少し遅ればせながらとなりますが、こちらのニュース。
評価はいろいろあるのでしょうけど、いずれにせよ金大中と並ぶ「両金」として韓国現代史上の巨人であったことは間違いなく、その死は「その時代」が「歴史」となりつつあることを示すものでしょう。
金泳三元大統領死去 文民時代を開いた韓国政界の巨星
2015/11/22 14:35 KST【ソウル聯合ニュース】「ニワトリの首をひねっても夜明けはやってくる」――。
韓国の軍事政権時代だった1979年、当時野党新民党の総裁だった金泳三(キム・ヨンサム)元大統領が独裁体制を批判して国会から除名された際に残したこの一言は、長きにわたり民主化を望んだ国民の心に深く刻まれた。
正しい道だけを歩むとの「大道無門」を座右の銘にしていた金元大統領が22日未明、入院先のソウル市内の病院で死去した。87歳だった。
韓国政界の「巨星」がこの世を去った。金元大統領のように波瀾万丈な人生を歩んだ政治家もそういないだろう。
1993年に第14代大統領に就任。朴正熙(パク・チョンヒ)、全斗煥(チョン・ドゥファン)、盧泰愚(ノ・テウ)氏らと続いた軍事政権に終止符を打ち、初の文民政府時代を開いた。
生涯、民主化闘争の先頭に立った金元大統領は、故金大中(キム・デジュン)元大統領と共に独裁政権に抵抗し、時には民主化運動の同志として、時には激しい政治闘争を繰り広げる「永遠のライバル」として「両金時代」をつくった。
金大中氏に続く金泳三氏の死去で、「両金」がこの世を去った。
◇史上最年少で国会議員に
1954年、史上最年少の26歳で国会議員に当選し、民主化運動を主導した。国会議員当選回数は9回に達する。最年少当選記録は現在も破られていない。
憲政史上初めて国会で除名もされた。野党第1党の党首として、米紙ニューヨークタイムズとのインタビューで、軍事政権を批判したことが発端だった。
野党が本会議場をふさいだが、与党が別の場所で除名案を可決した。当時、残した言葉が「ニワトリの首をひねっても夜明けはやってくる」だった。
全斗煥軍事政権時代だった1983年5月には自宅軟禁され、23日間にわたるハンスト闘争を行うなど、新軍部に体を張って対抗した。
◇政敵と手を組んだ「勝負師」
1990年1月に3党を統合させ、大統領に当選する足がかりをつくったのは「勝負師」というあだ名を再確認させるものだった。「救国の決断」を掲げ、民主正義党、統一民主党、新民主共和党の3党を統合させ、巨大与党の民主自由党を誕生させた。
激しい政治闘争を繰り広げた勢力と手を組んだのだ。これを機に、与党が野党の総議席数を下回る「与小野大」の状態を一転させ、2年後に同党候補として大統領選に出馬。金大中氏を抑え当選を果たした。
小学生時代から「大統領が夢」だった漁村出身の金泳三氏が1954年の政界入りから38年で目標を達成したのだ。
◇文民時代開く
大統領就任後は初の文民政権として、軍内部の私設組織「ハナ会」を解散させるなど軍改革を強く推進した。当時、処分を受けた将軍は50人に達したほどだ。
また、「歴史立て直し」の一環として、全斗煥氏、盧泰愚氏ら歴代大統領を次々と逮捕し、軍事政権の責任を厳しく追及した。
小学校の名称を「国民学校」から「初等学校」に変えたほか、「植民地支配の象徴」とされる旧朝鮮総督府庁舎なども撤去させた。
金融・不動産の実名制導入、腐敗根絶などを通じ、社会システム全般を大きく向上させ、90%に達する支持率を得たこともあった。
ただ、独断的な政策や側近の腐敗事件が相次ぎ、任期末に国民の信頼を大きく失う。不正問題により次男らが逮捕されたほか、1997年12月には韓国最大の危機とされるアジア通貨危機に見舞われた。同年の11月まで金元大統領はその深刻性を把握していなかったという主張もある。国際通貨基金(IMF)の支援を受ける中、任期満了で98年に退任した。
日本語も堪能で、2002年には早稲田大特命教授に就任するなど、日本との関わりも深かったが、対日政策では歴史や領土問題などで厳しい発言が多かった。
http://japanese.yonhapnews.co.kr/pgm/9810000000.html?cid=AJP20151122000500882
金泳三氏の葬儀は国家葬 韓国政府「最大限支援」
2015/11/22 14:47 KST【ソウル聯合ニュース】韓国政府は22日の臨時閣議で、同日未明に死去した金泳三(キム・ヨンサム)元大統領の葬儀を国家葬として行うことを決定した。大統領の裁可を得て確定する。
葬儀名称は「故金泳三元大統領国家葬」で、26日まで5日間行われる。昨年11月に施行された国家葬法に基づき葬儀委員会が設置され、委員長は慣例に従い黄教安(ファン・ギョアン)首相が務める。
黄首相は臨時閣議で、「故人は韓国の民主化のため生涯献身し、第14代大統領を務めて国家発展に多くの業績を残した。政府は国家葬を最大限支援する」と述べた。
告別式は26日午後2時、国会議事堂で執り行われる。遺体は国立ソウル顕忠院(国立墓地)に安置される。葬儀期間には弔旗が掲揚される。
政府は遺族と協議を経て全国各地や在外公館などに焼香所を設置する。
金氏はこの日未明、敗血症と急性心不全を併発して入院先のソウル大病院で死去した。87歳だった。
http://japanese.yonhapnews.co.kr/pgm/9810000000.html?cid=AJP20151122000800882
上の記事にあるように、金泳三元大統領は、国家葬を経て、ソウル顕忠院に新たに造成される墓域に安葬されるようですね。葬儀の形式は、廬武鉉さんの時には国民葬、金大中さんの時には国葬だったのですが、そのへんの事情については、下記の聯合ニュースの記事が解説を加えています。
< YS 서거> YS 국가장, DJ 국장, 노무현 국민장…차이는
송고시간 | 2015/11/22 17:38국장·국민장 논란 없애려 국가장으로 통합
통합 후 YS가 첫 국가장…고인·유족이 원하면 가족장으로(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 형식으로 결정된 국가장(國家葬)은 '국가나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했을 때' 국가 차원에서 치르는 장례를 뜻한다.
정부가 구성한 장례위원회가 국가장의 방법·일시·장소, 묘지 선정 및 안장, 영구(靈柩)의 안치·보전, 예산 편성·결산 등 장례의 대부분 사항을 관장한다.
빈소 설치·운영, 운구 및 영결식, 안장식은 정부가 주관한다. 지자체와 재외공관의 장도 분향소를 설치·운영할 수 있다.
국가장의 장례 기간은 천재지변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 국무회의를 통해 연장이 가능하지만 5일 이내로 하기로 정해져 있다.
국가장 비용은 국고에서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조문객 식사비나 노제·삼우제·49일재 비용, 국립묘지 외의 묘지 설치를 위한 토지 구입·조성 비용 등은 제외된다.
국가장은 2011년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이 '국가장법'으로 전문 개정되면서 기존 국장과 국민장을 통합한 장례 절차다.
따라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장례가 국가장으로 처음 치러지는 전직 대통령이다.
과거 국장·국민장 체계 때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최규하 전 대통령 장례가 국민장으로 엄수됐다.
국장과 국민장이 통합된 계기는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 때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장례 절차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유족과 민주당은 국장을 희망했으나 정부는 국민장에 무게를 실었다.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과 그 시행령에는 국장과 국민장의 요건이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
다만 법령에 규정된 국장과 국민장의 절차를 비교하면 국장이 국민장보다 격이 높다는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국장의 기간이 9일 이내인 반면 국민장은 7일 이내이고, 국장의 비용은 전액 국고 부담이지만 국민장은 일부만 국고가 지원됐다.
국장은 또 영결식 당일 관공서 문을 닫지만, 국민장 때에는 정상 운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전까지 국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일했다.
이러한 논란을 거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장으로 조율한 후 정치권과 정부에서는 국장·국민장 제도 개선에 나섰다.
2011년 이명박 정부는 국장과 국민장을 국가장으로 통합하는 내용으로 법을 개정하고 절차를 보완했다.
전직 대통령 장례가 모두 국장이나 국민장으로 추진된 것은 아니다.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른 경우도 있다.
1990년 7월18일 서거한 윤보선 전 대통령의 장례는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진행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 장례도 1965년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가족장 장례 일정과 국고 지원 여부는 유족의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
정부에서는 실무지원단을 꾸려 장의보조금을 지원하고, 조문 안내, 빈소설치, 영결식·안장식 물품 등을 유족에 지원한다.
2015/11/22 17:38 송고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22/0200000000AKR20151122067600004.HTML
また、ソウル顕忠院内の墓域についてはこちらの記事が伝えています。永遠のライバル・DJがソウル顕忠院に眠る以上、YSとしてもソウル顕忠院に墓域を作るという一線を譲るわけにはいかなかったでしょうね*1。
김영삼 전대통령, 서울현충원 제3장군묘역 우측능선에 안장(종합)
송고시간 | 2015/11/22 16:09
< YS 서거 > YS 묘역 예정지
< YS 서거 > YS 묘역 예정지YS 묘역 예정지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역이 조성될 것으로 알려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의 장군제3묘역 우측 능선에서 22일 오후 행정자치부 및 현충원 관계자들이 대화를 하고 있다. 지관이 '명당' 자리로 지정…국방부-유족 협의 끝내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소가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의 장군제3묘역 우측 능선에 마련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22일 "국방부, 현충원 관계자와 김현철 씨 등 김영삼 전 대통령 유족이 오늘 만나 서울현충원에 조성할 묘소 위치 등에 대한 협의를 마쳤다"면서 "묘소는 장군제3묘역 우측 능선에 조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묘소가 들어설 자리는 충혼당과 봉안식장이 있는 곳으로 봉안식장 바로 앞쪽이다.
국가원수를 지낸 사람의 묘소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264㎡(80평) 크기로 조성된다.
김 전 대통령의 묘소 예정지 한참 왼쪽편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의 묘소가, 위쪽으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가 각각 조성되어 있다.
김 전 대통령 유족 측과 동행한 지관(地官)이 서울현충원 여러 곳을 둘러본 뒤 장군제3묘역 우측 능선을 '명당'으로 지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 위치도 지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와 현충원은 이날 오후부터 묘소 진입로 설치 등의 공사에 들어갔다. 묘소 주변에 대한 조경 작업을 마치려면 안장식 후에도 1개월 소요될 것이라고 정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국방부는 안장식 때 의장대와 군악대, 조총대, 운구병, 도열병, 무개차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2015/11/22 16:09 송고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22/0200000000AKR201511220551510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