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州の風景】「5.18旧墓地(望月洞5.18墓域)」・2017年夏〔2〕:墓域の現状

こちらの続きにな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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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こに掲げられている墓域の案内図を改めて確認しておきましょ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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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年の光州事件ののち、ここに埋葬された事件の犠牲者の遺体は1997年の国立5.18民主墓地完成以後、ごく一部を残して大半がそちらに移葬されました。移葬後の墓域については、一部で整理されたものもありますが、多くのお墓が墓碑や土饅頭を残した「仮墓(=空の墓)」となっています。これは以前に訪れた時にも確認しているところ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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ですが、以前の案内図と見比べてみると、新しく青いカテゴリーができており、「民族民主烈士・犠牲者(のうち)移葬した墓」と注記されています。5つある青い墓域のうちの一つが利川の民主化記念公園に移った姜慶大、またそのすぐ近くの一つは姜慶大の事件に抗議して焚身自殺を遂げたイジョンスンのものですので、これはおそらく民主化記念公園に絡んだ動きを示すものではないかと推定されます。

지점정보 - 연세대(이정순 분신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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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열사 이천민주공원 묘역순례(2015.4.26)

もちろん李韓烈のお墓は変わらずにあります。その隣には、1987年に抗議自殺を遂げたパクソニョンの墓が並んで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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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ま上に挙げた4人のうち、姜慶大はソウル出身で、あとの3人は全羅南道出身です。この4人を「2対2」に分けたのはおそらく、姜慶大の動きであったと思われます。1991年のイジョンスンの死は、姜慶大の事件と直接的に関連していますし、また彼女は大学生ではなかった*1こと(小学校卒業直後から弟たちの学費を稼ぐために働き始め、結婚と離婚も経験した労働者で、その生活の基盤が首都圏にあった)も移葬に何らかの関係がある可能性があります。もっとも、事情としては、「1990年代=民主化後の民主化運動の犠牲者」として姜慶大に象徴的な位置づけが与えられているという点の方が強いかもしれません*2

いずれにせよ、1980年代から90年代にかけて、民主化運動の象徴として圧倒的な求心力を持っていた光州、その中心としての望月洞墓地の「威光」は、なくなってしまっているわけではないものの、やはり着実に減衰していると考えざるを得ません。それは、単に歳月の流れによる記憶の風化というだけではなく、国立5.18民主墓地や民主化記念公園の設立によって「削ぎ落された」という面も否めないでしょう。

しかし、そうはいっても、「民主化運動の聖地」として利川・民主化運動記念公園と光州の5.18旧墓地とを比較してみた時、いくら利川が設備的に新しくて立派であったとしても、光州とは歴史も格も違います。話にならないです。

ただし、それはいつまでも縮まらない差ではありません。このまま推移すれば、いずれ逆転しても不思議ではありません。

なので、ここでもし何か考えるとしたら、「光州のこの5.18旧墓地を将来的にどうしていくのか」について、関係者間、そして国内世論の中でどのようなコンセンサスをどのように築いていくか、というところだと私は思います。

1990年代に国立5.18民主墓地によって、2010年代に民主化運動記念公園によって、切り崩されつつも消滅しなかった5.18旧墓地の核心部分をどうとらえ、どう位置付けるか、移葬された人々とここに残った人々、また新しく葬られていく人々との関係をどう設定していくか。

「民族民主烈士」の墓域としての牡丹公園・鼎足山公園・現代公園と比較すれば、単に「光州市公園墓地という公営施設内にある」というだけでなく、歴史的にも知名度的にも公共性が高いと考えられるこの墓域には、やはりいずれどこかで「国家との関係をどうするか」という問題が出てくる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一つの選択肢としては、利川の民主化記念公園、あるいは大邱の新岩先烈公園と同様の「国立化」というのも考えられます。もちろん、これまでの経緯を考えれば、簡単に事が運ぶような話ではありませんが、「ではどうするか」という問題は今後、ますます避けて通れなくなっていくでしょう。

잡초에 묻힌 광주 옛 망월동 묘지
광주 구 망월동 묘지, 관리 소홀로 황폐 ··· 유가족 등 통합묘역 조성 움직임
광주 · 나권일 주재기자 ㅣ 승인 2000.08.10(木) 00:00:00

망월동 묘지라고도 불리는 광주시 북구 운정동 광주시립공원묘지 제3묘원은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을 했던 사람들이 묻힌 곳이다. 광주시가 5·18 민중항쟁 사적 제24호로 지정해 지금은 5·18구묘지로 불리는 이곳에는 5·18민중항쟁과 직접 관련된 희생자들은 안정되어 있지 않다. 5·18광주 관련 사망자 유해는 이미 1997년 5·18신묘지로 이장을 마쳤고, 현재는 가묘 형태의 묘비와 봉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망월동 묘지에는 지금도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른바 민주 열사로 불렸던 시국 사건 관련 사망자들의 유해가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영정 색 바래고 기념물함 파손

현재 망월동 묘지에는 1987년 7월 처음 안장한 이한열씨를 시작으로 1996년 3월 경찰의 시위 진압 과정에서 사망한 노수석씨에 이르기까지 모두 37기의 민주열사 묘가 조성되어 있다. 광주 시민은 당시 이한열 ·조성만 ·강경대 ·박승희 ·노수석씨의 '장례 투쟁'을 통해 이들을 '민주 성지' 광주에 잠들게 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최근에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법과 의문사 진상 규명법이 제정되어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인 민주열사들에 대한 토론회가 열리고 기념 사업이 추진되는 등 이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민주열사들이 묻혀 있는 망월동 묘역은 현재 대책 없이 방치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푸대접을 받고 있다. 이내창씨의 영정은 빗물에 훼손되어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묘비에 적힌 이름 역시 비바람에 씻겨 가까이 다가가 보지 않으면 누구인지 확인하기 힘들다. 유리로 만들어진 고인의 기념물함을 파손된 부분만 접착제로 엉성하게 붙여 놓은 상태이다. 최근까지도 이내창 ·이철규 씨 봉분은 잡초에 묻혀 있다.

1991년 전남대 학생들이 노태우 정권 퇴진 결의대회를 할 때 분신한 박승희씨 무덤의 기념물함 역시 유리가 깨진 채 거미줄에 뒤덮여 있다. 1991년 망월동 묘지에 묻힌 강경대씨의 기념물함에 보관되어 있는 명예학사 학위증서는 흘러든 빗물에 젖어 훼손되어 있다. 파손된 기념물함 뚜껑도 접착제로 살짝 붙여 놓았다. 아예 봉분이 잡초에 뒤덮이고 영정이 심하게 변색된 무덤도 허다하다.망월 묘역을 찾은 한 참배객은 "새로 만든 5·18묘지보다 더 역사성이 깊은 곳인데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방치한 것 같다"라며 아쉬워했다.

묘비와 봉분만이 있는 일반인 묘와 달리 이들 민주열사의 묘지 옆에는 대부분 고인의 학교 선후배나 참배객이 만든 기념물함이 놓여 있다. 고인의 일기장이나 졸업 증서, 넋을 기리기 위한 종이학과 문예지는 물론 참배객을 위한 방명록도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가끔씩 다녀가는 유가족과 선후배만이 묘역을 손질하고 기념물함을 단장할 뿐 행정기관의 손길은 닿지 않고 있다. 묘지 관리와 환경정비, 벌초, 기념물함 관리를 할 만한 인력과 기구가 없는 탓이다.

광주시 5·18 묘지 관리사무소는 새로 조성한 5·18 묘지 관리와 보수에만 힘쓸 뿐 다른 민주화 투쟁 희생자가 묻혀 있는 5·18 구묘지는 돌보지 않는다. 광주시립공원묘지 관리를 담당하는 용역 업체 또한 관리비를 내지 않으면 벌초해 주는 법이 없다. 사실상 망월 묘지는 1997년 이후 묘역을 찾는 참배객들의 순수한 노력과 자원봉사, 유족의 관심으로만 유지되어온 셈이다. 현재 망월동 묘지 외에 민주화 희생자들의 묘는 전태일 ·박종철 씨 등 67명이 묻혀있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과 8명이 묻혀 있는 부산 양산 솥발산 두 곳이다. 그외 민주열사 ·애국열사 ·노동열사 ·통일열사 등으로 불렸지만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전국에 흩어져 있는 희생자의 묘는 3백여 기에 이르는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민주열사 기리는 민주 ·인권 공원 추진

이에 따라 최근 민주화운동보상법 제정 이후 뒤늦게나마 민주열사들의 묘를 한 군데로 이장해 기념 공원과 역사 교육 공간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전국 민주 유가족 협의회'(유가협 ·회장 박정기)등 유가족을 중심으로 일고 있다. 광주시 북구청(청장 김재균) 역시 5·18 묘지 인근인 광주 장동 ·운정동 주변 10만여 평에 민주열사 묘지와 민주화운동 기념관 등을 갖춘 '민주 ·인권 공원'을 조성할 방침이라며 사업 추진 동의서를 최근 유가협에 제안했다.

그러나 민주화 희생자 기념 묘지 ·공원 조성문제는 5·18 관련 단체와 유가협 사이의 불화로 장소 선정 등을 놓고 난항에 예상된다. 1997년 5·18 신묘지가 조성될 때 민주화 희생자를 5·18 묘지에 함께 모시자고 요구했던 유가협의 제안을 5·18 민중항쟁 유족회가 거절한 데 대한 서운함이 민주화 희생자 유족들에게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당시 5·18 유족회는 5·18 묘지가 국립 묘지로 승격하는 데 대비해 공식으로 보상받은 자에게만 이장을 허용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유가협에 민주열사 묘지를 별도로 조성하자고 제안했었다.

또 광주시가 5·18 신묘지가 조성된 뒤 망월묘지를 사실상 방치해 왔다는 점도 유가협이 광주시의 민주열사 기념 공원 유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 성지'를 주장하는 광주가 그만큼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비판인 셈이다. 정작 당사자들의 묘역은 허물어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기념 공원과 교육 시설을 건설하자는 얘기가 진지하게 들릴 리 없다.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Print/86355

고 이남종씨 안장되는 광주 ‘망월동 구 묘역’은 어떤 곳?
등록 :2014-01-04 14:44 수정 :2014-01-0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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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29일 광주시 북구 망월동 묘역(3묘역)이 조성돼 청소차에 실려 온 5월 희생자들의 주검을 옮기고 있다.

젯상도 못차리던 ‘금단의 땅’…한국 민주주의 상징
1980년 5월 신군부가 5·18 희생자들의 주검을
청소차에 싣고와 처리하려고 조성한 공간
이후 이한열·강경대 열사 등 학생·노동운동
희생자들의 주검도 묻히게 돼…‘민주 성지’로 인식

박근혜 대통령 사퇴, 국가정보원 사건 특검 실시’를 요구하며 분신한 이남종(41)씨의 주검이 4일 광주시 북구 망월동 구 묘역에 안장된다. 전남 구례 출신인 고인은 광주 서강고와 조선대를 졸업했으며, 학사장교로 군 생활을 한 뒤 광주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며 편의점 매장관리 등을 하며 공무원 시험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국회의 등 시민·사회단체는 고인을 민주열사로 규정하고, 유족들과 상의해 장지를 망월동 묘역으로 결정했다. 광주장례위원회는 4일 오후 3시30분부터 광주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 금남로에서 노제를 지내기로 했다. 이씨의 하관식은 4일 오후 5시 열린다. 광주광역시의회는 논평을 통해 “이 불행한 사태는 불통과 독선의 정치가 낳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거꾸로 가는 역사가 한 생명을 앗아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씨가 안장될 망월동 구 묘역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같은 곳이다,

“만감이 교차하네요. 시간이 멈춰선 망월동 구 묘역은 군부가 만든 시궁창같은 공간인데, 추모객들이 꽃을 피운 곳이지요. ”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과)는 “여전히 시민들은 망월동 구 묘역을 역사의 상징적 장소로 여기고 있다. 5·18정신이 세상에 온전히 구현됐다면 망월동 묘역의 상징성은 끝난다. 망월동 묘역은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고 있지만 상징성은 사라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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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들을 묻기 위해 파놓은 묘지 구덩이

망월동 구 묘역은 1980년 5월 신군부가 5·18 희생자들의 주검을 청소차에 싣고와 처리하려고 조성한 공간이다. “당시 가족들이 원하면 선산으로 가고, 마땅치 않으면 망월동 묘역으로 갔다. 가족들이 못찾은 주검은 청소차로 실어와 그냥 묻어버렸다. 부패하니까….” 정수만(67) 전 5·18유족회장의 회고다. 망월동 묘역은 1997년 5·18 신묘역이 완성돼 80년 오월 희생자들이 이장된 뒤 망월동 구 묘역으로 불린다. 신묘역은 2002년 7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승격됐다.

망월동 구 묘역은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와 함께 80년 5·18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80년 5월 26일 밤 시민군들이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가 총에 맞아 숨진 뒤, 살아 남은 자들은 망월동 구 묘역 앞에서 학살을 기억하며 눈물을 삼켰다. “망월동 묘역 참배 자체가 투쟁이었지요.” 80~90년대 학생·재야운동에 참여했던 이경률 광주시인권담당관은 “80년년대 오월엔 민주성지 광주를 찾는 학생들이 핵심적으로 찾는 곳이 망월동 구 묘역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망월동 구 묘역은 한 때 유족들도 젯상을 차리기조차 힘든 금단의 땅이었다. 당국이 오월이면 추모객들의 발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81년 5월17일 망월동 구 묘역에선 5·18유족들과 시민·학생 400여 명들이 참여한 가운데 첫 추모제가 열렸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추모제를 열었다는 이유 등으로 국가보안법 및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월형이 확정돼 복역했다. “세상에 당시 당국에선 ‘추모제라고 하면서 젯상도 차리지 않았다’며 불법 시위로 몰았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오월이면 산을 넘어서 망월동 구 묘역에 모여 추모제에 참여했다. 당국은 82년부터 3년동안 집요한 공작을 통해 5·18 희생자 24명의 주검을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하기도 했다.

망월동 구 묘역은 80~90년대 민주화 시위나 노동운동 과정에서 숨진 이들이 묻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망월동 구 묘역엔 현재 1987년 6월 9일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숨진 고 이한열 (연세대) 열사와 1991년 민주화 시위 도중 진압경찰에 맞아 숨진 고 강경대(명지대) 열사 등 민주화 운동 관련자 묘지 41기가 모셔져 있다. 국립5·18민주묘지로 오월 영령들의 주검이 옮겨간 자리엔 149기의 가묘가 조성돼 있다. 광주시는 북구 망월묘지 3묘역 주차장 154㎡의 터에 10억원을 들여 추모·기념관을 조성할 방침이다.

망월동 구 묘역은 “과거와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현장”이다. ‘박근혜 정부 시대’, 망월동 구 묘역은 우리에게 “안녕들하십니까?”라고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과)는 “ 망월동은 침묵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공간이었다.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부질없어지는 곳….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장소”라며 “이번에도 고인이 망월동 묘역으로 오신다는 것은 80년 5월에 제기됐던 (분단과 독재 등) 모순들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우리는 어쩌면 진행중인 비극의 한복판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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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들의 주검이 안치된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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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의 절대공동체를 상징하는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의 시민대토론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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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장 상인들이 시민군들을 위해 주먹밥을 만들려고 밥을 짓고 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18334.html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합동차례'광주전남추모연대, 24일 오전 8시부터 합동벌초 진행
조현옥 편집위원승인 2017.09.22 15:24

다가오는 추석을 맞이하여 광주전남추모연대는 오는 24일 오전 8시부터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5·18 구묘지)에서는 합동벌초 및 합동차례를 연다고 밝혔다.

2005년부터 12년째 광주지역 제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합동벌초를 주관해온 광주전남추모연대(공동대표 김덕종, 박봉주)는 “망월동은 5월과 민족민주열사가 만나 투쟁속에 만들어진 공간이며, 80년 오월에서 시작하여 87년 6월 항쟁, 2016년 촛불항쟁까지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역사적 공간”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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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광주전남추모연대 민족민주열사 묘역 합동벌초 모습. ⓒ광주전남추모연대 제공

이어 "추석을 앞두고 합동벌초를 통해 확인하고, 민주화를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수많은 열사들과 희생자들의 안식처인 망월동 묘역을 정비함으로 그들의 삶을 기억하자고 한다"고 밝혔다.

현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는 5․18 관련자 가묘 143기, 5.18관련자 5기와 87년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숨진 고 이한열 열사를 비롯하여 최근 2016년 경찰이 쏜 물대포에 의해 돌아가신 백남기 농민 등 43인의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등이 안장되어있다.

당일 합동벌초 후 참배단에서 추석을 맞이하여 합동차례가 이어지며, 합동차례 이후에는 '백남기 농민 1주기 광주전남 추모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이번 합동벌초는 각 열사 추모(정신계승)사업회를 비롯한 제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일반시민 등 150여명이 참여하며, 청소년 참가자들을 위한 청소년교육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된다.

조현옥 편집위원

http://www.gwangj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96809

*1:姜慶大は明知大、李韓烈は延世大、パクソニョンはソウル教育大の学生でした。

*2:例えば、「青墓」組のイネチャンは、1989年に安全企画部の関与が疑われる疑問死を遂げた全羅南道出身の中央大生です。ただし、残るホンギイルは光州事件で市民軍に参加して負傷し、1985年に焚身自殺を遂げた全羅南道出身の労働者、チェドンはソウル生まれ、成均館大(1980年入学)を経由して1984年ごろから労働運動に身を投じ、1990年に自殺した人物になります。それぞれの遺族の意向や事情もあるでしょうし、この5人を一つの理由で単純にくくるのは難しそう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