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陣営論理」という言葉
日本語で検索しても、ほとんどが韓国絡みで引っかかってくるものばかりですから、これは韓国独特の表現だと思われ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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ともあれ、「陣営論理」という言葉で表現されている韓国政治社会の現実は、この記事によく表れています。まあ、朝鮮日報自身も明確に一方の陣営に立っているわけですから、これ自体もまた「陣営論理」の一つの表現なのです。ただ、「あっち側もこっち側も同じ論理に絡め取られている」という点への自覚は、記事の中にちゃんと見受けられます。
記事入力 : 2013/07/15 11:50
「敵か味方か」だけで「共存」がない韓国政治韓国最大野党・民主党の院内報道官を務める洪翼杓(ホン・イクピョ)議員は12日の記者会見で、朴槿恵(パク・クンヘ)大統領について「生まれてくるべきではなかった『鬼胎』」と発言した。この「鬼胎発言」に韓国政界が揺らいだ同日、インターネットのポータルサイトで最も多く読まれた政治記事は「『鬼胎発言』をした洪翼杓って誰?」だった。その記事の下に書き込まれたコメント1997件のほとんどは洪議員を非難する内容だった。しかし、左派・進歩派のネットユーザーが主に集まるサイトでは、洪議員は「英雄」または「犠牲者」扱いされていた。
ポータルサイト「ダウム」の討論広場で14日に検索したところ「この程度で揺らぐ議員先生でないことは分かっている。逆にもっと頑張る方」という書き込みが一番上に出てきた。現政権に批判的な簡易投稿サイト「ツイッター」のユーザーたちは「真実が込められた洪議員の発言を無限リツイート(転載)しよう」「擁護できないとしてもオロオロして謝罪しろというキム・ハンギル(民主党)代表はここらへんで終わりにして奥の部屋に引っ込め。そうしなければ民主主義は復活しない」というツイートをあちこちに広めた。こうした現象は全てについて「敵」と「味方」に分けて考える「陣営論理」が韓国社会に深く根ざしていることを現している。
キム・ヒョンジュン明知大学教授は「米国や英国なら暴言・失言で問題になった議員は自主的に次の選挙公認から外れるだろう。しかし、韓国ではむしろ、そういう人は味方陣営で『闘士』と見なされ、次の選挙で真っ先に公認を受ける」と話す。だから暴言を吐く政治家がいなくならないということだ。以前から政界には「敵・味方」に分ける考え方があったが、専門家によると、こうした政治の二極化現象は最近深刻化しているという。
イ・ネヨン高麗大学教授は「その根底には承服・納得しようとしない政治的風土がある。洪議員の『鬼胎発言』も『朴大統領が当選したことは到底受け入れられない』と考える人々がいるからだ。また、盧武鉉(ノ・ムヒョン)元大統領を(当時の)ハンナラ党が弾劾したのも同じ心理が働いたからだった」と分析する。
このような傾向について、コミュニケーション関連分野の学者たちは「討論で強硬な主張の方に意見が次第に集まっていく『集団極性化(group polarization)現象』が仲間同士でコミュニケーションをするインターネット文化でさらに強まったため」と話す。
ユン・ソンイ慶煕大学教授は「このような陣営政治が度を過ぎれば少数強硬派の主張の方が勢い付き、沈黙する多数派はこれに従うようになる。問題は、政治指導者たちがそうなる前に(こうした傾向を)緩和する役割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韓国の政治家たちは逆にあおっている」と懸念を示した。
最近の韓国の政治家たちは選挙で選ばれた大統領に対し、世間がカエルやネズミに例えればその言葉をそのまま使うなど、まるで「暴言特権階級」であるかのように振る舞ってきた。民主党は今回、朴大統領のことを「生まれてくるべきではなかった人物の子孫」と言ったが、ハンナラ党もかつて盧元大統領のことを「間抜け」と言った。
韓国政界がそうなってしまう理由に「オール・オア・ナッシング(すべてか無か)」である韓国の選挙制度を挙げる政治家もいる。首都圏のある再選議員は「大統領選で49%の票を得ても、51%の票を取得した派閥が権力の100%を握ることになる。当選者が1人だけの小選挙区国会議員選挙も同じ。このような制度では手段を選ばず味方を集め、敵の粗探しをするのは避けられない」と指摘した。
ソウル市内のある大学教授は「穏健・中道派の合理的な有権者が影響力を強めない限り、強硬派による陣営政治は進む一方だ。左派であれ右派であれ『忠誠心の強い発言』を望む勢力の影響力が大きいのが現実なので、政治家の暴言は今後も絶えないだろう」と見ている。
権大烈(クォン・デヨル)記者
http://www.chosunonline.com/site/data/html_dir/2013/07/15/2013071501396.html
朝鮮日報とは対極に位置する「ハンギョレ」側からこの問題を見てみても、結論としてはほとんど変わりません。みんな、自分自身のことも含めて、それが問題だということはわかってはいるんです。
‘진영의 논리’와 ‘논리의 진영’ [2012.02.13 제897호]
[노 땡큐!]‘진영(陣營) 논리’라는 말이 있다. ‘공식적인 용어’가 아니어서 뜻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편이 나뉜 상황에서 과도하게 자기 편을 옹호하거나 상대편을 공격하는 것”을 말하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때 사용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그런 식의 옹호는 ‘진영 논리’이므로 부적절하다”는 표현은 가능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진영 논리’에 따라 우리 편을 옹호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적극적인 논거로 사용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또한 어떤 행위를 ‘진영 논리’라고 비판하는 주장이라 하여 스스로는 ‘진영 논리’의 혐의에서 면제되는 것도 아니다. 간혹 보수적인 신문에서 진보 진영의 어떤 태도를 ‘진영 논리’라고 공격하는 것보다 더 역겨운 ‘진영 논리’는 없지 않은가.
너무 뜨겁고 즉흥적인 논쟁 방식
그렇다면 ‘진영 논리’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공정한 논리’도 답이 될 수 있겠지만, ‘진영 논리’와 쌍을 이루는 용어는 “우리 편의 보호가 절실할 때, 논리에만 치우쳐 우리 편을 곤경에 빠뜨리는 논리”, 즉 ‘무책임한 논리’라고 할 것이다. 이 용어는 ‘진영 논리’와 유사한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무책임한 논리’에 따라,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해야 한다”라는 표현은 의아한 용법이 되고, 어떤 행위를 ‘무책임한 논리’라고 규정하는 주장이라 하여 스스로는 ‘무책임한 논리’의 가능성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결국 ‘진영 논리’나 ‘무책임한 논리’라는 용어는 객관적으로 사용되기보다는 어떤 주장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릴 때 사용하는 일종의 ‘정치적 수사’임을 알 수 있다. 즉 어떤 주장은 ‘맞는 주장’이거나 ‘틀린 주장’일 수 있고, 그것은 많은 경우에 확정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주장이 ‘진영 논리’인지, ‘무책임한 논리’인지, 아니면 ‘공정한 논리’인지는 그 주장이 행해지는 상황과 맥락에 대한 가치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러한 가치판단은 각자의 위치와 상황 인식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일반적으로 ‘논리의 진영’은 ‘진영 논리’를 공격하고 ‘책임의 진영’은 ‘무책임한 논리’를 공격하게 마련인데, 그러한 논쟁이 격화된 요즘의 상황은 안타깝다. 왜냐하면 그런 논쟁이 ‘민주주의’와 ‘일하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염원하는 사람들 간에 자주 벌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논쟁은 살균돼서는 안 되고, 반드시 지속적으로 전개돼야 한다. 논쟁이 촉발하는 성찰이 없는 진영은 언젠가 파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부러진 화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나꼼수의 ‘비키니 사진’ 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너무 뜨겁고 즉흥적인 논쟁 방식은 우리의 소중한 전위들과 그들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가운 비판보다 따뜻한 비판을
나는 영화 <부러진 화살>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감독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나는 진중권씨의 의견에 모두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명석함과 촌철살인을 보며 (좋은 의미에서) 뇌를 열어보고 싶을 정도로 경탄한다. 또한 나꼼수의 용기와 유머와 분노를 사랑한다. 그래서 이들과 이들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열심히 논쟁하되, 서로의 선의를 존중하고, 오독을 피하기 위해 세심하게 상대의 주장과 논거를 살펴보며, ‘차가운 비판’보다는 ‘따뜻한 비판’을 나누었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이 있다.
조광희 변호사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1343.html
これが朝鮮時代の党争に根を持つ現象であるかどうかはともかく、両者とも崖っぷちで争っているかのような「背水の陣」の雰囲気は、確かに何となく似ているような気がしなくもありません。
傍目には「そこまでせなならんことか?」「他に考え方はないんか?」と思えることで殴り合っているように見えるところまで似ている、と言えば、怒られてしまうでしょうか。
李承晩の時代、朴正熙の時代、全斗煥の時代を乗り越え、民主化以降は盧泰愚・金泳三・金大中・盧武鉉・李明博の各政権を経験してきたんですから、「負けたらこの世の終わり」といったノリで互いにいがみ合う必要はないと思うんですけどね。
そう言われて素直に仲良くできるのなら、苦労はないというものです。でも、どうせなら、命のある限りは、敵を作って口汚く罵る人生よりも、愛しい人を大切にする人生の方が、よくはございませんこと?
どのみち、韓国は5年で大統領が替わるんですし、その時、その先、攻守交代した時までを頭に入れて行動を考えるだけでも、ちょっとは違うと思うんです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