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輪サッカー韓国代表の日本人コーチ

まあ、その件はその件として、サッカーを通じてこういう縁が結ばれていることは、記録しながら記憶しておくとしましょうね。

記事入力 : 2012/08/09 10:52
ロンドン五輪韓国代表支える日本人コーチ=サッカー

池田誠剛フィジカルコーチ
洪明甫監督に対し「将軍」に仕えるように接する


サッカー五輪韓国代表チームの池田誠剛フィジカルコーチ(写真右)は5日(韓国時間)、英国と対戦したロンドン五輪準々決勝のPK戦で5−4と劇的な勝利が決まった瞬間、両腕を上げて洪明甫監督と共に喜んだ。/写真=五輪写真共同取材団

 ロンドン五輪男子サッカー韓国代表チームの練習場に行くと、決まって目にする光景がある。練習開始の約20分前に、中年の男性がコーチングスタッフや選手たちよりも先に出て準備をしている姿だ。選手時代に負ったけがで今でも足を引きずるこの男性は、洪明甫ホン・ミョンボ)監督率いる韓国代表チームの池田誠剛フィジカルコーチ(52)だ。韓国が3位決定戦(11日午前3時45分、英国カーディフ・ミレニアムスタジアム)で日本と対戦することが決まり、サッカー韓国代表チーム初の日本人コーチ、池田コーチにも関心が集まっている。

 池田コーチは韓国のベスト4進出の隠れた功労者と言われる人物だ。選手たちの体力管理を担当するフィジカルコーチだが、戦術的な部分だけでなく、選手たちの心理カウンセラーの役割も担っている。

 池田コーチは現役時代、スター選手ではなかった。早稲田大学教育学部を卒業後、実業団の古河電気工業に所属したが、29歳でひざの十字靱帯(じんたい)を損傷し、選手生活にピリオドを打った。現役時代に多くのけがに悩まされた経験から、サッカー選手の体調管理に関心を持つようになり、知人の紹介で1994年の米国ワールドカップ(W杯)でブラジル代表に同行、フィジカルコーチとしての道を本格的に歩き始めた。95年にACミラン(イタリア)で研修を行った後、Jリーグの市原や横浜F・マリノスなどでフィジカルコーチを務めた。

 池田コーチはマリノス時代、日本代表の主将を務めた井原正巳の紹介で洪明甫監督と知り合った。池田コーチは「当時から彼の目は世界を見ていた。アジアサッカーのレベルを高めたいという気持ちに共感した」と振り返る。

 池田コーチの人柄と能力にほれ込んだ洪明甫監督は、2009年のエジプトU20(20歳以下)W杯前に日本を3回も訪れ「三顧の礼」の末、韓国代表チームのフィジカルコーチとして迎え入れた。池田コーチは「日本人の私が韓国代表チームで働くことは負担だったが、洪明甫監督の誠意に心が動いた」と話す。

 池田コーチが合流した韓国代表チームは、体系的な体力管理システムを築き上げた。今回の五輪で韓国代表はプレスをかけるサッカーを展開しているが、その原動力となる体力を身に付けたのも池田コーチのおかげと評価されている。年齢は洪明甫監督より9歳も上だが、「上官」に礼儀をもって接する。韓国代表の関係者は「池田コーチは洪明甫監督に対し『将軍』に仕えるように接している。洪明甫監督が大まかなビジョンを描き、池田コーチが細かい部分をまとめるのが、現在の五輪代表チームのスタイル」と話している。

マンチェスター(英国)= チャン・ミンソク記者

http://www.chosunonline.com/site/data/html_dir/2012/08/09/2012080901166.html

홍명보호 숨은 주역 세이고 코치 "한국 위해 최선 다할 뿐"
입력: 2012-08-12 18:51 / 수정: 2012-08-12 18:55

[엑스포츠뉴스=인천국제공항, 조용운 기자] "홍명보호를 위해 전력으로 도왔다"

한국 축구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홍명보호에는 외국인이 한 명 있다. 바로 이케다 세이고 체력 코치가 그 주인공. 일본인이지만 홍명보호의 그 누구보다도 한국의 동메달 획득을 기뻐한 이도 바로 세이고 코치다.

지난 2009년 홍명보호에 합류한 세이고 코치는 일본의 넓은 인맥을 활용해 체력 코치 이상의 능력을 발휘했다. 선수 차출에 비협조적인 J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홍명보호의 경기를 앞두고 모두 합류할 수 있었던 것도 세이고 코치의 힘이 컸다. 병역 문제로 시끄럽던 박주영(아스널)이 최종 합류하기 전에 일본에서 개인 훈련을 할 수 있게 도운 이도 바로 세이고 코치다.

이러한 세이고 코치가 런던올림픽서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바로 한국과 그의 조국 일본이 동메달을 놓고 3-4위전서 만나게 된 것. 한국도 사상 첫 올림픽 메달에 혈안이 됐지만 일본도 44년 만에 찾아온 메달 획득 기회에 많은 기대를 했다.

그러나 세이고 코치는 공과 사를 구분했고 한국의 동메달을 위해 일본 전력 분석에 최선을 다했다. 일본의 패배보다 한국이 동메달을 따냈다는 것이 그에겐 기쁨이었다.

홍명보호와 함께 귀국해 해단식에 참석한 세이고 코치도 올림픽 본선서 만난 한일의 얄궂은 운명에 고개를 저었다. 특히 세이고 코치는 일본 대표팀의 감독인 다케시 세키즈카와 와세다대학교 선후배 사이여서 경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세이고 코치는 단호했다. 그는 "세키즈카 감독과 3-4위전에 대한 이야기는 안했다. 우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이니까 그런 것에 대해선 이야기 할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이고 코치는 "마지막에 한일전이 된 것을 걱정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며 "나는 한국축구협회와 계약했으니 홍명보 감독을 전력으로 도와주는 것이 내 임무였고 한일 관계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고 본분을 밝혔다.

한편, 인터뷰 도중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이 세이고 코치에 일본말로 고맙다고 전하자 그는 "구자철도 그렇고 다 귀여운 선수들이다. 선수들이 목표를 달성하고 메달을 걸 수 있게 돼 만족한다"며 코치로서 웃어보였다.

[사진 = 세이고 코치 (C) 엑스포츠뉴스 권태완 기자]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208124124l<ype=1&nid=007&sid=010703&page=1

"올림픽축구팀에 부산 출신 4명"
이케다 피지컬 코치 4개월간 몸담아, 정식계약 노력 불구 J리그로 복귀
국제신문
안인석 기자
2012-08-12 21:41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케다 세이고(오른쪽) 피지컬 코치.

- 홍명보 감독, 삼고초려 끝 영입 성공

올림픽 사상 첫 동메달을 따낸 한국 축구 대표팀의 일본인 코치와 K리그 부산의 인연이 새삼 화제다. 부산 아이파크의 관계자는 "올림픽 대표팀에 부산 출신이 4명"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던진다.

화제의 주인공은 바로 피지컬 코치인 일본인 이케다 세이고(52). 이케다 코치는 브라질이 94년 월드컵에서 우승할 때 함께 감격을 누린 유일한 외국인 스태프로 95년에는 단기 피지컬 트레이너로 AC 밀란에서 일한 적도 있다. 이케다 코치의 능력을 잘 알고 있던 홍명보 감독은 2009년 U-20 대표팀을 맡자마자 일본을 세 번이나 방문해 그를 삼고초려 끝에 영입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코치이다.

이케다 코치는 2007년 시즌이 끝난 11월부터 2008년 3월까지 4개월간 임시 피지컬 코치로 부산 아이파크에 몸담았다. 부산 안병모 단장이 피지컬 코치를 찾기 위해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 유럽을 휘젓고 다녔지만 몸값이 맞지 않아 포기하려던 때 지인의 소개로 이케다 코치와 인연이 닿았다.

그가 부산에 몸담았을 당시 국내 프로팀에 외국인 코치는 많이 있었지만 일본인은 아무도 없었다. 이케다 코치가 K리그 최초의 일본인 코치인 셈이다.

이케다 코치는 4개월간 부산에서 함께 뛰고 구르며 선수들을 지도했고 그의 능력을 높이 산 부산이 정식계약을 하려 했지만 원소속팀 J리그 우라와 레즈에서 복귀를 강력하게 요청해 결국 부산을 떠났다.

리모델링 중이던 부산의 젊은 선수들과 끈끈한 정을 나눈 그는 떠날 때 만류하는 선수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선수들은 펜을 선물했고 아직도 그 펜을 지니고 있다. 이케다 코치는 "선수들이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고 발전하려는 마음가짐이 감동적이었다"고 회상했다.

런던올림픽 대표팀에서 맹활약한 김창수와 이범영이 그때 함께 부산에서 훈련했던 선수들이다.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600&key=20120813.22023214026

こうした日韓の〈人事交流〉に関しては、サッカーより野球のほうがはるかに進んでいます。

PL学園の父子鷹

ご関心のある向きは、こちらをどうぞ。

韓国プロ野球応援サイト ストライク・ゾーン

私が知っている韓国プロ野球よりも、今はさらに盛り上がってグレードアップしているみたいです。

キムチとバット〜日韓野球考第30回「熱いぞ韓国プロ野球!さぁ、蚕室野球場へ急げ!」 - ソウルナビ

韓国プロ野球も2000年当時とはずいぶんと事情が変わった。2000年から2007年頃は、スタンドには閑古鳥が鳴いていて(私の少年時代、西宮球場大阪球場も同じようなものだった)、週末だろうが、開幕戦だろうが、ポストシーズンだろうが、チケットが売り切れる心配はほとんどなく、テレビのスポーツニュースでは日本やアメリカで活躍する選手達が映し出されていた。客が滅多に来ないグッズ売り場のアルバイト大学生は持ち込んだ宿題に没頭し、スタンドでスルメを売り歩くオバサンとは試合中に何度も目が合ったものだ。実際、ソウルナビの原稿にも『チケットが売り切れる心配はほとんどなく、当日券でOK』と書いてきた。

それが今では、平日でも満員札止めの試合は珍しくなく(わが斗山ベアーズは、5月に8試合連続札止めを記録。8月1日現在、開催44試合で93万810名を動員している)、テレビ中継の後は、各局が競ってプロ野球専門プログラムを放送し、各試合の詳細な解説と女子アナウンサーの美貌とスカート丈の短さを競っている状態である。