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義大事件については、過去に何度か書いてきました。
ぶっちゃけた話、朴槿恵が大統領選挙で敗れでもすれば、こうした補償には厳しい状況が到来することが予想できるだけに、何としても李明博政権下で実現しておく必要はあったと思われます。
国家報勲政策に基づいて、学生たちが「民主化運動関連者」として認められ、殉職警察官が「国家有功者」に認定されるというのは、現代韓国ではありうべき姿ですから、この件についてはとりあえずは「落ちるべきところに落ちた」という感じがします。
もちろん、済州がそうであるそうに、両者の間の葛藤は解消されることなく、今後も持ちこされていくことになるでしょう。
記事入力 : 2012/10/24 12:20
東義大事件、23年ぶり殉職者への補償始まる殉職・負傷した警察関係者の補償手続き、来月スタート
デモに参加した学生は2002年に補償
23年もの間、十分な補償が行われなかった釜山・東義大学事件の殉職者と遺族の恨みも、ようやく晴れることになった。警察庁は23日、事件で殉職した警察関係者の遺族や負傷した警察官などに対する補償の手続きを始めたと発表した。写真は、殉職した警察官・戦闘警察隊員など7人を追悼するため1991年5月3日に中央警察学校(忠清北道中原郡)で執り行われた「忠義宣揚塔除幕式」で、涙を流す遺族。/写真=チョン・ヤンギュン記者「23年前から殉職した警察官らの名誉回復と補償問題について抗議してきたが、今ようやく実現した。天国にいる弟に、ようやく顔向けできる」(東義大学事件で殉職したチョン・ヨンファン警査〈巡査部長に相当〉の兄、チョン・ユファンさん)
1989年5月3日に釜山で起こった東義大事件では、警察官・戦闘警察(機動隊)隊員合わせて7人が死亡し、11人が負傷した。この事件で殉職・負傷した警察関係者に対する補償手続きが、事件から23年を経てようやく始まった。警察庁は、東義大事件で犠牲になった警察関係者に対する補償金の申請を、来月1日から12月31日まで受け付ける。殉職した警察官の遺族には約1億2700万ウォン(約920万円)、戦闘警察隊員の遺族には約1億1100万ウォン(約800万円)が支払われる予定だ。負傷者にも、けがの程度により最高で5000万ウォン(約360万円)の補償金が支払われる。
当時デモに参加していた学生ら46人は、2002年に「民主化運動関連者」と認められ、1人平均約2800万ウォン(現在のレートで約200万円、以下同じ)、最高で5000万ウォンの補償金を受け取った。学生から死者は出ておらず、負傷者が1人いるだけだった。46人に支払われた補償金は、拘束日数に応じた生活支援金だった。しかし警察側は事件当時、殉職警察官の遺族が1190−1890万ウォン(約86万−137万円)、戦闘警察隊員の遺族が368万ウォン(約27万円)の補償金を受け取っただけで、後は同僚警察官が募金した香典があるにすぎなかった。
今回の補償決定は、今年2月に制定された「東義大事件犠牲者の名誉回復および補償に関する法律」によるものだ。この法律によると、殉職した警察官の遺族には、殉職当時の公務員基準所得月額の平均を44.2倍した金額を、現在の価値に換算して支給する。また死亡した戦闘警察巡警(機動隊員)の遺族には、当時の少領(少佐に相当)10号俸報酬月額を55倍した金額を、現在の価値に換算して支給する。警察関係者は「警察官や戦闘警察隊員が職務中に殉職した場合に支払われる補償金の現行基準を、そのまま適用した」と語った。
負傷した警察官や戦闘警察隊員には、1人当たり5000万ウォンを上限として、等級により補償金を支給する。障害等級1級から7級は3000−5000万ウォン(約220−360万円)、8−12級は2000−3000万ウォン(約150−220万円)、13・14級は2000万ウォン以下の補償金を受け取る。犠牲者の遺族や負傷者本人が、事件の経緯に関する書類や家族関係の証明書類、病院の診断書などを提出すると、補償金を支給するかどうかや支給金額などが90日以内に決定される。
事件で殉職したチョン・ヨンファン警査の兄、チョン・ユファンさん(53)は「金大中(キム・デジュン)政権時代、事件を主導していた学生たちが民主化の功労者に指定されたと聞いて、警察官の名誉が踏みにじられると思い、(民主化功労者指定は憲法違反だという)憲法訴願を行ったが、却下された」と語った。
事件当時、戦闘警察隊員として現場に投入されて全身にやけどを負い、4年前に肝臓がんで死亡したチャン・ソンイムさんの弟チャン・ソンフンさん(44)も「兄は東義大事件後に退役し、結婚もできなかった。何度も再手術を受け、毎日酒を飲んで暮らし、この世を去った。今になって補償されるのはありがたいことではあるが、兄が再び社会生活に復帰し再起できるよう早くから支援してくれていれば、という無念さが残る」と語った。
■東義大学事件とは
1989年5月3日、釜山にある東義大学の図書館で、私服警察官5人を人質に取り学生たちがデモを行っていた。侵入する警察を阻止するため学生たちが投げた火炎瓶が原因で火災が発生し、警察官7人が死亡、学生・警察官合わせて11人が負傷した。2002年に「民主化運動関連者名誉回復および補償審議委員会(民主化審議委)」が、事件の関係者のうち46人を「民主化運動関連者」と認め、補償金を支給した。韓国国会は今年2月、同じ民主化審議委で、当時殉職した警察官の名誉回復および補償に関する法律を制定した。
権承俊(クォン・スンジュン)記者 , チョン・ギョンファ記者
http://www.chosunonline.com/site/data/html_dir/2012/10/24/2012102401241.html
追記:「朝鮮日報」はその後も関連記事を出していて、面目躍如といった感があります。これに「ハンギョレ」の記事を対比させれば面白いと思うのですが、今のところ記事を見つけられていません。
[사설]동의대 殉職 경찰들 명예 되찾는 데 걸린 23년
입력 : 2012.10.24 22:451989년 5월 부산 동의대 학생 시위를 막다 순직(殉職)하거나 다친 경찰 18명에 대한 보상 절차가 다음 달 1일 시작된다. 지난 2월 제정된 '동의대 사건 희생자 명예 회복 및 보상 법률'에 따른 것이다. 사건 발생 23년 만이다.
동의대 시위는 1989년 3월 한 교수가 입시에 부정이 있었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교문 밖으로 나온 시위대는 5월 2일 진압 전경 5명을 끌고 가 교내 도서관에 감금했다. 경찰이 그들을 구출하려고 3일 새벽 도서관에 진입하자 시위대는 복도에 석유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져 순식간에 현장은 불바다가 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4명과 전경 3명이 불에 타 숨지고 11명이 부상했다.
대법원은 1990년 6월 이 사건 관련 학생 31명에 대해 방화치사죄(罪)로 무기징역에서 징역 2년까지를 선고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발족한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2002년 사건 관련자 46명을 민주화 운동자로 결정하고 1인당 평균 2800만원씩 보상금을 지급했다. 경찰관의 목숨을 앗아간 방화범들은 '민주 헌정 질서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민주화 운동 보상법 2조) 유공자가 되고 불법 시위 진압에 나섰다 순직한 경찰관은 졸지에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정권의 하수인이 돼버렸다. 숨진 경찰과 전경 유족들에게 주어진 건 공무원연금법과 군인연금법에 따른 단순 유족 보상금 368만~1890만원이 전부였다.
유족들은 2005년 심의위의 결정이 고인들의 명예를 떨어뜨렸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헌법재판소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却下)했다. 그 후 경찰 총수들은 사건 발생 20년이 흐르도록 순직 경찰관 추도식에 얼굴도 비치지 않았다. 당시 전신 화상을 입은 한 전경은 전역 후 몇 번씩 재수술을 받으며 정부의 냉대(冷待)에 울분을 삭여오다 4년 전 간암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를 출범시킨 정권은 "일시적으로 거꾸로 해석된 역사는 반드시 재해석된다"고 했다. 동의대 사건 희생 경찰관들의 뒤늦은 복권(復權)과 명예 회복은 '특정 정권의 이념적 편향에 의해 잘못 해석된 역사는 반드시 훗날 재해석된다'는 사실을 역설적(逆說的)으로 증명하고 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24/2012102403190.html
文, 동의대 학생 변호하고 민주화유공자 심사위원도
김봉기 기자
입력 : 2012.10.25 03:01 | 수정 : 2012.10.25 03:26文측 "심사엔 참여 안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부산 동의대 사건' 가해 학생들을 2001년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한 '민주화유공자 보상심의위원회'의 분과위원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새누리당이 확인한 민주화보상심의위 자료에 따르면 문 후보는 2000년 10월 12일부터 2001년 11월 30일까지 보상심의위의 '관련자 및 유족 여부 심사분과위' 위원으로 활동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2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여성프라자에서 열린 당 여성위원회 출범식에 참석, 여성 당원들에 둘러싸여 웃고 있다. /조인원 기자심사분과위는 2001년 10월 29일에 주요 관련자 9명을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했고, 11월 26일에 37명을 추가로 인정해 모두 46명을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했다. 문 후보는 그 직후인 11월 30일에 위원직에서 중도 사퇴했다. 민주화보상심의위는 2002년 4월 27일 46명 모두를 민주화 유공자로 최종 인정했다.
동의대 사건은 1989년 경찰관을 감금 중이던 학생들을 진압하기 위해 건물 안에 들어갔던 경찰 및 전경 7명이 학생이 던진 화염병에서 발화한 불에 타 죽거나 건물에서 떨어죽은 사건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문 후보가 1989년 사건 당시 가해 학생들의 변호인으로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하는 과정에도 참여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후보 측은 "문 후보가 보상심의위 분과위원으로 활동했던 것은 맞지만 동의대 사건에 대해서는 본인이 변호인을 맡았다는 이유로 스스로 제척 사유가 된다고 밝히고 일체의 의견을 밝힌 적도 없고 찬반 표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문 후보는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서 사건의 실체는 당시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와 다르다고 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25/20121025001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