草梁倭館と龍頭山公園

目に留まったのは聯合ニュースの記事ですが、これはこちらの西日本新聞の記事を先に読んだ方がいいでしょう。

復元して後世に伝えたい 釜山市・釜山草梁倭館研究会会長 崔 次鎬さん(66)
2010年3月30日 10:22

 李氏朝鮮時代の1678年から195年間、釜山に倭館(ウェグァン)があったのをご存じでしょうか。龍頭山(ヨンドゥサン)公園や日本総領事館がある一帯で、草梁(チョリャン)倭館と言いました。江戸時代、朝鮮との外交窓口だった対馬藩が貿易拠点として開設し、約33万平方メートルの敷地に約500人の日本人が暮らしたそうです。

 同公園や南浦洞(ナムポドン)など一帯の路地は当時、日本人が造った道を今も使っており、釜山の発展の基礎になったと言ってもいいほどです。しかし建築物も資料も残っておらず、倭館の歴史を知る人は多くありません。

 埋もれた歴史を掘り起こし、研究すると同時に、当時の建物の一部を復元し後世に伝えようと2月中旬、研究会を発足させました。会員は学者や教師、博物館学芸員、私のような文化観光解説士など20人。今後、50人ぐらいまで増やせればと思っています。

 倭館には対馬藩儒学者雨森芳洲(あめのもりほうしゅう)も滞在したことがあり、長崎や福岡には芳洲の研究者も数多くいます。ぜひ日韓で協力し、セミナーを開いたり研究成果を本にまとめたりしたいものです。

http://qnet.nishinippon.co.jp/travel/busan/saram/20100330_2393.shtml

まさの「その場所」である龍頭山公園も含めて、釜山という都市には良くも悪くも「近代」の刻印が深く刻まれていますから、この草梁倭館が何らかの形で「復元」されるとしたら、それが釜山の都市アイデンティティにどんな影響力を持つことになるのか。あるいはもしかして、単なる観光資源程度の存在にとどまるのか。

これもしばらくは様子見ですね。

交易窓口の「草梁倭館」 復元に向け韓日シンポ=釜山
2013/11/10 14:55

【釜山聯合ニュース】江戸時代に朝鮮と日本の貿易・外交ルートの役割を果たした釜山の「草梁倭館」の復元に向けた韓日共同シンポジウムが28日に開かれる。

 釜山草梁倭館研究会の主催で開かれる今回のシンポは「草梁倭館、どのように復元するのか?」をテーマに、長崎県と釜山地域の学界関係者、市民ら80人余りが出席する。

 シンポでは鎖国時代の約200年間、日本で唯一西洋に開かれていた貿易の窓口「出島」(長崎)の復元事業からその方法を探る。長崎市経済局文化観光部の出島復元整備室の関係者がシンポで復元プロセスを説明する予定。

 釜山草梁倭館研究会関係者は「出島という近代遺跡を復元し、教育・観光資源に活用し、都市(長崎)のアイデンティティーまで構築する様子が印象的だった。草梁倭館も一部だけでも復元し、釜山の観光資源に活用することが急がれる」と話した。

http://japanese.yonhapnews.co.kr/Locality/2013/11/10/3000000000AJP20131110001200882.HTML

<'초량왜관 복원' 위한 한·일 심포지엄 28일 열려>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부산 초량 왜관 복원을 위한 한일 공동 심포지엄이 28일 열린다.

부산초량왜관연구회 주최로 열리는 이번 심포지엄은 '초량왜관,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를 주제로 일본 나가사키현과 부산지역 학계 관계자, 시민 등 80여 명이 참석해 이뤄질 예정이다.

초량 왜관은 17세기 조선시대 일본인과의 교역을 위해 설치한 장소로 조선후기 유일하게 200년 동안 존재하던 왜관이다.

심포지엄에서는 초량 왜관의 복원방향을 일본 나가사키현 '데지마'의 복원과정에서 찾는다.

데지마는 일본 에도막부의 유일한 서양 교역창구로 네덜란드에서 들어온 의학, 실용과학, 박물학 등이 꽃을 피운 곳이다.

초량 왜관과 비슷한 시기에 설치되고 명맥을 유지하다가 폐쇄되는 등 비슷한 경로를 밟았지만, 일본 정부가 지난 1951년 이곳에 수백억엔을 투입해 데지마 복원사업에 나서면서 현재는 매년 42만명이 찾는 유명 관광지로 변했다.

데지마의 복원비법을 설명하기 위해 마미스카 준지 일본 나가사키현 데지마 복원실장이 심포지엄장을 찾아 발표를 할 계획이다.

최차호 초량왜관연구회 회장은 "데지마라는 근대 유적을 복원해 교육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서 도시(나가사키)의 정체성까지 구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면서 "초량 왜관도 일부라도 복원해 부산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2013/11/10 08:30 송고

http://www.yonhapnews.co.kr/local/2013/11/08/0802000000AKR20131108170700051.HTML

고아나의 문화블로그 - 초량왜관 복원하자

역설의 공간-부산 근현대의 장소성 탐구 14 용두산공원 - 국제신문


조선 후기부터 일본인들이 거주했던 초량왜관의 중심 역할을 했던 용두산에는 신사까지 건립돼 있었다. 사진은 2007년 부산박물관이 발간한 '사진엽서, 부산의 근대를 이야기하다'에 수록된 용두산신사의 모습.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