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学徒義勇軍の記念式典

韓国の「学徒義勇軍」と言ってまず思いつくのは、映画「砲火の中へ」で描かれた、浦項北朝鮮軍と交戦した学生たちのことかもしれませんが、こちらは在日学徒義勇軍です。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 - 훈터 - [오아시스 No_13]나라를 지킨 해외의 한국청년들-재일학도의용군


在日義勇兵帰還せず―朝鮮戦争秘史

在日義勇兵帰還せず―朝鮮戦争秘史

毎年この時期に慰霊行事が行われているという仁川・寿鳳公園は、1号線の道禾駅か済物浦駅が最寄りですね。


記事入力 : 2014/09/30 10:50
在日学徒義勇軍記念式典、きょう開催

 30日午前11時から、仁川市内の寿鳳公園内にある在日学徒義勇軍参戦記念碑前で在日学徒義勇軍6・25(朝鮮戦争)参戦64周年記念式典(主管:在日学徒義勇軍同志会)を開催する。国家報勲処が29日に発表した。

 この式典には、国家報勲処のチェ・ワングン次長、劉正福(ユ・ジョンボク)仁川市長、与党セヌリ党の金鍾泰(キム・ジョンテ)議員、米第8軍のクリス・ジェントリー副司令官、ナム・ギソン第3軍需司令官、呉公太(オ・ゴンテ)在日本大韓民国民団団長、在日学徒義勇軍とその遺族ら500人以上が出席する。

 6・25当時、日本に居住していた在日韓国人の青年や学生など642人は兵役の義務もなく、また祖国から招集されたわけでもなかった。しかし、祖国の危機を見過ごすことができず、仕事や学業を中断して愛する家族に別れを告げ、玄界灘を渡り自ら参戦した。

 在日学徒義勇軍の参戦は、第3次中東戦争で海外に居住していたユダヤ人がイスラエル軍に参加した1967年よりも17年早く、世界史においても例のないケースだった。祖国のために命をささげた彼らの崇高な犠牲精神は、後世にとっては民族の矜持(きょうじ)であると同時に誇りでもあり、また長く受け継ぐべき精神的な宝だ。

 在日学徒義勇軍は6回に分かれて入国し、その後米第8軍や韓国軍などに配置されて、仁川上陸作戦、ソウル奪還作戦、元山とその北方にある利原上陸作戦、甲山・恵山鎮奪還作戦、白馬高地での戦闘など数々の功績を挙げたが、参戦した642人のうち135人が帰らぬ人となった。

 1953年7月27日に停戦協定が調印されると、生存者たちは日本に戻ろうとしたが、日本政府は無許可で韓国に渡った彼らの再入国を拒否し、うち242人は祖国に残った。

 両親や兄弟、また子供たちが待つ日本に戻ることができず、人生の方向性が変わったまま祖国で生き続けねばならなかった彼らを韓国政府は1968年に国家有功者として礼遇し、現在もさまざまな支援を行っている。

キム・フンギ記者

http://www.chosunonline.com/site/data/html_dir/2014/09/30/2014093001439.html

재일학도의용군 6·25참전 기념식 30일 인천서 거행
기사등록 일시 [2014-09-29 11:34:40]

【서울=뉴시스】김훈기 기자 = 국가보훈처는 30일 오전 11시 인천 수봉공원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에서 제64주년 재일학도의용군 6·25참전 기념식을 개최한다고 29일 밝혔다.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회장 김병익)주관으로 열리는 이날 기념식은 최완근 국가보훈처차장, 유정복 인천시장, 김종태 국회의원, 크리스 젠트리(Chris R. Gentry) 미8군 부사령관, 남기선 제3군수사령관, 오공태 재일본대한민국민단장, 재일학도의용군, 유가족 등 500여 명이 참석한다

6·25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청년과 학생 642명은 병역의 의무도, 조국의 부름도 없었지만 위기에 처한 조국의 운명을 두고 볼 수 없어 직장과 학업을 중단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현해탄을 건너 자진해 참전했다.

일본에 거주하던 청년·학생들의 참전은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의 외국동포 참전보다 17년이 앞설 만큼 세계역사상 유례가 드문 일이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후세에 길이 남을 민족의 긍지요, 자랑이며, 계승되어야 할 정신적 자산다.

이들 재일학도의용군은 여섯 차례에 걸쳐 입국 후 미8군과 한국군 부대에 배치돼 인천상륙작전 및 서울탈환작전, 원산·이원상륙작전, 갑산·혜산진 탈환작전, 백마고지 전투 등 각종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으며 참전자중 135명이 전사했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조인된 후 생존자들이 일본으로 귀환하려 하자 허가 없이 떠난 재일학도의용군들의 재입국을 일본이 거부해 242명은 조국 땅에 남았다.

정부에서는 부모형제와 자녀가 기다리고 있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생의 방향이 바뀐 채 조국에서 살아야만 했던 이들을 위해 1968년 국가유공자로 지정해 각종 보훈혜택을 지원하고 있다.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929_0013199771&cID=10304&pID=10300

中央日報が「ご存知ですか」という見出しをつけているのは、韓国でもそれほど知られているわけではないということを、意味しているのでしょう。

재일본학도의용군 아시나요…30일 6·25참전 기념식 거행
[중앙일보] 입력 2014.09.29 09:56 / 수정 2014.09.29 10:03

"재일본학도의용군을 아시나요."

6·25전쟁 당시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본에 거주하며 다니던 직장과 학업을 중단하고 참전한 642명의 청년과 학생들. 이들은 병역의 의무도, 국가의 부름도 없었지만 전황이 불리하다는 소식에 전쟁터에 뛰어 들었다.

여섯 차례에 걸쳐 입국한 뒤 미8군과 한국군 부대에 배치돼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 원산·이원상륙작전, 갑산·혜산진 탈환작전, 백마고지 전투 등 각종전투에서 전공을 세웠으며, 참전자 가운데 135명이 전사했다.

정전협정 조인(1953년 7월 27일) 조인 후 생존자들은 일본으로 귀환하려 했지만 허가 없이 떠난 재일학도의용군들의 재입국을 일본이 거부해 242명은 학업과 생업을 잇지 못하고 한국에 머물며 새로운 인생을 준비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일본에 거주하던 청년ㆍ학생들의 참전은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의 해외동포 참전보다 17년이 앞설만큼 세계역사상 유례가 드문 일"이라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후세에 길이 남을 민족의 긍지요, 자랑이며, 계승되어야 할 정신적인 자산"이라고 말했다.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회장 김병익)는 이들의 참전을 기념해 30일 오전 11시 인천수봉공원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에서 제64주년 재일학도의용군 6·25참전 기념식을 연다. 기념식에는 최완근 국가보훈처차장, 유정복 인천시장, 김종태 국회의원, 크리스 젠트리(Chris R. Gentry) 미8군 부사령관, 남기선 제3군수사령관, 오공태 재일본대한민국민단장, 재일학도의용군, 유가족 등 5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정용수 기자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953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