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なのだそうで。知りませんでした。
この日に合わせて、京郷新聞がある家族の話を取り上げています。韓国で「入養(입양)」と言えば、「韓国内から海外へ養子に出される子どもたち」というのが一般的なイメージだと思われますが、こちらは20年前から国内で養子縁組をして5人の子どもを育て上げたというものです。
こういうのを美談に仕立てるのはある意味簡単ではありますけど、光が当たる部分もあれば、陰に隠れている部分もあるでしょう。誰もがやろうとしてできることでもありません。
であるからには、せめて最低限、こうした人たちの足を引っ張ったり邪魔をしたりしない人間でありたいと思います。
"입양으로 아이들에게 든든하고 건강한 가족을 만들어 주세요"
박효순 기자 입력 : 2020.05.11 07:05 수정 : 2020.05.11 07:23■11일 입양의 날, 국민훈장 받은 행복한 가족 이야기
“가정은 사회의 기본 집단이며 특히 아동의 발달과 행복을 위한 가장 자연스러운 환경이다. 아동은 부모에게 양육받을 기본 권리가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매년 5월 11일은 입양의 날이다.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이 입양을 통한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일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했다.
금년 입양의 날을 맞아 ‘입양부모로서 입양가족 자조모임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천병희 씨(62)는 10일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한 아이마다 소중한 생명을 지닌 존재”라며 “입양을 통해 아이들에게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것은 우리 시대에 너무도 중요한 일”이라고 밝혔다.
11일 입양의 날을 맞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천병희 씨(왼쪽 두번째) 가족이 환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했다. 아동권리보장원 제공“지금부터 20년 전, 처음으로 큰딸 순영이를 입양, 집으로 데려와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마음 속에서 사랑의 느낌이 샘솟는 것을 보면서 ‘이게 모성애구나’ 생각했습니다. 입양과 양육에 대한 두려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자녀를 만난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었어요.”
그 동안 5명의 자녀(3남 2녀)를 입양한 천 씨는 그 동안 한국입양홍보회의 입양가족 자조모임 서울강서지역 대표(2005.9~2006.10)와 경기안성·평택지역 대표(2016.1~2019.12)를 역임하면서 지역의 입양가족 자조모임 활성화에 힘을 쏟았다.
“결혼 후 3년이 지나도 아기가 생기지 않아서 집안에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산부인과에서 근무하던 남편은 파출소에서 데려온 아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운명적인 만남을 계기로, 남편이 입양을 권유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공개입양이 적었고, 친척들 사이에서도 쉬쉬하는 열악한 분위기였기에 저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남편의 설득으로 결국 입양을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지금도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그 선택은 부모가 되는 도전의 시작이었다고 천 씨는 술회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밝게 자라는 것을 보면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는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는 뚜렷한 소신을 갖고 예비입양가족들의 입양상담과 진행을 돕는 일에 정성을 기울였다. 5명의 자녀들은 현재 각자 다른 악기를 배우고 다루면서 현악앙상블을 만들어 여러 차례 초청공연을 할 정도가 됐다. 또한 온 가족이 방송 출연 등 언론매체를 통해 입양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공개입양을 홍보하는 일에 함께한다.
“사회복지 공무원이었던 저는 순영이를 입양하며 휴직을 1년 하다가 퇴직을 하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소아마비로 몸이 매우 약했지만 다른 사람의 손에 소중한 내 아이들의 양육을 맡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섯 명의 자녀를 키우면서 저는 점차 건강하고 강한 엄마가 되어갔습니다.”
홈스쿨을 하며 아이들 정서에 도움이 되고 악기를 통해 봉사할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모두 악기를 시켰다. 주변에서 “그렇게 키워봐야 나중에 잘할 것 같냐”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자녀들이 커서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것보다 당연하게 부모의 사랑과 의무를 다하는 자세로 아이들을 키웠다.
“대가를 바라고 양육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가정형편에 맞게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해주었을 뿐입니다. 지역 모임에 아이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입양을 받아들이고 편견에 대해 단단해져 간 것 같습니다.”
현재 대학에 다니며 청소년교육상담학을 전공하는 큰 딸 순영이는 21세기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 4월에 태어났다.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하게 자라 주었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말하는 걸 좋아해서 동생들, 친구, 어른에 이르기까지 소통을 잘하며 인기가 있다.
“장녀라 그런지 자신의 일을 척척 알아서 하고 동생들도 잘 챙기고, 해결사로 도움을 늘 줄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제가 동생들을 양육하느라 지쳐있을 때 위로도 해주고 짜증을 자주 낼 때 저를 돌아볼 수 있게 직언도 서슴치 않는 든든한 친구이고 엄마를 전적으로 믿어주고 신뢰해 주는 딸이라서 너무 좋습니다.”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은 국내입양 활성화 및 입양사후서비스 지원, 아동돌봄 지원, 요보호아동 지원, 아동자립지원, 아동권리 증진, 아동복지정책 및 아동복지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입양의 날 기념식을 하지 않고, 온라인 캠페인을 중점 진행 중이다.
입양으로 다섯 아이를 키운 천병희 씨(오른쪽)와 큰 딸 최순영 씨가 경주박물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동권리보장원 제공다음은 큰 딸 최순영 씨가 경향신문에 전해온 글이다.
저에게 입양은 가족을 만나 또 다른 삶을 살아볼 기회였습니다. 때론 주변의 편견에 상처받기도 했고, 원치 않았던 실수로 태어난 존재인가 생각해보며 제 존재의 정당성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입양을 통해 가족을 만나 넘치는 사랑을 받는 저는, 있는 그대로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사회복지사분은 제가 입양된 사실을 알고는 “학생은 가출 안 해요?” 라고 물어보셨습니다. 물론 마음의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도 있지만, 많은 입양 가족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계신 것이 아쉬웠습니다. 사회에 입양의 긍정적인 부분들이 많이 알려졌지만, 부정적인 이미지와 편견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지금은 그런 반응들에 상처받고 아파하기보다는, 입양 가족으로서, 입양인으로서 세상에 입양의 긍정적인 면을 전해주고 싶고, 입양아들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분들께 또 다른 시각을 전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또 저와 같은 아픔을 겪었던 입양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입양 모임이나 세미나를 통해 ‘입양은 축복입니다. 사랑입니다. 가족이 되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라는 말들을 많이 들어서 제가 입양된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많은 사람에게 전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생각보다 입양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입양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많고, 혈연이 아닌 또 다른 방법으로 가족이 생기는 것에 대해 아직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자녀를 입양해서 키우는 제 부모님이 이해되지 않는 어른들은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 라며, ‘너희가 입양해서 키워도 결국엔 부모를 배신하고 떠날 거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분들 보란 듯이 더 착하고 말 잘 듣는 딸로 자라왔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분들은 제가 자라는 과정을 보며 입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시는 계기를 가져보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입양되었고, 입양을 통해 변하지 않는 가족을 만났다.’ 입양의 편견을 극복하는 가장 큰 방법은, 입양에 대해서 바르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편견의 말들도 더는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어릴 때 친구들에게 제가 입양되었다고 말했을 때, 입양이라는 단어를 몰라 친구들에게 설명해줘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 저는 “나를 낳아주신 분이 나를 키울 수 없어서, 우리 부모님이 나를 입양해서 내 부모님이 되어주시는 거야” 라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엄마는 제 이야기를 참 잘 들어주셨습니다. 궁금한 것들, 문득 드는 생각들을 많이 이야기했고, 사춘기를 지나면서 많이 대화하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주며 친한 친구 같은 관계가 되어간 것 같습니다. 엄마는 제가 어떤 선택을 해도 믿고 지지해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설사 모두가 내 편이 아닌 시간에도 내 편을 들어주는 분이십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아 속상할 때, 가끔 나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힘들 때, 성인이 된 지금도 가끔 엄마의 품 안에 들어가 한번 안기고 나면 위로가 됩니다. 제가 2년 동안 자취를 했는데, 한 주도 빠짐없이 아이스박스에 제가 일주일 동안 먹을 반찬들과 국을 얼려 가져다주셨습니다. 한결같이 넘치도록 사랑해주셨고, 저를 자랑스러워 해주셨고, 지칠 때마다 제게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런 따뜻한 엄마의 딸이라 참 좋습니다.
모든 아이는 가정에서 자랄 권리가 있다고 합니다. 가정이 있다는 것은 나를 사랑으로 양육해주는 부모, 나와 눈을 맞춰 주고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나를 지지해주는, 변하지 않는 내 편을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자신이 받은 사랑과 지지의 경험 속에서 먼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갈 것이고, 상처받지만 회복할 것이고, 성장할 것입니다. 특히, 아이가 처음 “엄마” 라고 부르는 것부터, 한발 한발 걷는 시간, 쓰는 것을 배우고, 성장하는 모든 과정에서 부모님의 응원과 지지를 느끼면서 자라는 것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경험은 아이가 자라며 마주할 많은 도전의 순간에,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더 많은 아이가 입양을 통해 부모님을 만나 저와 같은 사랑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5110705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