毎日新聞の大阪人権博物館(リバティおおさか)訪問記と、ソウル新聞の関連記事

先日の朝日新聞に続いて、毎日新聞の記事が目についたので、関連付けてクリッ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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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日コリアンとして自分のルーツに触れた場所 「リバティおおさか」記者訪問記
毎日新聞 2020年6月24日 10時15分(最終更新 6月24日 10時15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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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阪人権博物館でガイドボランティア代表を務めた前田勝正さん=大阪市浪速区で2020年5月28日午後3時19分、韓光勲撮影

 大阪人権博物館(リバティおおさか)=大阪市浪速区浪速西3=が6月1日に休館した。記者(27)は大阪市出身で、博物館にほど近い場所で生まれ育った。幼少期から何度も訪れ、自身のルーツに触れた場所でもあった。5月28日、数年ぶりに訪れた。

 「部落問題コーナー」で一つの展示に目が留まった。江戸時代の長野県にあった墓石だ。刻まれた戒名の中に「革」の1字がある。埋葬者が皮革業を担ってきた被差別部落出身だったことを表す。この「差別戒名」の存在を知り「死後まで差別されるのか」と言葉を失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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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阪人権博物館の前に立つ館長の朝治武さん=大阪市浪速区で2020年5月28日午後5時45分、韓光勲撮影

 展示の幅は広い。他にも労働問題、LGBTなど性的少数者ハンセン病薬害エイズ在日コリアンアイヌ民族。それぞれの歴史的な経緯を解説する資料が並ぶ。1時間以上をかけて、じっくりと見て回った。

 ガイドボランティア代表の前田勝正さん(82)は「部落差別は過去の歴史ではない。今でも結婚差別などが続いている」と話す。前田さんは大阪府豊中市で半世紀以上、部落解放運動に携わった。同博物館のガイド歴も25年になる。それでも「今でも出身はなかなか明かせない」という。出自を明かした途端、相手の態度が変わる経験を数多くしてきたからだ。前田さんは「なぜ今でも差別が続くのか。(博物館は)歴史的な背景など、長いスパンで考えるための場所だったのに」と唇をかんだ。

「お前は韓国人だから」突然の仲間外れ

 思い当たる経験が私にもある。小学1年生の頃、近所に住む同い年の男の子と遊んでいた時、急に「お前は韓国人だから」と仲間に入れてもらえなかったことがある。それまでは普通に遊んでいて、自分は友達だと思っていたのに。驚いて言葉が出なかった。悔しかった。

 私はなぜ遊びに入れてもらえなかったのだろう。韓国人なのに、なぜ日本で生まれたのか。なぜ自分の名前はみんなと違うのか。幼い私には分からなかった。間もない頃、親に連れていかれた「リバティおおさか」で、一つの答えに接した。

 当時の展示に、韓国の家屋や食生活が再現されたコーナーがあり、太鼓や民族衣装が並んでいた。在日コリアンが日本に住むようになった歴史がパネルで説明されていた。「自分がここで生まれたのには理由があり、独特の文化がある」と初めて知った。遊びに入れてくれなかった男の子の言葉は、もう気にならなくなっていた。もし同じことを言われても、次はきちんと説明できるようになったから。

誰もが当事者

 前田さんの説明に聴き入っていた松浦慶太さん(35)=兵庫県尼崎市=は「差別戒名のことを初めて知りショックを受けた。歴史を学ぶことは大事だと改めて感じた。必ず再開してほしい」と話した。差別は、される側だけが論じる問題ではない。この社会に暮らす誰もが当事者だ。博物館は前身の資料館時代から35年間、そういうメッセージを発信し続けてきた。

 館長の朝治武さん(64)は言う。「35年間で170万人が来場した。少なくない数だ。人権侵害と差別の歴史、現実を考えるため、この博物館が果たしてきた役割は確実にあった」

 新型コロナウイルス感染拡大による休館で、最後の一般公開は1週間になったが、計4379人が訪れた。博物館側の予想の4倍超だった。休館を惜しむ人は多い。朝治さんは「2022年に別の場所で、必ず再出発したい」と語った。【韓光勲】

https://mainichi.jp/articles/20200624/k00/00m/040/034000c

ホントにねえ、今もなお、また今こそ、その存在が求められる時代だと思うんですけどねえ。

[특파원 칼럼] 불 꺼진 ‘리버티 오사카’와 조선인 추도식/김태균 도쿄 특파원
입력 : 2020-06-21 17:36 ㅣ 수정 : 2020-06-22 07:32폰트 확대 폰트 축소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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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균 도쿄 특파원

‘2020년 5월 31일’은 일본 인권사에 또 하나의 커다란 오점이 남겨진 날로 기록될 것이다. 인권 수호의 상징적 보루로 자리매김해 온 오사카인권박물관이 이날 35년의 여정을 마감했다. ‘리버티 오사카’로 불린 이곳은 인권의 존엄한 가치를 일본 국민들에게 웅변해 온 이 나라에 단 하나뿐인 종합 인권박물관이었다.

리버티 오사카의 폐관은 끝없이 해코지를 반복해 온 일본의 극우 활동가들과 강력한 행정권력을 손에 넣은 극우 정치세력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리버티 오사카는 대대로 천대받아 온 최하층 계급 ‘부라쿠민’ 인권단체와 오사카부·오사카시가 오사카시 나니와구 7000㎡ 부지에 1985년 공동 설립했다. 박물관에는 부라쿠민을 비롯해 재일한국인, 한센병 환자, 각종 공해병 피해자 등 일본 사회에서 차별과 멸시를 받아 온 계층·집단에 관한 자료 3만여점이 전시됐다. 조선인들이 일제에 당했던 핍박과 고통도 다양한 전시물로 만들어져 관람객을 맞았다.

그러나 2008년 당시 39세의 극우 성향 변호사 하시모토 도루가 오사카부 지사에 당선되면서 고난이 시작됐다. 하시모토는 당선되자마자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전시가 아니다”라며 관람내용의 수정을 요구했다. 박물관은 파국을 막기 위해 전시물 일부를 변경하는 굴욕까지 감수했지만, 철거를 목표로 한 그들의 공세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사카시 시장으로 자리를 옮긴 하시모토는 2013년 전체 운영비의 80%를 차지하는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2014년에는 박물관 부지 무상대여를 중단하고 연 2700만엔씩 임대료를 내라고 압박했다. 2015년에는 임대료 미납을 이유로 퇴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5년간의 다툼 끝에 결국 박물관은 밀린 임대료 부담을 면제받는 대신 올해 5월 말로 박물관 운영을 종료하고 내년 6월까지 건물을 철거한다는 내용의 법원 화해권고를 받아들였다. 박물관 측은 2년 후 다른 곳으로의 이전 개관을 계획하고 있지만, 가능성은 차치하고 설령 실현된다 하더라도 리버티 오사카로서의 상징성은 결코 가질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극우 세력이 완벽한 승리를 거둔 리버티 오사카에 이어 도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매년 9월 1일 도쿄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개최돼 온 1923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도식이 올해부터는 아예 열리지도 못할 위기에 놓인 것이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가 추도식 행사 당일 바로 옆에서 맞불집회를 여는 극우단체와 충돌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행사 자체를 무산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3년 추도식이 시작된 이후 근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관한 한 극우세력은 이미 한 차례 큰 성과를 거둔 상태다. 오사카 하시모토류의 성향인 고이케 지사는 6600명에 이르는 조선인 희생자가 발생했던 당시 만행을 부정하며 역대로 빠짐없이 해 왔던 도쿄도지사의 추도문 전달을 2017년부터 중단했다. 이후 3년 만에 나온 이번 압박은 추도식 자체를 없애기 위한 전체 과정의 마지막 단계인 셈이다.

코로나19 와중에도 일본에서는 인권을 부정했던 과거를 재차 부정하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양심과 비양심, 이성과 비이성의 싸움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반동의 진영에 선 세력의 연이은 승리다. 일본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자행됐던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과 착취의 과거를 지운 채 오직 영광의 역사로만 포장한 ‘산업문화유산센터’라는 이름의 시설물이 지난 15일부터 도쿄 한복판에서 일반 국민에 공개된 것도 그런 범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2020-06-22 30면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62203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