対する強硬鎮圧方針の指揮者としての評価とはまた別の、朴珍景という人物の一面である、と私は思い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