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州の性売買関連記事

昨日の性売買のニュースに関連して、今まで何度か訪れながらノーチェックだった光州の事情に関して、少しばかりチェック。機会があれば、いちど歩いてみるとしましょう。

ちなみに、すぐにわかるかと思いますが、下の記事の「公唱」は「公娼」の間違いです。

광주 공창 光州 公唱(6)
입력시간 : 2014. 10.16. 00:00


옛 대인동 사창가- 광주 동구 금남·반도상가 주변 일대가 도시환경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도로망 및 상가 등이 새롭게 단장되어가고 있다. 옛 홍등가의 흔적을 볼 수 없을 만큼 변모해 있다.오세옥기자

공창제도의 시작

이태리나 그리스를 여행하다보면 고대에도 성매매풍습이 있었던 유적을 볼 수 있다. 언제나 숫컷의 본능을 지닌 남성은 시도때도 없이 성충동을 느껴 여성의 접촉을 원하는 것이 DNA이다. 다만 여성은 동물의 세계에서처럼 수태기 때만 성충동을 느꼈을 것이나 일부일처제를 유지해 자신과 자녀의 안전을 도모하도록 남편을 붙잡기위한 방편으로 성감대를 발전시켜 수태기 이외에는 남성의 성충동을 만족시키기 위한 진화가 이뤄졌을 것으로 본다. 먼 옛날부터 남성의 외도를 충족시키기위한 성매매가 이뤄졌을 것이지만 사회질서상 법으로 규제하던 것을 법적으로 허용한 나라는 프랑스가 맨처음으로 알려져있다. 이 제도는 나라에서 장소를 지정해 성매매를 허용하는 것으로 공창제라 한다. 카톨릭 율법으로 일부일처제를 유지해오던 유럽사회에 자유의 물결이 닥쳐오면서 신교태동이 성공을 거두자 일부일처제에 대한 전통의식이 무너지면서 자유 연애가 유행을 이뤘다. 1760~87년의 27년 사이에 파리시내에는 5천명의 혼외사생아가 길거리에 버려졌다. 성의 자유를 외치던 미혼모들이 신생아 양육을 위한 생활방편의 하나로 성매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에 성공한 프랑스는 기아와 미혼모문제의 해결책으로 일정장소를 지정해 성을 매매할 수 있는 공창제를 실시했다. 이 물결은 곧 유럽전역에 번져 독일이나 네덜란드 등 일부국가들은 오늘날도 공창제를 유지하고 있다. 동양에서 이 제도를 제일 먼저 수입한 나라는 네덜란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이다. 물론 일본에는 전통적인 게이샤(예기)가 있었고 술자리 시중도 들고 몸도 파는 창기제도가 있었으나 유럽처럼 일정한 장소를 정해 몸만을 파는 공창제도를 둔것은 1870년대 명치유신 이후이다.

공창제도에 맛들인 일본인들은 조선침략의 첨병으로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창기들을 거느린 유곽업자들도 동행했다. 광주에도 1905년 이미 일본기생업자가 서동에 자리잡았다. 일본총독부는 1916년 유곽지대라는 이름의 전국적인 공창지대를 지정할 때 광주는 불노동 일대가 유곽지대로 지정되었다. 이 무렵에 불노동 천변에 하루노야 春の家와 금남로 3가 현 학생회관 자리의 기다무라 北村樓, 서동의 이시무라 西村樓가 자리잡아 일본게이샤를 두어 갑종요리점이라 했다. 창기접대부를 두는 식당을 을종이라 했는데 1916년 당시 7집이 일본창기 22명을 두고 있었다. (기다무라의 '광주지방사정지')

이처럼 일본기생들을 둔 요리집이 호항을 누리자 한국기생을 2~3명씩 둔 서봉루와 서흥관이 문을 열었다. 당시 광주인구는 8만명이었고 광주읍내인구는 3천628명으로 그 중 55.6%인 2천17명이 일본인이었다. 일본인 남자 절반가량인 997명이 직업을 가진 성인이었으므로 이들을 고객으로 한 일본요리집만 10집이 있었던 셈이다. 광주에 철도가 놓이고 역전에 많은 사람이 드나들면서 술집과 매음작부들이 기생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불노동에 기생공급을 위한 일본식 권번券番이 생겼다. 갑오경장으로 관아에 속했던 기생들이 자유를 얻었지만 생계방편으로 요정에 진출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지방에서는 퇴기들이 무계종사자들과 더불어 신청을 만들어 무신을 섬기는 한편 국악연수생들을 뽑아 교육을 시키는 곳이 있었지만 광주는 이미 일본화과정을 걷고 있어서 신청은 없었고 일본식 기생양성소인 권번만 있었다. 이곳에서는 국악지망소녀들을 교육시키면서 요정 등의 요청이 있으면 숙련된 기생을 공급해주기도 했다.


첫 일본 유곽 자리- 일본 유곽 자리로 알려지고있는 부동교 인근 도심.

서울에서는 예기권번과 창기권번이 따로 있어서 예기권번은 게이샤를 양성하고 창기권번은 유곽접대부 양성을 맡았으나 광주는 이같은 구분이 불분명했다. 광복 후 일제공창제는 그대로 유지되다가 1948년 미군정청이 이 제도를 폐지했다. 이 때문에 공창은 없어지고 사창私唱이란 이름으로 그 습속이 지속되었다. 특히 광주는 상무대가 들어서면서 사창이 더욱 번성했다. 결국 광주구역앞 대인동 일대(현 롯데백화점 주변)는 사창가로 성매매 여성을 둔 집들은 대문앞에 붉은 등을 내걸어 이곳을 홍등가紅燈街 또는 적선지대赤線地帶라 불렀다. 지금은 창녀촌을 집창촌集唱村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1962년 윤락여성방지법을 공포하고 사창제마저 철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인동 사창거리는 10여년뒤까지 영업을 계속했다. 이곳 관리는 경찰서 보안과에서 맡았고 등록업자와 등록접대부가 있어서 매주 1회 시보건소의 성병검진을 받도록 했다. 60년대 후반 이곳 대인동사창지대 업주는 49명이었고 종사종업원 수는 2백여명이었다. 당국은 이곳 여성들의 직업선도를 위해 66년 계명여사의 직업보도훈련을 담당시켰다. 1976년 대인동에 버스공용터미널이 들어서면서 비로소 이곳 사창촌은 없어졌다. 일제시대에 시작된 유곽제요리점은 광복후에도 이어져 기생집 또는 요정이라는 이름으로 국악을 들려주며 요리를 파는 요정과 손님 시중만을 들고 2차 성매매장소로 이동하는 접대부요리집으로 나뉘어 70년대초까지 지속되었다. 당시 보건소는 적선지대여성, 다방종업원, 요정접대여성 성병검진이 큰 업무 중 하나였다.

70년대는 황금동 정종 댓포집이 유행하면서 학동천일극장 거리까지 접대여성을 둔 선술집이 홍등가를 대신했다. 대인동 집창촌이 없어지면서 이곳 여성들은 독탕을 둔 대중목욕탕 때밀이로 진출하기도 하고 퇴폐이발소 이발사로 진출했다. 이 여자이발사들이 안마를 겸하면서 점차 안마를 전문으로 한다는 안마시술소로 업종을 변경하기도 하고 노래방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한때는 캬바레라 이르는 양춤술집이 성매매 알선업소로 변태영업을 하기도 했다. 성매매는 2004년 그 알선등 행위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외형적으로는 성매매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남자들은 여전히 성충동을 버리지못하는 숫컷으로 존재해 있고 여성들 중에는 생활방편으로 성을 제공하고 댓가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어 갖가지 방법이 법망을 속여가며 지속되고 있다. 남성은 성행위 자체를 원하고 여성은 사랑을 원하는 이질생체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매매춘은 계속될 것이고 이를 부도덕한 인간모독행위라는 주장과 성행위도 신성한 자유영역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될 것 같다.

무등일보

http://www.moodeungilbo.co.kr/read.php3?aid=1413385200451935169

경찰, 광주 대인동 집창촌 단속..10명 입건

"일반 주택서 성매매..집주인도 성매매 알선 입건"

(광주=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집창촌 일대 주택에서 이뤄지는 호객 성매매가 다시 고개를 들어 경찰이 단속에 나섰다.

광주 동부경찰서는 동구 대인동 집창촌을 집중 단속해 10명을 입건했다고 22일 밝혔다.

입건된 사람들은 속칭 포주 3명, 건물주 3명, 성매매 여성 4명이다.

이 일대에는 호객꾼들이 남성을 유인해 수만~10만원을 받고 일반 주택에서 성매매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음성적인 수법 때문에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10여곳에서 성매매를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경찰은 전했다.

특히 경찰은 성매매 사실을 알고도 월세를 받고 다세대 주택의 쪽방을 임대한 건물주들도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해 단속 의지를 보였다.

경찰은 관련 법과 단속이 강화된 뒤 주춤했던 성매매가 다시 고개를 드는 것으로 보고 여성단체, NGO와 함께 지속적으로 단속할 방침이다.

2011/07/22 10:27 송고

http://www.yonhapnews.co.kr/local/2011/07/22/0812000000AKR20110722072500054.HTML

또 성매매와의 전쟁…광주 대인동 집창촌 사라지나
기사등록 일시 [2014-12-07 13:48:49]

정부 전국 25곳 폐쇄 추진·신변종 업소 처벌 강화키로
유흥주점 빠진 대책…"결국 없어지지 않을 것" 지적도

【광주=뉴시스】배동민 신대희 기자 =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10년 만에 정부가 다시 성매매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광주에서는 대인동의 집창촌 폐쇄가 추진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집창촌에서 유흥·단란주점 등으로 이동하고 있는 최근 성매매 추세를 감안하지 못한 대책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7일 여성가족부 등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성매매 집결지 25곳을 폐쇄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광주에서는 대인동, 전남은 여수 공화동의 집창촌이 포함됐다.

광주 성매매피해상담소 '언니네'가 최근 조사한 광주지역별 성매매 가능업소 현황에 따르면 대인동의 경우 지난 6월 기준 유흥주점으로 등록한 유리방 형태의 업소가 11개, 무등록으로 영업하는 업소가 25개로 총 36개의 업소가 성매매영업 중이다.

앞으로 이들 업소에 대한 폐쇄가 추진되고 그 자리는 도시정비계획을 통해 지역 특성에 맞는 개발이 진행된다.

정부는 또 키스방, 귀청소방 등 신종·변종 성매매업소 단속과 영업정지, 영업장 폐쇄 등 행정처분을 강화키로 했다. 특히 성매매업소의 범죄 수익을 몰수·추징하고 학교와 주택가 주변에 들어선 신종 성매매업소는 강제 철거할 계획이다.

그러나 성매매와의 전쟁에서 유흥·단란주점이 빠지면서 알맹이는 빠진 대책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광주에서 성매매가 가능한 업소는 모두 2487개에 달하며 이 중 유흥주점이 745개, 단란주점이 460개로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특히 최근 5년간 유흥·단란주점은 19.1% 가량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증가율로만 보면 전국에서도 인천과 함께 가장 빠른 증가 추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경찰 단속은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올해 6월말까지 광주 지역에서 이뤄진 497건의 성매매단속은 신변종(36.2%), 기타(16.5%), 마사지(14.1%) 순이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유흥업소 단속은 9.7%에 그쳤다.

유흥업소 단속 건수도 2011년 20건, 2012년 17건, 2013년 11건으로 점차 줄어들었으며 올해는 6월말까지 단 한 건의 단속도 이뤄지지 않았다.

집창촌 성매매 여성들도 이 같은 논리로 정부의 단속 정책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유흥·단란주점을 제외하고 사실상 사양(斜陽)의 길을 걷고 있는 집창촌 단속에 대한 불만이 컸다.

동구 대인동 금남로 5가에서 7년째 업소를 운영하는 A(39)씨는 "엄청난 돈을 쓸어 담는 유흥주점 등은 사실상 방치하고 집창촌만 없앤다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비난했다.

성을 매수하는 남성들이 있는 한 집창촌을 비롯해 성매매 업소가 사라질 가능성은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 대인동은 지난 2009년부터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아 현장기능강화사업을 진행하며 집결지 폐쇄 등의 대책을 세우도록 했으나 폐쇄는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대인동 금남로에서 만난 업주 B(62·여)는 "집결지를 없앤다고 성을 사고파는 건 없어질 수가 없다"며 "성매매는 절대 안 줄어든다"고 말했다.

정부가 탈 성매매 여성에 대해 상담·주거·의료·법률·경제적 자립 지원을 병행할 방침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성매매 여성은 "갈 곳 없는 우리는 단속에 걸려도 다른 곳으로 찾아가는 게 일상이다"며 "누가 하고 싶어서 하나.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거다"고 말했다.

다른 여성은 "이 곳 여성은 모두 빚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고 있다"며 "나중에 성매매를 하지 않고 결혼을 하면 업주가 직접 찾아오거나 대부업체를 통해 민사소송을 걸어온다. 이런 상황을 알기 때문에 쉽게 업소에서 나오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1207_0013341850&cID=10809&pID=10800

2012年 韓国風俗街を歩く 光州(クァンジュ)東区大仁洞の置屋街をぶら〜り - 韓国 ヨギ チョ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