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央日報の「殉国七士廟」記事に始まって

興亜観音や殉国七士廟については私自身、話には聞いて知っていましたが、訪れたことはありません。実際、日本人でも知っている人がそう多いとは思えません。

そういう意味で、中央日報の取材陣が何をきっかけにしてこれに関心を持ったのか、興味があります。

日本語記事も中央日報日本語サイトに出ているのですが、ここでは情報量の多い韓国語記事をクリップしておきましょう。

【時視各角】A級戦犯を烈士として祀る国 - Joongang Ilbo 中央日報

戦犯を殉国烈士に…日本極右の「隠された聖地」 - Joongang Ilbo 中央日報

火葬場から戦犯の遺骨持ち出し12年隠して廟を造成(1) - Joongang Ilbo 中央日報

火葬場から戦犯の遺骨持ち出し12年隠して廟を造成(2) - Joongang Ilbo 中央日報

화장터서 전범 유골 빼돌려 … 12년 쉬쉬하다 묘역 조성
[중앙일보] 입력 2013.08.15 02:30 / 수정 2013.08.15 16:59

A급 전범 유골 묻힌 일본 우익의 성지 '순국칠사묘'를 가다

일본에서 태평양전쟁의 전범을 기리는 곳이라 하면 흔히 야스쿠니(靖國)신사를 떠올리지만 정작 우익세력의 본영(本營)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아이치(愛知)현 니시오(西尾)시 산가네(三ケ根)산 정상. 일본 혼슈(本州· 본토에 해당)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곳이다.

경비원 3명 취재진 따라붙어 감시

13일 오후 중앙일보·JTBC 취재진이 한국 언론으로는 최초로 이곳에 잠입해 취재를 시작하자 이 지역 번호판을 단 차량 1대가 갑자기 나타나 분위기를 살피더니 모습을 감췄다. 5분 후 7명의 전범의 유골을 묻어놓은 ‘순국칠사묘(殉國七士廟)’ 앞에서 취재를 하자 이번에는 조금 전 차량과 함께 순찰차량이 경고등을 켜며 함께 다가왔다. ‘수상한 침입자’로 신고가 접수된 것이다. 팔에 ‘순찰’이란 완장을 찬 채 다가오는 세 명의 경비원들은 묘역 관계자인지 우익단체 회원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들은 10여 분간 행여 묘역에 무슨 이상이라도 있을 것을 우려한 듯 취재진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감시의 눈을 늦추지 않았다. 야스쿠니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긴장감이 그곳에는 있었다.

일본의 우익들이 성역으로 여기는 ‘순국칠사묘’가 어떻게 조성되고 최악의 전범이라 불리는 7명의 유골은 어떤 경위로 이곳으로 흘러오게 됐을까.

태평양전쟁 종전 후 연합군은 도쿄 국제군사법정에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 등 25명을 A급 전범으로 지목했다. 이 중 16명은 종신형, 2명은 유기징역. 그리고 사형판결을 받아 교수형에 처해진 게 이곳에 안치된 7명이다. 이들은 1948년 12월 23일 교수형에 처해진 뒤 바로 화장됐다. 미국 측은 유골이 유가족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지만 화장장 직원을 매수한 전범 변호인의 손에 의해 유골 일부가 넘어갔다. 12년 가까이 다른 곳에 몰래 보존되던 유골은 60년 7월 산가네산의 등산도로 공사에 맞춰 유족들과 우익성향 재벌기업의 자금지원으로 묘역이 조성됨에 따라 이곳으로 이장됐다.


일 본토 중앙에 만든 ‘우익 본영’

풍광이 수려한 미카와(三河)만을 내다보는 절경의 위치다. 공교롭게도 혼슈 한가운데라 우익세력들은 “7명의 영웅이 일본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게 됐다”는 의미도 부여했다고 한다.

묘지 이름을 ‘순국칠사묘’로 짓는 데는 지역주민 일부의 반대도 있었지만 우익세력들은 이를 밀어붙였다. 나아가 당시 총리였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로부터 휘호까지 얻어냈다. 그러자 뒤를 이어 수십 개의 전투부대 위령비가 들어섰다. ‘순국칠사묘’를 중심으로 하나의 ‘우익 성역’이 조성된 셈이다.

7명의 ‘영웅’을 이장한 데 성공한 일본 우익세력들은 결코 이를 요란하게 밖에 알리지 않았다. 78년 10월 야스쿠니 신사가 이들 7명에 옥사한 7명을 더한 14명의 A급 전범을 합사(合祀)하면서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때도 이곳은 조용했다. 일부 우익 인터넷매체에만 조금씩 알려졌고 일부 지방지에 관련 행사가 소개됐을 뿐이었다. 이들은 은밀히 자신들끼리 제사를 지내는 한편 묘역을 영구화하기 위해 2010년에는 ‘순국칠사 봉찬(奉贊)회’란 사단법인까지 세웠다. 이 과정에 우익세력을 아우르는 ‘일본회의(日本會義)’의 지대한 후원이 있었다고 한다. 봉찬회의 안도 야스요시(安藤安義) 사무국장은 14일 “일본회의 회원들이 중심이 돼 봉찬회에 가입했고, 물질적·정신적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A급 전범이 쓴 ‘전범 찬양’ 비문도

우익의 성지가 된 이곳에는 A급 전범을 영웅으로 떠받들고 전쟁을 미화하는 격문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순국칠사묘’의 바로 옆 비석에는 마찬가지로 A급 전범이었던 오시마 히로시(大島浩) 전 주 독일대사의 한시가 새겨져 있었다. “증오스러운 구름이 스가모(7명이 사형된 구치소가 있던 동네이름)의 문을 닫고 북풍이 피비린내 나게 분다. (중략) 언제쯤 되면 이 7명의 충의(忠義)의 영혼을 편안히 해 줄 수 있을까.” 또 “후세에 정확한 역사가 쓰여질 그날을 기다리며 조용히 잠들다”(교토 야사카 신사 마쓰다이라 궁사), “아,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비행 제50전대 위령비문) 등의 글들이 있었다.

‘순국칠사묘’는 일본의 패전일인 8월15일에 대규모로 운집하는 야스쿠니 신사와는 다르다. 전쟁 당시의 쇼와(昭和) 히로히토(裕仁) 일왕(일본에선 천황)의 생일이자 일본인들이 ‘일본 독립일’로 여기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공표일인 4월 29일이 이곳의 잔칫날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날을 즈음해 야스쿠니를 매년 참배하는 아소 다로(麻生太觔) 부총리의 사고 구조와 일치한다. 이날만 되면 ‘순국칠사묘’에는 전국에서 각종 우익단체 회원 수백 명이 몰려 온다고 한다.

사진 설명


◆ 사진1 일본 아이치(愛知)현 산가네(三ケ根)산 정상에 위치한 ‘순국칠사묘’ 입구에 5m 높이의 비석이 우뚝 서 있다. 일반인의 유해를 매장하는 곳을 뜻하는 ‘무덤 묘(墓)’자가 아닌 제왕의 조상이나 훌륭한 인물을 모신 사당을 지칭하는 ‘사당 묘(廟)’자를 사용한 것이 눈길을 끈다.


◆ 사진2 태평양전쟁 A급 전범으로 지목돼 교수형에 처해진 7명의 유골을 봉안한 ‘순국칠사묘’. 비석 바로 밑에 이들의 유골을 담은 상자가 묻혀 있다. [김현기 특파원]


◆ 사진3 비석 휘호를 1960년 이 묘지 건립 당시 총리였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썼다고 비석 뒷면에 새겨져 있다.


◆ 사진4 묘비 인근 안내 표석에는 이곳에 묻혀 있는 A급 전범 7명의 유골이 어떤 경위로 이곳에 묻히게 됐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이치현 산가네산=김현기 특파원

http://joongang.joins.com/article/654/12347654.html

[단독] 일본 극우의 숨겨진 성지 '순국칠사묘' 가보니…
[JTBC] 입력 2013-08-15 21:21 수정 2013-08-15 21:22

[앵커]

이렇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로 매번 시끄럽지만 일본 우익들의 진짜 성지는 따로 있습니다. A급 전범 7명의 유골을 모아놓은 순국7사묘인데요, 전범들의 위패만 있는 야스쿠니보다 더 신성시되는 곳입니다.

김현기 특파원이 그 현장을 단독 취재했습니다.

[기자]

여기는 도쿄에서 300km 가량 떨어진 아이치현 산가네산 정상입니다.

이곳에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으로 교수형에 처해진 도조 히데키 등 7명의 유골을 묻어놓은 묘지공원 '순국 7사묘'가 버젓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묘역 이름인 '순국칠사묘'의 휘호는 당시 총리였던 기시 노부스케, 즉 아베 신조 현 총리의 외할아버지가 썼습니다.

총리가 앞장서서 아시아 전역에 막대한 피해를 미친 침략전쟁 주범들을 열사로 둔갑시킨 겁니다.

'순국칠사묘' 묘석 뒷면에는 태평양전쟁의 총책임자인 도조 히데키를 포함해 전범 7명의 이름이 자필 글씨로 새겨져 있습니다.

위패만 안치해놓은 야스쿠니와는 별개로 군사재판에서 사형당한 최악의 전범 7명의 유골을 실제로 바로 이곳 땅밑에 묻어두고 영웅으로 칭송하고 있는 겁니다.

이 묘역에는 또 비행 제67전대, 기포병 제4연대 등 전투부대별 위령비 100여 개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쟁의 향수를 지닌 일본 우익의 성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조성한 의도가 엿보입니다.

이에 따라 해마다 4월 29일이면 전국의 우익 세력이 이곳에 모여드는데요, 이 날은 바로 태평양전쟁의 진정한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쇼와시대 히로히토 일왕의 생일입니다.

[순국칠사묘 사무국장 : 올해도 4월 29일에 200여 명 넘게 모여 참배했습니다.]

하지만 한적한 시골 산 정상에 위치한데다 참배 행사도 은밀하게 치르다보니 순국칠사묘는 해외는 물론 일본 국내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왜곡하고 전쟁이 가능한 군사대국으로 나아가려는 아베 정권, A급 전범을 순국열사로 둔갑시키고 있는 이곳은 일본의 뒤틀린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현장입니다.

http://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0326290

記事の内容や論旨にはいろいろと反発を覚える向きも多いと思いますが、「韓国人の立場からは何が見えて、どのような論理が組み立てられているか」ということを知るための参考にはなります。

こういう記事が出ると、とりあえず殉国七士廟を訪れる韓国人は増えるような気がします。韓国語版のパンフレットとか、用意しといたほうがいいかもしれませんね*1

で、これ自身は中央日報・JTBCの単独取材なのですが、朝鮮日報聯合ニュースが独自の情報を付け加えた後追い記事を掲載しています。朝鮮日報では昭和天皇へ、聯合ニュース護国神社遊就館呉市海事歴史科学館大和ミュージアム)へと話が発展していってます。

日王이 '원격 참배'했던 일본 A급 전범 신사는 따로 있다는데...
조선닷컴
입력 : 2013.08.15 09:54 | 수정 : 2013.08.15 09:54

일본 2차대전 전범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보다 일본 우익세력의 본영이라고 할 수 있는 신사가 따로 있다고 중앙일보가 15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아이치현 니시오시 산가네산 정상에 있는 순국칠사묘에는 A급 전범 7명의 유골이 묻혀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와 달리 이곳에는 이들 전범의 유골이 직접 보관돼 있어 우익 세력들의 본영으로 숭상시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위치도 일본 본토인 혼슈섬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마치 이들 전범들이 일본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도 신문은 전했다.

태평양 전쟁후 연합군에 의해 도조 히데키 전 일본 총리 등 25명이 A급 전범으로 지목됐고, 7명은 사형, 16명은 종신형, 2명은 유기징역을 받았다. 사형을 받은 7명의 유골이 이곳 순국칠사묘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사형 후 화장한 유골이 유가족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지만, 전범 변호사가 화장장 직원을 매수해 유골 일부를 유족에게 전해줬고, 몰래 보관돼오던 유골 일부가 지난 1960년 이곳 묘역이 조성되면서 이관됐다는 것이다.

이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왕이었던 히로히토 일왕의 일화만 봐도 이곳이 우익 세력들에게 얼마만큼 숭상시 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매체는 보도했다.

히로히토 일왕은 1979년 이곳에서 35km 가량 떨어진 곳에서 열릴 예정이던 식수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인근을 찾았다가 시내에 있는 A급 호텔을 찾지 않고 굳이 산골짜기의 허름한 한 호텔에 묵었다고 한다.

그 호텔은 바로 순국칠사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다음날 오전 6시쯤, 궁내청 직원이 방으로 들어가자 히로히토 일왕 부부는 호텔 창가에서 순국칠사묘 방향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부동자세로 20분간 참배의 예를 올리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일왕으로서 직접 전범 유골이 있는 묘지에 참배를 갈 수 없어 대신 '원격 참배'를 하기 위해 묘지 인근 호텔을 일부러 골랐다는 것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15/2013081500556.html

<일본 곳곳에 '침략 미화·과거사 왜곡 시설' 산재>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일본 각료들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계기로 일본 곳곳에 자리잡은 채 제국주의 침략을 미화하고 과거사를 왜곡하는 용도로 쓰이는 시설이 눈길을 끌고 있다.

대표적인 장소가 아이치(愛知)현 하즈초(幡豆町) 산가네(三ケ根)산에 있는 '순국칠사(七士)묘'이다. 이곳에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 등 극동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 판결을 받고 사형된 7명의 유골이 묻혀 있다.

이 유골은 전범들이 1948년 12월23일 교수형에 처해진 뒤 화장되자 유족들이 몰래 훔쳐내 보관하던 것이다. 재판 당시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 전 조선 총독의 변론을 맡았던 산몬지 쇼헤이(三文字正平) 변호사가 1952년부터 묘 건설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싸늘한 여론에 부딪혀 묘를 조성할 곳을 좀처럼 찾지 못했지만 1960년 유족들과 교류가 있던 하즈초에 묘역을 완공했고,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당시 총리가 쓴 '순국칠사묘(殉國七士廟)'라는 글자를 새겨넣은 묘비도 세워놓았다.

야스쿠니(靖國)신사가 명부와 위패만 보관하는 반면, 이곳에는 실제 유골을 묻어 놓았다는 점이 다르다. 주변엔 수많은 전몰자 위령비까지 세워져 우익단체의 제사와 참배가 이어지고 있다.

2007년부터 3년간 일본 내 우경화 관련 시설을 현지 조사한 동북아역사재단에 따르면 일본 곳곳에는 메이지 유신 이래 전사자의 위패를 합사한 '호국신사'가 세워져 있다. 주된 목적은 야스쿠니 신사와 연계해 침략전쟁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야스쿠니신사 경내에는 일본 최초의 군사박물관인 유슈칸(遊就館)이 존재한다. 유슈칸은 전후 연합국에 의해 폐관됐다가 1985년에 다시 문을 열었고, 보수 공사를 거쳐 2002년 재개관했다. 이곳도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군국주의 일본이 벌인 각종 침략전쟁을 '어쩔 수 없는 자위 노력'이나 '아시아 해방을 위해 벌인 전쟁'으로 묘사하며 미화하고 있다.

또 히로시마(廣島)현 구레(吳)시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해군력의 상징인 야마토(大和)전함을 소개하는 박물관(구레시해사역사과학관)이 2005년 문을 열었다. 일본은 이밖에도 각종 박물관과 기념관을 통해 가해 사실 대신 피해의 기억을 강조하고 있다.

2013/08/15 15:40 송고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3/08/15/0602000000AKR20130815067100009.HTML

*1:「(内容的に)単純に翻訳するだけでいいのかどうか」は、かなり微妙な問題です。まあそれは、当事者の考え次第で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