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国教育部の「今月の先生」選定、いきなりの躓き

韓国で「今月の○○」と言えば、すぐに思い出されるのは国家報勲処がやってる「今月の報勲人物」です。関連施設に行けば目に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が、要するにそれは、独立運動家や戦場の「英雄」などを毎月選定してポスターなどで広報する、といったものです。

この「今月の先生」事業は、たぶんそれの教育部版なのでしょう。この事業は昨年8月に教育部長官から提起されたもので、この3月から始まったものの、その選定人物をめぐって「親日派」疑惑が持ち上がったというお話です。

天皇のために死のう」と書いた人物を「今月の先生」に選んだ韓国教育部
登録 : 2015.03.10 21:03 修正 : 2015.03.11 06:49

崔奎東氏、日帝官営紙に「死を以て恩恵に報いよ」
教育部は遅れて確認し「教育と広報を中断…再検証」


崔奎東氏を「今月の先生」に選定した韓国教育部ホームページ。//ハンギョレ新聞社

 教育部が小中高で「今月の先生」として教えることにした人物が、日帝強制占領期間に「死を以て天皇の恩恵に報いよう」という文を書くなど、親日行為を日常的に行っていた事実が明らかになった。

 8日、歴史正義実践連帯が国立中央図書館などの資料を確認した結果、教育部が「今月(3月)の先生」に選定した崔奎東(チェ・キュドン)氏(1882〜1950)は、京城中東学校校長だった1942年6月、日帝官営紙『文教の朝鮮』に「死を以て軍は(天皇の恩恵)に報いる」と題した文を載せた。

 崔奎東氏は「半島2400万民衆も…兵役に服務する栄誉を担うことになった。(中略)この光栄に感泣し、死を以て天皇の恩恵に報いて差し上げる決意を新た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し、これは「皇国臣民教育の最後の仕上げ」と書いた。 当時の『毎日新報』には、彼が朝鮮神宮の中日戦争祈願祭発起人、臨戦報国団評議員、徴兵制実施祝宴などに参加したことが出ている。 彼の行跡は民族問題研究所が出した『親日人名辞典』には上がっていない。

 キム・ドンウォン教育部学校政策室長は「教育と広報を直ちに中断し、(今月の先生) 12人を全て全面再検証し、推進可否を決める」と明らかにした。

 2月に教育部はファン・ウヨ教育部長官の指示で韓国教員団体総連合会(教総)とともに選定作業を始め、崔奎東氏ら12人を今月(3月)の先生として発表した。 合わせて崔奎東氏が「民族の師範、朝鮮のペスタロッチと呼ばれている」という契機教育資料とポスターを全国の小中高約1万2000校に配布した。

イ・スボム記者

韓国語原文入力:2015/03/09 01:17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681323.html 訳J.S(922字)

http://japan.hani.co.kr/arti/politics/19919.html

記事入力 : 2015/03/10 11:31
韓国教育部選定「今月の先生」に親日疑惑

天皇・戦争を称賛する記事見つかる
韓国教総「生涯民族教育に尽力、むやみな批判はやめるべき」

 韓国教育部(省に相当)が最近「今月の先生」に選んだ白儂・崔奎東(チェ・ギュドン)=1882−1950=が、親日批判にさられている。これを受けて教育部は、選定の再検討を決めた。教育部側は9日「創氏改名の拒否、建国勲章の追贈など、大韓民国草創期の教育の発展に対する貢献を認め、3月の『今月の先生』に選定したが、植民地時代に寄稿した記事が発見されたことに伴い、専門機関に依頼して再検証を実施し、選定するかどうかを決めたい」と発表した。

 教育部は先月、崔奎東、南宮檍(ナムグン・オク)、崔容信(チェ・ヨンシン)、周時経(チュ・シギョン)、呉天錫(オ・チョンソク)、安昌浩(アン・チャンホ)、金躍淵(キム・ヤクヨン)、黄義敦(ファン・ウィドン)、金教臣(キム・ギョシン)、金弼礼(キム・ピルレ)、チョ・マンシク、李時説(イ・シヨル)の12人を「今月の先生」に選定・発表した。「今月の先生」とは時代を超えて国民に尊敬される先生を選び、教師を敬う風土をつくるため、韓国教員団体総連合会(韓国教総)と共に推進しているものだ。

 3月の先生に選ばれた崔奎東については「献身的な教育者のシンボルにして民族運動家でもあり、植民地時代に『自分の手で自分の子弟を教育する』という一念から創氏改名をせず、毎朝学生たちに韓国語で訓話を行い、清廉な教育者として生きた」と発表していた。崔奎東は、平壌の大成学校、徽文義塾、五星学校で数学を教え、中東学校設立後は校長に就任、さらにソウル大学初代総長、韓国教総の前身に当たる朝鮮教育連合会会長などを歴任した。

 しかし最近、市民団体・社会団体などからなる「歴史正義実践連帯」が「崔奎東は植民地時代に天皇侵略戦争を称賛する文章を書いた」と主張し、問題になった。実践連帯によると、崔奎東は植民地時代に、教育専門誌「文教の朝鮮」1942年6月号に「死をもって天皇の恩恵に応える」と題する日本語の記事を寄稿した。

 教育部側は「教育および歴史学界からなる選定審査委員会で徹底して審査したが、親日人名辞典にも崔奎東の名前は載っていなかった」と釈明した。また韓国教総は9日に声明を発表し「崔奎東の一部の行為を大げさに扱って全生涯にわたる抗日運動や民族教育そのものを否定し、親日とののしるべきではない。崔奎東の記事が寄稿された1942年は、日帝が最後のあがきをしていた時期で、記事を書かなければ学校を閉鎖されるなどの危機の中で、仕方なく書いたのだろう」と反論した。

キム・ヨンジュ記者

http://www.chosunonline.com/site/data/html_dir/2015/03/10/2015031001695.html

案の定というか何と言うか、この件で鼻息が荒い記事の筆頭は、まずこのオーマイニュースでしょうか。

www.ohmynews.com

ソウル新聞の社説も随分と辛辣です。

[사설]친일파를 ‘이달의 스승’으로 뽑은 정신 나간 교육부

교육부가 일제강점기에 친일 행적을 한 인물을 ‘이달의 스승’이라고 선정하는 정신 나간 짓을 했다. 역사정의실천연대에 따르면 교육부가 ‘이달(3월)의 스승’으로 뽑은 최규동(1882~1950)씨는 경성중동학교 교장이던 1942년 6월 일제 관변지인 ‘문교의 조선’에 ‘죽음으로써 군은(君恩·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최씨는 “반도 2400만 민중도 마침내 병역에 복무하는 영예를 짊어지게 되었다. 이 광영에 감읍하여 한 번 죽음으로써 임금의 은혜에 보답해 드리는 결의를 새로이 해야 한다”면서 “군무에 복무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황국신민 교육의 최후의 마무리로 완성된다”고 썼다.

일왕의 은혜를 갚기 위해 죽음으로 보답하자고 선동하는 것은 누가 봐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대표적인 친일 행각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최씨를 ‘민족의 사표, 조선의 페스탈로치’라고 선전했다. 전국 초·중·고교 1만 2000여곳에 최씨에 대한 교육 자료와 포스터를 나눠 주는 한심한 작태를 벌였다. 정부세종청사에도 최씨의 홍보 입간판을 내걸었다. 매일신보에 따르면 최씨는 조선신궁(신사)의 중일전쟁 기원제 발기인, 임전보국단 평의원, 징병제 실시 축하연에도 참가한 것으로 나와 있다. 교육부는 검증을 했지만 최씨의 친일행적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검증을 처음부터 엉터리로 했거나 아니면 교육부가 무능하다는 얘기 말고는 달리 설명이 안 된다.

‘이달의 스승’ 사업은 지난해 8월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를 조성한다며 귀감이 될 만한 교육계 인사를 매달 1명씩 선정하기로 한 것이다. 최규동씨는 지난달 교육부가 발표한 첫 번째 인물이다. 교육부는 그를 민족운동가로 소개하면서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자제를 교육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우리말 수업을 고수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으니 제 정신이라고 볼 수 없다. 친일 행각이 드러나자 교육부는 뒤늦게 이달부터 초·중·고교에서 시작한 최씨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중단하고, ‘이달의 스승’ 12명을 전부 재검증해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사후약방문 격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큰 혼란을 주고 역사를 오독하게 한 교육부의 잘못이 크다. 사달이 일어난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잘못이 드러난 사람들은 추천위원회에서 영구 제명하는 등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2015-03-10 31면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0310031008

ただ、こうした論調が韓国メディアを埋めているというわけでもなさそうで、「攻撃」側の「歴史正義実践連帯」に対して、教育部や韓国教員団体総連合会の反論も掲載するという「客観報道」が(少なくとも今のところは)大勢を占めているように見えます。

최규동 친일 행적 논란에 교총 “일부 행위로 전 생애 매도 말아야”
디지털뉴스팀 입력 : 2015-03-09 17:13:17ㅣ수정 : 2015-03-09 17:13:17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최근 교육부가 ‘이달(3월)의 스승’중 한 명으로 선정한 최규동 전 서울대 총장의 친일행적 논란과 관련, 9일 입장문을 내고 “일부 자료만을 갖고 전 생애를 친일행위로 매도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주장했다.

역사정의실천연대는 전날 교총 초대 회장을 지낸 최규동 전 총장이 경성중동학교 교장이던 1942년 6월 일제 관변지 ‘문교의 조선’에 ‘죽음으로써 군은(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고 밝혔다. 최씨는 이 글에서 “조선동포에 대한 병역법 실시가 확정돼 반도 2400만 민중도 마침내 쇼와 19년부터 병역에 복무하는 영예를 짊어지게 됐다”며 일제의 한국인 징병을 미화했다.

이에 대해 교총은 “‘경성중동학교장 최규동’이라고 명시돼 있다고는 하나, 자발적으로 본인이 쓴 글인지, 강제에 의한 것인지, 명의가 도용된 것인지 진위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부 행위를 침소봉대해 전 생애에 걸쳐 확인된 항일 운동과 민족교육의 삶 전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최규동 전 서울대 총장

교총은 “자발적이든 강제든 만에 하나 본인이 쓴 글이라 하더라도 일제가 최후의 발악을 하던 시기에 일제의 글을 쓰라는 지시를 어기면 결국 학교 폐쇄를 맞을 위기 속에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을 수 있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 전 총장이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일제의 탄압에도 우리말 수업을 고수하고 일본식 교과과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고등보통학교를 거부한 행적 등을 소개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401&artid=201503091713171

まあ、韓国内でどの立ち位置にいるとしても「親日派」というレッテルに対して正面から反論することはなかなか難しいでしょう。なので、この論議に対する態度は「白か黒か」といった単純なものではなく、全体として積極と消極との間で揺れ動く「程度の問題」といった曖昧なものになることが予想されます。

ただですねえ、独立運動家や軍人とは違って、教育者の場合、公教育の現場に踏みとどまっていた人ほど、ここでソウル大学校初代総長が指弾されているような「親日の行跡」と無縁でいることは難しかったと思うのですよ。

d.hatena.ne.jp

d.hatena.ne.jp

とすれば、この問題、単なる一人の教育者の「親日派」問題にとどまらず、下手をすると「今月の先生」事業そのものが看板倒れてしまう可能性が高いのではないのかなあ、と思われる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