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1年の「南海郡・朴珍景銅像撤去論争」の記録

ハンギョレさんの済州4.3に関する連載アーカイブの一部抜粋。銅像撤去を主張する人とそれに反対する人、それぞれの代表者の声が収録されています。

この後、数年後にその場所で改修工事があった時にもこの問題は蒸し返されますが、結論から言うと、朴珍景の銅像は今も「南海郡民の丘」に立っ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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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4.3인가] 남해의 불붙은 동상 철거 논쟁

4·3당시 무차별적인 강경 토벌작전으로 민간인들을 '집단학살'시켰던 박진경 11연대장. 최근 그의 고향인 경남 남해군내 군민공원에 세워진 '기념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박진경의 양자인 박익주(11, 12대 민정당 국회의원)씨측의 반발이 거세지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논쟁의 발단은 지난 98년 남해에 거주하는 김영식(남해천주교회) 신부가 박진경 동상 뒷면에 쓰여진 '…북괴는 호시탐탐 남침적화통일을 목표로 제주도를 공산지하 설정…1948년 4월 3일 무장폭동을 봉기…양민학살 만행을 감행하자…' 등의 글을 접하게 되면서 부터다.

이후, 남해지역 내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동상 철거 여론이 확산되고, 지난해 4월 21일에는 이태문(당시 남해사랑청년회 회장)씨가 남해신문의 기고를 통해 공식화시키게 된다.

이씨는 기고문을 통해 "혹시나 우리고장을 찾을지도 모르는 제주도민이나 제주도 4·3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군민동산에 올라와 이 글귀를 보고 어떤 생각을 가질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며 "짧은 나의 소견으론 종친회의 기념비적인 성격이 강한 그 동상은 종친회관 앞이나 기타 장소로 옮기고 군민동산에는 군민들의 화합을 상징하고 우리나라의 평화통일을 상징하는 소형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시민단체 기관지인 「남해사람」(2000년 4월호)에는 김익렬연대장의 유고록을 인용하며 '박진경연대장은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남해신문 역시 지난 12월 29자에 "군민동산에는 여전히 양민을 살상했던 박진경 대령 동상이 보란 듯이 우뚝 서 있습니다. 또 6·25때 죄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진상규명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이에, 박익주 씨를 비롯한 반공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태문씨에 의하면 "신문기고가 나간 이 후 다각적으로 방해압력이 가해졌을 뿐 아니라, 지난해 현충일 행사 때에는 '김정일이 대통령 후보로 나와도 투표할 사람들'이라며 시민단체를 불순집단으로 매도했다"고 한다.

시민단체측에서는 현재 박익주씨 측에 토론회를 제의한 상태다. 공식적인 답변은 아직 없는 상태지만, 군민공원에 세워진 박진경 대령의 동상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보자는 의도에서다.

고 박진경의 양자인 박익주씨. 기자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한겨레도 그런 집단 아니냐. 사사건건 왜 이런 문제들에 난리냐"며 독설을 들이댔다.

▲ 남해지역에서 '박진경 대령 동상 철거' 움직임이 일고 있다던데요.

  • 공산당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박진경 대령은 제주도 가서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 내 개인차원의 문제보다는 대한민국의 전 군(軍)의 명예를 훼손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무시한 처사다. 제주도에서 이승만 문제도 꽤 복잡한 것 같던데, 서서히 풀어나갈 것이다.

'박진경 대령 참 아까운 사람이었다'는 걸 제주에 계신 여러 어른들도 말씀하신다. 그 쪽 충혼묘지에도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 시민단체측에서 제의한 토론회에는 응하실 생각입니까.

  • 토론회는 무슨. 내가 왜 그런 사람들과 토론회를 해야하나. 그 사람들, 그전에 '4·3이 어떤 것인가'부터 알아야 한다.

날씨 풀리면 4·3당시 진압작전에 참가했던 선배님들 모시고, 남해 내려가서 얘기할 생각이다. 요즘 사람들이야 신문이나 책만 보지, 실상을 잘 모른다.

박진경 대령 뿐 만 아니라, 나 역시 명예가 많이 손상됐다. 그러나, 소송은 걸지 않은 상태다. 하고 싶어도 나 역시 남해 출신이고 지역기반 신문을 그렇게 까지 죽이고 싶지는 않다.

▲ 박진경 장군 동상은 누가, 언제 세웠는지요.

  • 아마도 1991년경에 세웠을 것이다. 내 개인이 사재를 털어 세운 것이 아니다. 장군동우회나 성우회 같이 뜻있는 단체에서 박진경 대령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그래서, 더 문제가 된다.

제주=하니리포터 고성만 기자

편집시각 2001년01월06일16시23분 KST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14005000/2001/014005000200101061623015.html

[왜4.3인가] "동상철거 통해 통일동산으로…"

박진경 동상철거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시켰던 이태문 남해사랑청년회 회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현재 '박진경 동상철거 운동'은 남해사랑청년회를 비롯하여 남해주민회의, 전교조남해지회, 한국통신노조 남해지부, 사회보험노조 남해지부, 참교육학부모회 남해지부, 남해신문노동조합 등의 단체들이 '남해지역운동 연대회의'를 구성해 전개해 나가고 있다.

이태문 씨는 "동상철거를 통해 반공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군민동산을 통일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작년 4월 남해신문 기고를 통해 처음 문제제기를 하셨는데요. 쉽지 않은 선택이셨을 것 같습니다.

▶ 지난 98년 11월경 저희 남해사랑청년회와 남해지역연대회의는 제민일보 4·3특별취재반의 한 기자 분을 모시고 4·3의 진상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군민동산에 세워져있는 고 박진경 씨의 동상문제가 최초로 거론됐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과연 사회와 군민의 정서상 받아들여질 수 있는 문제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또 작년 4월에 청년회 명의의 기고가 나오기까지 저희 청년회를 걱정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혹시라도 저희가 다칠 수도 있다며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분단을 극복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철조망을 철거하는 일만큼이나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반공, 반북이데올로기를 조장시키는 점 또한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역의 정서도 반공이데올로기가 점차로 줄고 있다고 믿었기에 기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역사회 내에서 박익주(고 박진경의 양자)씨 측의 방해 압력이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요.

▶먼저 기고를 하고 난 이후에 남해신문사에 세 차례정도의 항의성 전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집과 고향집에 수 차례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한 번은 그 분(박익주)이 만나자고 하여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박익주 씨는 "고 박진경 대령은 매우 훌륭한 분이셨다. 누구의 사주를 받고 글을 쓰게 되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민일보의 '4.3은 말한다'와 김익렬 전 중장의 회고록을 읽고 느낀 점이 많아서 기고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박익주 씨는 "그 당시 국군의 반 이상이 빨갱이였고, 김익렬 씨도 빨갱이었다"고 몰아부쳤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 차례의 언쟁은 있었지만 별 문제없이 헤어졌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박익주 씨는 현충일 기념식의 자리에서 남해사랑청년회를 "김정일이가 대통령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불온한 청년들이 있는 단체"라며 마녀사냥 식으로 몰아부쳤습니다. 그 이후 박익주 씨는 계속해서 신문사와 남해군관계자 등 여러 사람을 만나러 다니며 군민동산 문제를 제기하는 일을 막아달라고 이야기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동상철거 문제와 관련하여 박익주 씨 측에 토론회를 제안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응은 어떠한가요.

▶토론회 얘기는 김두관 남해군수님과 남해신문사장님, 박익주 씨가 만나는 자리에서 신문사 사장님이 제안했지만, 그 자리에서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박익주 씨 측에서 토론회에 관한 언급은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지역사회 내 여론은 어떻습니까.

▶60대 한 어른이 말씀하셨던 "그 동상은 군사정권이 들어섰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지 지금 같으면 어디 가능한 일이었겠는가?"라는 말로 대변되듯이, 동상의 존재가 부당하다는 여론이 압도적입니다. 그러나 '세워져 있는 동상을 굳이 철거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여론도 비등한 실정입니다. 거의 대다수 사람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철거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4·3특별법 제정 이 후, 제주도민들 역시 헤이해진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남해지역에서 이러한 문제가 제기되는 것 자체에 상당한 의미를 둘 수 있겠는데요. 4·3단체나 유족회, 기타 제주도민들에 대해 하고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4·3의 문제는 특별법이 제정되고 명예회복이 이루어진다 해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의에, 분연히 떨쳐 일어난 제주도민의 정신을 계승하는 일,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서 단독선거를 거부하는 등 그 당시 제주도민의 통일의지를 계승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4·3특별법은 제정되었지만,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4·3이 북괴에게서 조정되어 공산주의자가 무장폭동을 일으킨 일'(고 박진경 대령의 동상비문 일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정서를 걷어내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주도의 각 사회단체는 이러한 점들을 먼저 앞장서서 계승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향후대책은 어떻게 구상하고 계십니까.

▶1년이 넘게 이 문제를 제기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릅니다. 단지 동상을 철거하는 것만이 아니라 군민들의 의식도 변화되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박익주 씨와의 공개토론회 자리를 마련하고, 군민들에게 선전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 계획입니다. 군민동산을 '통일동산'으로 만들기 위해, 조형물을 설치하면서 고 박진경 대령 동상의 존재가치를 줄여나가는 일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하니리포터 고성만 기자

편집시각 2001년01월08일14시59분 KST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14005000/2001/014005000200101081459040.html

なお、移転反対の先頭に立っていたパクイクジュ氏は朴珍景の養子という関係にあり、南海郡を地盤に国会議員を2期務めた、地域の名士といってよい人物です。

地元紙の「南海新聞」紙上でも、こんな記事で名前を見ることができます。

“순국선열의 애국애족 정신 이어받아”
제55회 현충일 추념식 거행
2010년 06월 11일 (금) 박진영 기자

제55회 현충일을 맞아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는 추념식이 지난 6일 남산공원 충혼탑에서 진행됐다.

이날 추념식에는 보훈가족을 비롯해 제5회 동시지방선거 남해군 지역 당선자, 각 기관단체장, 지역주민, 공무원 등이 참석해 순국선열들의 얼을 기렸다.

추념식은 오전 10시 울린 사이렌 소리에 맞춰 1분간 묵념을 한 뒤, 정현태 군수의 헌화와 분향을 시작으로 박익주 전 국회의원, 각 보훈단체장들과 도의원, 군의원, 유관기관단체장들의 헌화와 분향이 이어졌으며, 다음으로 남해여자중학교 3학년 박정영 학생의 헌시낭송이 있었다.

또한 이날 6.25전몰군유자녀회 김봉숙 회장은 ‘아버님께 바치는 글’을 통해 고인을 애도하는 뜻을 전했다.

이어 정현태 군수는 추념사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자리에 참석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 드린다”며 “현재 군에서는 보훈회관과 기념탑 건립에 힘을 쏟고 있는데 앞으로도 행정에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보훈대상자의 나라 사랑 정신을 계승하고 남해보훈가족들이 다양한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인사말을 전했다.

현충일 노래제창으로 폐회된 추념식은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지 못하는 보훈가족과 지역주민들의 식지 않은 추모열기로 충혼탑 광장은 뜨거웠다.

http://www.namhae.tv/news/articleView.html?idxno=13588

また、移転推進派でこの当時青年会会長だったイテムン氏は現在、南海郡の農民会会長を務めているみたいです。

전농남해군농민회, 이태문 회장 추대
지난 13일, ‘우리 농업지키기 농민회 후원의 밤’ 개최

2017년 01월 20일 (금) 김인규 기자

전농남해군농민회(이하 남해군농민회)가 신임임원진 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인 출발 행보를 알렸다.

남해군농민회는 지난 13일 남해종합사회복지관 지하 식당에서 신임임원진 출범과 함께 ‘우리 농업지키기 농민회 후원의 밤’을 개최했다.
후원에 밤에는 남해군농민회원과 내빈으로 박영일 군수, 박득주 의장을 비롯한 지역별 농업협동조합장, 농업업무 관련 공무원 등이 참석해 남해군농민회의 발전을 기원했다.

이날 남해군농민회는 올해부터 새롭게 출발하는 신임임원으로 이태문 회장을 추대하고, 부회장에 송모열·하용관, 사무국장에 서정훈 씨를 선출했다.

이태문 신임회장은 “지난 2003년 재창립한 남해농민회는 그동안 많은 농민들의 관심과 노력 그리고 모든 농민단체의 연대로 ‘남해군 학교급식비지원조례’ 제정과 ‘벼경영 안전자금지원조례’를 주민발의로 만들어냈다”며 “다시 쌀값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지금 우리 쌀과 농업을 지키기 위한 힘의 첫 번째 조건은 농민단체간의 무한한 연대와 단결이다“며 ”벼랑 끝에 몰린 우리 농업과 농촌을 위해 남해군농민회로부터 단결과 연대의 밀알이 되겠다“고 밝혔다.

/김인규 기자

http://www.namhae.tv/news/articleView.html?idxno=30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