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者の政治学』とその書評

前の記事と同様に検索で引っかかってきて興味深かったのが、こちらの新刊。

죽은 자의 정치학 - 인터넷교보문고

書評がけっこう出ていますから、注目もされているようです。

<국립묘지를 통해 근대 국가의 정치성을 보다>

하상복 교수 신간 '죽은 자의 정치학'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주요 정치인들이 국립묘지를 찾는 모습이 뉴스에 나온다는 것은 큰 정치적 결단이나 사건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국립묘지 참배는 자신의 철학과 이념적 지향을 대중에게 드러내는 대표적 정치행위다.

한국에서 이처럼 죽은 이들을 매개로 한 '사자(死者)의 정치'는 뚜렷한 이념적 구분을 보인다. 대선 후보들만 해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어느 전직 대통령 묘소에 들르는지, 광주의 국립 5·18 묘역을 찾는지 등은 참배자에 따라 다르다.

하상복 목포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는 국립묘지를 둘러싼 이같은 현상의 연원을 '근대'라는 정치적 시간에서 찾는다. 신간 '죽은 자의 정치학'은 근대 국가에서 국립묘지라는 죽음의 공간이 정치적 상징으로 자리잡은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근대 국가에는 황제, 국왕 등 국가와 주권을 표상하는 인격적 존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애국심을 창출하려면 국민의 존재와 가치를 감각적으로 재현해야 하는데, 근대의 국립묘지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한국보다 앞서 근대 국가를 세운 프랑스와 미국도 그런 맥락 속에서 국립묘지를 만들었고, 이후 묘지의 정체성을 둘러싼 사회정치적 갈등이 치열하게 벌어졌으나 이를 화해와 통합의 장으로 바꾼 전례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프랑스 국립묘지 팡테옹은 애초 프랑스 혁명 영웅들의 묘지로 탄생했다. 구체제와 단절을 상징한 팡테옹은 이후 일련의 정치적 사건을 거친 끝에 그 정체성을 둘러싸고 보수와 공화주의 세력 간 심한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프랑스 혁명 정신을 구현한 인물들을 안장하면서도 복고 왕정의 상징적 존재 수플로를 함께 안치하고, 팡테옹 내부를 채운 예술작품에 구체제를 표상하는 벽화를 넣는 등 타협 지점을 찾는 데 성공했다.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는 남북전쟁 당시 전사자 시신을 안치할 공간으로 출발한 '군인 묘지'였다는 점에서 한국의 국립현충원과 탄생 계기가 비슷하다. 애초 내전에서 승리한 연방군과 북군 장병의 시신만 수용했지만, 이후 정치적 타협을 거쳐 남군 유해 안장을 위한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화해와 통합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저자는 한국의 국립묘지 역시 1948년 여순사건, 1950년 한국전쟁이라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과 '반공군사주의'라는 국가적 이념을 바탕으로 탄생했다는 점에서 프랑스·미국과 마찬가지로 근대 국가의 정치 원리를 구현했다고 본다.

이후 민주화를 거치면서 3·15 묘지, 4·19 묘지, 5·18 묘지 등 민주화 인사들을 추모하는 국립묘지가 잇따라 탄생한다. 그러나 국립현충원이 독립과 호국이라는 가치를 통해 공동체에 대한 희생과 충성이라는 국가주의적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다른 하나는 민주라는 이름으로 국가권력과의 정치적 긴장을 드러낸다.

하 교수는 이런 상황에 대해 "이념적 다원성보다 적대성이 두 정치적 공간 사이를 가로지르는 모양새"라며 "한국 근대를 만든 역사적 과정에서 배태된 이념 대립 위에서 한국의 국립묘지도 서로 화해하지 못한 채 기능적 공존만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 모두가 인정하는 애국적 인물을 안장할 새로운 묘지를 국립현충원과 민주묘지 사이에 만들자고 제안한다. 설령 그런 인물이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새로운 묘지의 빈자리는 좌우 화해를 가능하게 할 인물을 기다리는 '적극적' 공간이라는 것이다.

모티브북. 480쪽. 2만3천원.

2014/02/18 14:08 송고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14/02/18/0906000000AKR20140218129000005.HTML

[책과 삶]남남갈등의 상징 국립묘지, 이젠 화합의 장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윤해동 | 한양대 교수(비교역사문화연구소)

▲ 죽은 자의 정치학…하상복 지음 | 모티브북 | 479쪽 | 2만3000원

베네딕트 앤더슨은 그의 기념비적 저작 <상상의 공동체> 첫머리에서, 무명용사의 기념비 혹은 무덤을 근대 민족주의의 상징적 기원으로 내세우고 있다. 무명용사의 무덤에는 유골이나 영혼 대신에 온갖 기괴한 민족적 상상물들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 총리 혹은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언제나 동아시아 차원의 국제정치 문제로 비화한다. 야스쿠니신사는 전사자를 ‘추도’하거나 ‘현창’하는 종교시설로서 신사 참배가 전쟁책임의 문제로 귀결되는 데에는 그 나름의 맥락이 존재한다.

민족주의의 문화적 기원을 이루는 ‘무명용사의 비’와 일본의 전쟁책임을 상징하는 ‘야스쿠니신사’ 사이에 개입하는 이런 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 국민국가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국립묘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파리9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목포대학에 근무하는 저자 하상복은, 문화와 상징이 정치, 특히 권력과 맺는 관계에 대해 천착하고 있는 소장 정치학자이다. 그는 죽음 혹은 사자가 권력의 정통성 혹은 정당성을 위해 동원되는 메커니즘을 탐구하기 위해 국립묘지를 분석한다. 국립묘지는 추상적인 차원에서 이해되는 국가를 물질적으로 ‘재현’하고 ‘애국’이라는 가치를 감성과 정념의 차원으로 전환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국립묘지는 국민국가의 ‘정치적 신체’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국립묘지를 분석하기 위해 이른바 ‘사자의 비교정치학’을 동원한다. 근대 국립묘지의 원형인 프랑스 팡테옹(만신전)과 국립묘지의 ‘군사주의’ 모델을 제공하는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를 한국의 그것과 비교한다.

한국에서 국립묘지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순국한 호국영령들을 안치한” 곳을 지칭한다. 국립 서울현충원은 1955년 국군묘지로 출발하여 1965년 국립묘지로 ‘격을 높여서’ ‘국가에 유공한 민간인’에게까지 안장대상자를 확대하였다. 현재 무명용사 11만여 기를 포함한 16만여 기를 안장하고 있다. 한편 국군묘지에서 출발한 서울과 대전의 현충원 및 세 개의 호국원, 여기에 세 개의 민주묘지가 있어 국립묘지는 모두 8개에 이른다. 전자는 대개 ‘반공군사주의’를 체현한 인물들이 영면하는 곳인 반면 민주묘지는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상징하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한국의 국립묘지는 이념의 장을 가르는 남남갈등의 동학을 표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8월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한 달 뒤 보수시민단체인 라이트코리아 회원들이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앞에서 호국영령을 외면했다며 김 전 대통령의 묘지 이장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에 저자는 프랑스와 미국의 국립묘지가 대결과 갈등의 표상으로부터 화합과 통합의 상징으로 변화해 왔듯이, 한국의 국립묘지 역시 갈등과 대결의 상징으로부터 화해와 공존의 정치공간으로 바뀌어야 하고 또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죽은 자’와 죽음이 표상하는 바의 차이를 살펴볼 필요를 느낀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근대에 들어 죽음은 ‘위생 처리’되어 일상적 삶과는 완벽하게 분리된다. 장례는 대개 병원에 부속된 영안시설에서 진행되며 장례 이후 죽음은 일상과 완전히 절연한다. 대신에 근대의 죽음은 압도적으로 정치화한다. 이는 전근대의 죽음과 크게 대비되는 것이다. 전근대의 죽음은 일상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으로서 효와 제사를 통해 작동하고 있었다. 전근대의 일반적인 죽음은 지극히 개별적이거나 기껏해야 가족 혹은 친족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제왕들의 ‘죽음 의례’가 의미하는 가장 궁극적인 서사가 ‘영웅의 서사’라 할지라도 그것 역시 개별적인 차원에 놓여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근대의 죽음은 정치화되는 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첫째, 제사 혹은 정치적 죽음의 의례는 상징화되어 국민 혹은 국가의 의례로 상승한다. 둘째, 권력자의 죽음도 국민으로 호명되는 존재 일반의 죽음으로 전환하며 그들은 국립묘지에 묻힘으로써 “국민이라는 집단적·전체적 인격체로 통합 혹은 용해”된다. 전자는 죽음의 정치학이 갖는 연속성을 반영하는 것이고, 후자는 근대적 죽음의 특성을 지적하는 것이겠다. <죽은 자의 정치학>이 다소 평면적인 분석에 머무르고만 이유는 죽음과 제사의 연속성을 감안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죽음의 정치학’과 ‘죽은 자의 정치학’은 다르다. 죽음의 정치학은 죽음을 대상으로 하거나 ‘죽은 자’와 ‘산 자’의 소통 혹은 대화에 바탕을 둔 정치학일 수 있다. 반면 죽은 자의 정치학은 ‘죽은 자’를 대상화하거나 ‘산 자’만에 의한 정치학이 된다. 죽음과 ‘죽은 자’가 표상하는 차이는 이처럼 크다.

무명용사의 비와 야스쿠니신사 사이에 개입되어 있는 거리는 바로 죽음과 죽은 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무명용사의 비에는 죽음 자체를 추모하는 감정이 바탕에 깔려 있으나 야스쿠니신사의 의례에는 죽은 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감각이 훨씬 우세한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국립묘지는 한국전쟁이라는 ‘내전’을 거친 이후 국군묘지에서 출발하여 민주묘지를 포용함으로써 남한 내부의 갈등과 통합을 상징하게 되었다. 남북한의 ‘정치적 통일’ 이후에도-그게 어떤 형식과 내용을 갖든-국립묘지는 남북한 화해와 통합의 상징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국립묘지는 우리가 가야할 멀고 험한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리라! 그 길을 슬기롭게 헤쳐가기 위해서는 ‘죽은 자의 정치학’을 ‘죽음의 정치학’으로 확대해나가야 한다. 그럴 때 국립묘지가 평화와 공존의 전당으로 그리고 국민화합의 장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2211932415&code=960205

죽은 자를 깨운다 왜? 정치에 필요하니까!

■ 죽은 자의 정치학
하상복 지음 모티브북 발행ㆍ480쪽ㆍ2만 3,000원
"정치인 국립묘지 참배 권력의 연출 필요 때문"
한국·미국·프랑스의 국립묘지 탄생·진화 분석

오미환 선임기자
입력시간 : 2014.02.21 20:10:05


새누리당 의원들이 1월 2일 새해를 맞아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있다. 국립묘지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꼭 들러야 하는 상징 공간이지만, 정치적 연출과 갈등의 공간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누구나 죽는다. 그래서 죽음은 평등하다고 한다. 산 자들은 죽은 자의 영면을 빈다. 그러나 정치 권력의 정통성과 연계된 죽음은 결코 평등하지 않으며 잠들 수 없다. 산 자들이 권력 관계에 따라 필요할 때마다 죽은 자를 깨워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인들, 특히 최고 권력자가 되려는 정치인들은 대통령 출마에 앞서 국립묘지, 그 중에도 전직 대통령 묘소 참배를 빼놓지 않는다. 이 책의 표현을 빌면 "죽은 자를 매개로 전개되는 권력의 연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자와 그의 무덤은 추앙되거나 부인됨으로써 그 연극 무대에 서 있는 권력자를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낸다."(이상 443쪽에서 인용)

정치학자인 하상복 목포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가 쓴 <죽은 자의 정치학>은 프랑스 미국 한국에서 국립묘지의 탄생과 진화의 역사를 치밀하게 분석함으로써, 국립묘지라는 상징이 정치 권력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명쾌하게 보여준다. 구체적인 분석 대상은 프랑스의 팡테옹,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 한국의 국립현충원이다.

국립묘지는 근대 이후 나타난 제도다. 프랑스혁명 이듬해인 1790년 혁명 영웅들의 영묘로 출발한 팡테옹이 효시다.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등장한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건설하고 다지는 데 국립묘지가 필요했던 거다. 국가와 국민과 애국심의 표상으로서 국립묘지를 만든 것은 미국과 한국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누가 들어가느냐를 두고 오랜 세월 갈등을 겪은 것도 공통점이지만, 진화 과정과 결말은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팡테옹과 알링턴 국립묘지는 국민 통합의 공간으로 진화했지만, 한국의 국립현충원은 지금도 극심한 이념 대결과 반목의 무대가 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저자는 한국의 국립현충원을 '반공군사주의'와 '권력주의'가 장악한 곳으로 본다. 출발부터 그랬다. 동작동 국립현충원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반공' 용사들의 묘지로 1953~1957년 조성됐다. 이 곳의 권력주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박정희 대통령 묘역이다. 가장 높은 곳에 가장 크게 조성돼 있다.

신성해야 할 국립묘지가 정치적 연출과 갈등의 공간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는 2005년 북한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와 2009년 김대중 대통령의 안장 당시 벌어진 논란이다. 보수 세력은 격렬히 반대했다. 반공의 성역에 그들을 들일 수 없다는 논리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현충원 묘역은 극우 세력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방화로 잔디가 불에 타기도 했다.

팡테옹은 처음엔 프랑스혁명과 공화국의 대의에 맞는 위인만 모셨지만, 나중에는 프랑스의 영광을 높인 군주와 가톨릭 성인까지 받아들여 기억함으로써 화해와 공존의 공간이 되었다. 그러기까지 근 100년이 걸렸다. 팡테옹을 둘러싸고 계속된 혁명과 반혁명의 대결은 1885년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이 곳에 안장되면서 끝났다. 위고는 이념을 떠나 누구나 추앙하는 국민 영웅이었다.

미국의 남북전쟁 기간인 1864년 조성된 알링턴 국립묘지는 남군과 싸우다 전사한 북군의 묘지로 출발했다. 남군은 철저히 배제됐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40여 년이 지나서야 알링턴 묘지에 남군 묘역이 생겼다. 지금 알링턴 묘지는 미국 독립전쟁 전몰자부터 9ㆍ11 테러 희생자까지 미국이 겪은 모든 전쟁의 비극과 영광을 기억하는 곳이다.

국립현충원도 팡테옹이나 알링턴 국립묘지 같은 바람직한 진화를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 질문을 던지며 제안한다.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양쪽의 존경과 추앙을 받는 애국적 인물을 안장할 새 국립묘지를 만들자, 그런 인물이 없다면 텅 빈 국립묘지로 놔두자, 그것이 바로 한국이 정치사회적 현실을 말해주는 상징이 될 것이므로.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402/h2014022120100584210.htm

一日当たりの文字数制限に引っ掛かってもいけないので、ここでいったん日を改めるとし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