徽文高野球部の鳴門合宿

徳島新聞が報じているこれ、徽文高校の野球部でしょう?1906年創立、1907年創部で、韓国随一の名門校ですよ。戦前には甲子園に出場して勝利を挙げたこともあります。

ko.wikipedia.org
휘문고등학교 야구부 - 나무위키

f:id:bluetears_osaka:20200127101000j:plain

「政治と野球は別」 韓国高校球児、徳島・鳴門市で合宿始まる 中止検討も選手が熱望
1/25 5:00

f:id:bluetears_osaka:20200127100023j:plain
鳴門で合宿を始めた韓国・フィムン高校の野球部員=鳴門市総合運動場

 韓国・ソウルのフィムン高校野球部が合宿で鳴門市を訪れ、市総合運動場(撫養町斎田)で24日、練習を始めた。日韓関係が冷え込む中、選手は「政治は関係ない」と昨年に続いて2回目の訪問を果たした。2月23日まで滞在する。

 一行は選手や監督ら28人。23日夕に鳴門入りした。練習初日は、キャッチボールやノックなど軽めのメニューで体を動かした。

 鳴門で合宿した昨季は全国大会で優勝したほか、韓国のプロ野球ドラフト会議で選手4人が指名された。今季は元徴用工問題などの影響で来日中止を検討したものの、「環境の整った鳴門で合宿したい」とする選手や監督の熱意が学校側に伝わったという。

 キム・ヨンジク監督(60)は「昨年は鳴門でお世話になり、いい結果が出せた。市やホテル関係者らのサポートも心強かった」。3年のチャン・スヒョン主将(17)は「政治と野球は別。連覇目指して頑張りたい」と話した。

 期間中は鳴門オロナミンC球場などで練習し、徳島インディゴソックスと交流試合を行う。25日は市出身の元プロ野球選手、里崎智也さん(43)を招き、鳴門、鳴門渦潮両校の野球部員と交流する。

https://www.topics.or.jp/articles/-/314232

この時には、台湾の学校との交流戦に参加したのを、嘉義の野球場で観ています。今は徳島で合宿を張るようになってるんですね。

blue-black-osaka.hatenablog.com

「徽文高の甲子園出場」(1923年)については、こういう連載記事(「韓国高校野球の甲子園進出史」)があります。細かいことでは知らない内容も多くあって、たいへん興味深く読めました。

www.newstof.com
f:id:bluetears_osaka:20200127102623p:plain

www.newstof.com
f:id:bluetears_osaka:20200127102740p:plain

www.newstof.com
f:id:bluetears_osaka:20200127102839p:plain

www.newstof.com
f:id:bluetears_osaka:20200127102951j:plain

www.newstof.com
f:id:bluetears_osaka:20200127103024j:plain

また、キムヨンジク監督については、朝鮮日報サイトに長めのインタビューが出ています(もともとはOSENの月刊誌に掲載されたもの)。徽文高のOBで、プロ野球の世界で選手・コーチを経験した方のようですね。

news.chosun.com

###김영직 감독 프로필

지금은 없어진 유한중 1학년 때 야구가 좋아서 글러브와 방망이를 잡았다. 그리고 휘문고와 영남대를 거쳐서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에 입단했다. 1987년 MBC청룡에 지명돼 교사와 프로를 놓고 고민하다가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됐다. 프로 선수시절 대스타는 아니었지만 ‘영감’이라는 별명처럼 필요할 때마다 한 방씩을 해주며 1995년까지 LG에서 외야수로 뛰다가 1997년부터 LG 코치로 활동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29/2019102901250.html

f:id:bluetears_osaka:20200127104635j:plain

【ソウルの風景】中央大学校・義血塔

さて、前回の続きの本題。

blue-black-osaka.hatenablog.com

中央大学校まで見に来たのは、1960年の4.19革命関連の記念造形物です。

blue-black-osaka.hatenablog.com

場所は中央図書館前です。

f:id:bluetears_osaka:20190830162321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62459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62531j:plain

ひとつずつ見ていくと、こんな感じです。

f:id:bluetears_osaka:20190830162759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62517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62539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62545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62553j:plain

義血塔は1960年中に立てられたとのことですが、同じ場所にあるこちらは民主化後の1988年に建てられたもののようです。

f:id:bluetears_osaka:20190830162607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62619j:plain

ともあれ、この「義血」というのが中央大の精神の「一部」として受け継がれてきたのは確かなようです。

<용어해설> * 의혈(義血)이란? 1960년 4.19 의거 당시 희생된 6인의 열사의 뜻을 새기는 의혈탑(義血塔)에서 비롯된 말로 '의에 죽고 참에 살자'는 중앙대의 교훈이자 정신을 상징하고 있다. 지난 1989년 8월 의문사한 이내창 (당시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열사와 함께 중앙대가 배출한 열사 7인의 정신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래 의혈탑에 새겨져 있는 고은 시인의 시가 義血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들은 남으로부터 싸워 올라가 마침내 사월학생혁명 그 대열에 기를 높이 올렸다. 그러함에 있어 우리들은 우리들의 영원한 사랑 조국의 자유와 독립 민주와 번영 생존의 평등 평화를 위하여 모든 지성 모든 생명 모든 사랑을 다하여 아낌이 없었다. 그리하여 여섯명의 벗을 잃었으니 아! 슬프도다 4월이여! 광영이여! 벗의 이름으로 끝이 없어라.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1594.html

それは、こんなところにもつながっているようです。

www.ohmynews.com

ただ、4.19革命に由来する「義血」と、李承晩に近かった創設者・任永信との関係如何?と思ったりもします。

この点に関しては、こちらのオーマイニュースの記事が読み甲斐のある内容となっています。図書館の扁額にそんなエピソードがあるとは、知りませんでした。

www.ohmynews.com

【ソウルの風景】中央大学校・任永信銅像(墓所)

前回の続き。ソウル市内を移動します。

blue-black-osaka.hatenablog.com

タイトルに正答を掲げておいてこう尋ねるのも白々しいのですけど、ここはどこでしょう?

f:id:bluetears_osaka:20190830161225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61520j:plain

バスで裏の高台側からアプローチしたんで、ヒントが少ないんですけど、キャンパス内を下りて行って正面に回ると、こんな感じです。

f:id:bluetears_osaka:20190830162148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63504j:plain

銅像は、創設者の任永信ですね。李承晩・朴正煕政権期には政治家としても知られた人物です。

f:id:bluetears_osaka:20190830163632j:plain

encykorea.aks.ac.kr
ko.wikipedia.org
www.cau.ac.kr

で、これを見ているときには知らなかったのですが、1977年に亡くなったこの人物の遺体は当初、大学キャンパス内に葬られていたそうです。ところが、2009年、新校舎建築の必要にともなってその墓は移葬され、遺体は火葬の上、永信館前のこの場所に移されてきた銅像の台座部分に納骨されたというのです。

승당임영신 박사 이장 및 동상이전 제막식
관리자 | 조회 수 1812 | 2009.02.17. 16:33

승당 임영신박사 묘소이장 및 동상이전 제막식이 2월 17일 오전 11시에 영신관앞에서 열렸다. 이날 제막식에는 유용태 승당기념사업회 회장, 박범훈 총장, 이태희 법인상임이사, 문병집 전 총장, 하경근 전 총장, 김민하 전 총장, 이종훈 전 총장과 김순영 전 동창회장, 김명섭 전 동창회장, 서청원 국회의원, 양태성 승당기념사업회 부회장, 임철순 전 이사장과 유가족을 비롯한 150여명의 추모객이 참석했다.

유용태 승당기념사업회 회장은 추모사에서 “승당 임영신 어머님의 ‘의’와 ‘참’의 창학이념은 중앙대학과 우리가슴 속에서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승당 임영신 박사 동상은 조병화 시인의 추모시와 함께 영신관 앞 자리에 모셔졌다.

http://www.caual.com/index.php?mid=cau_news_hide&document_srl=4521

임영신 박사묘 이장의 비극
경인매일 승인 2009.03.03 19:21
수원대 명예교수 ·계명고등학교장 이 달 순

임영신박사는 대한민국 건국과 교육발전의 공로자이다. 그분은 1919년 3.1만세시위때 천안 양대초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시장으로 달려가 시민들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벌였고 전주로 내려가 그의 모교인 전주기전여고 학생들의 선두에서 전주시민들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분은 미국으로 건너가 이승만박사를 도우며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그는 1932년 귀국 중앙보육학교를 설립했다. 해방이 되자 이승만박사를 도와 UN으로 가 대한민국정부수립의 승인을 받아냈다. 우리나라 여성으로서 초대 상공부장관 제헌국회의원등 정계에서 활동했다. 한편 중앙여자대학을 1953년에는 남녀공학 종합대학으로 승격 총장으로 취임했으며 1965년에는 대한교육연합회장으로 10,11,12대 당선 우리나라 교육발전에 이바지 했다. 그는 1977년 79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그리고 중앙대학 뒷동산에 안장되었다. 그분의 관 뚜껑과 바깥의 기념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연설문이 새겨져 있다. 1948년 7월 20일 대한민국제헌국회는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 했다. 이날 24일에 있는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임영신 박사를 극찬했다. 공식연설에서 특히 대통령 취임사에서 대통령이 개인을 들먹이는 연설이란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의 대표로서 레이크 석세tm에 가서 많은 성적을 내고 나라를 세우는데 많은 일을 한 임영신 여사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이 다같이 모두 고맙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충분히 재정 후원도 못한 중에 중대한 책임을 그만큼 추진시킨것은 우리 대한민국 수립과 더불어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임영신박사의 건국공로탑에 담겨진 글이다. 임박사 서거후 조카인 임철순총장이 취임했다. 임총장은 중앙대학교를 양적으로 확대하는데 공훈을 세우게 된다. 서라벌예대를 인수 합병했다.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을 설립했다. 안성에 제2캠퍼스를 건립했다. 당시로서는 60만평의 거대한 음악대 예술대등의 첨단적인 경이적 시설로 교육계와 예술계의 찬사를 받았다. 기숙사시설이 놀랍도록 자랑스러웠다. 중앙대학교는 양적으로 한창 눈부시게 발전하게 된다. 그런데 임총장은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과욕의 탓이라는 평가다. 아마 재단을 키우겠다는 욕망이 강했다고 본다. 중소기업체를 다섯 개씩이나 인수 설립 했다. 그 기업들의 부채를 껴안은 체 어렵지 않게 인수한 것이다. 인수해 놓고 기업의 부채를 상환하지 않고 은행대출과 개인사채를 끌어들여 임명한 사장들에게 운명을 위임했다. 몇 년동안에 각 기업체의 부채는 늘어만 갔다. 임총장은 전두환 대통령의 요청으로 민정당 정책의장을 맡아 정계에 투신하게 된다. 기업이 부도가 나면서 중앙대학교는 제일교포 손으로 넘어갔다. 김희수 이사장은 일본의 부동산붐이 위기에 몰리면서 중앙대를 발전시킬 힘을 잃게 된다. 다시 중앙대는 두산그룹이 떠맡아 주인이 또 바뀌는 형평이 되었다. 임영신박사의 묘지에 학교건물을 건축하여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정문을 들어서면서 바로 서 있는 임영신박사의 동상도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2월16일 묘를 파헤치고 시신을 화장하고 영신관으로 옮겨진 임영신박사의 동상 받침대에 납골당을 조성 안치하고 2월17일 임박사의 서거 22주년 기념일 32주기 추도식을 올리면서 “동상 이전 제막식”을 거행했다. 마음 내키지 않는 제막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사회 장례문화가 이장에서 수목장등 납골장례로 변화되기에 이해할 수도 있지만 훌륭한 묘를 이장 이전된 동상에 납골하는 비극속에서 그 명칭조차 은폐된 추도식의 비극이 우리를 슬프게만 한다.

http://www.k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36204

www.caual.com

f:id:bluetears_osaka:20160217114747j:plain

時代や大学の規模は違いますが、鹿児島・志學館大学の満田ユイに通じるものがありますね。

blue-black-osaka.hatenablog.com

“그 추억은 회색빛이 아닌 총천연색으로 살아있다”
박수정 기자 승인 2018.10.08 03:26

지난 100년의 세월 동안 중앙대의 모습은 크고 작은 변화를 거쳤다. 이번 백과사전에서는 루이스가든, 할매 동산, 205관(학생회관), 206관(학생문화회관) 등 중앙대 캠퍼스 내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장소들에 얽힌 학생과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60년대 입학식과 졸업식 때마다 101관(영신관) 앞 ‘루이스 가든’은 수많은 인파로 붐볐다. 현재 영신관 앞 중앙광장부터 102관(약학대학 및 R&D센터)까지의 공간이다. 지금은 사라진 대운동장 건립 이전에는 이곳이 학교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었다.

루이스 가든은 시대별로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70년대 루이스 가든에서는 ‘지성’의 축제를 엿볼 수 있다. 축제 기간에 교수와 학생이 참여하는 ‘과거시험’이 전통적 방식으로 열렸다. 시제를 정해 글을 쓰고 장원을 뽑기도 했다. 80년대의 루이스 가든은 민주화를 위한 의혈의 투쟁 장소였고 90년대 학생에게는 낭만의 장소였다. 해가 넘어가면 학생들은 낱개로 양초를 사서 촛불을 켜고 친구들과 밤새 담소를 나눴다.

‘할머니’처럼 인자한 교육자였던 승당 임영신 박사는 학교에서 가장 높고 양지바른 곳에 잠들었다. 현재 309관(제2기숙사)이 위치한 자리다. 학생들은 이 묘역을 ‘할매 동산’이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불렀다.

날이 좋으면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할매 동산으로 향했다. 서주원 강사(간호학과 02학번)는 “한강에서 불꽃 축제를 하면 할매 동산에 올라가 구경했는데, 동산에 오르는 길목을 어부바 언덕이라고도 불렀다”며 “학교가 북적거려도 할매 동산에 가면 한적하고 탁 트인 느낌이라 공강 시간에 친구들과 자주 산책을 갔다.”고 말했다. 할매 동산 자리에는 제2기숙사가 신축돼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현재 임영신 박사의 유골은 영신관 앞 동상 밑에 묻혀 있다.

f:id:bluetears_osaka:20200124144337p:plain
1986년 2월 17일 임영신 박사 서거 9주년을 맞아 임영신 박사 묘에서 추도식이 진행되고 있다.

f:id:bluetears_osaka:20200124144356p:plain
지난해 철거된 205관, 206관은 항상 학생들로 활기가 넘치는 장소였다.

도서관 옆 주차장에는 학생회관과 학생문화관, 일명 ‘빨간 벽돌’이 있었다. 학생회관과 학생문화관은 310관(100주년기념관 및 경영경제관)이 완공됨에 따라 생태면적 확보를 위해 지난해 철거됐다. 그러나 그 건물들은 여전히 학생들에게 빨간 벽돌로 남아있다. 강성찬 학생(신문방송학부 2)은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다른 건물과 달리 붉은 벽돌로 층층이 쌓인 벽이 그곳의 정체성이었다”고 말했다.

동아리방이 위치한 학생회관은 학생들 간 문화교류의 장이었다. 동아리들은 홍보를 위해 제각기 문을 꾸미기도 했다. 통기타를 통째로 붙인 문, 검도 호구가 있는 문, 시가 쓰인 문 등이 개성을 뽐냈다. 강성찬 학생은 “새내기 시절 연극 동아리 '또아리'에 참여해 1년에 두 번 빨간 벽돌의 무대에서 공연했다”며 “이미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언제나 그 추억은 회색빛이 아닌 총천연색으로 빨갛게 살아있다”고 회상했다.

A학생(경영학부 4)은 “빨간 벽돌 내 동아리 연습실의 퀴퀴한 냄새가 기억난다”며 “로비에 안무를 맞추기 좋은 대형거울이 있어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데도 춤 연습을 했다”고 댄스동아리에서의 추억을 나눴다.

캠퍼스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몇몇 건물이 생기기도,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라진 장소들도 여전히 우리 곁에 추억으로 살아있다.

http://news.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32282

…中央大に来た目的である本題に入れないままですが、そちらは記事を改めるとします。

後ろ髪引かれるネコ体験

Yahoo!のトップでこの記事を見て、「いきなり何書いとんねんデイリースポーツは?」と思ったんですけど、デイリーのサイトで見たら、この手の記事けっこう書き溜めてるんですね。

ネコ飼いさんはでもまだ、葛藤の末であるにせよ、こうして迎え入れることはできます。けれど、どうやってもそれができない環境にいれば、いくら後ろ髪引かれても立ち去るしかないですよ。そんな状況は、ペットショップがそこらへんにある環境(例えば大型モールとか)に身を置いていれば、誰でもあって不思議ではない。

そもそも、ネコ飼いさんだって限界はありますから、出会ったネコをみんな連れて来れるわけでもない。

口惜しいです。口惜しいですけど、自分の限界とも向き合わないといけないです。自分ができることをできる範囲で精一杯にやるしかないです。

2020.01.22
ショップでどんどん値下げされていく猫 「最終値下げ」のその先は…締め付けられる思いで決断「家族に」

f:id:bluetears_osaka:20200123162319j:plain
最初の冬を迎えた頃。好奇心いっぱいに

大阪市の高橋さんは、ペットショップが苦手。狭いゲージの中に入れられ、その命に値段を付けられた光景を見ていられないからだ。しかし、引越し先の近所には小さなスーパーしかなく、一緒に暮らす保護猫のフードが売っていなかった。やむなく入店したペットショップで、高橋さんは少し大きくなったアメリカンショートヘアーと目があった。「値下げ!79800円」というシールの影で座っている子猫。生後2~3ヶ月の子猫たちの並びの中で、その子は随分大きく見えた。1ヶ月後、その子のガラスケースには「さらに値下げ!59800円」のシールが。その後もシールは上から重ねて貼られ続け、3カ月後には「最終値下げ!39800円」と書かれた真っ赤なシールが貼られていた。小さなガラスケースにベタベタと貼られたシールのせいで、その子の姿はほとんど見えない。高橋さんは「最終値下げのその先はどうなるの?」と、後ろ髪を引かれる思いで店を出た。

■思い出すと胸が締め付けられて…

帰宅してからもその光景が頭から離れず、家族に迎え入れるかどうか悩んだ高橋さん。「マンション暮らしで、金太郎と桜という保護猫2匹と暮らしていましたから、これ以上は…と相当悩みました。でも、あの光景を思い出すと胸が締め付けられて…」。

その日の営業終了直前の時間帯に、高橋さんはペットショップを再訪。暑い夏の夜に、レオくんは高橋家の家族になった。

広い場所が落ち着かないのか、レオくんは数日間、ベッドの下からまったく出てこなかった。少し慣れて、高橋さんの前でトイレができるようになってからも、頭を撫でようと手を差し出すと、怯えるように身体がビクッと震えた。ペットショップで人嫌いになったのかもしれないと思い、無理に触らず、そっと見守る日々を過ごした。

■レオの心を癒したのは先住猫

そんなレオくんの心を癒したのは、先住猫の金太郎くんと桜ちゃん。実は金太郎くんも去勢手術以来の人嫌いで、ベッドの下を住処にしていた。性格も年齢も近い2匹はすぐに仲良くなり、「2匹なら怖くない!」とばかりにベッド下から出てくるように。やんちゃな先輩猫の桜ちゃんは、2匹の前でおもちゃの遊び方を披露して見せた。そして、その年の冬を迎える頃には、桜ちゃん、金太郎くん、レオくんが、兄弟のように寄り添ってベッドの上で眠るように。「怖がりになってしまった金太郎がわたしと同じベッドで寝られるようになったのは間違いなくレオのおかげ。そして、レオが新しい家に早く慣れられたのは金太郎と桜のおかげなんです」。

その後、結婚を機に、ご主人の地元である愛媛県西条市に引っ越し、2階建ての新築住宅で暮らし始めた高橋さん。3匹はいまも元気で、毎日階段で追いかけっこをしているという。

「狭いガラスケースに閉じ込められていたレオの姿を覚えているので、広い家で走り回っている姿を見ると、あのとき決断して良かったなって思います」

3匹は完全室内飼いだが、レオくんは大きな掃き出し窓から外の田園風景を眺めるのが大好きだ。

「外に興味があるようですが、迷子になってもいけないので出してはあげられません。でも、うちの窓ガラスには価格シールが貼られていませんから、外の風景もよく見えるはずですよ」

https://www.daily.co.jp/society/life/2020/01/22/0013053585.shtml

民間参入で大型バスターミナル整備?

…えーっと、つまりは韓国のバスターミナルみたいなのを作るということですかね?ソウルとか大田とか大邱とか光州とか、ああいうやつでしょ?

私の記憶の限りでは、韓国のこういったターミナルは基本的に元々どれも民間資本だったと思います。

ko.wikipedia.org
ko.wikipedia.org
ko.wikipedia.org
ko.wikipedia.org

てか、九州なんかはとっくに高速道路を通じた都市間のバス交通網ができ上ってるはずですし、そのへんは首都圏とではだいぶ事情や常識が違うような気がします。そのあたり、この記事だけでは何がどう計画されているのか、何とも言いにくいところがあります。

ま、できたらできたで便利にはなるかもしれませんので、期待を持ちつつの続報待ちですかね。

大型バスターミナル全国に
国交省、新制度で民間参入を促進
2020/1/24 15:55 (JST)1/24 16:03 (JST)updated
©一般社団法人共同通信社

f:id:bluetears_osaka:20200124161546j:plain
JR新宿駅に直結する国内最大級のバスターミナル「バスタ新宿」=2018年4月

 国土交通省は24日、大型バスターミナルを各地の拠点都市に整備するため、民間参入を促す制度を創設する方針を固めた。ターミナルビルの運営企業がテナント料を得られるようにするのが柱で、道路法改正案を今国会に提出する。JR新宿駅に直結する「バスタ新宿」のような交通結節点を増やし、住民や観光客の利便向上につなげる。

 新潟市や神戸市、広島県呉市などでターミナル新設が検討されており、新幹線開業を見据えた札幌市や長崎市でも計画がある。2020年度にも新制度を活用できるようにし、整備を後押しする。

https://this.kiji.is/593332758102787169?c=39546741839462401

麗水・順天事件の民間人犠牲者、72年後の再審で無罪判決

この件、ハンギョレさんは以前からずっと追いかけており、日本語版も記事を多数翻訳しています。そうした長い過程を経ての無罪判決ですから、当事者関係者は感慨無量であろうと思います。

japan.hani.co.kr
www.youtube.com

麗水・順天事件の民間人犠牲者、72年を経て無罪判決
登録:2020-01-21 02:29 修正:2020-01-21 07:42

裁判所「犠牲者のチャン・ファンボンさん、犯罪要件を満たしていない」 
裁判長「冤罪、正すのが遅れ遺族に申し訳ない」

f:id:bluetears_osaka:20200123133154j:plain
20日麗水・順天事件の民間人犠牲者チャン・ファンボンさんの再審宣告に出席した妻のチン・ジョムスンさん(97)と娘のチャン・ギョンジャさん(75)//ハンギョレ新聞社

 麗水・順天(ヨス・スンチョン)事件の発生から72年を経て、ようやく民間人犠牲者に無罪判決が下された。

 光州(クァンジュ)地裁順天支部刑事1部(キム・ジョンア裁判長)は、20日に順天支部316号刑事中法廷で開かれた麗水・順天事件の民間人犠牲者チャン・ファンボンさん(当時29、順天駅の鉄道員)の再審で、無罪を言い渡した。被告人が生存受刑者だった済州4・3事件の再審とは違い、死亡した被害者に対して、公訴棄却ではなく無罪判決を下したことで、類似の再審請求が続出するものとみられる。

 裁判所は判決文で「検察が復元した公訴事実のうち、布告令2号違反は米軍政当時宣布したもので、すでに効力を失い、内乱罪は場所、日時、行為などが特定されないなど、犯罪構成要件を満たしていない」と述べた。また「内容上、不法行為があるとしても、戒厳法が死刑を執行してから1年後に制定され、当時施行された戒厳令の効力をめぐって争いがあり、民間人を軍法会議に付すとともに公訴事実を通知しなかったことは手続き的に重大かつ明白な欠陥」と強調した。

 キム裁判長はさらに「民間人犠牲者の再審請求人3名の中で宣告に至ったのは1名のみで、2人は判決を待たずに亡くなってしまい、手続きを終了させられず残念だ。国家権力による冤罪被害については、刑事手続きを通じて個別に正すのではなく、特別法を制定して一括して解決すべきだ」と指摘した。

 キム裁判長は判決を言い渡した後、「チャンさんは左翼でも右翼でもない名誉ある鉄道公務員として、国の混乱期に黙々と勤務した。国家権力による被害をもっと早く回復してさしあげられなかったことを、低頭してお詫び申し上げる」と述べ、しばらく涙ぐんでいた。

 チャンさんらは、全羅南道順天で反乱軍を支援したという疑いで1948年11月10日に軍と警察に逮捕され、約20日後の同月30日に順天駅近くの現在は二水中学校となっている場所で銃殺された。当時、軍法会議は彼らに内乱と国権紊乱罪を適用して死刑を宣告し、執行した。

 62年後の2010年に行われた真実と和解のための過去事整理委員会による調査は、国家暴力被害者の名誉を回復する糸口を設けた。過去事整理委は「当時、軍と警察は順天地域で民間人438人を強制的に連行して殺害した。順天地域だけ2000人あまりが虐殺されたと推定される」と明らかにした。

 この調査結果を根拠として、チャンさんらの遺族たちは2011年10月に再審を請求した。順天地裁と光州高裁は再審を決定したが、検察は抗告・再抗告で対抗した。最高裁判所は昨年3月21日に「裁判所が発行した令状なしに軍と警察によって不法に逮捕・監禁されたことが認められる」として再審開始を決定した。この過程で7年5カ月がかかったため、3人の遺族のうち2人が死亡し、残る請求人は1人のみとなっていた。光州地裁順天支部は昨年4月29日に、麗水・順天事件で軍と警察に殺された民間人犠牲者チャン・ファンボンさん、シン・テスさん(当時32、農業)、イ・ギシンさん(当時22、農業)の3人の再審を開始した。

アン・グァノク記者

http://www.hani.co.kr/arti/area/honam/925090.html
韓国語原文入力:2020-01-20 15:54 訳D.K

http://japan.hani.co.kr/arti/politics/35528.html

ただこれ、この方のみの例外的事情なわけではなく、同様の状況で命を奪われた人は(麗順事件以外でも)少なくないはずです。とすれば、記事中にもあるように、同様の再審請求は続発すると思われますし、その結果として同様の無罪判決が多数出ることも十分に予測されます。そうした事態を受けた特別立法も、おそらく不可避となるでしょう*1

japan.hani.co.kr
news.joins.com
www.yna.co.kr
www.donga.com

*1:仮に保守派政権が誕生すれば、そうした世間の風向きも変わりうるので、文在寅政権の期間中の立法が、目指され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それ、KARAやないかい!(どこがサンフレッチェ広島やねん。)

私にはそう見えた、というだけの話です。同意は求めていません。

f:id:bluetears_osaka:20200123130337j:plain
f:id:bluetears_osaka:20200123130903j:plain

www.jiji.com
f:id:bluetears_osaka:20200123130411j:plain
f:id:bluetears_osaka:20200123130444j:plain

ただ、どこをどう見ても、サンフレッチェ広島要素はありませんね。

blue-black-osaka.hatenablog.com

もっとも、さっきのKARAも、ここまでは似てませんけどね。

carp-matome.blog.jp
f:id:bluetears_osaka:20200123131522p:plain

【ソウルの風景】戦争記念館2019、リニューアル完成まであと少し。

高陽・ソウル編が前回で終わったのですが、その翌日はソウル編Ⅱとなります。

blue-black-osaka.hatenablog.com

やはりいちおうは押さえておかないとね、という戦争記念館。

f:id:bluetears_osaka:20190830092223j:plain

いやもとい、いくさメモリアルホール。

blue-black-osaka.hatenablog.com

ここはこの数年、開館当初の展示を何だかんだと入れ替えて段階的にリニューアルを図ってきました。まだ終わっていませんが、どうやらもうすぐ一区切りつきそうです。

f:id:bluetears_osaka:20190830092440j:plain

たぶん、この改装がファイナルになると思います。

f:id:bluetears_osaka:20190830111848j:plain

1990年代のレトロ感満載だった兵器開発関連の展示に、ついにメスが入れられた模様です。これで、開館当初の面影を残す館内展示はほぼ絶滅すると思われます。

f:id:bluetears_osaka:20190830111447j:plain

ちなみに、「国軍武器発展室」は、すでにオープンしています(こんなもんは前はなかった)。以前のことを思えば比べ物にならないくらい現代的ですっきりした展示構成になっています。

f:id:bluetears_osaka:20190830111129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11137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11210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11239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11255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11305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11352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11407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11417j:plain

以上が、今回の見学の最大のポイントです。その他のところは、古代から近代にいたるまで、同じフォーマットでの展示構成がほぼ完成に至っています。個人的には、「끝까지 공격하라~!」と叫んでいた李舜臣の動く展示などがなくなったのは寂しいのですが、これも時代の流れです。やむを得ません。

とりあえず、展示リニューアルが完成し、来る度にあっちこっち移動している胸像たちの立ち位置も落ち着いた暁には、最新版の図録を出してください。

f:id:bluetears_osaka:20190830093916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094145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094245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094543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094837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095617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095833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00409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00726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00810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00916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02043j:plain

この後、解放後の6.25(朝鮮戦争)やベトナム戦争、その他北朝鮮関係や海外派兵などについての現代史展示が続くのですが、そちらは改装が先行していた部分とあとから模様替えが入った部分とがあって、若干不揃いな点もないではありません。現代パートは政治情勢や歴史的論争の影響を直接的に受けるところでもありますから、今後も少しずつ手直しが入るものと思われます。

それはともかく、これ、「南侵の謀議」だと思います、はい。

f:id:bluetears_osaka:20190830103539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04920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05254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05833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10131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30110441j:plain

一回で記事に詰め込もうとし過ぎました。こっから先はごちゃごちゃしていい写真もあまりないので(しまいには壁にぶつけてカメラ壊した)、このへんにしときます。

ミアリテキサス・ストーリー:補遺として

昨日の記事の補遺として、中央日報の2017年の記事を参照しておきます。

blue-black-osaka.hatenablog.com

성매매특별법 13년, 미아리텍사스 사람들 "우린 막차 승객"
[중앙일보] 입력 2017.09.24 14:29 수정 2017.09.25 14:48
홍상지 기자
하준호 기자

f:id:bluetears_osaka:20200122143136j:plain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 입구. 20일 밤의 모습이다. 하준호 기자

빛은 이곳을 일부러 비껴가는 듯 했다.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이라 적힌 표지판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온통 어둠이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컴컴한 골목을 한참 걸어 들어갔다. 중간중간에는 언제든 돈을 뽑을 수 있는 현금인출기가 있었다. 건물 유리창에는 검정색 시트지가 붙어 있어 안이 보이지 않았다. 건물 입구에는 중년 여성들이 의자를 놓고 앉아 사람들의 동태를 살폈다.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군데군데 있는 폐업으로 텅빈 업소는 오갈 데 없는 길고양이들의 쉼터가 됐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 일명 '미아리텍사스'를 지난 1일과 12일, 20일 세 차례에 걸쳐 지켜봤다. 지하철 4호선 길음역 10번 출구인 환승주차장에서부터 내부순환로를 따라 종암사거리까지 길게 연결돼 있는 이 곳은 고층 건물들에 둘러 싸인 외딴 '섬' 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집창촌, 2004년 9월 23일 '성매매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시행된 성매매방지특별법의 발원지였던 미아리텍사스는 자연스러운 수순대로 퇴락했다. 이 지역이 속한 '신월곡 1구역'은 2003년부터 꾸준히 재개발 논의가 있었지만 개발 방식을 둘러싼 갈등으로 진행 속도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f:id:bluetears_osaka:20200122143302j:plain
그래픽=김주원 기자

재개발으로든, 정책 방향으로든 미아리텍사스는 머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여기서 일하는 업주·성매매 여성·마담(호객 행위를 하는 여성들)·주방 직원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곳에 남았다. 현재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에는 약 88개 업소, 350여 명의 업주·여성 종업원들이 있다.

업주 대부분은 건물주에게 100만~200만원씩 월세를 내고 있는 세입자들이다. 1988년 당시 26살이었던 업주 A(55)씨는 처음 하월곡동으로 왔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A씨는 이곳의 한 업소에서 주방 일을 했다. 그가 기억했던 당시 미아리텍사스의 모습은 이랬다. "이 앞 큰 길(정릉길)이 원래는 다 주차장이었어요. 주말에는 주차장에 관광버스서부터 승용차까지 차가 빼곡히 주차돼 있고 골목 곳곳은 사람들로 꽉 찼죠. 남는 아가씨들이 없으면 업소가 일단 문을 닫아놓는데 그러면 막 사람들이 '열어달라'고 문을 두들겨요. 쿵쿵쿵…."

그러다 2004년 정부의 '성매매 근절' 의지가 강하게 담긴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이곳의 번영은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탔다. 이듬해에는 화재가 발생해 여성 종업원 5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업주들의 여성 종업원 감금 문제 등이 사회 이슈화 됐다. A씨도 이 시기 잠시 다른 일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3년 전 다시 이곳에 왔다. "밖에서 튀김 장사도 해보고 요양 봉사도 해보고 별 일 다 했는데 먹여살려야 할 가족이 많아 그거 갖곤 생계가 안 되더라고요. 결국 가장 익숙한 이곳으로 돌아와 장사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매출이 그때의 3분의 1도 안 될 거예요. 성매매특별법 이후 단속이 잦아지다보니 사람이 뚝 끊겼어요. 이곳은 자연스레 해체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라도 밖에서 놀지, 여기선 안 놀 거 같거든요." 여기가 당장 몇 년 안에 폐쇄된다고 해도 딱히 대안은 없다. 그는 "앞 일을 생각하면 답답하긴 한데, 당장 내일 먹고 살 걱정부터 해야 하는 처지라 속수무책으로 여기 머물고 있다"고 했다.

f:id:bluetears_osaka:20200122143546j:plain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 골목. 인적은 드물다. 하준호 기자

이 곳의 산수는 '30분에 10만원'이다. 찾아오는 손님들은 주로 소득 수준이 높지 않은 젊은이, 일용직 노동자 등이다. 여성 종업원들은 한 달에 26일 정도 일하면 보통 200만~300만원을 번다고 했다. 대부분 나이대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중반이다. 스무 살에 이곳으로 와 지금은 고등학생 자식을 혼자 키운다는 여성 종업원 B(39)씨는 "성을 판다는 이유로 손님들은 우리를 함부로 대하고 어디서 보고 왔는지 날이 갈수록 더 과한 걸 요구한다. 특히 특별법 이후에는 요구하는 걸 해주지 않으면 '신고할테니 환불해 달라'고 협박을 한다"고 말했다.

다른 일을 해볼 생각은 없었는지 물었다. "왜 없겠어요. 지금도 매일 생각해요. 근데 익숙한 게 이 일 뿐이고 다른 일을 배우자니 돈이 문제죠. 전 당장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어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는 생계 문제를 얘기했다. 정부나 여성단체에서 이들의 탈성매매를 돕기 위한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지만 자발적 참여가 많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생계의 문제' 때문이다.

f:id:bluetears_osaka:20200122143646j:plain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2004년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 모습. [중앙포토]

1968년 종로3가 성매매집결지가 옮겨가면서 처음 군락을 형성했던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를 둘러싼 과제는 아직 도처에 널려 있다. 지난 13일 서울 성북구의회 앞에선 이 곳의 업주들과 여성 종업원 350여 명 전원이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 지원' 내용의 조례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들을 대변하고 있는 유태봉(71)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 자율정화위원장은 "이 곳 종사자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보여주기 식'일 뿐인 조례는 필요없다. 집결지가 해체되면 알아서 사라질테니 제발 우리 좀 내버려둬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목소영 성북구의회 의원은 "단 한 명이라도 탈성매매의 가능성이 있다면 이 조례를 계속 추진해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눈에 보이는 성매매집결지만 해체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문제의식도 커가고 있다. 하월곡동 집결지 수시 단속 및 종합 합동점검 등을 실시하는 서울 종암경찰서 관계자는 "청량리 588은 관계부서의 지원 대책이 부족한 상태에서 폐쇄가 이뤄져 기존에 종사했던 성매매 여성들은 영등포·동두천 등 집창가로 분산됐을 뿐 근본 해결이 되지 않았다. 지자체와 경찰이 주축이 돼 적극적이고 유연한 관리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명확한 해답은 찾지 못한 채 이 곳의 하루는 또 시작될 것이다. 유태봉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막차 탄 사람들이라고 보면 돼요. 앞으로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요."

홍상지·하준호 기자

https://news.joins.com/article/21965541

[현장에서] ‘미아리 텍사스’ 업소 대부분 떠나고 88곳 어둠 속 영업
[중앙일보] 입력 2017.09.25 01:25 | 종합 14면

홍상지 기자
하준호 기자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이라 적힌 표지판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온통 어둠이었다. 골목 안 건물의 유리창에는 검은색 종이가 붙어 있어 안을 볼 수 없었다. 입구에는 중년 여성들이 의자에 앉아 행인의 동태를 살폈다.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군데군데 있는 폐업으로 텅 빈 업소는 오갈 데 없는 길고양이들의 쉼터가 됐다.

성매매특별법 13년 … 집결지 가 보니
컴컴한 골목 오가는 사람 거의 없어
업주·종업원 등 350명만 남아
“책임질 가족 있어 당장 그만 못 둬”

지난 20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이른바 ‘미아리 텍사스’의 풍경이었다. 지하철 4호선 길음역 10번 출구인 환승주차장에서부터 내부순환로를 따라 종암네거리까지 길게 연결돼 있는 이곳은 고층 건물들에 둘러싸인 ‘외딴섬’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집창촌, 2004년 9월 23일 시행된 성매매방지특별법의 발원지였던 이곳은 퇴락했다. 이곳이 속한 ‘신월곡 1구역’은 2003년부터 재개발 논의가 있었지만 개발 방식을 둘러싼 갈등으로 진행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현재 이곳에는 88개 업소, 350여 명의 업주와 여성 종업원들(경찰 집계)이 있다. 업주 대부분은 건물주에게 100만~200만원씩 월세를 내는 세입자들이다.

1988년 처음 이곳으로 왔다는 업주 A씨(55)는 “이 앞길이 원래 다 주차장이었다. 주말에는 관광버스로 단체 손님이 왔다. 아가씨들이 모두 손님을 받고 있으면 업소가 문을 닫는데, 그러면 사람들이 ‘열어 달라’고 문을 두들겼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에는 업소 수가 400개 안팎이었다.

이곳은 2004년 정부의 ‘성매매 근절’ 의지가 강하게 담긴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탔다. 이듬해에는 화재가 발생해 여성 종업원 5명이 숨지는 사고도 있었다.

A씨도 그즈음에 다른 일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튀김 장사와 휴게소 주방 일을 하다 3년 전 이곳에 돌아왔다. 그는 “부양할 가족이 많아 살림이 어려웠다. 익숙한 곳이라 돌아왔는데 매출이 3분의 1도 안 된다. 앞일을 생각하면 답답하지만 뾰족한 답이 없다”고 했다.

업주들에 따르면 요즘 손님의 대부분은 소득이 적은 젊은이나 일용직 노동자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종종 오는데, 이들을 받지 않는 업소도 있다. 여성 종업원들의 나이대는 대개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이다. 스무 살에 이곳으로 와 고교생 자식을 혼자 키우고 있다는 여성 종업원 B씨(39)는 “손님들은 우리를 함부로 대하고 갈수록 더 과한 걸 요구한다. 특히 특별법 시행 이후 요구사항을 듣지 않으면 ‘신고할 테니 환불해 달라’ 협박을 한다”고 털어놨다. 다른 일을 해 볼 생각은 없었는지 묻자 “매일 생각하지만 당장 다른 일을 배우자니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어 쉽지 않다”고 했다. 정부나 여성단체에서 이들의 탈성매매를 돕기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지만 자발적 참여가 많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생계 문제’다.

68년 종로3가 성매매 집결지가 옮겨가면서 처음 군락을 형성했던 이곳을 둘러싼 과제는 널려 있다. 유태봉(71)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자율정화위원장은 “여기 사람들은 모두 막차를 탔다.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는 처지다”고 말했다. 성매매 집결지만 해체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하월곡동 집결지 수시 단속 및 종합 합동점검을 실시하는 서울 종암경찰서 관계자는 “‘청량리 588’은 관계부서의 지원 대책이 부족한 상태에서 폐쇄가 이뤄져 기존에 종사했던 성매매 여성들이 영등포·동두천 등 다른 집창가로 분산됐을 뿐 근본적 해결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협력해 적극적이고 유연한 ‘관리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십여 년째 해결되지 않은 집창촌 문제, 이 보고서는 우리가 해야 할 고민의 시작점을 제시하고 있다.

홍상지·하준호 기자

https://news.joins.com/article/21966700

2017年9月の時点ではなお「遅々として進まない」とされていた再開発ですが、周囲で先行している都市開発の状況からしても、このエリアがずっと現状を維持することが許されるとは思えません。清凉里588の運命を後追いすること自体は、もはや時間の問題でしょう。

www.mk.co.kr
www.mk.co.kr
f:id:bluetears_osaka:20200122144734j:plain
f:id:bluetears_osaka:20200122144803j:plain
www.mk.co.kr
f:id:bluetears_osaka:20180309140846j:plain

【ソウルの風景】ミアリテキサス再訪

だいぶ夕暮れが迫ってきつつある中、加山デジタル団地駅から移動してきたのが地下鉄4号線・吉音駅。

blue-black-osaka.hatenablog.com

10番出口を上がると、見た覚えのある風景が変わらずに。

f:id:bluetears_osaka:20190829173332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29173337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29173459j:plain

うーん。5年前と比べて、思った以上に変わってませんね。清凉里や凡田洞が変わり果てた2019年になっても。

blue-black-osaka.hatenablog.com

雰囲気的にも時間的にも、前回のようにフラフラ迷い込める空気はありません。

f:id:bluetears_osaka:20190829173710j:plain

ぐるっと回りこんで、吉音駅からこのエリアを挟んだ裏側に行ってみます。

f:id:bluetears_osaka:20190829173901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29174022j:plain

道路一本を隔てて、未来的な高層ビルと旧来の佇まいの建物群とが向き合っています。

f:id:bluetears_osaka:20190829174213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29174557j:plain

こっちまで回り込んだところで、私のような者の闖入を許す雰囲気はありません。

f:id:bluetears_osaka:20190829174702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29174603j:plain

その感想は、高架道側から吉音駅に回り込む方向から眺めてみても変わりません。ここは今なお「遺跡」ではないようです。

f:id:bluetears_osaka:20190829175600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29175642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29175954j:plain

部外者が自由に出入りするには、ネコにでもなるしか。

f:id:bluetears_osaka:20190829174311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29174408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29175057j:plain
f:id:bluetears_osaka:20190829175106j:plain

なお、京郷新聞のこの記事が出たのは、私がここに来た後のことです。

news.khan.co.kr

f:id:bluetears_osaka:20200122140048j:plain
f:id:bluetears_osaka:20200122140213j:plain
f:id:bluetears_osaka:20200122140240j:plain

[기자칼럼]‘미아리 텍사스’에서의 하루
장은교 토요판팀
입력 : 2019.09.23 21:02 수정 : 2019.09.23 21:04

포털사이트에 ‘미아리 텍사스’를 검색해봤다. 미아리 텍사스가 있던 곳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설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미아리 텍사스가 정말 없어졌냐는 질문도 보였다. 지도검색에는 ‘없는 곳’으로 나왔다.

f:id:bluetears_osaka:20200122135946j:plain:right지도에는 없다는 그곳에 지난달 다녀왔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성매매 집창촌. 길치라 걱정했는데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지하철역에서 느린 걸음으로 10분이면 닿는 거리. 식당과 옷가게와 동물병원, 백화점, 고층아파트가 있는 바로 옆 골목에 한국도 미국도 아닌 괴상한 이름의 그곳이 있었다. 골목 입구엔 색색깔의 굵은 실이 ‘청소년 금지구역’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드리워져 있었다.

미성년자들이 들어선다고 출입을 통제하는 사람도 없고, 밧줄 같은 실로 가린다고 가려지지도 않을 골목엔 아침부터 ‘삐끼이모’(성매매 호객행위를 하는 여성들을 부르는 은어)들이 나와 있었다. 사진을 찍으며 두리번두리번하니, 삐끼이모들이 “무슨 일로 왔냐”고 했다. “약사님 인터뷰하러 왔다”고 하니 더 묻지 않았다(그날 이 골목에서 23년 동안 약국을 하며 성매매 여성들을 돕는 ‘약국이모’ 이미선씨를 인터뷰하러 갔다). 입장허가를 받은 느낌이 들어, 골목 안쪽을 이곳저곳 둘러봤다.

처음엔 대체 어디가 성매매업소라는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흔히 연상하는 ‘빨간불’은 보이지 않았다.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업소마다 검은색 선팅지가 붙어 있었고 이 안에 사람이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업소의 외관은 허술하고 낡았다. 개미굴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업소들 중 한 곳에 문이 열린 것을 봤다. 한 여성이 쌀을 씻고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성매매 여성들의 살림을 해주는 ‘주방이모’인 듯했다. 10년 넘게 큰 진전이 없는 ‘도시환경정비사업’ 공고문도 보였다.

허름한 외관을 좀 더 오래 관찰하니, ‘영업중’이라는 표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 업소 앞에는 ‘카드 얼마, 현금 얼마’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는데 글씨가 닳지 않고 선명했다. 한 업소 바로 앞에는 여러 은행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현금출납기가 있었다. 은행은 시간을 맞춰 돈을 빼가고 넣으며 성매매 골목의 현금흐름을 관리했다.

약국에서 하루를 보내며 여러 명의 동네 손님들을 볼 수 있었다. 한 할머니는 여섯 박스 분량의 고추를 직접 빻았다고 했다. 사서 쓰지 뭐하러 애를 쓰셨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내 자식들 먹일 김치에 쓸 건데…”라고 했다. 성매매 여성들을 상대로 ‘돈놀이’를 하는 분이었다.

허름한 조끼를 입은 할아버지는 쓸쓸한 얼굴로 지난주에 아내를 납골당에 묻고 왔다고 했다. 성매매 업주였다. 명품으로 치장한 모델 같은 손님과 모자를 푹 눌러쓰고 군데군데 상처가 보이는 손님은 모두 성매매 여성이었다. 겉으로 봐선 그들의 삶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본격 영업시간’이 다가오자, 골목에 사람들이 늘어났다. 업소 앞 의자마다 손님과 가격을 흥정한다는 ‘마담이모’들이 앉았다. 각각 휴대전화를 들고 유튜브나 TV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몇명의 남성들이 골목 안쪽을 왔다갔다 했다. 외국인도 보였다.

성매매를 금지한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15년이 됐다. 집창촌 성매매는 사실상 방치되고, 신종 성매매가 번성하면서 집창촌은 점점 더 낙후되고 있다. 해가 져도 업소는 컴컴하다. ‘홍등가’는 옛말이 됐지만, 그곳엔 여전히 성매매가 일상인 이들이 있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다시 평범한 풍경이 펼쳐졌다. 버스전용차로에선 책가방을 멘 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렸다. 우동집엔 늦은 저녁을 먹는 직장인들이 보였다. 바로 몇분 전까지 있었던 골목은, 다시 찾아가면 사라져 있을 것처럼 아득히 멀어 보였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923210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